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05)
네 걸음, 다가오는 널, 봄이라 불러도 될까
모든 후렴을 부르고 나서, 정말로 편안해진 듯이, 무거운 짐들을 모두 떨쳐낸 듯이, 자유를 만끽하듯이, 온 세상을 채울 듯이 울려 퍼지는 바이올린의 선율에 환하게 웃는 모습.
최애가 지동화라고 해서 블로센스의 다른 멤버를 싫어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그녀는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좋다.”
“그니까. 게다가 얘가 노래를 잘 부른다. 엄청 편해 보여. 곡이 사네.”
아마 맞춤 제작이라 그런 것일 거라고 그녀는 답하려다 말았다. 팔불출 같아서.
“원래 곡 잘 써줘도, 개같이 소화하면 개같잖아.”
아마 동화 성격에 그런 꼴은 두 눈 뜨고 못 봐서 감금한 다음에 어떻게 소화할지 일일이 지적할 것 같다고 그녀는 답하려다 말았다. 같은 이유로.
“이거, 음원 올라와?”
“오, 어때, 곡 괜찮지?”
“괜찮은 수준이 아닌데.”
그녀의 친구는 음악에 상당히 짠 편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다. 친구는 재생 목록에 한 점의 오류라도 껴 있는 것을 싫어하는 인간이다. 취향 차는 있을 수 있겠지만, 최소한 나쁘다고 할 만한 곡은 아닌 것이다.
“…X발, 이제 다 닥칠 일만 남았나.”
“아, 커뮤?”
그녀의 친구는 곰곰이 골몰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한 세 개는 더 나와야 할 것 같은데.”
“망할, 올해 내내 지랄 나겠네.”
* * *
라디오가 끝나자 견훤 선배님은 박수를 치며 모든 멤버들에게 한마디씩 칭찬을 남겼다. 그러다 이현재 쪽으로 와서는 손을 잡아 흔들었다.
“와아, 노래 잘하더라, 현재.”
“감사합니다.”
예의 바르게 90도로 고개를 숙이는 건 류이든을 꼭 빼닮았다.
“껍질들한테는 작별 인사 잘 하고,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응원할게.”
역시. 눈치가 좋은 선배님답게 곧바로 핵심을 찔러 들어왔다. 나도, 정말 물어보고 싶었거든.
견훤 선배님의 덕담을 듣고 나서 나는 이현재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해명해.”
“눈치가 너무 빨라요, 형은.”
“…나만 빠른 게 아닐걸.”
“그렇지. 나도 눈치 챘거든!”
류이든이 말을 잘 듣고 있다가 내 어깨를 부여잡았다. 방송 중에는 전혀 티를 내지 않았지만, 사이사이 이현재의 표정을 예리하게 살펴보는 걸 보면 나처럼 심상찮은 낌새를 눈치 챘나 보다.
“괜찮아요. 어차피 눈치 채 달라구 말한 거니까.”
이현재는 자랑스러워 보였다. 뭐가 그렇게 자랑스러운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선택을 빨리 알려 주고 싶어 보였다.
“절연하기로 했어요.”
…음.
자, 천천히 생각해 보자. 절연은 원래 그 대상을 필요로 하는 말이다. 하, 아무리 생각해도 머릿속에 이현재 아버님 얼굴밖에 떠오르질 않아.
“…부모님?”
류이든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는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네.”
“오우, 나는 정말…, 현재야…….”
손이 기괴한 각도로 이리저리 돌아가며, 류이든은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걸 온몸으로 표출했다.
“하하, 저 지금 기분이 너무 좋아요. 엄청 개운해서 이상해요. 음, 역시 동화 형이 해 준 충고가 도움이 돼요. 정말.”
…그래? 나는 나도 모르게 자식이 부모님과의 연을 끊는 걸 종용한 건가.
