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90)
어떤 풍파를 헤쳐 나왔기에.
“애들, 다, 저희보다 강해요.”
“…강하다고?”
나는 의문을 품었다. 혹시 싸워서 졌나. 아무리 그래도 육체적 결함을 뛰어넘어서 강할 정도면, 화양 씨네 집에서 특수 훈련 받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지 않을까.
“네. 다들, 저희보다 체력이 좋아요. 애들이 총 10명 있었는데, 이든이 형이 여섯 명을 상대했고, 저희 둘이서 네 명을 상대했는데, 대적할 수 없었어요.”
“이든이 형님 몸에 아이들이 개미 떼처럼 달라붙었는데, 형님이 모두 견뎌냈습니다! 위즈니 세계관에 나오는 세계수 같았습니다!”
“아니, 나는 정글짐이야, 준아. 놀이터에 붙박여, 움직이지 않고,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는…….”
류이든은 무릎을 감싸 안고 얼굴을 파묻었다. 하지만 근육 때문에 꽉 끼는 느낌이 들어서 자세와 체형의 부조화가 거슬릴 지경이었다.
“나는, 나는! 어렸을 적에 놀이터를 쓰면서 아무런 감사의 마음도 가지질 않고! 나는 쓰레기야! 동화야, 나를 괴롭혀 줘! 내가 너무 쓰레기 같아서 참을 수가 없어!”
녹음 완료. 네 입으로 말한 거니까 요긴하게 쓰도록 할게. 쉬는 날 일주일 정도 밤새워 보자, 이든.
“그래두 준이 형 덕분에 살았어요. 애들한테 즉석에서 위즈니 줄거리를 동화처럼 구연했거든요.”
“그리고 나는 의자가 되어 있었지.”
아니, 애들, 뭐야. 요즘 미취학 아동들은 그 정도로 사악한 거야? 왜 류이든은 언제나 기구나 사물 취급하는 건데. 제대로 강아지로 다뤄 줘.
“어쨌든, 살려 줘, 얘들아. 강아지반은 지옥이야. 우리, 제비뽑기! 제비뽑기로 하자!”
“저런. 나는 봉주한테 내일도 이 반에 와서 같이 앉아 있을 거라고 약속하고 나온 길인데. 아쉽네.”
“미안해, 형. 동화랑 나는 세트라.”
“맞아. 하민이가 봉주 제외 전원 담당이거든. 없으면 큰일 나.”
“내가, 내가 다 맡을게! 내가 다 의자가 될게! 제발!”
나는 류이든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는 걸 무시하고 교실 뒷정리를 위해 채하민과 함께 떠났다. 이 모든 촌극이 카메라에 촬영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거, 편집돼야 할 텐데.
“이제, 애들은 다 간 건가?”
“아마.”
돌보미 교실이라는 게, 부모님이 데리러 오기 전까지 계속 열려 있다고는 하지만, 벌써 시간이 8시니까, 이미 떠났어야 정상이긴 하지.
“선생님들 오시기 전에 미리 치우고 있자. 내가 많이 어질렀거든.”
아니, 그건 전쟁의 흔적일 뿐이잖아. 자랑스러운 상흔이야.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텅 빈 교실 구석 한 아이가 류이든처럼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 잠들어 있었다.
…봉주야.
“어, 아직 안 갔네.”
“일이 늦게 끝나시나 봐.”
생각해 보면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닐 것 같다. 요즘 시대에 밤늦게 일하는 직업이 적은 것도 아니고, 항상 정시 퇴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아무래도 이런 돌보미 집이 성행하는 이유도 그런 부모님들이 많기 때문일 것 같다.
채하민은 조용히 걸어가 봉주가 깨지 않도록 정리했다. 나도 내가 피아노 위에서 난리를 쳤던 흔적인 악보들을 주웠다. 정말, 견뎌냈구나.
“어머나, 선생님들, 쉬는 시간 다 쉬시지를 않고……. 성실하시네요.”
“아, 선생님!”
“어우, 선생님들은 계속 이렇게 카메라에 둘러싸여서 생활하시는구나. 연예인도 웬만한 사람은 할 직업이 못 되는 것 같아.”
