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04)
채하민은 그런 상황에서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커뮤니티에서 뭐라고 그래, 현재야?”
“거품 더럽게 심해서 카푸치노인 줄 알았대요.”
유쾌하네, 그 정도면. 이현재도 알고 있다. 그런 말에 별로 영향 안 받는 거. 차라리 목화나 네가 ‘형, 실망이에요.’라고 한마디 하는 게 더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읽었던 것을 솔직하게 그대로 말해 주고 있나 보다.
“혀, 현재야, 그걸 그렇게 말하면.”
채하민은 천성이 배려심이 깊은 인간이라 말을 듣자마자 손을 기괴하게 휘적거리며 ‘어떻게 하지!’를 온몸으로 표현했다.
“귀가 어디 달렸는지 전수조사해 보구 싶어요.”
이현재는 태블릿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짜증을 머리끝까지 표현했다. 원래도 표현이 직설적인 건 알고 있었지만, 공부에 지쳐서 분노할 틈도 없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훨씬 강렬해졌다.
“하아, 실수하면, 큰일인데.”
“현재.”
여전히 태블릿에 시선이 붙박여 있던 이현재, 내가 부르자 조금 늦게 반응했다.
“…네?”
“부담 갖지 마.”
“…그게.”
“이거 네 곡이잖아.”
작곡 과정부터 작업 과정까지 전부, 내 곡이 아니라 네 곡이었다. 나는 그저 수단에 불과했고, 이현재를 위해 움직였을 뿐이다. 내가 그러길 바랐으니까.
“그리고, 욕먹을 실력 아닌 건 나도 알아.”
여전히 스스로 뛰어난 작곡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욕먹을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음원 순위가 증명했다. 객관적인 수치는 믿지 않을 수가 없다.
“와, 우리 동화 형, 드디어!”
옆에서 류이든이 기립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드디어 자기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했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미친 인간아.
“나는 진짜, 언제쯤 네가 객관적으로 평가할지 궁금했는데 드디어!”
저런, 나는 언제나 객관적이었는데.
* * *
이현재는 눈앞에서 견훤이 손을 내미는 걸 보고 나서야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내 곡’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 약간 몽롱해졌었다.
“메인 보컬이죠? 이든이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영상으로도 봤는데, 노래 잘하더라.”
“감사합니다. 저도 저녁의 리듬, 엄청 자주 들어요.”
“음… 동화 처음 볼 때 생각나네. 혹시 지난주에 무슨 사연 나왔는지 알아요?”
“…네?”
‘레전드 사연 아니면, 그걸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요?’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지만 이현재는 가까스로 참아냈다. 예의 바르게, 자신을 아껴주는 형들 얼굴에 먹칠하지 않게.
“아니에요. 제가 잠시 미쳤었나 봐요. 보통은 그럴 리가 없는데 하도 기이한 첫 만남이라…….”
견훤은 따스한 눈길로 이현재를 귀엽다는 듯이 바라봤다. 자기 조카랑 겹쳐 보여서.
“오늘 솔로 곡 처음 부른다면서요. 영광이야, 진짜. 파이팅.”
그리고 견훤은 블로센스 애들은 하나같이 비주얼이 괜찮다고 중얼거리며 뒤돌아섰다.
이현재는 여전히 따스한 기운을 느끼면서 손을 주물러 봤다. 기묘하다. 어떤 사람은 시선 자체에 따스한 기운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세상 대부분을 차갑게 바라보면서, 몇몇 사람을 바라볼 때만, 심지어 말은 차갑게 하면서 시선만은 따스한 인간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내 곡.”
이 자리는 그냥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노래로 풀어내는 자리다. 동화 형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틀림없이 그런 뜻이겠지.
이현재가 곡의 중심 소재로 설중매를 고른 이유를 지동화는 고3 생활의 잔재로 여겼지만, 그건 정답이 아니었다.
이현재는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그렇게 찾은 정답이 설중매였을 뿐이다.
부모님의 시선은 처음부터 따스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렇게 활동하는 것도, 어차피 몇 년 하다 말 직업, 말리기는 아들 고집이 있으니 믿을 만한 사람 밑에 보내 두고, 후일을 도모한다는 느낌이었으니까.
‘…아, 연 끊고 싶다.’
쉬는 날 집에 찾아가면 별 관심도 없으면서, ‘그래서 요즘 인기가 조금 있니?’라고 무심히 물어보는 것과 그 질문 아래에 ‘인기 좀 떨어졌지, 이제?’라는 말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그렇다.
