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02)
그런데 간주가 끝나고 2절이 흐르는데도, 이현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의아함에 눈을 뜨니, 이현재가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음, 큰일이네. 달래줄 재주는 없어서, MR을 끌 생각도 못하고, 잠시 내버려 두었다.
“…저, 이 곡이 너무 좋아요.”
이현재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스피커를 통해서, 정직하게 귓속을 파고드는 말에,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 * *
이현재는 노래를 하며 후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차오르는 눈물을 막지는 못했다.
부모님을 포함한 모든 타인의 시선이 날카롭게만 느껴졌던 예전의 자신이 떠올라서, 그런 시선에 한때는 정신과 상담까지 받아야 했던 자신이 떠올라서,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
동화 형이 처음에 써줬던 곡에서부터, 지금 편곡된 이 버전까지. 거대한 나무의 그림자나, 땅을 무겁게 내리누르는 눈더미를 상상하면, 그때의 자신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타인의 기대감과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나의 불안감, 그 모든 것에서부터 이제야 벗어난 것만 같아서 후련한 것이 분명한데도, 왜 이럴까.
이현재는 그래서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 곡이, 자신을 후련하게 만들어 준 이 곡이 너무 좋다고. 더욱 정확히는, 힘겨웠던 매 순간마다 옆에서 말없이 지탱해 준 형에게 너무 고맙다고.
“…나와서 물 좀 마셔, 현재.”
시답잖은 위로 따위 할 줄 모른다는 듯이 툭 내뱉는 말이지만, 그 속은 얼마나 사려 깊은지 알기에 이현재는 더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다.
“형은, 진짜, 너무 고마워요.”
“그래.”
저렇게 담담하듯이 말하면서 속으로는 부끄러워할 게 틀림없어서 이번에는 웃음이 약간 터져 나오고 말았다.
“형이 죽으라고 하면, 두세 번쯤은 고민해 볼게요.”
“…그래.”
이걸 또 ‘그래.’라고 대답하는 것이나, 대답하기 전 티 나지는 않지만 당황한 게 분명한 침묵까지, 다시금 이현재는 웃고 말았다.
“물론, 안 죽을 거예요.”
“당연한 소리하지 말고, 물 마셔.”
동화 형은 떨떠름하게 빨리 나오라고 말하며 MR을 껐다. 메이킹 필름을 찍기 전 최종 점검치고는 성급하게 끝난 감이 있지만, 지금 다 울었으니, 촬영 때는 괜찮을 것이다.
“하― 제가 형 안 만났으면 뭐 하구 살았을까요.”
“대학 교수 준비하고 있었겠지.”
“에이, 그런 건 형처럼 똑똑한 사람이나 되는 거예요.”
이현재는 그렇게 말하며 작업실 냉장고에 비치해 둔 아이스팩을 꺼내려 녹음실을 나섰다. 아, 부으면 큰일인데, 속없이 생각하면서.
그리고 녹음실을 나섰을 때, 이 모든 광경을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던 류이든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이현재는 곧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뭐예요, 형.”
눈치껏 커피와 작은 곡물 쿠키가 놓인 테이블을 보니, 왜 온 건지는 알 수 있었지만, 퉁명스레 말이 나오고 말았다. 조금 전에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솔직함을 사용해서 그렇다.
“현재야, 사랑하는 막내야. 다른 사람이 죽으라고 하면 혹시 몇 번 고민할 예정이야?”
이현재는 오만상을 지으며 질색이라는 듯이 눈가를 구겼다.
“그런 걸 왜 듣구 앉아 있어요. 면상에 물 붓구 나올 건데요.”
“그럼, 내가 그러면!”
“한 번이요.”
이현재는 그렇게 말하며 날파리를 처리하듯 손을 휘적대며 걸어나갔다. 류이든은 만족했는지 영상을 저장하며 활짝 웃으면서 이현재의 얼굴에 미리 준비해 둔 얼음팩을 갖다 댔다.
“아이구, 우리 막내! 아주 장해!”
“…형, 비켜요.”
이 꼬라지를 직접 관찰하고 있던 지동화는 그저 혀를 한 번 차고 말았다.
* * *
인생은 원래 달콤한 순간보다 고되고 관두고 싶은 순간이 더욱 많은 법이다. 이현재와의 작업과 촬영, 채하민이나 류이든, 석준의 활동 응원같이 즐거운 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말았다.
“…인생.”
“어우, 동화 씨, 역시 교수님 아니랄까 봐 철학적이시네요.”
