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화(2/343)
2.
…더도 덜도 말고 딱 3분만 이불 속에 숨고 싶다.
나는 숙였던 고개를 들어 앞에 앉아있는 녀석을 바라봤다. 저 눈빛, 내가 걱정돼 죽겠다는 눈빛이 너무 낯간지럽고 또… 하.
“그러니까 데뷔조를 최종적으로 선발하는 중에 내가 쓰러졌다는 거지? 네가 생각하기에 그 이유는… 걔들 때문이고?”
아무리 내가 아니라 ‘나’라도 고작 그런 수준 낮은 괴롭힘 때문에 쓰러질 리야 있겠냐? 아마 시공간 이동의 여파겠지.
“응…….”
만나서 할 것도 아니었군.
“그렇구나.”
“…괜찮아?”
안 괜찮을 건 또 뭐고. 그리고 나는 성격상 연예인 같은 걸 할 재목이 못 된다. 심지어 정황상 아이돌 데뷔조라는 느낌인데, 사회성이 결여된 내가 아이돌 같은 직업을 할 수 있을 리가.
일단 어떻게든 대답을 해야겠으니, 그래, 이렇게 말하는 게 낫겠군.
“음… 사실 포기할까 고민 중이었어. 그래서 딱히 별생각이 안 드네.”
그러자 채하민은 세상이 무너지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푹 숙인다.
음, 내가 했던 말을 몇 번이고 되새겨 봐도 딱히 문제가 될 만한 건 전혀…….
“역시… 많이 힘들었구나.”
…아닐걸.
“알겠어. 나랑 같이 다른 회사 찾아보자.”
…어? 녀석은 당황한 내 표정이 보이지 않는지 계속 말을 이었다.
“나도 그런 놈들이랑 같이 데뷔하는 건… 꺼려졌거든.”
하, 진짜 착한 걸로 욕하긴 싫은데. 아마도 내가 포기를 고민했다는 말을 다른 방향으로 오해한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따돌림 때문에 데뷔를 포기하는 게 마음에 걸려서 같이 회사를 나오겠다는 건가?
어제 들어보니 얘는 쓰러진 나를 데려 나오기 전에 무사히 시험도 봤다.
데뷔조에 합격할지 안 할지 아직 확정도 안 됐는데 같이 나간다고?
“마침 내 친구가 나한테 제안한 게 있는데…….”
“자, 잠깐만.”
이 토끼 녀석이 더 나아가기 전에 멈춰야겠다.
“부담스러울 거 나도 알아. 그런데 너 애들한테 그, 괴롭힘, 을 당할 때 데뷔 코앞이라고 지켜보고만 있었던 게 늘… 마음에 걸렸어.”
한 단어 한 단어를 꼼꼼히 골라서 뱉어대는 데서 녀석의 죄책감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게 느껴졌다.
그렇군. 얘는 선해서 멍청한 타입이다.
학교에서 겉도는 아이들 눈에 밟혀서 뭐라도 해주려는 반장 같은 모양새다. 성격은 외향적인데도 더러운 사회에서 적응을 못 하는 타입.
“그러니까 나랑 같이 딱 한 번만 더 도전해 보자, 동화야.”
녀석은 당근을 끊겠다고 선언하는 토끼처럼 결연하게 말했다.
무척이나 곤란하다. 단호하게 거절하기가 좀.
내가 만약 거절하면, 얘는 ‘아, 결국 내가 조금 더 일찍 행동했어야 했구나. 괴롭힘을 내가 막지 못해서 이렇게 된 거구나.’라는 식으로 난리를 칠 게 눈에 뻔하다.
이렇게 착해서 멍청한 놈은 제 탓이 아닌 걸 어떻게든 제 탓이라고 우겨서 자신의 도덕성에 결함이 있다며 난리 치는 게 일반적이니까.
사실 초면인 녀석인데 그러면 또 어떻나 싶지만…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 게 사실이다.
들어나 줄까. 그리고 친구가 했다는 제안에서 결함을 찾으면 얘도 데뷔조로 돌아가겠지.
그러면 나도 예전처럼 아이돌이랑은 담쌓고 지낼 수 있을 거다.
“…친구가 한 제안이라는 게 뭔데.”
녀석은 환한 표정이 되어선 밝게 웃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안타깝군. 나는 어떻게든 그 제안을 찢어발겨 버릴 거다.
희망에 찬 녀석을 논리적으로 무너뜨릴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레는군.
