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01)
다시 한번 컷 소리가 들리고, 인트로를 위한 티저 영상의 촬영이 ‘정말’ 끝났다는 확신이 들고 나서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푸하, 동화 씨, 오늘 촬영 수고 많으셨습니다.”
PD님, 정말 죄송하지만, 제가 다음 촬영에 벽돌을 소지하는 걸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이제 다음 촬영 때 본편 촬영 진행할게요.”
“…다음 촬영 내용은, 혹시 뭔지 알 수 있을까요.”
“안 되죠, 당연히! 동화 교수님은 컨셉상 ‘아무리 갑작스러워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거잖아요? 저희 심박수 보고 깜짝 놀랐거든요. 진짜로 심박수가 안정적이었어요.”
그래, 이것보다 심각한 상황도 숱하게 겪어 봤는데 간단히 무너지지는 않는다. 다음 촬영 때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은은한 광기가 아닌 블로센스의 마지막 이성이라는 별명을 되찾고 말 것이다.
* * *
[지동화 홍대에서 목격](대혼돈의 인터뷰 사진으로 촬영한 사진.jpg―지동화는 굉장히 정중한 차림새로 핫핑크 뜨개질에 진심인 상태다.)
….? 아득하네, 약간.
댓글
―뭔데 미친 ㅋㅋㅋㅌㅋㅋㅋㅋㅋㅌㅋㅋ 아 ㅈㄴ 어이가 없네 ㅋㅌㅋㅋㅋㅋㅋㅌㅋㅋ 뭐냐고 ㅋㅌㅋㅋㅋㅋㅋㅋㅋㅋㅋ―보자마자 현웃 터졌네 ㅋㅋㅋㅋㅋㅋ 뭔 상황인데 대체 └ㄱㅆ) 도저히 뭐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고 한다…
―지동화 목격담이라길래 헐레벌떡 뛰어온 나, 저런 지동화도 괜찮다 싶은데 정상인가요…?
└모두 그렇게… 미쳐 가는 건가 봐
―블로센스의 숨겨진 광기…
└마지막 이성은 어디로 갔는데
└아무리 봐도 지동화가 진짜 광기가 맞다.
―난 진짜 아이돌 대단하다고 생각함. 저 상황에서 미소 짓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 ㅅㅂ└뒤에 사람들 다 지나다니는데 저러고 있는 거 ㅋㅋㅋㅋㅋㅌㅋㅋ└ㄱㅆ) 심지어 클래식 음악도 틀었음.
└대체… 왜…?
돌판은 그렇게 넓지 않다. 작은 이슈가 빠르게 공유되고 대부분의 아이돌 팬덤이 쉽게 접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요즘 가장 쉽게 입에 올리는 이슈는 ‘지동화 호핀 작곡가 사건’이었다.
아무리 봐도 디오니 엔터테인먼트 회사 직원보다도 멤버들의 음색과 춤선, 대형 안무에서 강조할 포인트 같은 걸 더 잘 아는 인간이, 사실은 다른 아이돌 멤버였다는 것은 전무후무할 것 같은 사건이었으니까.
이현재는 합격 공지를 읽다가 문득 동화 형의 이야기가 나오는 아이돌 커뮤니티가 재밌어서 눈을 돌리고 말았다.
합격한 건 기쁘지만, 우리 멤버들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의 글을 읽는 것만큼 재밌는 것도 많지 않았으니까.
“…신기하네. 한 그룹에 한국대가 두 명.”
동화 형 말로는, 애초에 자신의 머리가 좋아서 될 일이었다고는 하지만, 기괴하다면 기괴한 일이다.
서바이벌에서 중도 포기했으면, 그냥 대학교 가서, 그리고 부모님 말씀대로 대학원에 가서는, 될지 안 될진 모르겠지만 교수에 도전하면서 살아갔겠지. ‘노래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라는 생각을 해 본 건, 동화 형을 만나고 나서나 가능한 생각이었다.
이현재는 인터넷 창을 닫았다. 내일, 동화 형과 함께 작업한 ‘Under the snow’의 메이킹 필름 촬영을 위해서는 피부 관리를 해야 할 것 같다.
“현재야, 그, 어, 부, 붙었나?”
문을 열자 류이든이 옹졸한 자세로 손에 딸기를 깎은 접시를 든 채 우물쭈물해하고 있었다.
“…뭐 해요, 형.”
“아니, 우리 막내, 어떻게 됐나, 싶어서.”
“음, 비밀이에요.”
이현재는 지동화를 보고 배운 대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류이든 옆에 슬며시 앉았다. 문 앞에 앉아서 뭐 하는 짓인가 싶을 때, 이번엔 현관문이 열리며 지동화가 들어섰다.
“…뭐 해, 둘.”
