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92)
“…선생님, 요즘 애들은 그런 거 안 읽어요.”
너 한 명으로는 확신할 수 없잖아. 분명 한두 명은 있을 거야.
“저, 저 읽을래요!”
보렴, 저기 악보를 손에 쥐고 볼을 붉히고 있는, 봉주가 있잖아. 나는 봉주 곁으로 다가갔다. 동양 철학, 논리학을 벗어난 기괴한 사고 체계를 함께 살펴보면 참 재밌겠지.
“음, 그러면 봉주, 이거 읽을까, 아니면 같이 연주할까.”
하지만, 내가 읽고 싶다고, 억지로 손든 게 뻔히 보이는 봉주까지 끌어들일 수는 없다. 봉주는 당황했는지 몸을 이리저리 꼬다가 답했다.
“그, 어, 근데, 피아노, 다른 애들이…….”
그럴 줄 알고 이현재한테서 미리 태블릿을 빼앗아 왔다.
“여기, 피아노 애플리케이션이 있어.”
“이게, 뭐예요?”
화면 위에 펼쳐진 건반들.
“한번 눌러 봐.”
봉주가 조심스레 누르자, 실제 피아노에 비하면 못해도 그럭저럭 들어줄 만한 소리가 났다.
“와! 와! 이거, 신기해요. 안 눌렀는데.”
그렇지, 건반을 누르지는 않았지.
나는 두 옥타브 간격 정도가 화면에 보이게 조정해 두고 봉주 앞에 내려뒀다.
“저, 정말 만져도 돼요?”
“응.”
망가지면 다시 사 줄 예정이야. 물론 애가 조금 만졌다고 망가질 회사 물건이 문제라고는 생각하지만.
그리고 이어지는 광란의 비행기. 봉주는 어젯밤에 몇 번이고 피아노를 치는 걸 머릿속에 상상으로 그려봤다고 하던데, 정말인지 오늘 잠시 같이 쳐 본 게 전부인 곡을 쳐냈다. 물론 아직은 투박하고 박자가 묘하게 비틀려 있지만, 칠 수 있다는 게 어디야.
“저, 할 수 있죠.”
“응.”
“이거, 이거, 신기해요. 진짜, 세상에 신기한 게 이렇게 많은지 몰랐어요!”
원래 아이는 신기해하면서 커야 하는 법이라고 한다. 세상에 아직 보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 게 그렇게나 많은데, 신기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다음 악보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입으로 무언가를 중얼중얼거렸다.
“아…, 박자가, 이렇게.”
그러고는 또 엉망진창이어도 일단 치면서 웃고 있었다. 다시 치면 곧 자기가 틀렸던 곳을 조금 더 가다듬으며 나아갔다. 내가 피아노를 배운 게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이런 학습 속도가 일반적일 것 같지는 않다.
“재밌어?”
“네.”
핸드폰 같은 걸로 들을 만한 피아노 곡들, 추천해 줘야겠다. 작업할 때 머리 식힐 겸 듣는 리스트가 있으니까 몇 곡 뽑아서 알려 주면, 나머지는 알고리즘이 알아서 해결해 주겠지. 이제 집에 혼자 있을 때도 외로움보다는 음의 아름다움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와아, 봉주야아, 너 뭐냐, 왜 잘 치냐.”
어제 나한테 피아노를 쳐 달라고 했던 아이네. 나는 잠시 뒤로 물러나 봉주가 어떻게 할지 지켜봤다.
“응.”
“이거, 어렵던데, 난.”
“나도.”
어색해하는 기색은 없지만, 피아노 소리에 황홀경을 느끼는지 들리는 말에 거의 반사적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너도 쳐 볼래?”
저거, 진심은 아닌 게 분명하다. 예의상 하는 겉치레스러운 말이었다.
“아니, 나 저기서 엄청 쳤거든.”
“아, 응.”
그러고는 손이 멈칫하더니 고개를 들어 올리고 말을 건 아이를 바라보며 멈칫했다. 원래 피아노가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텅 빈 의자.
