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06)
띠링―!
[그립습니다. 저한테도 저렇게 욕해 주고는 했는데.]…기지생.
[쟤, 평소에도 저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자기 확신이 없어서 말을 안 하고 꾹 참고 있었을 뿐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당신이 물꼬를 튼 겁니다.]나는 대체, 뭘 한 것일까. 자기 확신이 없어서 우물쭈물하며 망설이던 이현재의 등을 조금 밀어줬을 뿐인데, 대체.
나중에 시간이 더 흘렀을 때, 나는 이현재에게 훌륭한 어른으로 남을 수 있을까. 부단히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이런 이현재의 폭주 덕분일까. 남은 연습은 효율적으로 일찍 끝낼 수 있었다.
* * *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채하민이 나를 등 뒤에서 꼭 붙잡았다.
“현재가…, 뭔가…, 막, 막, 변했어.”
채하민이 내 어깨를 부여잡고 귓속말로 미칠 듯이 속삭였다. 이현재에게 들리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채하민은 귓속말에 재능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저 MBTI도 바뀌었을까요. 형들 반응 보면 바뀌었을 것도 같은데…….”
채하민의 반응에 이현재는 별말 없이 핸드폰을 꺼내서 무언가를 딸깍이기 시작했다. 변했겠지, 당연히, 이 망할 놈아. 막혀 있던 댐이 무너져 내리면 주변 일대 지형에 변화가 생기는 게 이치에 맞다.
채하민은 이현재 얘기를 했던 걸 들킨 것이 부끄러웠는지 빠르게 화제를 전환했다.
“그, 그러고 보니까, 동화야, MBTI가 뭐였지?”
“마이어―브릭스 성격 검사 유형.”
채하민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소리 내 웃었다.
“그걸 물은 게 아니라, 동화, 너가…….”
아.
예전에 팬분들이 여쭤봐서 했던 전적이 있다.
“INTJ.”
머릿속을 뒤져보니 다른 멤버들의 MBTI도 기억났다. 류이든―ESFJ, 채하민―ENFJ, 석준―ENFP, 이현재―ISFP.
솔직히 말해서 MBTI가 뭔지 이름만 아는 수준이고 자세히 알아본 적이 없어서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다만 기억나는 건, 팬분들이 어떻게 니체랑 성격 유형이 똑같냐고 신기한 반응을 보이셨다.
“…어, 저 변했어요.”
“뭔데?”
채하민이 이현재의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ISTP요.”
저런, 나를 닮아 간 게 맞는 것 같아서 더욱 슬프다. 잘은 모른다지만 F에서 T로 바뀐 게 절반 정도는 내 탓이라는 거잖아.
이런 성격 유형 검사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고 바넘 효과도 섞여 있다고는 하지만, 내 탓이라는 증거로 삼기에는 큰 무리가 없어 보였다.
“새해 목표, 절반 정도 이룬 것 같아요.”
이현재의 말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을 때였다.
“얘들아, 빨리 와서 샐러드 받아 가!”
오늘 저녁은 식단 관리용 샐러드와 영양 밸런스로 고려된 단백질 보충용 고기. 조금 있을 컴백에서 카메라에 좋게 찍히기 위한 노력이다.
공백기가 조금 길었다 보니, 그만큼 강하게 식단 관리가 진행 중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물렸는데, 요즘은 적응이 됐는지 나름대로 샐러드의 풍미를 즐기게 됐다.
“아, 동화, 네 거는 버섯 뺐어.”
너는 신이야.
“그만큼 하민이한테 넣어줬지.”
쟤는 토끼고.
“와…, 드라마 제작팀에서 저희 OST 엄청 밀어주네요.”
채하민의 드라마 첫 방송 대기 중이라 그런지 이현재는 관련 정보를 찾아보고 있나 보다. 먹으라는 밥은 안 먹고, 시사 분석에 진심인 모습이 예전의 이현재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아서 감격스러울 지경이다.
“…이러다 OST만 남은 드라마 되는 거 아닌가 몰라요.”
나는 샐러드를 다 씹어 넘기고 답했다.
“아닐걸.”
“왜요?”
“우리가 고른 드라마라서.”
우리가 고른 걸 제외하고 나면, 선택지가 없거든.
이제 며칠 후면 빵빵 터질 예정이다, 온갖 배우들의 스캔들이.
우리 드라마를 제외하고 나머지 드라마는 주연 배우가 하차하는 사태를 겪으면서 드라마를 보는 분들은 필연적으로 우리 드라마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평타만 쳐도 대박인 셈이다.
이현재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는지 뭐라 말하려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내 성격을 알기에 근거 없이 지껄이는 소리는 아니라는 믿음이 느껴져서 감격스러울 지경이었다.