류이든도 이현재의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입을 벌리며 경악했다. 나는 류이든의 책망과 해명을 요청하는 시선을 무시하고, 이현재의 눈을 들여다봤다. 예전에 채하민도 비슷한 일을 겪었고, 채하민의 눈에선 후회와 망설임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현재의 눈에는 왜 확신밖에 보이지 않을까.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강렬한 믿음이 눈에 붙어 있다니.
이러고 방송국에 죽치고 앉아 있을 수는 없으니 우리는 스태프분들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차에 탑승했다.
석준과 채하민이 해맑고 밝은 분위기를 이어나갔음에도, 나머지 세 사람 사이에서 흐르는 어색한 기운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자동차의 엔진 소리만이 고요하게 울려 퍼지는 차 안, 밖으로는 서울의 야경이 아름답게 흘러가고 있을 무렵, 나는 이현재에게 조용히 물었다.
“후회, 안 할 거야?”
“네.”
이현재는 웃으며 머릿속을 한번 정리하듯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저는 부모님 기대를 충족할 자신이 없어요. 아니, 충족해도, 제가 행복할지를 모르겠어요.”
“…그래?”
“네. 행복한 게 뭔지 알고 나니까, 그러면 불행할 거라는 확신도 들구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행복한 게 뭔지 알고 나니까’라는 말이 안타까웠다.
“설득하면, 바꿀 생각은 없어?”
물론 진심으로 설득할 생각은 없다. 이현재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면, 지원하면 지원했지 방해할 계획은 추호도 없다. 다만, 정확히 알고 싶을 뿐이다. 이현재는 말려 주길 바라는지, 아닌지.
“네. 아무리 형이라두.”
이현재는 단호하게 내 눈을 들여다봤다.
“절대로, 안 바꿀 거예요.”
“알겠어.”
난 씁쓸하게 웃으며 핸드폰 속에 조용히 가지고 있던 이현재 아버님의 번호를 차단했다.
이론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었다. 가족과의 관계가 무겁다면, 포기할 수도 있다고. 물론 나는 후회했고, 그로 인해 미친 짓거리까지 했지만, 이현재는 다르기를 바랄 수밖에 없겠다.
[여담이지만, 다릅니다.]‘…그래?’
[네.]‘이건, 예전 가능성 얘기야?’
[이현재라는 인간과 지낸 경험에서 우러난 결론입니다. 이 교수는 저만큼이나 미친 사람이었거든요. 제 문이 저 인간 손에 부서진 적도 있습니다! 저는 망치로 문을 여는 걸 처음 봤습니다!]‘…대충 무슨 소린지는 알겠어.’ 너랑 내가 사회부적응자였다는 소리네, 이미 충분히 알고 있지.
이제야 그나마 류이든 덕분에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인간이라 그런지 옆에서 순수한 얼굴로 자고 있는 이현재가, 새삼 얼마나 강한 인간인지 느껴졌다.
이현재가 범죄를 할 인간은 아니니, 망치로 문을 여는 행위는 얼마나 많은 용기와 확신을 필요로 하는 걸까.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성어가 왜 존재하는지 알 것 같다.
이로써 길게만 느껴졌던 휴식기가 끝났다. 이제 다시 정신없는 활동기가 시작될 것이다. 가장 빠른 건, 채하민의 드라마 조연이겠지. 대국민 프로듀서들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OST가 성공하기를.
[그래서 지동화가 팬빨 다 빼고 봤을 때 띵곡 썼냐고]걍 아이돌치고 잘한다지 무슨 ㅅㅂ 작곡의 신이 강림했다는 듯이 지껄이는 거 ㅈㄴ 꼴불견임. 따지고 보면 걍 방구석 히키코모리같이 작업만 ㅈㄴ 해대는 남돌이 뭐가 좋다고 지랄인지도 잘 모르겠음댓글―그래… 니 말이 다 맞으니까 이제 좀 꺼져주라…. 너랑 같은 하늘 아래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좀 불쾌해서 그래… 인류애 상실하기 싫으니까 제발…
└ㄱㄴㄲ 다른 데로 꺼지라고 왜 여기까지 기어들어 와서 지랄인데 ㅋㅋㅌㅋㅋㅋ ㅈㄴ 남의 앞마당에 무단침입해 놓고, 니네 취향 존나 별로다! ㅋㅋ 이 염병 떨고 도망치는 꼴 ㅅㅂ―??? : 엿이나 드십시오
└ㅈㄴ 예의 있어 역시 문화룸넛
―방구석에서 애 하나 조금 잘 나갈 기미 보이니까 뭐라도 트집 잡아 보려고 염병하는 거 안타까워… 인생은… 살고 있는 거지…?