그래서 집은 겨울 같았고, 숙소는 봄과 같았다. 계절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 그래서 ‘봄’은 ‘반드시 찾아올 희망’의 상징으로 쓰인다. 어떤 역경이 있어도 ‘시대처럼 찾아올 아침’같이 말이다.
이쯤 되면, 숙소를 집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집’이라는 단어가 함축하는 뜻을 생각해 보면 말이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반드시 찾아오는’ 것을 한 개인이 거스를 수도 없는 법이다. 그건 문학적으로는 의미 있는 시도지만, 자신은 현실을 살아가는 중이다.
“음, 알겠다.”
절연해야겠어.
성인인데, 어쩔 거야. 호적 새로 만들지, 뭐.
지동화가 들었다면, 그런 마음을 굳히라고 해 준 말이 아니었다며 왜 갑자기 과속을 하느냐 말리면서 화들짝 놀랄 테다.
반면에 이 모든 걸 관찰하고 있던 기지생은 실시간으로 ‘아니, 가능성은 영향을 안 줬는데, 지난번이랑 똑같이 흐를 수가 있나?’라고 경악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현재는 그런 건 모르니까, 해맑게 웃을 뿐이었다. 아까 전보다 훨씬 더 후련해진 속과 부담이 사라져 편안해진 어깨를 만끽하면서.
‘저녁의 리듬’, 요즘은 라디오를 듣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지만, 퇴근길의 막히는 도로 위에서나, 아니면 무료한 운전기사 같은 분들에게는 그것만 한 유희가 없는 법이다.
그러나, 아이돌 팬덤은 이 중 어디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듣는다. 보이는 라디오면 더 좋다.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쉬는 시간까지도 송출되기에 무수히 많은 짤들이 생성되기도 한다.
지동화의 팬은 겨울학기 끝 무렵, 과방에 앉아 위시인 친구가 오기를 기다렸다. 지난번의 대참사―수업 대기 중인 강의실에서의 2연속 스크림 사태― 이후, 도원결의를 맺어 의자매가 되었다.
‘블로센스 대 호핀’이라는 대결 구도가 목화의 갑작스러운 폭로로 흐지부지되고, 형제 그룹이라는 이미지만 강렬해졌다. 그렇기에 어색한 동행이 아니라 끈끈한 동맹을 맺은 것이다.
회사가 다르다 보니 느낌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덕질을 하는 현실 친구가 있다는 건 그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녀는 든든함만으로는 커버할 수 없을 만큼의 짜증을 현재 느끼고 있다.
“…아, X발, 왜 남의 아이돌 실력이 뭐니 저니 X병 첨병을 다 떠는 거야.”
아이돌 덕질은, 한을 처먹는 과정인 것이다.
원래 연예계는 인기가 있을 때 이유 없이 까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당연히 깔 만해서 까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번에 작곡 실력에 트집 잡는 꼴을 보고 있으면 뒷목을 잡고 쓰러질 것만 같다.
차라리 다른 걸로 까면 ‘아아, 그래, 늘 있는 일.’이라고 가볍게 넘길 수 있겠는데, 지동화 덕질 포인트 중 하나로 지랄하니까 견디기 쉽지 않다. 노동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인간인데!
“헤이.”
“어, 왔어.”
저녁을 먹을 약속을 했으나 블로센스의 라디오 출연과 겹치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의 친구는 같이 덕질을 하는 사이, 아주 넓은 아량으로 함께 듣고 밥이나 먹자며 대인배스러운 면모를 뽐냈다.
“시작했어?”
“노.”
“…혹시 커뮤 때매?”
“예스.”
친구는 웃었다. 공감되기는 했지만 웃긴 걸 어쩐담.
“어차피 작곡 실력으로 욕먹긴 힘들잖아?”
“그야 그렇긴 한데, 꼽잖아.”
‘그치.’,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옆자리에 앉았다. 머리로 이해하더라도 꼬운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여러 잡담―이라고는 하지만 대개 돌판의 최근 화제들―을 나누며 라디오 시간을 기다렸다.
“오, 시작한다.”
“우리 애들도 여기 나온 적 있었는데.”
“약간 인기 끌기 시작하면 꼭 거치는 관문 같은 느낌이지?”
“맞아. 블로센스는 여기 데뷔 초에 나왔다며.”
“아무리 생각해도 서바이벌빨이긴 했지만.”
“오우, 냉정한걸.”
“그야, 이런 거 하나하나 다 띄우려고 하면 정병 와.”
커뮤니티 글들 보면 하나하나 다 반박하고 싶어서 미쳐 버리거든.
