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91)
“…아뇨. 근데 약간, 화아―한 느낌이에요.”
절대음감은 아닌가 보네. 이번에는 원래 멜로디와 반음씩 높인 멜로디를 함께 연주했다.
“이건 다른 노래 같아?”
“네. 달라요. 이상한 게 섞여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 얘랑.”
띵―
“얘를.”
띵―
“사람들은 같은 음으로 듣는 거야. 그래서 같은 이름을 붙여준 거고. 봉주, 네가 키가 커도 여전히 봉주로 보이니까 사람들은 너를 봉주라고 부르잖아.”
물론 원래는 배음이 겹쳐서 뇌가 분간하지 못해 그런 거라고는 하던데, 그건 가르쳐 주려면 오늘 밤을 새워야 할 것 같다. 진동수부터 설명해야 되잖아.
“…와, 진짜, 진짜 신기해요.”
나는 봉주의 무수한 질문세례가 잠시 멈춘 틈을 타서 기지개를 조금 켰다. 가지고 놀면서 생기는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해 주다 보니, 시간이 꽤 흐른 것 같다. 언제 오시는 걸까, 아버님은…, 잠깐.
인기척이 느껴져 뒤를 보니 한 남자와 선생님이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에, 언제 들어오신 거야.
나는 채하민 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미친 토끼 한 마리가 졸도하듯이 피아노에 기대 잠들어 있었다.
“봉주야, 아버님 오셨어.”
여전히 환상 속에 갇혀 있는 봉주를 일깨웠다. 봉주는 흠칫 놀라더니 뒤를 돌아보고는 퍼뜩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아버지.”
“크흠, 봉주야, 집에 가자. 선생님한테도 인사드리고.”
“아…, 네.”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 나는 봉주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틈에 채하민의 어깨를 두드렸다.
“헉! 안 돼!”
“안 되긴 뭐가.”
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그새 꿈까지 꾸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채하민은 몽롱한 중에도 상황을 파악했는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저희 봉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약간의 기름향. 고된 노동을 하고 온 건지 얼굴에서 묻어나는 피로. 그러면서도 아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는 듯이 꼿꼿이 서 있는 모습. 엄격한 아버지처럼 보였다.
“아, 아니에요! 봉주한테 저희가 놀아 달라고 떼쓴 거예요!”
그렇게 말하면 나까지 ‘저희’에 묶여서 이상한 놈 되잖아, 하민. 어느 성인이 덜 큰 애한테 놀아 달라고 떼를 써.
“봉주야, 인사해야지.”
“내, 내일도 조금만, 가르쳐 주시면…….”
아이답게 바가지 머리를 푹 숙이고 몸을 약간 배배 꼬는 봉주는, 인사 대신에 약속을 신청해 왔다.
난 자리에 쪼그려 앉아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속.”
봉주도 조심스레 손가락을 엮고 손을 몇 번 흔들더니 해맑게 웃었다.
* * *
촬영 장소 근처에 잡아둔 임시 숙소, 나는 거실에 비치된 소파에 몸을 눕혔다.
“어쩔티비가 뭘까…, 동화야.”
류이든이 내 옆자리에 앉으며 중얼거리는 소리.
“…뭐라는 거야, 미친 형.”
“아니, 오늘 애한테…, 선생님은 의자가 아니에요, 라고 했는데 어쩔티비라 그래서… 대체 그게 뭘까 싶어서.”
‘어쩔’은 뭔지 알겠으니까 대충 닥치라는 뜻이겠지.
“입 닫고 가만히 있으라는 뜻 아닐까.”
“하지만, 하지만! 나 때는 TV 보는 게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거였단 말이지. 그러면 선생님이 좋다는 말 아니었을까?”
“TV처럼 나를 재밌게 하려거든 입을 닫고 가만히 있으라는 뜻인가 보네.”