―아 그래서 지동화만큼 커리어하이였던 작곡멤 있냐고 ―누가 ㅅㅂ 작곡의 신이래 니 말마따나 아이돌치고 개쩔어서 뽕 찬다 이거지 ―어디 나가서 술 처먹고 여자 만나면서 사생활 논란 터지는 것보다 차라리 히키코모리인 게 더 자랑스러워 나는..
└이게 맞다. 다른 돌 파다가 한 번 데여 보면 집구석에 있길 좋아하는 애들이 제일 안심됨커뮤니티 활동을 하다 보면, 항상 분탕종자가 있기 마련이다. 평화로운 룸넛들의 놀이터가 외부 분탕 세력의 유입으로 불타올랐다. 과거 바다에서 바이킹의 선박을 발견한 유럽의 한 마을을 연상케 할 지경이다.
합당한 비판이라면 모를까, 대뜸 찾아와서 면전에서 시비를 거는 인간이 좋게 보일 수는 없었다.
“아, 발광하는 거 꿀잼인걸.”
이런 커뮤니티에 ‘일부러’ 찾아가서 분탕을 놓을 정도면 인터넷에 고이고 고인 존재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말에 누군가가 반응하고 댓글이 수없이 달리며 말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며 쾌감을 느끼고는 한다.
관심을 받기를 원한다면 훨씬 더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인터넷에 댓글을 쓰는 것만큼 쉬운 일이 없어서 그런지 이 인간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안타까운 영혼이지만, 부디 구원은 없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물론 이 사람은 며칠 전 지동화가 작곡하고 이현재가 홀로 부른 ‘Under the snow’를, 누가 곡을 쓰고 불렀는지 모른 채 듣고 좋다며 정보를 찾았었던 전적이 있다.
다분히 이율배반적인 짓거리지만, 이 인간의 머릿속에서는 합리화 회로가 아주 강렬하게 돌아가고 있을 뿐이다.
다시 한번 인터넷을 유람하며 들을 만한 아이돌 곡을 찾아다니던 이 인간은 문득 들은 노래에 감탄했다.
“와 씨, 요즘 OST는 퀄리티 좋네.”
[요즘 OST 곡 수준]이라는 어그로성 제목에 끌려 들어갔으나 화창한 봄날과 피어오르는 새싹을 떠올리게 만드는 멜로디에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이제 곧 봄이라고 봄을 주제로 한 곡이 슬슬 올라오나 보다, 생각하면서도 들으면 옛 추억이 떠오를 것만 같은 곡에 감탄하고 말았다.
“누가 불렀니, 이건 또…….”
‘블로센스.’ 단단한 문자의 향연에 이 인간은 잠시 정신이 아찔해짐을 느꼈다.
대체……. 블로센스가 부른 곡이면 8할은 지동화 작곡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작곡 정보란을 살펴보는 것을 이 인간은 망설였다. 커뮤니티에 짐승처럼 글을 쓰기는 해도 일단 인간의 가죽을 덮고 있다 보니.
가끔 진실을 외면하는 게 정신에 더 이로울 때가 있다는 듯이, 이 인간은 말없이 창을 닫았다. 누군가 졸렬하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인간의 정신세계에서는 졸렬한 짓은 아니었다.
* * *
“형님은, 저런 거 어떻―게 다 참―나요.”