절대 오지 말았으면 하는 날, 오늘은 바로 ‘지동화의 멘탈 수업’ 첫 편의 촬영이 예정된 날이다.
지난번 홍대의 개짓거리는 예고편과 인트로의 소스였을 뿐이라는 사실이 두려울 지경이다. 대체 본편에서는 무슨 개짓거리를 하게 될까.
이걸 정말 웃으면서 보실 분들이 계실까. 내 팬분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영상은 아니지 않나, 이거. 웃음이라는 게 이런 걸로 정말 발생하는 걸까.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뜨개질처럼 엮이고 엮여 기다란 겨울용 목도리 하나를 짜 내릴 것만 같았다.
“아, 지금 이것도 다 촬영이 되고 있어요, 동화 씨.”
“…시작하면 될까요.”
“네. 돌아와 주세요, 우리의 멘탈 도우미이자 한운대 멘탈교육학과 교수님.”
“…네.”
그러니까, 이것도 편집되어서 영상물로 남는다는 거지.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어차피 두 달만에 끝날 시리즈. 최선을 다하고 잊어버리자.
“오늘 멘탈 교육 주제는 뭔가요, PD님.”
참고로 나는 오늘도 정장을 풀피스로 맞춰 입었다. 머리도 왁스칠을 해서 넘긴 상황이다. 이런 옷이 절대로 어울리지 않을 장소로 가는 거니까… 모르겠다. 후보군이 너무 많잖아.
“비밀이죠, 당연히! 그럼 출발하실까요!”
대체, 출연자가 아무것도 몰라야만 하는 컨셉의 방송이 세상에 어디 있냐고. 하물며 깜짝 카메라도 속이기 위한 설정은 소개해 주는데.
차를 타고 가면서 진행되는 가벼운 인터뷰.
“교수님, 참고로 저희 프로그램은 진실을 사랑해요.”
“저도 진실이 아니면 죽음을 불사할 정도입니다. 멘탈교육학과의 최고 권위자 알프레드 히치콕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거든요. 죽음과 진실만은 영원할 것이다.”
“무슨 소리죠?”
정말 육체적인 마찰을 빚어 보고 싶으신가요. 당신이 아무 소리나 하라며. 계약 사항에 충실한 제게 어떻게 그런 가혹한 질문을. 헛소리인 거 당신도 알잖아. 왜 그러는 건데.
“…언제나 진실되게 살라는 교훈이죠.”
“그렇구나. 어쨌든 저희 프로그램은 진실을 사랑해서, 만약에 심박수가 평소보다 지나치게 높아지시면 벌칙을 드릴 수밖에 없어요.”
“계약 사항에 그런 말씀은 없었던 것 같은데.”
“당황하셨나요?”
“전혀요.”
나는 미소 지어 줄 뿐이다.
“벌칙은 무엇입니까.”
“아, 당연히 비밀이죠.”
“잠시만요.”
나는 안주머니에서 백기를 꺼내서 흔들었다. 도저히 컨셉을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흔들라며 주어진 백기다. 촬영 중 총 세 번, 딱 세 번만 흔들 수 있고, 흔드는 즉시 컨셉 종료와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
“PD님.”
“네?”
“불공정 계약으로 신고해도 괜찮을까요.”
“와, 그 세 번 있는 기회를 이렇게!”
“데뷔 이후로 가장 관두고 싶은 순간이라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아, 잠깐만요. 컨셉 멈춘 거라 저희도 웃어, 푸흐, 크흡. 크허허.”
“혹시 저를 괴롭히는 게 이 프로그램의 목표입니까?”
“에이, 괴롭히다니요.”
아니, 당신 지금 거짓말하는 중이잖아. 그 웃음부터 표정, 눈빛과 손짓, 그 모든 게 거짓이라고 소리치고 있는데.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될까요.”
PD님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셨다.
“혹시, 다른 사람을 만나도, 헛소리하는 건, 지켜야 하는 겁니까.”
“와, 그러고 보면 늘 놀라는데, 대체 어떻게 애드립으로 그런 헛소리를 생각해요? 저희 가끔 진짜 있는 사람인 줄 알고 그래요.”
질문의 요지를 파악해 주세요, PD님. 지금 목전에 칼이 있는지 없는지 물어보는 간절한 제 심정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저도 무슨 말인지 모르고 일단 지껄이는 겁니다.”
“자, 시간 끝. 다시 돌아와 주세요, 교수님.”
나는 자세를 단정히 하고 다시 미소를 입가에 지었다. 경련 일어날 것만 같아.
“아, 잠시 소란이 있었습니다.”
