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97)
“…그건, 준이가 위즈니 세계관 설명을 시작해서.”
끔찍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꾸역꾸역 잘 숨겨 두고 있었는데.
“술, 맛―이 너무 없―습니다.”
“술을 누가 맛으로 먹어, 준아! 기분! 분위기!”
그래서 너는 술 향기만 맡는 거구나, 이든.
이 웃음을 유발하는 데 실패한 콩트를 지켜보고 있을 오늘의 주인공, 이현재가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저건… 무슨 짓거리야.
“…뭐 해, 현재.”
“배운 대로 예를 갖추는 중이에요.”
나는 곧바로 류이든의 멱살을 부여잡았다.
“뭘 가르친 거야, 애한테.”
류이든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과장되게 지었다. 연기를 하다니.
“뭔 소리야!”
“누가 술 마시는데 저렇게 앉아. 무슨 예비 신랑이 장인어른이랑 술 마시는 거냐고.”
“나 아무것도! 그냥 술 깨게 물이랑… 나 아닌데.”
멱살을 놓고 채하민을 바라봤다.
“…너는, 아니지?”
“진짜 너무하네. 나는 바로 멱살 잡고. 하민이는 일단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정말, 나는 막, 눈물이 막.”
아직 술병도 안 깠는데, 새어나오는 향기에 만취했나 보네. 술버릇이 울면서 사랑 고백이잖아, 너.
“채하민이 저런 정신 나간 짓을 가르칠 리가 없잖아.”
자세는 가장 효율적으로 위계를 강제하는 방식이다. 미셸 푸코의 권력 이론으로 보면, 저건 자신이 상대방보다 낮은 위치라는 걸 무의식적으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방식에 불과하다. 아이가 괜히 혼날 때 두 손을 모으고 시선을 내리깔겠냐고.
이렇게 남을 통제하기 쉽게 만드는 자세를 우리는 예의라고 부르고는 한다. 고까워 죽겠네, 누가 우리 과외생한테 저런 걸.
“아니에요, 아버지가 이렇게 마시는 거라구 어렸을 때 가르쳤거든요.”
저런. 이게 초등학생 친구들이 말하던 ‘탈룰라’라는 개념이군.
“술 마실 때 어디 가서 욕 안 먹으려면, 이렇게 있어야 한다던데, 아니에요?”
“…욕 좀 먹어도 돼.”
공자조차도 그 당시에는 욕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우리 같은 소인배들이 욕먹는 게 뭐가 대수라고. 나는 이현재의 잔에 일단 소주를 따랐다.
“오만방자하게 마셔.”
애초에 예의를 배울 필요가 있는 건 심성이 올곧지 못한 것들이다. 이현재 정도 되는 인간은 어떻게 술을 배우든 도를 넘는 짓을 할 인간은 못 된다. 병나발로 술을 배우기 시작해도 상관없는 착한 애니까.
이현재는 내 말에 살풋 웃고는 편하게 자리 잡고 앉아 술을 마셨다. 처음 마시는 소주는 너무 쓸 테니 나는 미리 안주도 이현재 앞으로 밀어두었다.
“…어? 맛있는데요?”
류이든과 채하민, 그리고 석준의 시선이 이현재에게 집중된다.
“안 써, 현재야?”
“네, 와, 네! 생각한 것보다 달아요!”
나는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처음 마시는 술이 맛있다는 인간치고 제정신인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게, 아이가 커가는 걸 옆에서 불안하게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일까. 방임하고 싶은데도 간섭해 버리고 말 것만 같다.
나는 곧바로 이현재의 잔을 잠시 빼앗고, 안주를 내밀었다.
“…천천히 마셔.”
“네?”
“주량 모르니까, 재면서 마셔야 돼.”
부디, 이 착한 아이가 술독에 빠져 사는 고래 한 마리가 되는 일만큼은 없기를.
그렇게 시작된 술자리. 채하민과 류이든은 두 손에 얌전하게 포도 주스를 들어서 홀짝대고, 나와 석준은 와인, 이현재는 입에 맞다며 소주를 마셔댔다.