“하다 보면 익숙해져요. 저희도 처음에 서바이벌 프로그램 나갔는데 막 옷 갈아입는 것까지 다 찍혔거든요. 그때는 조금 어색했어요.”
거짓말하지 마. 너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변한 적이 없었어, 하민. 내가 본 모든 연예인 중에 앞이랑 뒤가 똑같기로는 네가 최고라고.
“근데 동화는 카메라 앞이랑 뒤가 엄청 똑같아서, 신기했죠!”
“그러고 보니까 그런 것 같네요.”
선생님은 교실을 둘러보다가 구석에서 잠든 봉주를 보며 안타까운 듯이 짧은 숨을 내쉬었다.
“음, 봉주 아버지는 오늘도 일이 늦으시나 보네.”
“아, 역시. 저희도 일이 늦게 끝나시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2학년인데, 혼자 있는 거 보려니 마음이 편치는 않네요.”
부디 봉주가 깊은 잠에 빠져 있었으면 좋겠네. 별로 듣고 싶을 소리는 아니니까.
그때, 교실 문이 열리고 한 선생님이 얼굴만 빼꼼 들이밀었다.
“이 쌤, 잠시 사무실로!”
“아, 네!”
선생님은 허둥대시다가는 곧 우리를 보고 미안해 죽겠다는 뉘앙스로 말을 전했다.
“저, 그럼 잠시만 여기서 봉주 지켜봐 주고 있으시겠어요? 후다닥 달려갔다 올게요.”
그렇게 나는 봉주 옆에 있는 장난감을 치우다가 잠시 봉주 옆에 거리를 두고 앉았다. 채하민도 내 옆에 슬며시 앉았다.
“잘 자네.”
“너랑 똑같아.”
천진난만한 게. 애한테는 칭찬이지만, 어른한테는 욕과 다를 바 없는 말이다.
“나 자고 있는 거 지켜보나 보네.”
애 앞에서 험한 말 나오게 하지 마, 하민. 류이든이었으면 당장 멱살 잡고 밖에 나가서 뭐라고 했어.
“…취미야.”
“하긴, 엄마가 천사 같다고 자주 말하셔.”
아무리 사실이라도 그런 걸 네 입으로 말하면 기분이 더럽단다, 하민.
“…봉주는 나를 왜 싫어할까.”
덜 익숙해진 거겠지. 대뜸 다가오기도 했고. 애가 설정한 자신만의 영역에 무턱대고 들어가면 거리감이 들 수밖에 없다. 봉주는 그런 성격의 아이니까.
“싫어하는 게 아니라,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한 걸 거야.”
“그러면 너는… 시간을 넘나드는 거구나…….”
비슷한 인간 같아서 그러나 보지. 아무렇지도 않게 진실을 짚는 걸 보니 정말 대단하다. 저 녀석, 평소에는 맹하면서 가끔 감이 좋다.
“아아, 그래도, 애기들 좋았어.”
“그래.”
“엄청 귀엽고, 또 자기들 원하는 거 솔직하게 말하고, 또, 놀아달라고 떼쓰는 것도 보기 좋고, 음…….”
그게 좋은 점이라니, 속이 넓기가 태평양 같아서 심리학자들이 보면 충격받아서 탐구해 볼 만한 수준이네. 나는 옹졸하기가 소인배 같아서 공자가 보면 내 머리를 내리칠 수준인데.
“으음…….”
우리 목소리가 컸는지 조금 움찔대는 봉주가 곧 잠에서 깨어났다. 채하민은 긴장되는지 숨을 흡 하고 들이켜고는 제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저 잤어요?”
“응.”
“아버지는요?”
“아직 안 오셨나 봐.”
“그렇구나.”
봉주는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그 흔한 실망도 없이 수용하는 자세다. 아주 당연한 것을 만났을 때나 보여 주는 표정이다.
니체가 봤으면 뭐라고 했을까. 무거운 짐을 견디려는 정신이라고 설명했으려나. 아니면 안타까워서 철학이고 뭐고 넘겨 두고 일단 탄식했을까.
유년기의 결핍은 남은 인생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고들 한다. 그런데 그렇게나 중요하다는 유년의 기억을 우리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나도 세 살 때 내가 뭘 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하고, 많은 사람이 최초의 기억으로 여섯 살이나 일곱 살 때를 꼽기도 한다. 인간의 평균 수명을 약 칠십 년으로 잡으면 인생의 십 분의 일을 모른 채 사는 셈이다. 그것도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유년기에 해당하는 시간을 모른 채로.