* * *
나는 채하민과 함께 갓 엔터의 정문을 나오며 의심했다. 사실 얘는 친구의 제안이 좋아서 이미 나가기로 결정한 상태였던 건 아닐까?
결론적으로 채하민 친구의 제안은 연습생 입장에서 하등 나쁠 게 없는 제안이었다. 실력만 있다면.
나란히 앉은 카페에서 시작된 채하민과의 대화를 다시 복기해 보자.
우선 내 기억이 불안정하다고 믿는 채하민은 아이에게 가르쳐주듯 갓 엔터의 문제점에 대해 하나하나 말하기 시작했다.
“동화야, 갓 엔터는 원래 배우들 위주로 운영되는 회사인데, 이번에 처음으로 아이돌 런칭 하거든.”
즉, 중소기업이 아이돌이 돈이 된다니까 멋모르고 시작한 프로젝트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데뷔하고 제대로 지원받을 가능성도 낮고 운영도 조금 이상할 것 같아.”
…그렇군.
“…그럼 너는 왜 이 회사에 있었지?”
“삼촌이 여기 엔터사에서 일하시거든. 나한테 들어오라고 하셨어. 원래는 다른 곳 가려고 했는데, 가족 부탁이니까!”
채하민은 그런 이유라지만 ‘나’는 얼마나 멍청했길래 이딴 회사에 들어와 있었단 말인가? 아무리 ‘나’라지만 욕을 할 수밖에 없군.
“…친구가 했다는 제안은 뭔데?”
“아! 아이돌 중심으로 운영되는 회산데, 이번에 데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진행한대! 일단 참가자 10명 중 5명이 데뷔하는 거라 성공 확률도 괜찮아.”
그러면 이 서바이벌 참가 제안이 왜 채하민 귀에까지 흘러들어 갔느냐.
하필이면 참가 예정자 10명 중 2명이 학교 폭력 관련 문제로 프로그램 시작까지 한 달도 안 남은 시점에 회사를 나갔기 때문이란다.
“회사에 남은 연습생 중엔 실력 있는 사람이 별로 안 남아있다나 봐. 그래서 조용히 수소문하는 것 같더라고!”
이 지점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문제 제기를 했다. 연습생 일지에 따르면 분명 나는 춤과 노래 실력이 보통이니까.
“내가 실력이 그렇게 뛰어나지가 않은데, 그 회사 윗사람들 눈에 차기나 할까.”
“음, 동화 너 정도면 충분하지.”
1차 당황.
“…내가? 이 회사 연습생인데?”
“하긴, 나도 너 정도 실력인 애가 왜 여기 들어왔는지는 잘…….”
하, 이래서 ‘내’가 하는 말은 믿을 수가 없다. 또 자기 기준대로 평가했군. 나도 학창 시절에 내 공부 실력이 보통보다 약간 나은 수준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했던가.
“…사실 노래랑 춤추는 방법이 기억이 잘 안 나.”
나름대로 회심의 일격이었다.
말하는 꼴 보니 이 토끼 새끼는 실력이 충분하다는 뉘앙스니 서바이벌을 나가든 말든 알 바가 아니고.
소설 작가인 내 천박한 가무 실력으론 서바이벌에 나갈 수 있을 리가 없다.
그제야 채하민은 멈칫하고 잠시 생각하더니 내 손을 잡았다.
“노래랑 춤 실력은 연습실 가서 약간만 연습하면 바로 회복될 거야!”
희망에 가득 찬 놈. 이론적으로는 노래랑 춤 모두 절차 기억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만, 그건 ‘내’ 이야기지 내가 아니… 잠깐만.
‘…지식 동기화.’
별 실험을 다 했는데, 딱 하나 노래랑 춤 실력은 확인을 안 해봤다.
에이, 설마. 지식 동기화가 그런 거겠어.
* * *
연습실에 들어선 나는 예상보다 익숙한 감각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동화야! 어때? 막 기억이 날 것 같고 그래?”
“…잘 모르겠어.”
벽면엔 지난 중간평가 등수가 쭉 적혀있었다.
‘흠…, 나는 가창 2등, 안무 2등, 작곡 1등이라는 성적이군.’
이래놓고는 또 자기 기준으로 ‘보통’이라고 했다, 이거지?
나는 왠지 익숙한 루틴을 따라 몸을 풀기 시작한다.
…원래보다 훨씬 유연한데.
