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0)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0화(20/343)
20.
류이든과의 옥신각신 끝에 정보를 얻어낸 나는 만족스럽게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오랜만에 본업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설레는군.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류이든은 물티슈를 한 장 꺼내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추한 모습 보여서 미안해, 동화.”
나는 잠시 노트북을 내려놓고 류이든을 바라봤다.
“그게… 3년 동안 내가 제일 연장자였거든.”
…지금 운 이유 해명하는 건가.
“그러다 보니까, 누구한테 이런 얘기하기가 조금 그랬거든. 부모님한테도 말하기 좀 그랬고. 그러다 습관이 됐나 봐.”
“…속으로 삭이는 게?”
류이든은 고개를 다시 한번 끄덕이고는 한숨을 뱉는다.
“내가 잠시 미쳤었나 봐. 왜 관두려고 했지.”
음,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를 정리하면 어느 정도 알 것도 같군.
“…도망치고 싶었던 거야?”
그러니까 류이든은 누구한테라도 의지하고 싶은데 그럴 사람이 없었고, 그렇게 홀로 버티고 있다가 그런 일이 터지니, 다 포기해 버리고 싶어진 거겠지.
…이건 나도 이해할 수 있군.
“맞아, 순간적으로… 하여튼 만약에 같이 데뷔하면 좋은 형으로 있고 싶었는데, 그른 것 같네. 미안해.”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대체. 류이든은 몸 건강 이전에 정신 건강을 먼저 챙기는 게 나을 것 같다. 내 앞에서 울었으니까 좋은 형이 아니라니.
류이든도 채하민인 양 자기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인간인지 모르고 있는 건가? 똑같이 멍청한 놈들.
나는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리며 늘 생각해 오던 말을 뱉었다.
“…형은 이미 좋은 형이야.”
나 같은 놈도 그 아이는 좋은 형이라고 해줬는데, 류이든 정도면 대단한 형인 게 맞다.
비록 아침마다 귀찮게 만들지만.
“…내가 무슨.”
“형도 어려.”
“응?”
“형도 어린데 다른 애들한테 의지할 만한 사람이 되려 한 것 자체가 대단한 거라고. 게다가… 형은 책임감까지 느끼니까 더 훌륭한 인간인 거고.”
“…….”
“단지 형한테도 형이 필요했던 것뿐이잖아.”
누구한테라도 의지하고 싶은데 아무도 없다고 느끼면, 갑자기 도망치고 싶어질 수도 있지. 그 마음은 나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러니까 류이든에게 필요했던 건 아주 잠시 기댈 수 있는 ‘형’인 거다. 그게 없어서 이 난리를 떤 거고.
류이든은 내가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하더니 진지하게 묻는다.
“…그럼 동화 너가 가끔 내 형 해주는 거야?”
미친놈. 실제로 내가 형이긴 해도, 류이든한테 형이라 불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형은 아니어도 귀가 깊은 동생 정도는 해줄게.”
“오늘 일 생각하면 자주 의지하고 싶어지는데, 이걸 어쩌나.”
그렇게 말하면서 류이든은 실실 쪼개기 시작했다. 며칠을 입고 있던 목줄을 벗어서 신난, 개같다. 아주 후련한 표정이군. 나를 아주 자기 좋을 대로 이용해 드셨군.
“…그래도 되니까 일단 회사랑 같이 대응부터 해.”
“응, 그래야겠다. 진짜 고마워. 정신, 차리게 해줘서. 다른 애들이었으면… 아마.”
못 말렸겠지. 류이든은 좋은 형이지만, 동시에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놈이니까.
“…됐어.”
나는 계속해서 노트북을 바라보며 답했다.
“그런데… 노트북으로 계속 뭐 하는 거야?”
뭐긴.
“선동.”
* * *
류이든에 관한 폭로 글이 올라온 지 세 시간, 여전히 타오르는 불판 속에 댓글 사이에 이상한 댓글이 달렸다.
―와 이 새끼 이거 진짜 올렸네 ㅋㅌㅌㅋㅋ
은근하게 글을 누가 올렸는지 안다는 뉘앙스, 별생각 없어 보이는 말투에 류이든의 팬과 호기심이 생긴 이들은 그 계정에 답댓을 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답댓이 달리고 한 4분 후, 그 댓글을 쓴 사람으로 보이는 이는 한마디 말을 툭 남겼다.
―이거 쓴 새끼 학폭 때문에 더넥니 준비하다가 짤린 애임
이 말이 가지고 있는 노골적인 표현이 불타오르는 판에 화룡정점이 되어, 류이든의 팬, 다른 이들의 팬, 그리고 할 짓 없어 커뮤니티에 눌어붙은 사람들까지 한마디씩 던지기 시작했다.
―끼리끼리라더니 ㅋㅋㅋㅌㅋㅋㅌㅋㅋㅋ 존나 웃기네 진짜 ㅋㅌㅌㅌㅌㅌㅌㅋㅋ
―학폭 범죄자 새끼가 잘도 폭력 당하고 참았겠다 ㅎ
―고작 저 댓글 하나를 어케 믿어? 류이든 팬이겠지
―그러면 너는 ㅅㅂ 고작 저 글 하나를 어케 믿음?