“하민아, 너, 여기서 짝사랑하는 후배 역할이랬나?”
버섯을 오물오물 씹어대던 채하민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멋쩍게 웃었다.
“근데, 조금 특이한 역할이긴 해.”
캠퍼스 시나리오에서 특이하려면 대학 교수랑 결투하고 나서 승리의 교단 위에서 주인공에게 고백이라도 하는 걸까.
“스포니까, 일단 봐봐.”
드라마를 보고 있자니 평범하다. 이런저런 설정이 덧붙었지만, 평범한 대학교에서의 평범한 사랑 이야기. 그런데 요즘 드라마는 판타지적인 요소를 작품에 넣는 데 거리낌이 없어서 그런지 차라리 이 평범함이 더 눈에 띄었다.
밖에선 완벽한 학생회장이지만 집에 들어가면 반백수 몰골로 라면을 먹는 남자 주인공과 학교에선 너드 같은 복장으로 큰 안경을 끼고 다니지만 다른 곳에 가면 걸크러시 그 자체인 여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
흔하다면 흔하고 평범하다면 평범하지만, 순한 이야기에는 순한 이야기대로의 맛이 있어서 볼 만했다.
“저분, 삼십 대로 알고 있었는데, 이십 대 중반 역할 엄청 잘 어울리신다.”
그러게. 처음엔 캠퍼스 러브 스토리에 여주인공이 삼십 대인 수현 씨라 뭔가 싶었는데, 연기력으로 다 씹어먹을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나한테 사십 대 중년의 연기를 하라고 하면, 자신이 없는데 말이다.
“…그런데, 하민, 뭐 해.”
나는 내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감에 어깨를 털어냈다. 초반부에 학생회의 감초 같은 느낌으로 상쾌하게 등장해서 ‘아…, 드라마에서 가끔 분위기 환기 해 주는 애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 이후로 계속 이런 상태다.
“못 보겠어.”
“…지금은 네 그림자도 안 나오는데?”
“이제 곧…….”
와중에 이현재는 문학에 진심인 편인 인간이라 그런지 흔해 빠진 플롯 구성이 지루했는지 무관심한 표정으로 샐러드를 씹어대며 물었다.
“형, 혹시 저 주인공분들 대학교 안에서 이상한 구설수 같은 거 돌구 그러나요?”
그런 걸 원하는 거니. 이현재가 좋아했던 소설 목록을 보면, 극단적인 전개를 좋아했으니, 이렇게 순한 이야기를 좋아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런 장면은 없을걸?”
채하민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 노력했으나, 내 눈에는 선명하게 보였다. 여전히 매콤한 막내가 낯선가 보다.
물론 나야, 순수한 소설을 이현재와 함께 읽을 때, ‘왜 재미없는지’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걸 직접 들은 적이 있어서 놀랍지 않았다.
분명 ‘쌓아 올린 모든 게 몰락하는 순간이 보고 싶어요. 그때가 문학적으로 아름다워서.’라고 답했었지.
“그렇구나.”
이현재는 아쉬운지 입술을 한번 훑었다. 이현재는 이내 관심을 끄고 무신경하게 TV를 건너다 봤다.
“으아, 이제 나온다.”
채하민은 소리치는 동시에 다시 고개를 내 등짝에 파묻었다. 아주 당연하게도, 내가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아서 무거웠다. 손으로 밀어내면서도 대체 왜 저러나 싶어 화면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주인공들이 자신의 본모습으로 마주 앉아 편의점 테이블에서 서로 노려보고 있는데, 헬렐레거리는 채하민이 등장했다. 대낮인데 양손에 소주병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떤 캐릭터인지 잘 보였다.
주인공의 대화 장면 너머로 점점 부각되는 채하민의 얼굴, 당황과 설렘, 그리고 이후 이어지는 표정은, 마치 첫눈에 반한 것 같은 뉘앙스였다.
“와아, 하민이 연기 늘었네!”
류이든의 환호. 물론 우리가 대충은 알고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러게.”
저절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채하민은 왜 연기력이 자꾸만 느는 걸까. 그러고서는 정작 일상생활에서는 연기를 못한다는 게 웃긴 지점이다. 뭔데, 이게.
“으아아…….”
채하민은 부끄러움에 몸서리치며 고개를 저었다.
“하민, 무거우니까 진정 좀.”
“…그런데 저게 왜 수치스러워요, 형?”
그러게. 이현재의 말마따나, 연기를 잘하는 걸 보이는 게 이렇게까지 몸서리칠 일인가.
“아니, 이게 말이야…….”
채하민은 멘탈이 회복됐는지 웃었다.