정말, 요즘 미취학 아동들, 무섭다. 한 사람을 가구 취급하는 걸 줄임말로까지 만들어서 쓰다니. 류이든이 운동에 조금만 덜 미쳤으면 좋았을 텐데.
“저렇게 말해두, 다들 이든이 형 좋아했어요. 애들이랑 제일 많이 놀아 줘서. 형두 즐겼으면서 말만 저렇게 하는 거예요.”
이현재가 냉정하게 판단했다.
“맞아, 사실. 어리광 좀 부려봤지.”
류이든도 애처로워 보였던 표정을 집어치우고 만족스럽게 웃어댔다. 그러고는 우리 막내 이리 오라고 소리치며 목을 끌어당겼다. 이현재는 질색하며 류이든을 밀어냈지만, 신체적으로 너무 나약했다.
“형은 어땠어요?”
“…나는 뭐, 피아노 가르쳐 줬어.”
“그러면 나도 애들한테 운동 가르쳐 줘야겠다. 스쿼트부터 시작해야지.”
미친놈.
아침에 일어나니 야채 주스를 마시고 있는 채하민이 졸음에 쩔어서 칭얼댔다.
“동화야아, 봉주랑만 놀지 말고 오늘은 나랑도오 놀아 줘라아.”
꺼져. 우리 봉주 피아노 가르쳐야 해.
“저런 거 보면… 하민이 형두 정상은 아니에요…….”
이현재의 한마디에 석준이 먹고 있던 빵을 내려놓고 채하민의 이마에 손을 짚었다.
“음― 열은 없는데―”
“준이 형은… 본인이 항상 정상이 아니라 그래요.”
으음, 평화로운 하루의 시작. 이 방송이 끝나면, 힐링할 일도 몇 없을 것 같으니, 지금 마음껏 즐겨둬야겠다.
* * *
“오늘, 아빠한테 늦어도 된다고 말씀드렸어요.”
가장 먼저 도착한 봉주가 폴짝 뛰며 말했다. 서운하시겠는걸. 그래도 소중한 아들인데.
같이 준비 중이시던 선생님이 봉주가 웃는 걸 보며 같이 해맑아지셨다.
“그럼, 동화 선생님은 준비 말고 봉주랑 조금 놀아 주실래요?”
봉주가 웃고 있는 게 진심으로 기뻐 보였다. 이렇게 타인한테 따스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봉주와 함께 피아노에 앉았다.
띵―
곧바로 한 건반을 누른 봉주.
“도. 이게 도예요.”
“맞아.”
그리고는 곧바로 주르륵 건반을 쭉 내리친다. 손길이 조심스러운 게 도자기를 만지는 장인 같았다.
“저, 다 외워 왔어요. 건반 모양도 아버지 핸드폰으로 봐서 다 외웠어요.”
절로 미소가 나왔다.
“건반이 전부 88개였어요.”
“보통 그렇지.”
“아닌 경우도 있어요?”
“97개짜리도 있어.”
띵―
가장 왼쪽에 있는 건반을 눌렀다.
“얘보다 낮은 소리가 9개 더 들어간 거.”
“…구분 못 할 것 같아요.”
맞다. 보통 88개면 인간이 구분할 수 있는 소리들은 다 담아낸 셈이다. 그 건반들은 소리의 풍성함을 위해서 사용한다고는 하는데, 실제로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서 모르겠다.
“그런데 왜 88개예요?”
“왜일 것 같아.”
“혹시…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게 이게 다예요?”
“음, 소리는 이것보다 훨씬 더 세밀하거든.”
나는 붙어 있는 두 건반을 연달아 눌렀다.
“이 사이에 엄청 많은 소리가 있잖아. 그런데 그중에서 88개만 뽑아 둔 거야.”
“…아, 얘네들만 소리가 예뻐요?”
뭐야, 왜 아는 거지. 조금 당황스러운걸.
“응, 이 사이의 소리들은 약간 소음처럼 들려.”
“신기해요, 진짜. 왜 이런지 궁금한데, 어려워요?”