―얘가 학폭 일으켰다고 류이든 논란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
―ㅋㅋㅌㅌㅌㅌㅌㅋㅋㅋㅋㅌㅋ 근데 신빙성 갑자기 확 떨어진 건 사실이지~
핸드폰과 컴퓨터를 부여잡고 치열한 방어전을 펼치던 류이든의 팬들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무기를 놓치지 않고 붙잡아 미친 듯이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저 댓글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글을 쓴 사람을 공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다.
물론 류이든을 떨어뜨려야 한 등수라도 올라간다는 생각에 미친 듯이 류이든을 까대던 하위권의 팬들 역시 이에 대응했다.
하지만 원래 인간은 가해자라 믿는 이가 행한 악행보다도 피해자라 믿었던 이의 악행에 더 큰 관심을 가지는 법.
그리고 서서히 류이든의 논란에만 불탔던 판이, 저 댓글이 진실일까에 대한 관심으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아니 저 댓글 진짜면 글도 좀 우습긴 하네 그냥 류이든의 정의 실현 아냐?
―이게 맞다 류이든 성격 보면 화풀이로 때린 것보단 애가 문제 일으켜서 친 게 더 신빙성 있다
―그래서 저 댓글이 진짜라는 증건 어딨냐고~
―그럼 저 글이 진짜라는 건 저 사진쪼가리 말고 뭐가 있냐고~
―그래서 저 댓 쓴 사람은 증거 있대?
―아 개설렌다 진짜 조용한 아이돌판에 이런 사건 주기적으로 터져주는 거 너무 좋아
―2222222 개쥬아 ㅎㅎㅎ
그리고 관심에 답하듯, 댓글을 남겼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가 새로운 글을 팠다.
[자세한 얘기 요청하셔서 계정 파봤음]저거 쓴 놈 이름은 ㅇㅈㅎ (실명 거론했다가 고소당하기 싫어서 그런 거니 이해 요망)
니체 엔터에서 더넥니 참가할라다가 막판에 학폭 논란 있어서 나간 놈이 두 놈 있는데 둘 중 하나임
여담이긴 한데 그때 충원으로 들어온 애가 채하민 지동화
하여튼 간단한 세 줄 정리 먼저 하겠음
1. ㅇㅈㅎ은 학폭 일으킨 애
2. 그게 문제가 돼서 쟤 나갈 때 류이든이 죄가 있는 거니 뉘우치는 게 맞다고 뭐라 해서 화남
3. 화나는데 더넥니 잘되는 꼴 보니 배 뒤지게 아픔
4. 배도 아프겠다 류이든 엿 먹어보라는 식으로 조작질
(중략)
그리고 여기 ㅇㅈㅎ이랑 류이든이 같이 찍은 사진
(류이든과 이모티콘으로 얼굴을 가린 누군가가 연습실로 보이는 곳에서 찍은 사진)
잘 보면 옷이랑 점 위치가 저기 찍어놓은 사진이랑 똑같은 거 확인 가능할 듯
언제든지 이모티콘 벗길 수 있으니 빠르게 글삭튀 하자!
댓글
―와 시발 뭐야 이거
―야 저 사진 이모티콘 까주라~~~~~ 낯짝 존나 보고 싶거든 진짜 ㅎㅎㅎㅎㅎㅎㅎㅎ
―ㄱㅆ 그랬다가 고소 먹기 싫어
―내 돈으로 변호사 고용할게 ㅎㅎㅎㅎ
―아니 시발 증거라고 있는 게 고작 사진 한 장임?
―어? 이 댓글 류이든 폭로라고 주장하는 주작글에도 달려있었는데!
―데자뷰.
―ㅋㅋㅌㅌㅋㅋㅋㅋㅋㅌㅋ 진짜 졸렬하다 언제는 사진 정도면 충분하다매~
―ㄱㄴㄲ 개어이없는데 류이든 조작이래서 존나 다행이고 지금 눈물 날 것 같고 근데 또 기분 좋아서 웃음 나고 미치기 일보 직전이다 진짜
그리고 이 글은 니체 엔터테인먼트에 전화 문의로 이어졌다. 바로 지동화와 채하민이 충원 멤버가 맞는지를 물어본 것.
[니체 엔터 오피셜]다른 건 다 안 물어보고 채하민 지동화 충원인 거 맞는지만 물어봤는데 맞다고 함.
그리고 인간은 단 한 가지 진실이 확인되면 나머지 것들도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인지 편향에 빠지곤 한다.
글의 딱 한 부분에 불과했던 충원 이야기가 진실임을 확인한 순간, 여론이 돌아서기 시작했다.
* * *
나는 노트북을 닫았다. 글 쓰려고 인터넷에서 쓰는 말투를 분석했는데 자연스러운지 모르겠군.
유명한 선동가 괴벨스는 선동을 할 땐 반드시 약간이라도 진실을 섞어야 한다고 했다.
비록 인성은 쓰레기일지라도 선동만큼은 대단한 재능을 보였다 하니, 활용할 수 있는 건 활용해 봤다.