“저거 남자 주인공한테 감탄하는 부분이래.”
음, 어쩌라는 걸까.
“아니, 감독님이 반한 것처럼 연기하라고 하셨는데, 나중에 들어보니까, 대상이 반대였어!”
“음, 그거 부끄러운 일이에요?”
이현재가 내가 묻고 싶은 것을 가차 없이 물어봤다.
“부끄럽지! 연기 내용도 제대로 숙지 못 한 거잖아……. 으아, 진짜 저 때 생각만 하면…….”
“아, 음정 틀리게 불러놓구 만족했다가 지적당한 기분 같은 거예요?”
저런, 그거 나랑 같이 나눈 추억이네, 현재. 솔로 곡 녹음할 때 그랬지.
“그치, 그치. 그거야!”
“그러면 네가 좋아하는 사람은 저분인 거?”
“이게 고백을 하는 건 아니라…, 둘이 사귈 때 나 엄청 슬퍼하는데 누구 때문인지는 딱 안 나와.”
그러니까 머릿속이 꽃밭인 사람 1 같은 느낌인 거군.
“감독님 말로는 둘 다 좋아한다는데, 그게 이해가 안 가서 연기하기 어려웠지.”
저런, 그냥 머릿속이 꽃밭인 게 아니라 쓰레기 1 같은 거였군. 둘이 안 이어졌으면 양다리를 걸칠 예정이라는 거잖아.
“이런 드라마는 보면, 약간 로맨틱하긴 하다.”
류이든은 대화를 듣다가 갑작스레 입을 열었다.
“엔딩 이후에도 영원히 한 사람하고 변함없이 사랑할 것 같잖아.”
“…로망이긴 하네.”
이뤄질 수 없는 일이잖아.
사랑을 뭐로 정의할지는 참 논란이 많은 영역이지만, 호르몬의 영역을 빼놓을 수가 없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다양한 호르몬이 영향을 미치며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기쁨을 느끼게 만드는데, 이런 호르몬에 중독된 상태는 사랑의 중요한 한 측면이다.
안타깝게도 이 호르몬 중독 상태는 반년에서 삼 년까지만 지속되는 게 일반적이라서, ‘변하지 않는 사랑’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변하지만 이어지는 사랑이 옳은 소리다. 헤라클레이토스, 당신은 옳았을지도.
…라는 말을 듣더니 류이든은 소스라치면서 과장된 몸짓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아아! 이럴 때는 하민이가 헛소리 못 하게 막아줘야 하는데!”
아쉽게도 채하민은 제대로 연기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워서 죽을 듯 몸부림치고 있었다.
“형, 새겨들어요. 피가 되구 살이 돼요.”
내 말 한정 무한한 관심을 건네주는 이현재는 류이든의 귀에서 손을 떼어냈다. 말로는 서로 티격태격하지만, 이현재가 가장 거리낌 없이 다가가는 인간이 류이든이라 저런 장난도 치나 보다.
“형두 한 십 년 지나서 연애할 때 도움이 될 거예요.”
“십 년보다 더 지나야 할 것 같긴 한데…, 도움이 되기는 할까?”
참고로 류이든은 직업의식이 상당한 놈이라 현역 아이돌로 활동하는 중에 연애를 한다는 관념 자체가 머릿속에 없다. 저 인간이 연애를 한다면 그건 블로센스가 사실상 해체했다는 말과도 같다. 저런, 내가 그 꼴은 차마 보기 힘든데.
“잊었어, 도원결의?”
아니면 내 저주. 술 마시고 한 소리긴 해도, 진심이라는 점에는 틀림이 없다. 영원한 그룹 활동, 누구 하나가 배신하면 척살일 뿐이다.
“형은 평생 연애 못 할걸.”
류이든은 깨달았는지 ‘아!’라는 감탄을 지르더니 웃었다.
“그럼 차라리 멤버들 다 모여서 맨션 하나 골라잡고 노년까지 살면 되겠네.”
역시 개과 동물이라 그런지 늑대처럼 집단생활에 굉장히 긍정적이다.
늙어서도 저 인간이랑 싸울 걸 생각하면 달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수긍했다. 기대 수명이 백 년이라 치면, 대략 삼사십 년 후부터 황혼 맨션 같은 거 하나 만들면 되겠다.
“…음,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생활공간만 잘 분리돼 있으면.”
“와아, 그건 괜찮을 것 같다. 나중에 우리 다 같이 봉사 활동 같은 거 다니고, 장기 같은 거 두고, 회장도 뽑아서 건물 내 공지 같은 것도 하자.”
이현재와 채하민까지 긍정을 표하자, 도리어 류이든이 당황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