“어, 동화 서, 선생님, 저, 저기서 쳐도 돼요?”
“그럼.”
그런데, 봉주야, 방금 포도가 눈앞에 떨어졌는데, 네가 발로 찬 거, 알고 있어?
그저 마음 편히 쉴 만한 도피처를 만들어 주고 싶었을 뿐인데, 도피처가 너무 황홀한 나머지 원래 소망조차 잊어버리다니, 내가 무언가 크게 실수한 기분인걸.
* * *
저녁 식사 시간, 선생님들과 함께 중국집 음식을 배달 주문해 커다란 탁자에 모여 앉았다.
“맞다. 그거 알아? 우리 반에 봉주 있잖아.”
“아, 그 친구. 조금 걱정됐잖아요. 감정 표현도 적고 그래서.”
“그치. 그런데 세상에나 만상에나, 동화 선생님을 그렇게 잘 따라.”
“역시, 잘생기고 봐야 하는 거네요.”
이 선생님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야, 그게, 봉주가 피아노를 좋아하나 보더라고. 우리는 사실 피아노 칠 줄도 모르고, 누가 뭐 말해 준 적도 없잖아. 동화 선생님이 피아노를 잘 치셔서.”
“와아.”
동경의 눈빛, 부담스럽습니다.
“동화, 너 피아노 배웠어?”
“키보드랑 기본 원리는 같잖아.”
“오오, 그럼 약간 야매 피아노리스트네.”
맞다. 그래서 운지법도 잘 몰라서 그건 가르쳐 주지도 않았지.
“아버님도 엄청 놀라셨어요. 애가 저렇게 말 많이 하는 건 처음 본다고.”
“예쁜 소리에 엄청 관심이 많더라고요.”
내 말에 선생님들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신기해라. 예쁜 소리, 나는 잘 모르겠던데.”
“저도요. 요즘 음악은 잘 듣지도 않거든요. 아이돌도 잘 몰라서…….”
그때, 이 선생님의 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그러자 이현재와 류이든이 맛있게 먹고 있던 자장면을 조금 뱉어낼 뻔하면서 웃었다. 무음 모드가 아닌 게, 그렇게까지 웃을 일일까.
심지어 이 선생님도 얼굴이 빨개져서는 수치심에 몸을 떨고 있으셨다.
“버X 알림음이야.”
류이든이 조용히 귓속말로 속삭였다. 아아, 그렇구나. X블은 보통 아이돌 덕질을 하는 사람이 아니면 가지고 있지 않은 어플이니까. 방금 순식간에 일반인 코스프레, 실패하셨구나.
수치심에 떨던 선생님이 애써 이겨냈는지 환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팬이에요! 블로센스! 나오는 곡마다 하나하나 다 좋았어요!”
“와아아아! 감사합니다! 얘들아, 공식 인사 한번 올리자! 모여, 모여!”
밥 먹다가 이게 무슨 일이야.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만 잘 먹고 있었던 다른 선생님 한 분과 석준은 봉변을 당해서 우물우물거리며 덩달아 일어섰다.
“To be blooming! 블로센스입니다!”
뭐 하는 짓이냐고.
마지막 날. 오늘은 그냥 어린이 대공원에 나왔다.
“아이들, 제대로 돌볼 수 있게 힘내 봐요, 오늘.”
‘그 알림음’을 들키고 나서 부쩍 친밀감이 생긴 이 선생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한 일이라고는 피아노 가르쳐 주기와 아이들과 함께 숙제하기, 가끔 선생님들이 준비한 수업 보조밖에 없었으니, 방송을 위해서라도 이런 특별 이벤트가 필요하겠지. 사실, 잘 모르겠어. 이거 방송될 수 있는 걸까?
“PD님 말씀으로는 편집하면 웃길 장면 꽤 많이 나왔다고 기뻐하시던데.”
“분량은 다 네가 가져가겠네, 이든 형.”
“…나는 사물 취급당한 것밖에 없어.”