그렇게 몸을 다 풀었을 때, 제발 아니길 기도하며 오디션에 보여주려 준비한 곡을 틀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이야, 여기 데뷔 탈락자 한 분 오셨네.”
…뭐야, 이 못생긴 얼굴은. 아이돌 연습생 하기엔 비합리적인 얼굴인데.
“부모처럼 싸가지도 없더니, 꼴좋다.”
음, 저급하군. 나는 찢고 있던 다리를 계속 찢으며 채하민에게 물었다.
“…얘는 누구야?”
채하민이 답지 않게 굳은 얼굴로 조심스레 귀에 속삭인다.
“이지현이라고, 너 괴롭힌 거 주도한 애.”
…그렇게 크게 말할 거면 귓속말을 하는 이유가 없잖아, 토끼 놈.
“뭐냐, 채하민. 싸가지없게.”
음, 자아 성찰이 부족한 인간이군. 왜 본인이 가장 싸가지가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어차피 떨어질 인간 두둔해서 뭐 하냐?”
나는 그냥 신경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 곡을 틀었다.
“야, 지동화, 너 또 내 말 씹냐?”
…저런, 평소에도 씹히셨군. 안타까워서 어쩐담.
나는 계속 무시하며 음악을 듣는다. 저런 거에 대응해 주느니 차라리 채하민이랑 실력 확인이나 제대로 하는 게 낫지.
…와, 세상에, 이전의 ‘내’가 어찌나 연습했는지 몸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일 지경이군.
감각적인 R&B곡에 맞춰 움직이는 몸은 평소에 쓰지 않는 근육들까지 활용하며 부드럽게 움직인다.
각 신체 부위가 마치 다른 생물인 양 따로 움직이는 느낌. 기묘하군, 기묘해.
“와! 동화야! 기억상실인데도 실력 거의 그대론가 봐!”
그러자 나를 욕하시던 누구께선 기억상실이라는 단어에 당황했는지 내가 춤추는 걸 멀뚱히 바라본다.
흠, 노래는 어떨까. 나는 지식 동기화가 어디까지 가능한 건지, 흥미가 생겨 바로 다음 곡을 틀었다. 입에선 자연스럽다는 듯이 가사가 흘러나왔다.
There’s no matter for us
Cause It’s You and Me―
Must You Made for Me―
For me, For me
오, 놀랍군. 노래 불러본 적 없는 인간이 하루아침에 이 정도로 성장하다니. 뇌라는 건 참 신기하기 짝이 없군.
“오, 동화야! 노래는 평소보다 더 잘하는 것 같아!”
그렇게 내 노래가 끝나자, 이름을 불러주기도 싫은 무례한 놈이 조용히 중얼거린다.
“기억상실은 무슨… ×발, 거짓말을.”
나는 고개를 그쪽으로 돌려 무심하게 답해준다.
“…누구신진 모르겠습니다만, 제게 불만 있으십니까?”
녀석은 멍하니 나를 바라보더니 소리친다.
“기억상실인데 실력이 왜 그대로야! ×발 계단에서 넘어진 놈이 왜, 왜 나보다…….”
흠, 뒷말은 안 들어도 알 것 같다. 열등감 덩어리로군. 정황상 ‘나’의 실력을 부러워한 이놈이 나를 계단에서 밀친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계단에서 밀쳐지고도 오디션을 보러 갔다가 쓰러졌나 보군. 미련하게, 대체 왜 그렇게까지.
그나저나 이 못생긴 인간은 어쩌나. 딱히 상대할 가치를 못 느끼겠는데.
경쟁자를 제거하기보단 실력이나 키우는 게 맞다고 충고해 주는 것도 괜찮겠지만, 그러는 시간이 아깝다.
나는 녀석을 한번 빤히 바라보고,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하민, 실력 확인 끝났으니까 나가자.”
그러자 나를 보고 있던 채하민이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연습실을 나설 때까지 못생긴 놈은 조용히 서 있기만 했다.
* * *
…라는 기나긴 과정 끝에 나는 채하민과 함께 갓 엔터의 정문을 나서게 된 것이다.
“실력도 거의 그대로니까 약간만 더 연습하면 예전 실력 찾겠다!”
“…그러게.”
“그러면 나랑 같이 서바이벌 지원해 보는 거지?”
“…….”
‘하, 토끼 새끼 주제에 잘도 사람을 막다른 길로 몰고 갔군.’
어디서부터 일이 이렇게 된 거지.
여기서 하기 싫다고 뺄 명분이 없다.