마지막에 보니 다행히 여론을 대강은 부여잡은 것 같아 안심이군.
일단 처음에 나와 채하민이 충원임을 넣어둔 게 좋은 한 수였고, 최소한의 선은 지키면서 자극적으로 쓴 게 두 번째로 좋은 수였고, 피해자라 믿었던 이의 배신이라는 지점을 파고든 게 결정적인 수였다.
최소한 재미로 붙어있던 사람들은 더 자극적인 내 글을 좋아할 테니.
하여튼, 일단 나쁘지 않았다.
나는 기지개를 한번 켜고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그때, 류이든이 급하게 방으로 뛰어 들어오더니 나를 멍하니 바라본다. 입을 달싹이는 게 할 말이 있어 보인다.
“…너야?”
음, 그렇게 물으니 죄라도 지은 것 같군. 장해진 팀장도 확실히 일을 열심히 하는지 계속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나 보다.
발뺌할 필요도 없으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팀장님은 너가 쓴 글 활용해서 여론 잡을 거라더라.”
하긴, 학폭 이슈로 더넥니 직전에 퇴출한 사람이 있다는 말만 해도 여론 확실히 잡히겠지.
류이든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나를 보면서 어이가 없어졌는지 또 멍때리다간 묻는다.
“왜 그렇게까지…….”
뒷말은 안 들어도 알 것 같군.
나는 약간 미소 지으며 답했다.
“…형 된 입장으로서 동생 생각해 주는 거지.”
“…형.”
와, 진짜 듣기 싫은걸. 아무리 농담이었다지만 내가 스스로 선을 넘었군.
“동화 형!”
류이든은 감동받았다는 표정으로 나한테 달려오더니 나를 끌어안, 젠장, 형님.
“…아픕니다.”
그러자 류이든은 그 강인한 육체로 나를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감동받은 건, 좋은…….
“아, 이거 놓으십시오!”
“동화 형은 꼭 화낼 때 존댓말 쓰더라!”
“꺼지십시오, 제발!”
그리고 그런 혼란 속에 채하민이 문을 활짝 열고 등장했다.
“여러분! 제가 뭘 사 왔는지… 보세……?”
채하민은 류이든이 나를 끌어안고 매달리고 있는 모습을 보곤 상황이 납득이 안 되는지 잠시 멍하니 바라본다. 나와 류이든도 그런 채하민을 그 자세 그대로 멍하니 바라보고 있고.
가장 먼저 정신 차린 나는 말했다.
“…아니야.”
“…어?”
“…뭘 생각하든 모두 틀렸어.”
류이든은 내 말에 씩 웃더니 날 바라본다.
“동화 형, 저희 진실을 말해요.”
…얘는 미친놈인 게 확실하고.
“…형?”
…너는 거기가 신경 쓰이는 지점이고?
“동화야, 아니… 형?”
하… 다 꺼져주십시오.
* * *
장해진 팀장은 류이든 논란에 대한 공식 입장을 준비하다가 속에서 끓어오르는 천불 때문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이정현, 이 애새끼가 감히, 우리 프로를 조지려 들어? 심지어 더럽게 얄팍한 수로?’
처음엔 몰랐는데, 류이든과 통화하며 글을 쓴 게 누군지 알게 된 순간부터 온몸에서 열이 들끓었다.
괘씸해서 미쳐버릴 것 같은데,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거 보면 연예계에서 발을 뗄 거 같으니 마땅히 복수할 만한 방법도 없다는 게 더 미쳐버릴 것 같다.
멍청하고 얄팍한 조작이지만, 아이돌판의 과열된 상황과 하위권 팬들의 욕심, 류이든이 평소 보여줬던 건전한 모습과의 괴리 때문에 일이 커져버렸다.
만약에 대응이 제대로 안 되면 아무리 거짓이어도 류이든이 하차하는 개같은 상황도 벌어졌을 거다. 우리 프로가 조져지는 건 덤이고.
‘류이든한테 폭행 이미지 더 들러붙기 전에 누가 나타나서 여론 돌려놓은 게 다행이지.’
그녀는 익명의 누군가가 준 이 기회를 놓칠세라 공식 입장문 단어 하나하나를 조심스레 골라냈다.
‘이정현 조질 방법은 나중에 생각하자. …한국이 총기 합법화가 아닌 게 다행이야.’
아니었으면 지금 당장 쏘러 갔을 테니까.
“팀장님, 최종고 나왔습니다. 검토 부탁드립니다.”
“…좋아요, 부사장님한테 최종 컨펌만 받고 바로 입장 올리도록 하죠.”
“그래도 다행이네요. 일이 더 커지는 건 어떤 사람 덕분에 멈췄으니까.”
“그게 신이 살아있다는 증거 아니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손목엔, 지동화가 니체 엔터에 들어왔을 때부터 차고 다녔던 묵주가 조용히 매달려 있었다.
‘그러고 보면… 지동화랑 채하민 얘네 들어오고부터 일이 기묘하게 잘 풀리는 기분이네.’
장해진 팀장은 기묘한 우연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가 부사장실로 가는 발걸음을 서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