류이든은 꼭 빼닮은 둘의 반응에 웃음이 터지려다가, 혹여나 이현재가 떨어졌을까 봐 두려워 참았다.
“와서 이거 먹자.”
지동화는 지독한 피로와 죽을 것 같다는 음울함이 묻어나는 얼굴로 책상에 한 상자를 올렸다.
“오, 뭐야? 먹을 거? 우리 식단 시작했는데 곧바로 이렇게 치팅 데이야?”
“치팅 데이고 나발이고, 현재, 빨리 와서 앉아.”
류이든은 상처받은 듯이 시무룩해졌다가 의문이 들었다.
“오늘, 네가 주인공이잖아.”
“어…, 왜요?”
“붙었잖아.”
“…비밀인데요.”
“와서 먹어.”
류이든은 지동화의 막무가내식 축하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떨어졌으면 어쩌려고 저래! 류이든은 손과 표정, 그리고 입 모양으로 지동화를 제재했다. 부디! 알아들어 줘! 현재 분위기가 붙은 분위기가 아니었어!
그러나 지동화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정신력이 흐트러진 모습으로 고개를 저었다.
“만약에 떨어졌으면, 그건 학사 비리야.”
지동화는 얼굴을 몇 번 쓸어내리고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뱉은 뒤, 평소와 같은 얼굴로 돌아와서는 미소 지었다.
“합격 축하해.”
이현재는 새초롬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이든이 형 놀리는 건 도와줘야 하는 거잖아요.”
“미안, 내 멘탈이 지금, 상당히 위험해서.”
그 모든 대화를 듣고 있던 류이든의 표정은 썩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뭐야, 막내야. 우리 현재야. 내가 너를 업어 길렀는데! 어떻게!”
“그래서 더 놀리구 싶구 그런 거죠.”
이현재는 다시 새초롬하게 말한 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딸기케이크가 들어 있을 게 분명한 상자로 달려갔다.
홀로 남겨진 류이든은 딸기를 깎은 접시를 소중히 쥐고, 곰곰이 생각했다.
‘…나한테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한 셈인가?’
해석이 조금 과하지만,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니다. 류이든은 다시금 좋아진 기분으로 이현재를 향해 달려갔다.
‘Under the snow’ 메이킹 필름 촬영 현장, 이라고는 하지만 실상은 녹음실까지 따로 마련한 새로운 내 작업실이다.
내가 프로듀싱하는 법을 배운 뒤에, 완전히 자율적으로 하는 첫 번째 작업이며, 올해 들어서 새롭게 회사에 차려진 내 녹음실에서 하는 첫 번째 녹음이기도 하다.
또한 이현재가 성인이 된 첫 번째 해, 내 첫 번째 프로듀싱, 이현재의 첫 번째 솔로곡, 하여튼 처음이란 처음은 다 묶여 있다.
컴퓨터 앞에서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형, 어제부터 현타가 진득한 것 같아요.”
“…이번에 새로 촬영하는 거, 조금 이상해서.”
“아, 어제 목격담 떴던데, 그거예요?”
“응.”
죽고 싶어.
“그거, 대체 무슨 프로그램인 거예요?”
“나도 모르겠어. 목적은 나를 수치심으로 죽이는 것 같긴 해.”
“오, 첫 영상 올라오자마자 봐야겠네요. 언제 시작이에요?”
“…한 달 후.”
그러고 보니, 한 달 후에 뭔가 많이 몰려 있네. 드라마도 그때쯤 첫 방송이라고 들었는데.
“일단, 불러 보자.”
녹음은 다 끝났지만, 혹시 더 좋은 걸 뽑아낼 수도 있으니까. 그러고 나서 후보정으로 피치 조절 같은 것만 끝내고 나면 정말 완성이다.
이현재가 라디오에 출연할 예정이라서, 그때 첫 공개 이후 곧바로 뮤직비디오를 대신할 메이킹 필름이 공개될 예정이다.
잠깐, 이것도 한 달 후 공개네, 그러면.
“…뭔가 이상해.”
“왜요, 뭐 오류 났어요?”
“한 달 후에 뭔가 더럽게 많이 몰려 있어.”
기묘하다. 예전에도 뭔가 이런 식으로 일이 엮이고 엮였던 적이 있던 것 같은데.
“바쁘면 좋죠. 저 요즘 공부할 게 없어서 그런지 빨리 다시 일하고 싶어요.”
“그래……. 일단, 처음부터 끝까지 목 풀기로 한번 불러 보자. 메이킹 때도 그렇게 찍을 거니까 무리는 하지 말고.”
“제가 목 다 풀어 왔죠.”
이현재는 오랜만에 웃으면서 녹음실로 걸어 들어갔다. 나도 볼펜으로 이런저런 메모가 덕지덕지 쓰여서 너덜너덜해진 가사 종이를 꺼내 들었다.