“저―도, 술버릇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나도 있으니까, 아마 너도 있지 않을까.”
“형―님은 술버릇이― 무섭습니다.”
“그건…, 여전히 미안.”
“나도 술 마시고 싶다, 이든이 형. 같이 한 잔만 딱 마실까?”
“사실 나도! 동화 눈치 보느라 못 마셨는데! 이렇게라도 한 잔씩!”
아, 이게 꿈이라면 조금만 늦게 깼으면 좋겠어. 깨기 전에 저것들 죽는 꼴은 보고 나가야 하니까.
“나는 마시지 말란 말 안 했는데.”
“그럼, 마셔도 돼?”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뒤처리는 나랑 준이가 하겠지.
* * *
모든 인간은 선택을 하고, 때때로 그 선택을 후회하며 살아간다. 후회는 삶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라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끔은 이 모든 게 예정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걸어가는 과정은, 과거의 모든 선택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때면 특히 더욱더 그렇다.
“형님, 사랑합니다.”
“꺼져 줄래.”
“무서워도! 제가! 많이! 아낍니다! 이든이 형님! 제가! 사랑합니다!”
“나도, 흐어, 으, 흐어!”
어떤 철학자는 선택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저주스러운 부분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선택해야만 한다는 사실, 그 무엇으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고 그저 내던져졌다는 사실이 참 저주스럽다고 말이다.
“현재야아아아, 하늘이 빙빙 돈다아아.”
“형…, 여기 실내…인데. 지랄 노…….”
“현재! 사랑해! 우리 막내! 내 동생!”
“지금 안고 있는 거, 나야, 준.”
“동화 형…, 나만 괴롭히는 거 에바…….”
“괴롭힘 빈도로는 류이든이 최고인데.”
“그래도, 흐윽, 사랑해, 우리 동화!”
그리고 이 모든 순간이 다시금 어떠한 미래로 나아가게끔 우리를 이끈다면, 내 손에는 벽돌이 들려 있고, 이 네 마리의 짐승들은 후두부 파열로 응급실에 실려 간 뒤, 뉴스 데스크에 내가 연행되는 장면이 방영되는 TV로 이끌겠지.
“동화 형은, 사람이 참 좋은 사람인데, 진짜…, 가끔 나를 너무 애 취급하구, 또…….”
기왕 마시는 거, ‘준과 현재는 어떤 술버릇일까.’라는 몹시 못돼 먹은 호기심이 들었던 것부터가 문제였다.
어차피 숙소니까 구설수 날 일도 없겠다, 한편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모두의 취하는 모습을 촬영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로써 모든 멤버의 술버릇을 서로에게 공개한 셈이다. 류이든은 통곡의 고백, 채하민은 정신 착란, 석준은 만물의 위즈니화, 이현재는 악독한 독백이다.
반면에 이 짐승들과 달리 나는 ‘감정에 솔직해지기’라는 아주 고상한 술버릇을 가지고 있으니, 이 얼마나.
지금도 내 옆자리에서 내 팔을 꼭 붙잡고 궁시렁대며 온갖 불만을 한 치의 쉬는 틈도 없이 쏟아내고 있는 이현재를 보고 있자니, 알 수 있었다.
‘내일 아침은, 무조건 북엇국으로 만들어야겠다.’라는 사실을.
그리고 이것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알 수 없었다. 인터넷에서 팬분들이 정성스레 ‘싱클레어’의 정체를 밝혀내고 있을 줄은.
아침 햇살은 언제나 따스하다. 어떤 계절이든 상관없이. 나는 개운한 기분으로 일어났다.
이 망할 거실에서.
“으으.”
옆에서 나를 껴안고 있던 이현재가 데구루 몸을 굴렸다. 그러고는 석준을 꽉 끌어안더니 다시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도저히, 내가, 다 침대로 옮길 수가 없었다. 어제 광란의 술자리가 일단락 나는 계기는 단순했다. 몇 잔 더 마시고 나서 모든 멤버들이 쓰러지면서 끝나버렸으니까. 한 명 옮기려고 했으나 이현재가 내 다리를 부여잡고 놔주질 않아 실패했다.