인생.
* * *
식당. 그것도 꽤 비싸 보이는 레스토랑 같았다. 컨셉을 지키자. 나는 카메라를 바라봤다.
“이곳은, 제가 샤르데나 왕국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자주 먹었던 전통식을 한국 현지 입맛에 맞게 바꾼 식당입니다. 추억 속 맛을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참고로 샤르데나 왕국은 1861년에 멸망했다. 세상에, 내가 대본도 아닌 이딴 말을 스스로 생각해서 뱉고 있다니, 죽고 싶어, 망할.
내가 입만 열면 검색을 해 보시는 작가님은 검색 결과를 보시곤 입을 꾹 틀어막았다. 스태프님들은 웃으면 커피 쏘기가 걸려 있기 때문에 상당히 필사적이시다.
“샤르데나식 음식은 자주 드시나요?”
“그럼요. 오늘 아침에도 블루베리에 버무린 절인 배추를 블랙커피에 곁들여 먹었습니다.”
그래, 이렇게 헛소리를 미친 듯이 해도 알아서 편집해 주시겠지. 그건 공중파 방송과는 달리 편안한 점이다. 공중파에 출연하면 말 한마디를 할 때도 몇 번이고 고민해 보고는 하는데, 생각나는 대로 막 뱉고 있으려니 참 편해서 죽고 싶다, 망할.
“들어가실까요.”
예의 바르게 카메라맨님에게 먼저 들어가시라고 문을 열어 드리자, 한 작가님이 피식하고는 웃고 말았다. 조용히 손으로 예의 바르게 지시하자, PD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체크했다. 오늘 지갑이 아플 예정이다.
식당에 들어서기 전, 나는 숨을 골랐다. 웃지 말고, 당황하지 말고,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침착하게.
그리고 들어서자마자 한 외국인분이 입을 열었다.
“Bonjour.”
이 정도로 자료 조사가 철저하실 줄은. 프랑스어 할 줄 아는 건 어떻게 아신 거지. 독일어는 꽤 알려져 있지만, 프랑스어는 멤버들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채하민이 유출한 건가.
“Bonjour.”
별말 없이 받자, 웨이터님이 잠시 호흡을 쉬었다.
“(몇 명이서 오셨나요?)”
“(혼자, 아니지, 스태프분은 인원 수에 포함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우선은 저 혼자요.)”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 작가님들과 PD님 사이에서 갑자기 술렁거림이 퍼져 나갔다. 뭐지, 스태프분도 세는 게 상식적인 행동인 건가.
웨이터님이 당황한 눈초리로 여러 곳을 둘러보다가, 내게 조금은 서툰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저, 프랑스어, 할 줄 아세요?”
잠깐, 나 지금, 방송 기획 망친 거 아닌가.
“(…네, 할 줄 알아요.)”
PD님이 가만히 굴러가는 상황을 보다가 다시 입을 꾹 눌러 닫았다.
“자, 자리 안내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친절하시네요.)”
“한국어 해 주셔도…….”
“(스태프분들 괴롭히는 게 목적이라.)”
실제로 프랑스인(추정)이 한국어를, 한국인인 내가 프랑스어를 하며 대화하고 있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입을 누르고 있는 분들이 많다.
이 모든 상황이 클래식 음악에 맞춰서 편집된다는 거구나. 우리 방송은 공식적으로 교양 방송으로 진행할 예정이니까. 하여튼 부조화의 극치다.
신비로워, 너튜브 세상.
첫 번째 관문을 문제없이 통과하고 나서,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방송 컨텐츠를 하나 망치다니, 프랑스어를 공부한 과거의 나, 정말 자랑스럽다.
“메뉴판이에요.”
“고맙습니다.”
메뉴판을 펼쳐 보니 메뉴가 오직 ‘지옥의 쓴맛’이라고 적힌 음식이 전부였다. 나는 백기를 꺼내 흔들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담고, 조용히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지옥의 쓴맛 하나 주시겠어요?”
미소 장착, 잊지 말자.
“네! 기다려 주세요!”
나는 다리를 꼬고 앉았다. ‘우아한 교수’라는 망할 아이덴티티를 지키기 위한 개짓거리다. 이제 시작이겠지, 이 망할 프로그램이 나를 엿 먹이려는 수작이.
이내 문이 열리고 남자 두 분과 여자 한 분이 걸어 들어왔다. 미리 주문해 둔 건지 이미 음식이 세팅된 탁자에 둘러앉았다. 아무래도 이 공간에 나와 저 집단밖에 없어서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