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00)
목화도 표정을 굳히며 김현진이 건네는 도넛을 받았다. 이거, 먹으면 안 되는데, 스트레스 때문에 안 되겠다.
“왜. 나처럼 이렇게 간식 사 들고 오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진한은 도넛을 하나 꺼내 베어 물면서 중얼거렸다.
“…아, 느낌 왔다. 우리 이거 먹고 있다가, 현진이 화장실 간 틈에 들어온 매니저님한테 또 혼날 것 같네.”
목화도 고개를 끄덕이며 도넛을 베어 물었다. ‘형 보고 싶다. 어떻게 쉬는 날짜 못 맞추나.’라고 생각하면서.
어차피 벌어질 일, 지금을 즐기는 게 더 낫다, 차라리.
“아,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방금 나눈 대화, 다 들었으면서 저런 식으로 말하는 걸 보고 있으면 화딱지가 나지 않을 수가 없다.
* * *
쉬는 기간에 왜 이렇게 다채로운 인터뷰를 진행하는 걸까. 나는 정신 없이 흘러가는 작업과 인터뷰에 정신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동화야아, 괜찮아? 엄청 피곤해 보여.”
“괜찮아.”
“또, 또, 입만 열면 혓바닥이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어휘력, 아름답네.
채하민은 내 침대 곁에 앉아서는 머리를 매트에 콩콩 처박고 있었다.
“작업은 다 해 가?”
“거의. 우리 타이틀 곡만 마무리 작업하면…….”
“와아, 드디어 쉬는 거네. 일 다 정리되면 애들이랑 같이 어디 좀 놀러 가자, 동화야.”
집에서 쉬고 싶은데, 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지만, 채하민과 했던 약속도 있어서 그런지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오지는 않았다.
“너, 촬영은?”
“나는 오늘로 끝! 이제 앨범 제작 들어가기 전까지 쉴 수 있어.”
후우, 나는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이번에 봄 관련 노래만 4곡이다, 그러고 보니까.”
그러고 보니. 이현재 개인 곡은 초봄, 호핀의 곡과 드라마 OST가 중순, 그리고 우리 타이틀 곡이 만춘이 될 예정이다.
“현재가 가사 쓴다고 골머리 앓고 있던데.”
“곡은 다 써줬으니까, 잘할 거야.”
한국대라고 모두 뛰어난 건 아니지만, 뛰어난 인간이 많은 건 사실이다.
이현재는 곡 설명을 듣고 나서, ‘찬찬히 그림자를 벗어나는 가지’가 아니라, 싹을 틔우는 매화를 머릿속에 떠올렸다고 한다. 그것도 설중매(雪中梅). 고3이 이제 막 끝난 걸 티 내는지 고전문학에서나 볼 법한 소재를 골랐다.
“자기 이야기니까.”
채하민은 끄덕끄덕하다가, 묘한 표정으로 다시 침대에 얼굴을 파묻었다.
“…왜?”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게 있기는 한데, 이걸 말해도 될까, 몇 번이고 고민하는 표정이 채하민의 얼굴 위를 스쳐 지나갔다.
“그냥, 조금, 부러워서.”
아.
“네 곡도 쓸 거야.”
당연한 이야기다. 나를 제외한 모든 멤버들의 개인 곡을 내는 건, 오래전부터 꿈이었으니까.
“아, 아닌데, 부담 주려고 얘기한 것 같잖아. 그냥, 거짓말하기는 싫어서!”
채하민은 온몸을 뒤틀면서 이리저리 뒹굴었다. 골 울려, 망할 놈아.
“부담 아니야.”
나는 이불을 끌어 올려 몸을 덮었다. 오랜만에 깊게 잠들 생각에 설렜다.
“애초에, 보답이야.”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약 이틀의 밤샘 끝에 처음으로 제시간에 침대에 들어섰다. 잠에 빠져들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략 이 주 정도 남은 시간, 채하민은 어떻게 놀 건지 계획하느라 행복한 목소리로 주절주절 조잘댔다.
* * *
X튜브 컨텐츠 제작 기획실. 요즘엔 연예인 한 명이 일인 컨텐츠를 제작하는 게 유행이다. 그리고 이런 연예인은 가장 쌀 때 사와야 하는 법이다. 현재 저점이고 앞으로 오를 일만 남은 사람을 찾아야 한다.
“지동화?”
“네. 제 생각엔, 더 뜰 각이에요.”
