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96)
‘경험적으로 모르는 건 똑같은 거 아닐까, 기지생.’
[…서운합니다.]얘는 정말 몇 주 전부터 왜 이럴까. 감정을 느끼는 건 좋은데, 성격이 괴상하게 변한 것 같아서 걱정될 지경이다.
“그래서, 오늘 작업의 목표가 뭐야, 동화야.”
류이든이 자신의 손으로 묶은 밧줄을 풀면서 물었다. 조금 전에 팬카페에 나의 만행을 고발하겠다며 당당하게 증거를 조작해서 사진을 찍었다. 누가 보면 내가 묶은 줄 알겠어.
“봄을 음악에 담는 것.”
“…아, 제발, 오늘도 ‘봄이 느껴져?’라는 질문만 수백 번 듣겠네?”
“그럴 예정이지.”
음악에 가사가 없더라도, 잘 쓴 곡이라면, 듣기만 하더라도 어떤 기억을 떠올리는 경우가 있다. 처음 듣는 사람의 머릿속에 봄의 캠퍼스 보도를 거닐었던 경험을 떠올리도록 하는 게 목표다.
“…동화 형, 나 대학 가 본 적 없어.”
“아쉽네.”
“너는 가 본 적 있잖아. 내가 무슨 봄을 알아. 나는 봄 같은 거 모른다고.”
휴학계 내러 가는 길에 봄을 만끽하며 설렜을 것 같냐, 망할 놈아.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청춘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인간이 형이야.”
‘어쩌라고’라는 네 글자를 표정으로 형상화하면 지금 네 얼굴처럼 되겠네, 멋져, 형.
“그리고 청춘의 춘 자는 봄 춘(春) 자잖아.”
“…미친.”
“알아들었으면 곡 좀 들어 봐, 형.”
“논리 이상하잖아!”
인간은 중요한 일이 있고, 그 시한이 가까워질수록 정상적인 사고 판단이 힘들어지는 특성이 있다.
당연히 나도 인간이라서, 이번 드라마 시즌, 무슨 개같은 일이 있어도 사람들 기억 속에 지질한 연하남으로 채하민이 기억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사실에 사고 판단이 흔들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
흘러나오는 음악 속으로 나는 손가락을 까닥였다. 음, 화성적으로 잘 짜인 구성이라는 건 분명하다. 화성은 차라리 수학에 더 가까운 거라서 봄의 감각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만.
“…아, 그냥 무난하게 좋은 느낌이다.”
나도.
“그러니까, 사랑 얘기를 들어보려고 해.”
간접 경험도 경험이니까 곡에 녹여내는 데 쓸 수 있지 않을까.
“어… 나?”
“응.”
의자를 돌려 류이든을 보니 난처하다는 듯이 밧줄을 만지작댔다. 멋쩍다는 듯이 몸을 배배 꼬는 걸 보고 있으려니 벽돌이 시급했다. 내리치고 싶어.
“아, 큰일이네. 첫사랑도 없는데, 나.”
류이든의 충격적인 발언에 나는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떻게 돼 먹은 팀이야.
“…전화 걸어 보자, 다른 애들.”
* * *
정말, 어떻게 된 거지. 대한민국에 사랑이 죽는 돌림병이라도 우리가 태어난 시점에 발병한 걸까. 아니면 에리히 프롬이 사랑이 무엇인지 미칠 듯이 고민한 게 벌써 한 세기 전인데, 이게 가능한 일일까.
모든 멤버들에게 전화를 돌려본 결과, 우리는 충격적인 사실을 하나 알 수 있었다.
‘아이, 부끄럽다! 동화야, 뭘 그런 걸 물어보고 그래!’라고 말하며 시간을 끌던 채하민은 ‘아아아! 없어! 나 유치원 때 손잡고 다닌 게 끝이란 말이야. 기억도 안 나!’라고 발악했다.
반면에 이현재는 질문을 받자마자 ‘사랑하기에는 제 인생이 너무 박복했어요.’라고 자조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석준은 ‘레미―입니다.’라며 누가 들어도 위즈니 등장 인물의 이름을 들먹였다. 그건 사람이 아니라 첫사랑의 대상이 되기는 힘들다고 설득하다가 뭐 하는 짓인가 싶어 포기했다.
“…이거, 조금 심각한 거 아닌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니, 동화, 너나 나는 그럴 수 있다 싶은데.”
“왜?”
“나는 리더고, 너는… 누가 봐도…….”
무슨 편견 섞인 말이람. 류이든이 끝내 흐린 뒷말이 무엇이었을지 호기심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어쨌든 아무래도 구설수 터지면 난장 나잖아? 그래서 인맥 쌓을 때도 주의했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합리적이긴 해. 이런 것들이 다섯이나 모여서 한 팀인 것도 웃기고.
