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95)
“…그러면 나 말 못 하는데.”
“동화야, 책임이, 뭔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채하민은 무릎을 만지작댔다. 긴장한 게 티가 났다.
“누구 책임이든, 그냥 너, 고생하는 걸 보기가 싫은데.”
세상에. 그런 말을.
“그냥, 책임이 뭔지, 누구한테 책임이 있는지, 다 따지는 거, 나는 머리가 너만큼 좋지가 않거든. 아마 너가 하는 말이 다 맞을 거라고 생각해. 너는 똑똑하잖아? 당연히 그렇겠지.”
비꼬려는 의도가 하나도 없는 말. 어떻게 저리 투명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냥 내가 조금 마음이 아파. 평소에도 엄청 고생하잖아. 맨날 작업실에서 자고. 소파도 막 침대처럼 눕힐 수 있는 걸로 사고. 그거야, 이제는 내가 쉬라고 하면 조금 쉬니까 괜찮은데, 이번에 이든이 형한테 들어보니까, 엄청 고생하려고 한다 그러는 거야.”
비밀이었잖아, 바보야. 어이없네. 나는 일단 지적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 드라마 넘어져서 내가 공기처럼 아무 화제도 안 되는 것보다.”
채하민은 고개를 푹 숙였다. 이번에는 긴장보다 부끄러움에 더 가까운 감정인 것 같다.
“그냥, 너랑 멤버들이랑 같이 노는 게 더 좋은데. 일찍 들어와서 보드게임 같은 거 하자.”
설득되기에는 너무 논리가 없었다. 차라리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고, 자신의 일이며, 네 도움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으면 별말 없이 수긍했을 것이다.
내가 권했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커리어이며, 자신의 결정이었고, 타인의 도움으로 이룬 성공 따위 바라지 않는다고 했으면, 깊게 고개 숙여 사과할 마음도 있었다.
그냥, 아이 같아. 그냥, 아이 같다. 정말.
강렬하게 부딪쳐 오는 애정에 뇌가 제대로 기능하지를 않는다. 그저 채하민이 한 말을 들어 주고 싶다. 떼를 쓰는 게 분명 맞는데,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화제 되고 뜨면 당연히 기쁘겠지만, 그것보다 너랑 노는 게 더 기쁠 거야. 동화, 너는 고민 깊어지면 나랑 하나도 안 놀아주잖아.”
어린 왕자냐고, 망할 토끼 놈아. 우리 그룹에 여우가 한 마리 있는 게 다 그런 이유였냐고. 장미는 대체 누구일 예정이야.
“그래.”
“그러니까, 막. …응?”
“알겠다고.”
망할, 이게 뭐야. 이미 문자를 다 보내 두었는데, 뭐라고 말씀드리면서 취소해야 할지 모르겠네.
“거짓말이지. 동화, 너는 내 말에 설득될 정도로 쉬운 남자가 아니잖아.”
채하민은 답지 않은 의심 어린 표정으로 나를 째려봤다.
“예전에도 쉬기로 한 날에 작업했던 적 있잖아.”
“…그건, 그랬지.”
“이번 드라마, 방영 전까지, 계속 감시할 거야.”
“믿어, 망할 놈아.”
“아니, 이든이 형이, 아, 비밀인데.”
채하민은 이번에도 비밀을 제 입으로 뱉어내 놓고는 화들짝 놀랐다.
“그, 음, 이든이 형이 소개해 준 사람이.”
그렇게 무마하려거든 ‘비밀’이라는 말을 했으면 안 돼, 하민아. 너, 가끔 정말 멍청하구나.
“절대로 믿지 말라고 했단 말이야.”
“날 믿어.”
“응? 근데…….”
“류이든보다 내가 정직해.”
물론 이것도 거짓말이다.
“…아아, 들켰네, 미안, 이든이 형.”
* * *
“하하, 지동화 전용 억제기. 유일한 목줄. 해와 구름에 나오는 해님이 우리 하민이었네!”
문밖에서 귀를 대고 모든 대화를 도청하고 있던 류이든은 대강 정리된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동화 다루는 데는 목화나 하민이가 직방이야.”
그러면서 류이든은 헤실헤실, 절로 나오는 웃음을 계속해서 흘렸다.
“…형, 변태 같아요.”