“근데, 그 친구는 혼자 있으면 말을 안 할 것 같은데.”
이런 컨텐츠는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사람이 어울리기도 하고, 오를 건 명확하지만, 조회수가 나올까.
“그분, 은근하게 미쳐 있는 사람이더라고요?”
“…설명 더 해 봐 봐.”
팀장의 요청에 그는 작은 종이뭉치를 건넸다. 거기에는 ‘지동화의 멘탈 수업 기획안’이라는 제목이 간략히 적혀 있었다.
“지동화 씨가 보면, 조용하고, 침착한 편이더라고요.”
“응.”
팀장도 알고 있었다. 사람 찾는 게 할 일의 반인 직업이다 보니까, 루키들의 정보는 대략적으로 알고 있다.
“기괴한 상황에 그냥 던져두면 어떨까요?”
“…그게, 되겠냐?”
“요즘 시끄러운 영상은 많잖아요. 평화롭고 침착한 분위기인데, 상황이 뭔가 기괴하면.”
“부조화?”
“네. 처음부터 끝까지. 부조화덩어리.”
“길게는 못 해도, 짤막하게 치고 빠지기는 나쁘지 않겠네.”
“그렇죠? 아무래도 수명이 길기는 힘든 웃음 포인트라…….”
팀장은 재빠르게 종이를 훑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번 해 보자. 어차피 잠시 업로드할 만한 컨텐츠도 필요했으니까.”
이들의 컨텐츠 기획은 신속하고 명확하게 진행됐다. 애초에 제안자가 기승전결을 명확하게 잡은 컨텐츠를 제시한 덕분에, 별로 보완할 것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 결과, 다음 주, 지동화는 홍대의 거리 한복판에서, 클래식을 들으며, 흔들의자에 앉아, 뜨개질을 하게 되었다.
고작, 인트로를 찍기 위해서.
왜 저 사람들은, 나한테 무슨 악감정이 있는 걸까. 아니, 악감정이 없는 게 너무나 분명해서 도리어 두려울 지경이다. 어린아이의 순진함이 두려움을 유발하는 경우처럼, 악의 없이 내 목에 칼을 들이밀고 있는 걸 알기에 더 무서울 지경이다.
처음부터, 이상하긴 했어.
첫 미팅 때, 기획안을 보여 주면서, 오묘한 웃음이 핵심 포인트라고, 영상 내내 실소를 터뜨리게 하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을 때부터, 이 사람들, 뭔가 심상찮다고 생각하긴 했다.
나는 흔들의자를 흔들며, 주변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무시하기 위해 잠시 눈을 감았다.
“…행위 예술 같은 건가?”
아닙니다. 예능 촬영 중이에요.
이 프로그램의 제목은 ‘멘탈 수업’이다. 멘탈이 흔들릴 일이 잦은 현대사회에서 견뎌 나가기 위해, 멘탈을 단련하는 방법을 소개해 준다는 해괴한 컨셉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방송의 진행자이자 출연자인 내가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라붙었다. 갑자기 앞에서 사고가 터져도, 흔히 있는 일이라는 듯이, 침착하게 행동해야만 한다.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홍대 거리 한복판에서, 부드러운 러그와 쓰리피스 정장을 입고, 흔들의자에 앉아 탁자 위 홍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핫핑크 실로 뜨개질을 하는 상황에서도, 나는 침착하게 행동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걸 확인하기 위한 심박수 측정 장치도 장착한 상태다.
장해진 팀장님은 ‘촬영 부담은 적고, 편집 부담이 큰 컨셉이니까, 편하게 촬영할 수 있겠네요?’라며 출연을 추천했는데, 내 생각이 짧았다. 촬영 부담은 적은데, 정신적 부담이 지나치게 크니까.
“PD님.”
“네.”
“컨셉상, 제가 가르쳐 주는 게 맞습니까?”
“물론이죠.”
“제 멘탈부터 못 견딜 것 같은데요.”
“하하하, 농담도.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인데요? 이제 클래식 틀어 드릴 테니까, 촬영 들어갈게요.”
나는 넥타이를 고쳐 맸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박히는 걸 알지만, 컨셉은 지켜져야만 한다.
하, 이제 저 붉은 러그 위 흔들의자에, 같잖은 턴테이블, 그리고 빅토리안 시대 특산물처럼 생긴 티 세트가 세팅된 곳에 앉아야 된다고. 이 차림새로.