“하민이가 의외네. 갓엔터도 연습생 때 사생활 좀 통제하고 그랬나?”
알 게 뭐야, 기억도 안 나는데.
“큰일 났네.”
나는 의자에 몸을 기울였다. 류이든도 나를 따라 몸을 기울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둘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그치? 연애를 아무도 안 해 봤다니 나중에 이상한 사람 만나면 어쩐담.”
“아무도 내 곡에 피드백해 줄 수가 없잖아.”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그딴 게 왜 문제지.’라는 눈빛을 교차했다. 정작 자기도 해 본 적 없으면서 무슨 애들 걱정을. 제 앞날이나 부디 걱정하기를.
한참을 말없이 서로 바라보다가 나는 우선 컴퓨터 전원을 켜 메일을 작성했다.
“뭐 쓰냐, 동화야.”
“감독님한테 프로젝트 제안 드리려고.”
“…뭔 짓을 하려는 거야?”
“애초에 글렀어, 우리는.”
봄은 무슨 봄이람.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서 태어났으면서 나는 겨울만 잔뜩 맛봤고, 나머지도 도긴개긴인데. 차라리 지나가는 유치원생들 모아두고 물어보는 게 합리적이겠다 싶을 지경이다.
“…글렀긴 해.”
류이든도 수긍하며 내 뒤쪽으로 와서 메일의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는 듯싶었다.
“오, 재밌다.”
[‘당신의 봄은 무엇입니까?’ 프로젝트 제안]빅데이터, 통계학이 얼마나 위대한지는 세상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 * *
그리고 일주일일 후, 드라마 방송국 사이트와 블로센스 공식 SNS 계정, 팬카페 등에 하나의 설문 조사 페이지가 게재되었다.
[당신의 봄은 무엇입니까?]라는 제목과 함께, 총 다섯 개의 10초짜리 음원 중 1등과 2등을 선택하도록 만들어진 페이지.10초의 음원은 서로 비슷하기도 상이하기도 하며, 조금씩 분위기가 달랐다. 정말 별것 아닌 설문이지만, ‘이건 왜 하는 걸까’라는 원초적인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게 뭐냐](설문 게시글 주소와 캡처 사진)
블로센스 얘네들 혹시 다음 타이틀 대형 유출한 거냐. 뭐냐? 방송국에는 왜 올라온 거냐 댓글
―이건 OST 각이 날카롭게 선 거라고 봐야겠지
└아 지난번에 그 황제 뭐시기에서도 OST 개좋았는데
―와 근데 ㅅㅂ 3번 느낌 개쩐다 듣자마자 1등 줬음
―아 이런 거 할 시간에 연습했으면 연말 무대 시간 조금 더 얻었을 듯 └ㅂㅁㄱ.
―얘네도 진짜 이상한 거 많이 하는 거 같애…
처음에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별말 없이 떠돌았던 그저 그런 설문 조사였으나, 한 사람, 아니 두 사람이 등장하며 이야기가 달라졌다.
[야 톳 얘네들은 후배 ㅈㄴ 좋아하나 봐](준성과 예언의 개인 SNS에 설문 조사를 하는 모습 셀카가 올라온 것 캡처.)
뭐만 하면 일단 홍보해 주는 거 같은데ㅋㅌㅋㅌㅋㅋㅋㅋㅋㅋㅋㅋㅋ비록 지동화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제멋대로 실천하고 있는, 지동화에게는 성가신 사람들이지만, 사실은 아이돌 판에서 이름값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 둘을 시작으로, 류이든과 친분이 있는 이들도 ‘제 픽은 4번!’ 같은 인증 글을 올리기도 했다.
지동화는 알았을까. ‘한 백 명 정도만 설문 조사해 보고 싶다.’라는 소박한 소망에서 시작한 짓거리가, 이렇게 큰일로 번지리라는 것을.
“형, 세상에 예상대루 되는 게 얼마나 되겠어요.”
“…PD님이 음원 관련으로 부탁할 일 있으면 뭐든 하라고 하셔서, 그냥 소박하게 방송국 사람들 전수 조사 같은 걸 기대한 거였어.”
“그러니까요. 형은 스스로 재앙을 불러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니까요. 작곡하는 것만 봐두, 이번에 조금 더 좋은 곡 쓰겠다구 갑자기 다짐하시더니 이상한 이벤트 같은 거나 주최했잖아요? 팬분들이 이거 지금 타이틀 곡인가 아닌가로 뭐라 뭐라 말씀이 많아요.”
그래, 그럴 수 있지. 인생이라는 게 원래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
“그래서, 원서는 어떻게 됐어?”
“다음 달에 발표래요. 떨어지면 나중에 형이 다닐 학교에 기여한 걸로 만족하려구요.”