“적재적소에 한 번씩 꼭 들어갈 장면이지.”
“너는, 너는 뭐 없었어?”
“나는 조용한 순간밖에 없어서, 고양이반은 토끼반으로 개명할 예정.”
“그러면 방송 분량은 0에 수렴할 예정이구요?”
“응.”
수렴이 아니라 그냥 상수로 확정일 것 같은데.
“근데, 지난번에도 심바랑 둘이서 분량 좀 많이 잡솼지 않아?”
“그건, 감동 코드잖아.”
피아노 교습소 브이로그 따위가 공중파 방송에서 자리를 차지할 리가 있나. 채하민이 나오다가 쉬어가는 타임에 나랑 장난치는 장면이 섞여 들어갈 가능성이 차라리 높다.
“어쨌든, 정신 차려야겠네, 우리.”
저 인파를 이끌고 잘 다닐 자신이 없으니까.
* * *
“쌤, 쌤, 목마, 목마!”
목말이란다, 아이야. 아니지, 류이든은 장난감 취급이니까 장난감 말 정도로 생각하면 틀린 것도 아닌가.
동물들이 여러 우리에 갇혀 있는 걸 보고 있자니, 지난번에 갔던 연구소와는 환경이 다르다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거기는, 생활 공간이 훨씬 더 넓었는데 말이야.
나는 자리에 앉아서 건너편의 사슴과 눈을 맞췄다. 아, 쟤, 지금 1000원으로 살 수 있는 사료를 달라는 눈빛이네.
자본주의의 정착과 도시화의 결과물을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건 비둘기다. 사람들이 비둘기를 봤을 때 느껴지는 감상은, 깨끗함에서 더러움으로 변화했다.
이 공간도, 그런 셈이겠지. 아름답고 친구 같은, 때로는 무서워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자연이 아니라, 종속되고 지배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자연으로 변해…….
“동화야, 그런 생각할 틈이 없어. 빨리 저기 봐봐.”
“왜, 하민?”
“저기, 봉주가 친구가 생긴 것 같다니까!”
세상에, 이게 첫걸음마를 떼는 아이를 보는 심정인가. 기묘한걸.
봉주는 예전에 피아노를 치자고 말을 걸었던 아이와 함께 종이를 한 장 보고 있었다. 저거, 뭔지 알 것만 같아.
“내가 들었는데, 저 애, 사실 봉주랑 친해지고 싶었대.”
“…그래?”
너랑 똑같네.
“어, 봉주가 조금 어른스럽잖아! 그래서 막 다가가기 어려웠나 봐. 게다가 예전에는 말 걸려고 하면 도망치고 그랬대.”
“응.”
“그런데 이제는 갑자기 대답을 해주나 봐.”
그거, 걔 말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피아노 얘기라 그런 거야. 저 종이쪼가리도, 피아노 건반 그림일걸. 실제로 봉주는 지금 종이 위에 대고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으니까.
“옛날 생각난다.”
“나도.”
네가 말 걸었을 때 생각나.
“어렸을 때 춤추는 게 엄청 재밌어서 춤만 추고 그랬는데……. 진짜 춤추고 있을 때는 아무 생각도 안 들고, 다른 사람 시선도 안 보이고, 다 좋았어.”
나도 책만 있으면 어떻게든 살아 볼 수는 있겠다 싶었어.
봉주는 피아노 얘기를 진득하게 하고 있는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고작 좋아하는 게 같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마음을 열다니, 정말 아이다워. 그래서, 아이다워서 참 보기 좋았다.
나는 봉주의 웃는 얼굴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하민.”
“왜?”
“조금 일찍 나타나지 그랬어.”
“응? 나 오늘 지각 안 했는데.”
“…그러게.”
맞네, 넌 지각한 적 없지. 내가 일찍 출근한 거니까.
* * *
“자, 오늘로 선생님들이 가십니다! 여러분들 박수!”
박수 소리. 음,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고작 3일이지만 내내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나름대로 정이 든 것 같다.
“선생님들…, 이제 안 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