방금 막 씻고 나왔는지 머리에 수건을 얹고 류이든의 행실을 보고 있던 이현재가 경멸의 눈초리로 쏘아봤다.
“헤헤, 변태라도 좋아.”
“…제가 싫어요.”
벌컥. 아직 문을 귀에 붙인 상태였는데 문이 열렸다. 지동화가 웃으며 나와서는 류이든의 멱살을 일단 부여잡았다.
“하하하, 이겼네?”
“그래?”
“하하, 응, 내가 이겼지! 하하하, 하하, 하하하하.”
지동화는 무표정이었다. 몹시 냉정한 표정.
“고마워.”
“하하, 하, 하, …응?”
“신경 써 줘서.”
“…어?”
의외다. 지동화라면 계획이 어그러질 때, 절대로 감사해할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었으니까. 도리어 어그러지면 다시 어떻게든 새로 계획을 세울 테니 꼭 감시도 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도리어 이렇게……. 류이든은 점차 미안한 감정이 차올라서 숨이 벅찬 느낌이었다.
“그리고, 작업하러 가자.”
“…어?! 싫어! 방금도 하고 왔잖아!”
“이틀만 밤새우자.”
“안 돼!”
“형은, 쓰레기니까, 괴롭혀 달라며.”
지동화는 천천히 미소 지었다. 악마 놈. 팬분들은 지동화의 미소가 너무 좋다고, 설렌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특히 활짝 미소 지을 때는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보니 유독 더 좋아하시곤 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인간은 좋아하기에는 너무 두려웠다.
“내 감동 돌려내! 나 진짜 감동했단 말이야.”
“맞아! 동화야! 감동 돌려내! 놀아주기로 했으면서 왜 일하러 가!”
“다 조용히 해. 이틀 안에 OST 다 뜯어 고칠 거니까.”
“…그걸 왜? 거의 다 끝나서 PD님한테도 보냈지 않아? A&R팀분들도 다 끝냈다고 하셨는데!”
“드라마가 망해도 OST는 남게 만들어야 하니까.”
류이든은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그냥, 무리해서 위험한 일까지 할까 봐, 하민이한테 부탁해서 막은 것뿐인데.
“아니, 이미 좋잖아!”
“그러니까 더 좋을 수는 없게 만들어야지.”
지동화는 별말 없이 류이든을 일으켜 세웠다.
“같이 갈 거지, 형?”
“…아아, 정말, 나는, 왜 이렇게 네 부탁에 약한지 모르겠어.”
류이든은 먹이사슬 최하위인 자신의 입장을 깨달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이틀의 불야성이 시작됐다.
[우리 리더 구조 요청 보냄](지동화 작업실에 손이 묶여 있음을 증명하는 사진과 ‘SOS 시간이 많이 없습니다, 여러분’이라는 글귀가 적힌 게시물)
ㅋㅋㅌㅋㅋㅌㅋㅋㅋㅌㅋㅋ 진지하게 뭔 상황인지 1도 모르겠어서 어이 털렸는데 알고 보니 동화한테 작업 귀신이 들려서 무한 피드백 중이래 댓글―ㅁㅊㅋㅋㅌㅋㅋㅋㅋ 집착 뭔데 ㅋㅌㅋㅋㅋㅋㅋㅋㅋ
└ 동화가 가끔 보면 우리 애들 중에 제일 미친 사람 같기도 하고… 그 은은하게 미쳐 있는 머릿속 때문에…
└독 짓는 노인 같은 광기가 있다.
└??? : 내가 원하는 소리가 아니다.
└??? : 이것도 아니야!(미디를 집어던지며)
―우리 현재… 저런 형들 보면서 자라서 그런지 천천히 광기에 잠식되는 거 같아 └조용히 막내온탑 시전 중임
└특유의 예민미가 개맛있는 막내
대학 강의를 듣기 전 잠시 즐기는 커뮤니티 활동은 가뭄 같은 대학 생활 중 유일한 구원과도 같다. 쉬는 시간에 보는 최애 사진도 물론이다.
그러나, 가끔 인간은 오아시스를 곁에 두고도 모래사막을 물 없이 견뎌야만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어우, 추워라.”
“그러게.”
옆자리에, 위시로 추정되는 인간이 있으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같은 과라고 해도 데면데면한 사이. 최근에 와서야 친해지고 있으니, 일단 간만 조금 보자는 심정이다.