모든 게 번거로워진 나는 이현재를 힘겹게 떼어내고 이불이나 가져와서 한 명씩 덮어준 게 내 체력으로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것들, 꽤 무겁다.
그러고 보면 이현재는 최근 키가 커지더니 나보다 커졌다, 망할. 이로써 팀의 최단신이 확정이다. 178이 어디 가서 작다는 소리 들을 리가 없는데, 이 무슨.
내가 다시 태어나거나, 이것들을 178센티미터짜리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눕히는 게 어떨까. 그러면 모두 공평한 현대식 유토피아를 블로센스에 실현할 수 있을 텐데. 마르크스도 울고 가지 않을까.
별 같잖은 생각을 다 하고 있을 때, 나 때문에 기상 시간이 빨라진 채하민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일어났다. 채하민은 어젯밤 무려 소주 다섯 잔이라는 기염을 토했다.
“으아, 으으, 골, 골 아파…….”
저런,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숙취에 고생하는 중인가 보다. 애초에 분해할 수 없을 만큼 마셔댄 채하민의 죄가 크다.
“아, 죽을 것 같아, 동화야, 살려줘…….”
“일단 물 좀 마셔.”
“아흐, 어제 이든이 형이랑, 내기하지 말걸……. 내가 바보였다, 으으.”
이현재가 둘보다 주량이 세다는 걸 확신한 둘은 누구의 주량이 최약체인지를 두고 내기를 시작했다. 류이든이 4잔을 마시고 쓰러지며 ‘채하민 밑 류이든’이라는 사실을 공고히 했다.
“이겼잖아.”
나는 찬장에서 냄비를 꺼내며 웃었다. 류이든을 놀릴 생각을 하니 설레 죽겠네. 블로센스 내 권력 최대, 주량 최약의 이율배반적인 놈.
“아, 설레.”
채하민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한 번 갸웃하다가 찾아오는 두통에 머리를 싸매고 쓰러졌다.
* * *
[일단 지동화 결혼하고 애 낳으면 애는 좋을 듯]어제 보면서 아내가 행복할지 어떨지 이런 거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고 보고 싶지도 않은데 일단 애 생기면, 걔는 행복하겠다… 싶었음.
질문 들으면 곰곰이 들어주고, 애 혼자 생각하도록 독려해 주고, 아는 게 분명한데 일부러 모른 척하면서 애 기 살려 주고, 무슨 말하든 일단 부정하지도 않고, 그럴 수도 있겠네. 라고 말해 주는 거 보면서 솔직히 조금 부러웠다. ㅇㅇ실례되는 생각일 수도 있는데 목화도 행복했을 것 같더라. 저런 형이랑 같이 컸으니까 댓글
―개치임
└22222 8톤 트럭보다 세게 치인 듯
└333 존나 개쩔었음 설레 뒤짐
―이미지가 바뀌었다 ㄹㅇ 나는 하민이로 입덕해서 그냥 냉하지만 마음은 따스한 사람 정도였는데 그냥 ㅈㄴ 말도 안 됨. 정신 나갈 것 같고 머리를 베개에 몇 번을 처박았는지 모르겠다 진짜 ―남친돌을 가볍게 뛰어넘은 애아빠돌… 다른 사람들한텐 차갑게 대해도 내 자식한테만큼은 따스하겠지…
└이 남자… 육아실에서는 어떨까…?
└침대는 가볍게 지나갔네 ㅋㅌㅋㅋㅋㅌㅋㅋㅋㅋㅋㅋ
―현재가 진짜 아빠처럼 따르는 이유가 있나 봐 ㅇㅇ w앱에서 현재 수능 잘 본 것 같다고 설렌다고 그러던데 가르쳐 줄 때 봉주 피아노 가르쳐 주는 식으로 가르쳐 줬을 거 생각하면 코피가 눈앞을 가린다 ―이든이도 육아실에서 어떨지 생각하게 되더라 개구쟁이 아빠라니 애들이랑 ㅈㄴ 잘 놀아줄 것 같애└교육은 동화가, 놀아주기는 이든이가 해 주면 좋을 것 같은데, 그, 뭐, 일처다부제, 어떻게 안 되나?