설중매. 이현재가 고른 컨셉. 고3의 영혼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Under the snow’라는 제목답게, 가사의 화자는 눈 밑 어둠 속에서 몸을 떨고 있는 씨앗이다. 요즘 따라 점차 흉포한 성정을 드러내기 시작한 이현재한테 참 잘 어울리는 컨셉이라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서, 원래는 봄의 나무를 생각하며 썼던 곡의 화창한 느낌을 줄이고, 꽃의 가녀린 느낌을 더 강하게 집어넣었다.
가만 보면 저놈, 나를 닮고 싶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내가 생각으로만 하는 걸 입으로 뱉는다는 점에서 닮기는 글렀다. 아이돌 아니었으면 입도 험했을 것 같아.
[소름 돋게 정확합니다!]그렇지?
“형, 저 한번 불러 볼게요.”
“그래.”
나는 별생각 없이 MR을 틀었다. 제대로 녹음하는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흐름을 들으며 감을 잡는 과정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불러 볼 예정이다.
처음 흐르는 전주는 봄눈을 연상케 한다. 똑똑 떨어지는 눈발은 잘 벼려 놓은 검처럼 아름답기도 하지만 시린 느낌이 든다. 따스해야 할 시간에 차갑게 내리는 눈은 역설적이기도 하다.
이현재는 호흡을 몇 번 고르더니 눈을 꼭 감았다.
햇빛을 본 적은 없었어, 난
차가운 눈이 더 익숙해, 저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나
궁금해져도 눈을 감나 봐
무리하지 말라니까, 우리 후배는 말을 들어먹지를 않는다. 대충 편하게 부르라는 뜻이었는데 최선을 다해서 감정을 눌러 담고 있는 게 보였다. 꼭 감은 눈, 그 눈꺼풀 너머에서는 무엇을 상상하며 노래하고 있을까.
외롭다,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어
껍질은 점점 더 단단해져만 가고
괴롭다, 내색하고 싶지는 않았어
이 눈 아래에서 그저 떨고만 있던 날
가사를 쓰면서 편곡한 덕분에 나뭇가지의 당찬 행진이 아니라, 가녀린 꽃줄기의 조심스러운 걸음걸이를 나타내듯 연약하고 세밀한 바이올린 연주가 덧붙는다.
실질적으로는 원래 갖고 있던 악기 소리만으로는 부족해서 새로 녹음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것도 화양 씨에게 빚으로 달아두는 것으로 가볍게 해결했다.
내장 악기로 처리하기는 뭣하고, 회사에는 이 곡 하나 때문에 큰 지원을 요청하는 게 불가능해 보여서.
이어지는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스타카토, 걸음걸이 같기도 하고, 눈이 내리는 소리 같기도 하다.
그런 날 안아줬던 널,
만나고 싶다고 해도 될까.
마침내 한 발을 내딛는 날.
지켜봐 줄 수 있을까.
스타카토의 조심스러움은 유려한 연주로 연결되고, 악기가 여러 대 추가되며 환희와 같은 인상을 남긴다.
후렴구, 여전히 시리고 연약하지만, 소리가 여러 겹 겹치면서 단단하게 들린다. 가사의 씨앗이 처음 싹 트는 순간의 용감함을 나타내듯이.
한 걸음, 가빠오는 숨, 나 홀로 쌓은 껍질을 뚫고
두 걸음, 밝아오는 너, 차디찬 공기 나를 채우고
세 걸음, 널 만나면 꼭, 이렇게 물어볼 거야
네 걸음, 다가오는 널, 봄이라 불러도 될까
망할, 좋아. 나는 프로듀싱 중이라는 생각도 잊을 정도로 감상해 버리고 말았다.
이현재의 음색은 너무나 맑았고, 투명하고, 청아해서, 겨울의 한기 속에서 달려 나가는 꽃의 심정과 너무 잘 어울렸다.
후렴구가 앞부분과 달리 리드미컬하게 진행되는데, 걸어가던 사람이 달려가는 것처럼 점진적으로 빨라지는 이 느낌도 마음에 들었다.
‘역시, 우리 어머니는…….’
내가 평생을 작곡해도, 어머니를 따라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돈을 조금만 더 밝히셨어도, 아마 더 큰 성공을 누리셨을 게 분명하다. 아버지는 따라잡을 자신이 있는데.
간주, 편곡 이전에 있었던 심포니 파트를 이쪽으로 옮겼다. 밝고 설레는 분위기. 눈의 잔재보다는 봄의 기운이 더욱 강렬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간주가 끝나고, 이현재가 노래를 불러야 할 때, 나는 의자에 몸을 누이고 눈을 감았다. 더 자세히 감상하려고. 사실 프로듀서가 이러면 안 되지만, 연습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