이현재는 소파에 누워서 흥얼흥얼 콧노래를 불렀다. 수능이 끝나고 나서, 넘쳐나는 시간 속에서 이현재는 미칠 듯이 나태해졌다. 태블릿으로 커뮤니티와 E북 리딩 어플, 그리고 X튜브까지를 자유롭게 오가고 있는 지금은 말할 것도 없다. 저러려고 13인치짜리를 썼던 거군. 쓸데없이 크다고만 생각했는데.
“…현재.”
“네?”
내 과외생은 훨씬 더 성실했던 것 같은데, 어쩌다 저렇게 됐을까.
“요즘, 한가하지.”
“…저 매일 레슨 나가는데요?”
이현재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내 말이 어떻게 연결될지 재빠르게 눈치를 챈 것 같다.
“그리구, 저 라디오도 가끔 나가구…….”
“인간한테 노동은 중요한 거 알잖아.”
“아니, 그러니까 하고 있잖아요, 노동을.”
“수능이 끝나고, 무언가 목표를 잃은 것만 같아서 나는 마음이 아플 때가 있어.”
OST 작업이 설문 조사 덕분에 잠깐 늦어졌으니, 그 틈에 류이든을 괴롭혀서 곡을 하나 완성했다. 신경 썼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곡을.
“받아.”
“…USB잖아요.”
“성인된 기념으로, 개인곡. 수능 끝날 때 주고 싶었는데, 작업이 너무 밀려서.”
이현재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 떨리는 손으로 USB를 받았다. 가만히 USB를 바라보다가 멍한 표정으로 입술을 몇 번 달싹였다. 뭐라 말을 하려다가 포기하고 한숨을 깊게 내쉰 뒤,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형은… 왜 계속 일을 만들어서 하는 거예요? 엄청 존경스럽지만, 저는 진짜, 가끔, 이해가, 잘. 멋있는데요, 제가 형보다 더 강했으면 멱살 잡구 소파에 묶어놨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어요.”
늙어 보렴. 일 말고 별로 할 만한 게 많지 않으니까. 이제 곧 봄이라 스웨터를 짜고 있기는 하지만, 요즘 실력이 늘어서 너무 빨리 짜는 바람에 아껴 먹고 있단다.
“오늘은, 모여서 술 마셔 보기로 했으니까, 내일 가사 쓰자.”
“저는 진짜, 어떻게 갚아야 하는지 앞이 깜깜해요. 이거 다 갚으려면 장기라도 적출해야 할 것 같은데.”
세상에, 그런 위험한 생각은 하지도 마. 누가 빚 갚으려고 장기 팔 생각을 하니.
띠링―!
[왜 나왔는지 아십니까?]아니, 기지생. 전혀 기억나지 않아서 모르겠어.
* * *
오늘은 봉주와의 추억이 담긴 방송 모니터링 겸, 아직 술을 입에 대본 적도 없는 이현재의 첫 음주를 기념하기 위해 모였다.
“짜잔― 이게 다 제 주머니에서 나온 와인입니다!”
누가 다 마셔, 그걸. 무알코올에 취하는 주제에.
“우리 동화가 다 마시지.”
헤실거리는 채하민의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간이 아파 오는 기분이다. 저거, 결국 남아서 내가 다 마셔야 할 게 분명하다. 술을 좋아하지도 않는 성미인데 반주로 한 잔 씩 꾸준히 마셔야 냉장고 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현재, 모든 술 다 마셔 보라고 종류별로 다 사왔지!”
류이든도 신이 나서는 막걸리, 소주, 맥주를 모두 꺼내들고 있다. 저것도 채하민이랑 똑같이 염병을. 막내를 유독 귀여워하는 놈이니까, 형 노릇을 하려니 설레나 보다.
물론 긁지 않은 복권인 이현재와는 달리, 주량이 처참하다는 점이 걸리긴 했다. 아마 꽃 한 송이에 술을 물 대신 부어도 류이든보다는 잘 견디지 않을까.
“아― 술!”
그리고, 등장했다. 소주로 목욕을 해도 위즈니를 보면서 즐길 것 같은 놈이.
“…그러고 보니까, 우리 준이보다 술 못 마셨지 않나?”
“그러고 볼 필요도 없는데, 이든.”
뚫린 입이니 말은 제대로 해야 한다. 자세히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건 세상에 정말 많잖아.
작년 새해, 내 생일 기념으로 모였을 때, 우리 배우같이 잘생긴 공룡 한 마리를 놀리고 싶은 마음에 설렜던 토끼와 강아지가 술을 사들고 왔었다.
“그날, 아침에 저 깜짝 놀랐잖아요. 동화 형이랑 준이 형, 계속 둘이 술 마시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