그래서 인간은 평생을 가도 자신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나 보다.
봉주에게 유년은 어떤 흔적으로 남을까.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고, 혹여 타인에 대한 기대가 도리어 아프게 다가올까 봐 자신이 먼저 밀어내고 있는 이 시간은, 어떤 흔적으로 남아 봉주의 평생을 따라갈까.
사실 생각해 보면, 카메라 속에서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텐데. 그저 자주 홀로 있고, 아버지가 일이 늦게 끝나는 아이 정도로.
“그, 봉주야! 쌤이랑 같이 놀까?”
봉주는 그제야 채하민이 있는 걸 알았는지 놀라서 몸을 웅크렸다가 찬찬히 몸의 긴장을 풀었다.
그래, 얘가 조금 모자라도 애는 착하단다, 봉주야. 얘가 친해지고 싶은 사람한테 다가갈 때는 요령이 없어서 할 줄 아는 거라곤 돌격밖에 없거든. 이해해 주겠니.
“…몇 시예요?”
“지금 8시 반쯤!”
봉주는 충격을 받았는지 말이 없었다.
“어, 그, 그렇구나.”
저런, 평소보다 더 늦으시나 보네. 그래도 이런 시설이 하나라도 있는 게 다행이다. 아니었으면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만 길어졌을 텐데, 무슨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니까.
“우리 뭐 하고 놀까. 동화가 피아노라도 쳐 줄까?”
그래. 뭐든. 과하게 어려운 곡만 아니면.
“맞다. 선생님, 피아노 엄청 잘 치시던데!”
봉주의 표정이 올망올망하게 빛났다. 그 표정은 너무 아이다워서, 아까 전의 아이답지 않았던 모습과 대비가 됐다. 눈에서 비치는 호기심과 알고 싶다는 열망.
아, 얘가 왜 나한테 먼저 말 걸었는지, 알 것 같다.
“같이 쳐 볼까.”
“네? 아, 저는 피아노 칠 줄 몰라요.”
“가르쳐 줄게.”
“…그래도 돼요?”
“처음에는 다 몰라.”
내가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아버지도 그렇게 말씀하셨거든. 나는 봉주의 손을 슬며시 잡고 피아노 쪽으로 다가갔다.
“열어 볼래?”
“그래도 돼요?!”
“응.”
부서지면 내가 새로 살게. 돈 벌어서 이런 데 쓰는 거야.
봉주와 함께 건반 뚜껑을 열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엄청… 넓어요.”
“눌러 봐.”
띵―
“잘하네.”
“와……. 신기하다.”
“피아노 처음 만져 봐?”
채하민이 흐뭇하게 웃으면서 물었다.
“네. 평소엔 다른 애들이 쓰고 있어서…….”
그리고 혼자서는 쳐도 될까 싶었겠지. 나는 별다른 말없이 봉주의 손을 움직여 한 옥타브 아래 건반을 눌러줬다.
띵―
“이 두 자리, 한번 같이 쳐 볼까.”
“…네.”
봉주는 뭐에 홀린 듯이 자연스레 손을 벌리다가 양손으로 두 개의 건반을 동시에 눌렀다.
“어때.”
“…예뻐요. 막, 한 소리 같아요.”
“그렇지?”
어려운 음악적 용어는 가르칠 생각도 없고, 화성이니 뭐니 중얼거릴 생각도 없다. 그냥 좋은 장난감 정도로만 여겨져도 즐거울 것 같다. 악보 보는 법이야 조금만 알려 줘도 쉬운 악보는 칠 수 있을 테니까.
* * *
“이게, 도예요?”
“응.”
“이것도 도예요?”
“응.”
“이거랑 이거랑, 다른 곳에 있는데 이름이 왜 같아요?”
나는 답하지 않고 우선 한마디 짧은 멜로디를 연주했다. 그다음에 원래 멜로디와 한 옥타브 올린 멜로디를 같이 쳤다.
“다른 노래 같아? 다른 게 섞여 있는 느낌이 든다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