나는 속에서 올라오는 깊은 한숨을 억눌렀다. 이건, 일이다. 이걸 해야 목화한테 맛있는 식사 한 끼라도 더 먹일 수 있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흔들의자에 앉아 천천히 리듬을 타며 홍차를 마셨다. 흘러나오는 곡은,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 1악장.
하필 골라도 이런 곡을 골라서는. 나는 여유롭게 홍차의 향을 즐기다가 내려놓았다.
“…와, 행위 예술 처음 봐.”
그런 프로, 아닙니다. 지동화의 시사 교양이 아니라, 이상한 상황 체험이에요.
홍차 다음은, 핫핑크 실로 하는 뜨개질. 이미 절반 정도 짜둔 모자에 계속해서 실을 쌓아 올렸다.
“저건 뭐야.”
“오, 현대사회에서 소외되는 내적 소망을 핫핑크로…, 정장 입은 사람이니까 일부러 외면했던 소망 같은 걸 상징화한 건가 봐.”
그런 거 아닙니다.
“동화 씨.”
그리고 예정된 대로, PD님과의 인터뷰.
“네.”
“지금 기분이 어떠신가요?”
뭐 어쩌라는 거야. 추측하건대 내 심박수, 지금 약간 올라가지 않았을까.
“행복합니다.”
“오오, 왜요?”
“…세상 온갖 사람들이 저를 바라보는 것 같아서요.”
PD님은 입술을 앙다물고 웃참을 시전했다. 제작진분들은 이 방송 진행 도중 웃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이 걸려 있다.
아, 그리고, 늘 침착해야 한다는 조건 말고도 나한테 걸린 조건이 하나 더 있는데.
“세상의 중심은, 내가 서 있는 곳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 이누이트들의 지도를 보면, 우리들 지도랑은 달리 중심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원통형으로 생겼거든요. 그건 아마도,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걸 담아낸 것 아닐까요.”
이런 개소리를 자주 해 달라는 것이었다. PD님은 입술을 앙다물고 웃음을 억눌렀다. 웃기겠지, 홍대 한복판에서 핑크색 실로 뜨개질하는 인간이 유식한 척하고 있으니까.
“동화 씨,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다음 질문.
“안녕하십니까, 한운대학교 멘탈교육학과 교수, 그리고 이곳에서는 여러분들의 멘탈 지킴이로 일할 지동화입니다.”
“어떤 수업을 하실 계획인가요?”
“각박한 현대사회 속, 우리는 우리를 잃고 있는 것 아닐까요?”
실제로 제가 지금 그렇습니다.
“현대심리학자 데어문트는 말했습니다. 현대사회, 그것은 나라는 존재를 탈분자화하는 것이다. 또한 미국의 뇌과학자 구테나벤트도 ‘인간의 뇌는 허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논리적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고요. 이 모든 것은 현대사회의 멘탈 악화 문제를 지적하는 말입니다.”
내가 아는 한에서, 그런 학자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데어 문트(Der Mund)는 독일어로 달이라는 뜻이고, 구텐 아벤트(Guten Abend)는 독일 인사말이니까. 내가 말하면서도 대체 뭐라고 지껄이는지 모르겠다.
재빠르게 검색에 들어간 PD님은, 검색 결과 없음에 다시 입술을 다물었다.
“그래서 제가 왔습니다. 여러분들의 멘탈을 강화하기 위해. 지금부터, 어느 순간에서도 깨지지 않는 정신의 소유자, 저, 지동화의 멘탈 수업, 시작합니다.”
나는 미소를 지은 채 3초간 유지하다가, 컷이라는 소리를 듣고 뜨개질을 내던졌다. 온몸에서 소름이 돋는 기분이다. 나는 얼굴을 감싸 푹 숙이고 어깨를 뒤틀었다.
“교수님, 왜 그러세요.”
“…컷 아닙니까.”
“교수님,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신 것 아니었나요?”
와우, 이렇게 나오시는 거군요. 정말 치졸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여러분들이라면 멘탈이 무너질 만한 상황이 찾아왔다고 가정해 봅시다.”
나도 자연스럽게 받는 수밖에 없다. 결국 이 프로그램의 촬영은, 제작진과 내 심리전이 지속적으로 펼쳐질 수밖에 없나 보다.
“그럴 때, 저는 침착하게.”
나는 홍차를 들어 올렸다.
“홍차 한 잔만으로도 안정을 되찾을 수 있죠.”
죽고 싶어, 정말.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라는 이상에 젖은 헛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정말.
“제 멘탈 수업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