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03)
“야, 뭐 해.”
오, 뭔가 시작됐나 보다. 여성 일원분이 옆자리에 앉은 남성분의 어깨를 강하게 후려쳤다. 소리가 온 음식점을 뒤덮은 걸 보면 ‘야, 뭐 해.’보다는 ‘죽어라.’라는 말이 더 잘 어울렸다.
“아, 왜, 자기야!”
“왜, 깻잎을 떼 줘?”
여기, 프랑스인이 근무하는 식당인데 깻잎이 밑반찬으로 나오는구나. 내가 아직 세계화된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듣자마자 어이없어서 웃을 뻔했다.
“뭐가. 그냥 얘가 먹기 힘들어 보여서 떼 준 거잖아.”
“아니, 왜 외간남자 깻잎을 떼어 주냐고.”
저런, 여성분은 깻잎을 떼어 주는 행위가 한국 전통으로 내려오는 식사 양식 중 하나라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그리고 깻잎조차 혼자 떼먹지 못한 무능한 앞자리의 남성분은 젓가락과 숟가락을 함께 사용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겠다.
이 프로그램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현재 사고가 조금 거칠다.
[이현재 같네요!]말장난 사절.
“아니, 깻잎 떼어 주는 게…….”
“안 그래도 의심스러웠어. 너희, 둘이.”
열린 사고, 본받을 만하다. 경직된 21세기 한국 사회에 변화가 시작됐나 보다.
“아니면, 왜 깻잎을 떼어 주냐고.”
다만, 그게 왜 문제인지 공감이 가지 않아서 문제다. 게다가 이 흐름이면, 이 방송의 컨셉상, 분명히.
남녀는 서로 노려보다가 내 쪽으로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교수님.”
나는 곧바로 백기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실이 끊긴 인형처럼 제자리에 앉아 가만히 있는 배우분들. 나는 왼손으로 눈가를 덮었다. 아, 끔찍해.
“동화 씨, 왜 백기를?”
“저분들은, 왜 제가 교수인 걸 아는 겁니까.”
“그게 문제였나요?”
“네.”
PD님은 단호한 내 대답에 심호흡을 시작했다.
“그게, 크흠, 동화 씨는 이 세계관에서 스타 교수 같은 거라서요.”
세상에, 지금이 무슨 19세기나 20세기 프랑스·독일도 아니고 지성인이 스타가 되는 건 현대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잖아. 아주 제멋대로 만든 설정이라 몰입하려야 할 수가 없다.
“그럼, 제가 스타인 척을 해야 합니까?”
“아뇨, 동화 씨는 스타답지 않은 검소함이 매력 포인트인 걸로 할게요.”
지금 짜지 마세요. 죽고 싶으니까. 편집으로 인간극장 스타일의 소개 밑에 ‘검소한 편’이라고 추가되는 게 환상처럼 눈앞에 아른거렸다.
나는 눈가를 꾹 누르며 정신을 되찾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다시, 시작할까요.”
이쯤하면 멘탈은 어느 정도 챙긴 것 같다.
“그럼 하나, 둘, 셋.”
“교수님!”
끊어졌던 실이 다시 작동하는 것 같은 모양새라서 괴상해 죽을 것만 같다. 인형들의 세계에서 홀로 인간인 기분이다. 지금, 심박수 괜찮을까.
“네.”
“얘가 잘못한 거죠!”
“얘가 속이 좁은 거죠!”
아니, 그걸 왜 저한테 묻습니까. 멘탈관리학과 교수지 농수산물관리학과가 아닌데.
“…무슨 일인지 말씀 좀 해 주세요.”
그래, 미소, 잊지 말자. 나는 지금 여유로운 교수 이미지다, 망할. 당황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한 표정 관리가 연기를 할 때보다 어렵다.
“얘가, 외간남자 깻잎을 떼어 줬다니까요?”
“네.”
“네?”
여성분의 당황한 표정과 이후의 믿을 수 없다는 표정.
“아니, 여자친구가 옆에 버젓이 있는데요?”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깻잎을 떼어 주는 게 고백과 같은 의미를 지니는 행위로 바뀌었나. 이 세계관에선 그럴지도 모르겠다. 원래 이런 무의미한 논쟁은 회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 저는 궁금한 게, 거기 가만히 계신 남성분.”
“네?”
“혹시, 왼손이 아프셨나요?”
“…어, 그, 아뇨.”
저런.