“중학생쯤 되면 알 수 있을걸.”
아니지, 그런 건 교육 과정에 없던 것 같기도 하다. 로그(log)는 아마 그때 배울 텐데, 그게 음계랑 무슨 상관인지는 안 배우겠네.
“처음으로 나이를 더 먹고 싶어졌어요. 어른들만 보면 빨리 늙기 싫었는데.”
나는 봉주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악보를 내밀었다.
“악보다.”
“볼 줄 알아?”
“계이름만 읽을 줄 알아요.”
“박자부터 설명해 줘야겠네.”
앞으로 이틀 안에, 최소한 비행기 정도는 칠 수 있게 만들어 주자. 어렸을 때 집중할 만한 취미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버틸 수 있다.
봉주는 별로 읽고 싶지 않아 하는 책을 방패 삼아서 스스로를 숨기곤 했으니까, 대신에 악보를 보며 방패를 세우면 정말 타인의 시선을 잊을 수도 있을 것이다.
* * *
“쌤, 어른들은 왜 결혼해요?”
종족의 번식을 위해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을 추천할게. 오래전에 써지긴 했어도, 여전히 참고할 만한 책이거든.
“영희가 커서 중학교에 가는 것처럼, 사람들한테는 계단처럼 가야 할 길이 정해진 경우가 있어서.”
“쌤, 쌤, 이상형이 뭐예요? 저는요, 현빈이 같은 배우가 이상형이에요!”
이상형에는 ‘이상(理想)’이라는 단어가 붙은 이유가 있단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거든. 그리고 나는 연애 감정이 메마른 인간이라 그런 건 살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선한 사람.”
“선생님, 어제 책에서 희망이라는 글자 읽었는데, 이게 무슨 뜻이에요?”
니체에 따르면, 모든 악(惡) 중에서 가장 나쁜 것이래. 인간의 고통을 연장시켜서. 절반 정도 동의해.
“대식이가 숙제가 끝나면 놀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숙제할 때 드는 감정.”
“선―생님! 학교 가기 싫어요! 왜 가는 거예요!”
거기엔 다양한 이론이 있는데, 어떤 걸 원하니. 마르크스나 루소같이 다양한 사람의 의견을 가르쳐 줄 수 있어.
“안 가면 보호자분이 혼내실 텐데,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한 번에 쏟아져 들어오는 질문에 차근차근 답해 주며 생각했다. 죽고 싶어, 말하고 싶은 것과 말해도 되는 것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자니 힘들어 죽겠다.
반면에 나와는 달리 채하민은 능숙하게 아이들과 대화하고 있는 게 보였다. ‘와아, 그거 예쁘다! 선생님도 어렸을 때 막 천사 머리띠 같은 거 자주 썼어!’라고 말하며 한 아이의 머리핀을 칭찬하고 있었다. 그보다, 너, 그런 거는 왜 써 본 거야.
“와아, 선생님, 엄청 똑똑해 보여요! 멋있어요!”
똑똑한 게 아니라 더럽게 비관적인 거야, 멋있는 것도 아니고 찌질한 거에 더 가깝고. 나중에 이런 어른으로 자라면 안 돼, 대식아. 저기 있는 하민이 형처럼…은 조금 그렇고, 본 적은 없어도 류이든처럼 자라야 돼, 알겠지.
나는 미소 지으며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보여 주면서 유혹했다.
“이거, 같이 읽을까.”
“싫어요! 개노잼!”
말투가 정말 아름다워. 언어가 급속도로 발전한다는 게 느껴진다. 이렇게 문화에서 도태되는 건가 보다.
“저런.”
하긴, 요즘에는 다들 손에 핸드폰을 쥐고 있으니 동화 따위가 즐거울 리가.
“그럼 이건?”
‘쉽게 읽는 동양 철학’. 내 전공 분야를 한껏 살려서 읽어 줄 수 있다. 각주까지 달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