나는 분명 3년 차 아이돌 지망생이고, 기억상실 속에도 실력은 거의 그대로고, 채하민에 따르면 서바이벌에 나가기 충분한 실력이라고 하니까.
…이렇게 보니 완전한 나의 패착이군. 기억상실 때문에 실력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핑계를 댄 게 문제다.
그렇다고 하고 싶지도 않다. 연예계 판은, 내겐 역린과도 비슷한 거니까.
일단은… 하겠다고 하고, 나중에 도망칠 명분을 만들어야겠군.
내가 말이 없자 채하민은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싶었는지 약간 불안한 눈초리로 날 바라본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서 주인이 자길 버리는 것을 걱정하는 토끼 같았다. …젠장, 그 아이랑 닮았잖아.
“…고맙다.”
차마 나가겠다는 확답은 주기 싫어서 에둘러 감사 인사로 돌려 말했는데, 녀석은 그게 퍽이나 감동스러웠는지 다시 헤실헤실 웃기 시작했다.
확답을 받은 것과 같다는 그 기색에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 * *
회사 밖 대로변에서 채하민이 내게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갈 거야?”
어디 가긴, 집에 가야지. 일주일 치 사회성을 매니지먼트 쪽 사람들과 대화할 때 끌어다 써서 지쳤다.
“별 계획 없으면 나랑 같이 밥 먹으러 갈래?”
대답도 안 듣고 그럴 거면 뭐 하러 물어봤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하루 종일 먹은 게 없다는 걸 떠올렸다.
“…뭐 먹을 건데?”
“너 좋아하는 거 먹으러 가자. 퇴사 확정 기념으로 살게.”
내가 좋아하는 거라. 안 먹은 지 좀 되긴 했지.
“…비너슈니첼.”
채하민은 내 말을 듣곤 안 그래도 둥근 편인 눈을 더욱 동그랗게 만들었다. 혹시 얘도 좋아하나? 약간 기대감이…….
“그게 뭐야?”
들기는 염병. 비너슈니첼의 맛을 모르는 인생이라니, 평생 당근만 먹어라.
“…돈가스 사줘.”
“어? 그래. 내가 맛있는 곳 알고 있어.”
채하민은 힘차게 날 이끌어 자신이 아는 맛집이라는 곳에 데려갔다. 기왕이면 일식 돈가스가 좋은데, 하필이면 경양식이다.
게다가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나온 돈가스를 썰 때의 감각이 기묘하다. 뭔가가, 물컹거리는 무언가가 이 안에…….
“하민, 혹시 이거… 안에 고기 말고도 뭐 더 들어갔어?”
“버섯!”
뭐, 이 토끼 새끼야? 대체 왜?
“고기랑 버섯을 같이 튀긴 거야. 버섯 맛있잖아. 내가 또 버섯 엄청 좋아하거든.”
그러시겠지, 초식동물아. 어떤 미친 인간이 돈가스에 버섯을…….
나는 썰어둔 한 조각을 조심스레 입에 넣었다가, 딱 한 번 씹자마자 그대로 약 먹듯 삼켰다. 더럽게 물컹거려.
이 식감이 거슬리지도 않는지 채하민은 오물오물 잘도 씹어 삼켰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몇 조각만 더 삼키고, 돈가스를 채하민의 그릇으로 옮겨주었다.
“넌 더 안 먹어?”
혹시 입맛에 안 맞는 건가, 약간 불안하다는 표정이었다.
아마 저 머릿속에선 ‘이 맛있는 게 입맛에 안 맞을 리가.’라는 생각과 ‘그래도 만에 하나 그러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다투는 중인 듯싶다.
‘만에 하나가 아니라 십중팔구일 테지만…….’
그러나 남이 사주는 밥을 품평하는 건 몹쓸 짓이니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가 원래 많이 못 먹어.”
‘이 맛있는 걸 다 먹지 못하다니, 너무 안쓰럽다.’라는 식의 눈초리는 부디 치워줬으면 좋겠다.
“…그래도 남은 거 먹어줄 사람 있어서 다행이네.”
“그렇지? 나랑 같이 자주 오자.”
나는 답해주지 않고 밥과 장국을 먹기 시작했다. 부디 저 녀석이 이 행위에 담긴 의미를 알아주길 바라면서.
“동화, 너는 입가심으로 밥 먹는 편이구나. 나는 돈가스랑 같이 먹는 편이거든.”
…눈치 없는 토끼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