└블로센스에서 시작하는 사회 개혁
―와중에 애들이랑 대화가 통했던 준아… 부르다가 뇌가 어려질 것 같은 이름아…
└그 옆에서 더 어른스러운 이현재가 킬포였다 ㄹㅇ 하민이도 동화가 봉주 위주로 챙겨줄 때 다른 애들 다 감당하는 거 보면서, 와… 그냥 조금 어릴 것 같았는데 전혀 아니란 걸 깨달았고 어쨌든 레전드였다..
└생각해 보니까 봉주랑 동화 레전드 찍으려면 하민이가 반드시 필요하긴 했어… ㅈㄴ 자상한 아빠상… 애 데리고 놀이공원 같은 데 잘 데려갈 것 같은 상이야…
└그러면 지동화는 같이 도서관에서 책 읽고 있을 듯
└둘이 ㅈㄴ 먼 미래 가족 모임하면 그냥 지동화 채하민 관계성 아이 버전으로 한 번 더 찍는 거잖아 ㅅㅂㅋㅌㅋㅋㅋㅌㅋㅋㅋㅋㅋ목화는, 스스로 지목화라고 부르고 있는 지목화는 자랑스러운 마음에 웃음이 새어나왔다.
물론 동화 형이 비혼주의에 가까운 양반이라는 건 진즉에 눈치로 알았고, 본인도 형이 독거노인으로 죽는 꼴은 못 보겠으니 비혼주의를 택할 예정이라 자식이 있을 일은 없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만에 하나 자신이 자식을 가지게 된다면, 세상에, 자신은 얼마나 복받은 인간인지, 지동화라는 인간 하나로 자식의 ‘큰아버지, 할아버지, 가정 선생님’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 이 무슨 투자 효율이람. 이런 형의 동생으로 태어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지목화는 통장 잔고에 형이 보내는 용돈 액수를 볼 때마다 다시금 그 사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번에 더 뜨면 반드시 목화 동생이라고 불리게 만들 거야.”
그래야 자기가 용돈을 줘도 뭐라 안 할, 아니야, 그 형은 일단 난리칠 게 분명해. 어떻게 강제로 돈을 받게 만들 수단을 마련하지 않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용돈을 준다는 업적은 세우기 쉽지 않을 것이다.
“목화, 뭐 하냐.”
옆에서 폰이나 만지작대던 김현진의 물음에 목화는 자랑스레 웃었다.
“형 방송 댓글 확인.”
“아아, 어제 집 돌아갈 때 뭐 보나 했더니……. 일해요? 뭐시기 그거 봤나 보네.”
“응, 우리 형 겁나 멋져.”
“너는 언제 팔불출이 고쳐질, 아니다, 동화 형도 못 고친 거니까 자력으로는 힘들겠다. 내가 조금 때려줄까?”
목화는 그냥 말없이 핸드폰에 집중했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형을 칭찬하고 있다니, 형이 아이돌이 될 계획이었어서 참 다행이다.
“그보다, 이거 봤어?”
“뭔데?”
목화는 별 생각 없이 김현진이 건네주는 핸드폰을 받아 글을 읽어 봤다.
[암만 봐도 이번 호핀 신곡 동화 스타일이다.]이게, 지난 번 곡은 잘 몰랐는데 이번 곡 들으면서 느낌이 조금 확실히 들었고 무엇보다 이번에 동화가 ost 샘플 올린 거 초기 작업본 느낌이 ㅈㄴ 비슷함 ㅅㅂ 곡이 비슷한 게 아니라 스타일이 비슷한 그거 알잖아 덕질 조금 해본 애들은 감각적으로 ‘어?
이거 디오니 곡?’이라고 즉각 반응하잖음블로센스 데뷔 초때부터 빨면서 케이팝 dna가 서서히 지동화한테 잠식당하기 시작해서 ‘어? 이거 동화 곡?’하는 느낌이 있는데 호핀 티저 듣고 그냥 그러려니 하다가 샘플 듣고, ‘아 뭔가… 지동화스럽다…’ 생각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