“왜 왼손으로 숟가락을 들어서 아래쪽의 깻잎을 잡지 않으셨나요?”
“어…….”
“한 손으로만 밥을 먹어야 한다는 한국식 식사 예절에 너무 빠져 있던 것은 아닐까요?”
“어… 그런가요?”
“그렇죠. 가끔은 그런 상식의 틀을 부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틀에 맞추려다 보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잊는 법이니까요.”
하─, 내가 지금 내 입으로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걸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혹시, 요즘 자신이 가는 길에 확신이 없거나, 그렇지는 않으십니까. 주변의 다른 사람들보다 뒤처진 것만 같은 기분.”
“어, 맞아요.”
찍어 봤다. 대개의 이십 대 중후반은 그런 느낌을 일상적으로 가지고 살아가는 게 통계적으로 입증됐다.
“저런. 큰일이네요.”
“그러게요. 어쩌죠… 저 요즘에…….”
그렇게 중얼거리시던 배우분은 주변의 시선에 순간 자신의 본분을 잊었다는 것을 자각하고 멍한 표정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다른 사람들의 틀이 옳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PD님은 조용한 목소리로 ‘어떻게 깻잎이… 인생 이야기로…, 크흡.’ 하고 웃으셔서 커피 한 잔이 예정됐다.
“아니, 깻잎…….”
여성 배우분은 직분을 잊지 않고 끝까지 어떻게든 관철하려 하시다가 포기하고는 손을 부들부들 떨더니, 깊은 분노로 소리쳤다.
“정말 최악이네요, 교수님!”
아마도, 어느 쪽 편을 들어주면 그 반대편이 이런 식으로 화를 내는 시나리오였던 것 같다. 여성 배우분의 임기응변에 감탄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분노의 샤우팅. 편집에서는 흑백 화면으로, 미소 짓고 있는 내 얼굴, 그리고 미칠 듯이 분노하는 여성 배우님의 얼굴이 교차되지 않을까 싶다.
이 망할 프로그램, 정말로 망해 버려서 조기 종영해 버리기를, 부디.
교양 있는 척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다. 아는 것도 없는데.
분노한 손님이 떠나고 고요해진 식당 안, 제작진 쪽에서 들려오는 키득 소리와 그에 따른 체크 소리, 아마도 오늘은 작업실에서 마실 커피가 부족하지는 않을 것 같다.
어쨌든 그것과는 별개로 두 번째 고비도 잘 넘겼다. 고작 몇 분짜리 영상을 위해서 뭘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동화 씨.”
백기를 흔들면서 들어오는 질문.
“네.”
“깻잎, 정말 어떻게 생각하세요?”
알 게 뭐야,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지동화 인성 논란’으로 인터넷을 점령할 테니까 그럴 수는 없다. 굳이 깊게 생각해 보자면.
“혼자서 밥을 먹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인인 두 사람이 아니라, 그 앞에서 깻잎을 ‘떼어 줌’ 당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눈앞에서 나에게 관심이 있니 없니로 다투는 친구와 그 애인이라니, 상상만 해도 골치 아프고 귀찮을 게 분명하다.
PD님은 다시 곰곰이 고민하더니 뜻을 이해했는지 다시금 웃고는 다시 수첩에 자기 이름을 체크하고 말았다.
“어쨌든, 백기 끝이에요.”
그리고 다시 오는 웨이터분. 겉으로 보기에는 정상적인 음식으로 보이지만, 음식 이름이 ‘지옥의 쓴맛’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웨이터님은 품위 있게 음식을 세팅하며, 답했다.
“정말 샤델리아식 음식 나왔습니다.”
그만. 헛소리인 거 아시잖습니까. 그리고 샤델리아는 이탈리아 지역인데, 이거 프랑스 음식이잖습니까. 내가 왜 그런 소리를.
“…추억이네요.”
나이프와 포크를 예절에 맞게 쥐고, 조심스레 그릴로 나온 필레미뇽(추정)을 쿡 찔러 봤다. 겉으로 보기엔 너무 정상적이라서 도리어 두렵다.
큰맘 먹고 썰었을 때, 나는 침착함을 잃을 뻔했다. 뭐지, 이 물컹한 질감. 도저히 고기를 써는 감각이 아니다. 무언가, 비슷한 경험을, 예전에 했던 것만 같은.
“필레미뇽을 저며서 삶은 버섯을 사이사이에 넣은 후 오븐에 구운 요리입니다.”