석준이 이현재의 태블릿을 보더니 충격받았는지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았다. 채하민도 옆에서 동화됐는지 안쓰럽다는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 망할 것들은 연습이나 할 것이지 마무리 동선 맞추다가 갑자기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아니…, 저는 준이 형이 궁금해하길래…….”
이현재가 멋쩍게 뒷목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갑자기 이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밝히는 대멤버담화라도 해야 할 판이다.
“참는 게 아닌데, 준.”
누군가 보면, 내가 화를 참는 데 도가 튼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근 ‘지동화의 멘탈 수업’을 촬영하면서 매번 백기를 세 번씩 모두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기를 들 때마다 PD님에게 격렬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으니까.
“정말, 화가 안 나.”
퀄리티가 객관적으로 좋다면, 사실이 아닌 말에 화를 내는 격이니까 괜한 에너지 낭비에 불과하다. 반대로 퀄리티가 좋지 않다면, 화를 낼 일이 아니라 수용하고 개선할 일이다.
어느 경우에 해당하든 귀결은 화를 낼 일이 아니라는 건 똑같으니, 무슨 곡을 발표해서 무슨 소리를 듣든 화를 내지 않아도 된다.
분노는 가장 차가울 때 냉정하게 내야 하는 법이라서, 남이 보기엔 화가 없어 보이나 보다. 버섯을 넣은 돈까스같이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화가 안 날 테니까.
“…이러―는데, 어떻게―”
물론, 이렇게 말해도 이현재만 납득하고 나머지는 ‘그래도…….’라는 말을 뒤에 덧붙일 것을 알고 있어서 말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지금 석준은 울먹거리며 평소답지 않게 미칠 듯한 짜증을 온몸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이 화내 주고 있잖아.”
나는 흐르는 땀을 닦았다. 연습, 마저 하려면 빨리 분위기를 정리하는 게 좋겠다. 오늘은 돌아가서 채하민이 나오는 드라마 첫 화도 모여서 봐야 한다. 멤버들의 개인 활동은 최대한 서로 챙겨 보기로 약속했으니까.
“충분해.”
석준은 멀거니 나를 보다가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더 분노하겠습니다!”
급발진하지 마. 충분하다는 말의 의미를 왜 모르는 건데. ‘더’ 분노하면 더는 충분한 게 아니잖아.
“제가, 형님 몫만큼 분노할 겁니다!”
석준은 뜻을 굳혔는지 단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전투에 나서는 부족 제일의 전사 같은 투지가 느껴져서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근데, 화 안 내두 돼요, 준이 형.”
이현재가 석준의 투지를 조용히 내리눌렀다.
“어차피, 몇 곡 더 나오면 다 닥칠 예정이거든요. 귀만 제대로 달려 있으면.”
현재야, 말이 험해.
“아니면 자기가 수준 미달인 거 곳곳에 티 내구 다니겠죠. 그럼 자기 멍청하다는 거 광고하는 꼴인데, 그럴 수나 있겠어요?”
정말 멍청하면 그럴 수 있지. 세상은 넓고 이상한 사람은 많은 법이다.
“진짜 멍청해서 그러구 다니면 다른 사람들한테 돌팔매질 당하구 사지절단될 거예요. 인터넷이 그런 곳이잖아요. 그렇게 여론에 밀려서 쥐죽은 듯이 지내겠죠.”
이현재는 태블릿을 차갑게 바라보며 냉정한 평가를 찬찬히 입에 올렸다. 류이든과 채하민이 놀란 눈초리였다. 이현재의 폭주를 지켜보며, KTX를 처음 보는 시골 청년들처럼 입을 벌리고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다.
음, 저 정도는 괜찮지.
“아, 산소 아까워.”
세상에, 그런 말을.
“…현재.”
“미안해요, 형. 너무 화나잖아요.”
이현재는 순진한 얼굴 그대로 나를 올려다보며 답했다. 아니, 화낼 필요 없다고 말한 게 조금 전인데, 현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