원래 시작은 사소하고 별것 아니더라도 인터넷에서의 다툼은 그 사소하고 별것 아닌 일로 끝까지 이어지는 법이다.
“수빈아.”
“왜, 어진.”
“어제 우리 애들 컴백 티저 뜬 거 알아?”
“호핀 컴백 주기 엄청 빠르네.”
“디오니치고는 조금 늦게 이제야 확 뜨는 느낌이니까, 노 들어올 때 물 젓는 거지.”
반대야, 바보 같은 인간아. 지동화의 팬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한숨을 푹 쉬었다.
“이거 봐 보라니까. 우리 목화 개쩐다고.”
그래, 그게 누구랑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데, 안 쩔겠냐고. 생물학의 신비란다, 이것아. 그녀는 별생각 없이 친구가 전달해 준 이어폰 한쪽을 받아 꼈다.
‘…오, 쒸. 왜 이렇게 좋아.’
케이팝 덕력이 조금 되다 보면 알 수 있다. 심장을 뛰게 하는 라인이 있다는 것을. 단순히 듣기 좋다를 넘어서서, ‘아, 이건 무슨…….’이라는 중얼거림과 함께 무대에 집중하게 되는 라인.
생각해 보면 지동화가 통계와 감각, 두 가지에 의지해서 만든 라인도 그런 축에 들고 부러울 이유도 없는데, 괜스레 고깝다.
“…좋은데?”
분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법이다.
“그치? 이번에 디오니가 작곡가 하나는 진짜 제대로 잡은 듯.”
“아, 누구 새로 들어왔어? 예전에 그 사람 나가고 말 많았던 건 기억나는데.”
“너 돌판 제대로 보고 있구나. 아이돌 그렇게 막 관심 있는 건 아니라더니.”
젠장, 이런 하민이나 할 법한 실수를.
“에이, 그건 유명했잖아. 연예 뉴스 정도는 보니까.”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귀에 들리는 소리에나 집중했다. 그런데 어째선지 들으면 들을수록 익숙한 건 왜일까. 아이돌 덕질이 오래된 그녀는, 특유의 색깔 정도는 느낄 수 있는 지경에 다다랐다.
“…동화야?”
“…응?”
다시 찾아오는 침묵. 어색한 기운이 둘 사이를 감돌았다. 뭐라고 해명해야 할 것 같은데, 돌판에 관심 있는 친구 한 명쯤, 대학교에 만들어 보고도 싶은데, 그녀의 머릿속은 조금 새하얘지는 기분이었다.
“자, 여러분, 시간이 됐으니, 시작해 볼까요? 아까 말씀드렸듯, 비극을 만드는 핵심적인 요소는 결정적인 실수라고 했죠?”
그렇다. 비극을 만들 때는 항상 결정적인 실수가 있어야만 한다. 마치 지금 채하민이나 할 법한 실수를 아무렇지 않게 해 버린 그녀의 이야기처럼.
하지만 안타깝게도 남이 보기에는 희극에 가까울지 모르겠다.
* * *
봄. 이번 드라마에서 핵심이 되는 계절적 배경은 봄이다.
대학교에 처음 들어가는 이들과 이미 대학교에 상주하고 있는 이들 사이의 연애를 그려내는 게 목적이니까.
물론 우리 하민이는 짝사랑을 지독하게 앓은 이후 고백으로 장렬하게 전사하는 역할이다.
그렇기에 이번 OST 역시 그런 분위기를 한껏 살려서 음악 감독님의 말을 빌리자면 ‘설레면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노래로 옮긴 듯이’ 들려야만 했다.
그리고 문제점, 내가 연애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 두근거림이라는 건 두려움과 공포 상황이 아니고서야 느껴본 적이 없다는 것.
통계를 활용하면 ‘두근거림을 노리고 만든 음악’들의 공통적인 특성을 추출해서 만들 수야 있겠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깨달았다.
사랑도 호르몬의 작용이라고 하던데, 호르몬제 같은 걸로 어떻게 할 수는 없을까.
[되겠습니까.]‘태클 금지.’
[하하,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애송이한테 그런 말을 듣고 있자니 제 처지가 한심스러워서 안타까울 지경입니다!]‘피차 마찬가지잖아.’
[학술적으로 설명하는 건 당신보다 잘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