백기. 당장, 백기.
나는 예의에 맞춰 접시에 포크와 나이프를 올려 두고, 휘황찬란하게 백기를 흔들었다. 그리고 두 손을 끌어 모은 뒤 거기에 얼굴을 파묻었다. 메이크업이 짙지는 않지만, 지금 당장은 눈을 가리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이거…, 누구 아이디어입니까, PD님.”
PD님은 웃음을 눌러 참으며 옆에 있는 작가님의 뒤로 쏙 들어가 숨었다. 어쩌지, 정말. W앱에서 채하민과의 첫 만남 이야기를 했던 것을 정말 인상 깊게 보셨나 보다.
“정말, 먹어야 합니까?”
“샤르데나식이니까요.”
망할 샤르데나. 아니지, 망한 샤르데나. 대체 언제까지 우려먹을 셈입니까. 말 한마디 실수한 것치고는 대가가 잔혹한 편이라고 생각지는 않으십니까.
“…혹시 욕해도 됩니까?”
“그건 또 새로워서 좋을 것 같은데, 전 연령 예정이라서요.”
PD님은 충분히 놀렸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본론을 꺼내들었다.
“아니라면 먹지 못할 이유를 개연성 있게 짜내셔도 됩니다!”
그래, 그걸 기대한 거구나. 애초에 싫어하는 음식을 강제로 먹이는 건 고문이니까. 여기서 백기를 들 것도 예상했다니, 정말 기획력 하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백기 종료.”
웨이터님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다시 연기 모드로 돌아왔다. 이 숨 막히는 웃음 참기. 침묵이 도리어 사람을 옥죄는 느낌이다.
“아, 교수님, 특히 버섯을 좋아하신다고 하셔서 추가로 넣었습니다.”
음, 혈압약이 필요하겠는걸. 심박수의 안정을 위해서 어린 목화가 이불에 몸을 녹이며 귤을 먹었던 옛 기억을 떠올리자.
웨이터의 대사, 알러지 핑계도 못 대게 선수를 쳤다. 이건 제작진과 하는 장기 같은 것이다. 상대는 계속해서 내가 둘 수 있는 수를 없애려 노력하고 있고, 그걸 꿰뚫고 나가면 나의 승리가 되는 게임이다.
애초에 백기를 줬을 때 확실히 깨달았어야 했다. 음식점에 들어온 순간 버섯 알러지가 있다고 할걸. 다음 촬영에서의 격한 교훈을 얻었다.
나는 소고기와 버섯을 한입 썰어서 입에 넣었다가 곧바로 옆에 있던 휴지에 뱉어냈다. 그리고 옆에 놓인 수정과―대체 왜?―를 마시며 분노를 눈에 담았다.
“이게, 이게 뭐죠?”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와 표정. 지금 먹은 이 음식이 대체 뭐냐는 어조. 이 모든 것을 신경 써서 쌓아올린다.
“네? 무슨…….”
“이건, 샤르데나식이 아니잖습니까.”
아아, 내 인생은 이걸로 끝이군. 멤버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 * *
후회는 쓸모없는 짓거리다. 왜 출연을 거절하지 않았을까, 그런 회한은 머릿속에서 지워야만 한다. 수용하자, 이것도 나의 선택이며 나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심호흡, 숨을 고르자.
“…형, 긴장했어요?”
“에이, 현재, 그건 너잖아.”
류이든이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가리키며 말하자, 이현재는 인정한 듯이 한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오늘, 엄청 중요해요.”
촬영 이후 시간이 조금 흘러, 드디어 이현재와 함께 출연하는 라디오 날이 찾아왔다. 예전에도 왔던 견훤 선배님의 ‘저녁의 리듬’에.
당연히 중요하지 않겠니, 현재. 복귀 신호탄을 알리는 활동이잖아. 팬분들이 이 시간을 많이 기다리고 계시단다.
“커뮤에서, 동화 형 작곡 실력 가지구 말이 많거든요.”
“원래 말 많은 직업인데, 우리.”
어떤 배우님은 민트초코 좋아한다는 말로도 기사가 작성되던데 이런 판국에 그 정도 구설수야 세금 같은 것 아닐까.
“그래두, 그렇잖아요. 증명할게요, 제가.”
음, 네가 잘 불러서 곡이 사는 거면 작곡 실력이 좋은 게 아니지 않을까. 총명한 이현재는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판단력이 약간 흐려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