“…생각하니까 PD 죽이고 싶은걸.”
“아, 그건 나도 안다. 서바이벌 막바지에 난리 한번 난 게 PD가 개짓거리해서 그랬다고 했나?”
“하…, 정화한다. 이걸로.”
그녀들은 천천히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별것 없는 일상적인 얘기부터, 숙소에서의 가벼운 에피소드나 작업 중 비하인드까지.
그러다가 오늘 라디오의 핵심이 시작됐다.
―그러고 보니까, 현재 씨, 오늘 개인곡을 여기서 처음 부르실 계획이라고 들었어요.
―아, 맞아요. 여기, 동화 형이 곡을 써주구, 제가 가사를 붙였거든요.
―혹시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것 없나요? 동화 씨가 이번에 프로듀싱도 했다고 들었어요. 완전 가내수공업인데 에피소드도 여럿 있을 것 같거든요.
―감금…, 당했어요.
보이는 라디오를 잘 청취하고 있던 친구는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고 그녀를 쳐다봤다. 뭔가 해답을 달라는 듯이. 하지만 그녀는 알 만하다는 듯이 씨익 웃을 뿐이다.
―감금이요? 현행범으로 체포되면 화제가 조금 되긴 하겠는데요.
지동화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한마디 얹었다.
―변호사부터 알아봐야겠습니다.
―그러게요. 원고, 진술 부탁드릴게요.
―몇 주 전이었을 거예요. 작업실에서 가사를 다 쓰기 전까지 못 나가게 막았거든요. 제가 화장실 가고 싶다고 하니까, 따라와서 문 앞에서 지키더라구요.
―동화 씨, 아니, 피고, 왜 그랬나요? 변론을.
―그건 이든이 형이 몇 번 탈출 시도를 해서 예방 차원에서…….
―저런, 피고가 변론을 하는데 추가 범행만 드러났네요.
의문을 해소한 친구는 확신했다.
“쟤네, 정상 아니야.”
확실해.
“…그게 매력인 건데.”
그녀는 약간은 수치스럽다가도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럼 어떤 곡인지도 안 들어볼 수가 없죠.
―이건, 제가 여태껏 신세졌던 분들에게 인사를 드리는 곡이에요. 감사 인사나 작별 인사 같은.
그녀는 지동화의 표정이 묘해지는 것을 재빠르게 캐치했다. 뭐지, 현재가 뭐 이상한 말을 한 것 같지는 않은데.
“약간 졸업식 스타일?”
“그런 듯.”
친구의 말에 답하면서 그녀는 이내 의문을 지워버렸다. 이제 곧 지동화가 직접 만든 곡이 흘러나온다잖아.
―오오, 혹시 누군지 잠시 여쭤 봐도 괜찮을까요?
―감사 인사는 저희 멤버 형들한테 꼭 해주구 싶었어요.
그녀는 순간적으로 중얼거렸다.
“…그럼 작별 인사는?”
“얘 고등학교 졸업한다며. 친구들한테 하는 거 아냐?”
“합리적이네.”
근데, 우리 막내가 가끔 거칠어서.
이현재는 잠시 동안 멤버들한테 감사한 일을 하나하나 꼽다가 문득 말이 길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멋쩍게 웃었다.
―네, 그럼 저도 처음 듣습니다. 청해 볼게요, ‘Under the snow.’
영상 속에서 이현재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마이크를 꽉 부여잡았다. 지동화는 여전히 묘한 표정으로 이현재를 바라보고, 다른 멤버들은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이현재를 소리 없이 응원하고 있었다.
가녀리고 예민한 선율, 피아노 소리가 귀를 사로잡았다. 친구는 ‘오.’라는 감탄의 목소리를 내고는 다시 영상에 집중했다.
매화 한 송이가 껍질, 땅, 눈, 그 모든 것들을 꿰뚫고 오르며 천천히 만개하는 과정을 음표 하나하나가 매끄럽게 그려냈다.
그리고 이현재는 눈을 꼭 감고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조금은 날 선 듯한 표정으로 한 음절 한 음절 조심스럽게 불렀다. 청아하고 맑은 음색으로 의지를 굳히고 걸어 나가는 한 사람의 감정을 꾹꾹 목소리에 눌러 담았다.
한 걸음, 가빠오는 숨, 나 홀로 쌓은 껍질을 뚫고
두 걸음, 밝아오는 너, 차디찬 공기 나를 채우고
세 걸음, 널 만나면 꼭, 이렇게 물어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