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07)
“자, 장난…….”
그러나 이미 다섯 명 중 세 명이 진지하게 동의를 표하고 말았고, 정작 본인이 제안한 사항이라 뭐라 할 수 없었던 류이든은 한쪽 소파에 가만히 있는 석준에게 고개를 돌렸다.
“준아!”
저런, 어쩐담. 우리 준이는 드라마 시작 5분 만에 곯아떨어졌는데.
“형, 이것두 저주로 남겨요. 안 지키면 처리하는 걸로.”
“아마 준이도 좋아할 거야. 예전에 이런 얘기한 적 있어서.”
류이든은 이 상황이 믿을 수 없다는 눈초리로 눈을 끔뻑일 뿐이었다.
그보다 석준이랑 채하민은 평소에 대체 무슨 대화를 하고 지내길래 이런 정신 나간 소리를 평소에도 했던 걸까.
* * *
[너네 집 근처에서 만나요 시청 소감]OST 개쩖. 채하민 얼굴이 존나 개쩖. 채하민 ㅈㄴ 발랄한 캐릭터 개 잘 어울려 ㅅㅂ댓글―아 이건 블뽕을 빼고 봐도 OST가 찢었다… 지동화는 진짜… 미친놈이 맞다….
―당신의 봄 들려달라는 이벤트가 이런 곡으로 나올 줄은 진짜 상상도 못 했다 ―일단 일 잘하는 돌을 원하면 지동화한테 풀매수해도 삶이 윤택해질 듯… 지동화, 그는 일밖에 몰라 ―나는 가끔 채하민을 보면 범죄를 생각하곤 해… 덕질을 할 때마다 교도소가 가까워지는 나…
└검거 완료된 댓글입니다 ^^
[지동화는 대체 어떤 봄을 지내고 있는 걸까]현재 개인 곡 ― 매화 피는 초봄의 한 날
호핀 지난 타이틀 ― 새싹 파릇하고 꽃 하나둘 피는 날 이번 OST ― 꽃이 만개한 날이 미친 봄 3부작… 이제 컴백만 하면 되는 거냐…
댓글
―컴백 예상 : 벚꽃이 주제임
└흐름상 ㅈㄴ 그럴 듯하다.
└동화 감성상 꽃이 질 무렵이 주제일 듯
―지동화는 덕질할 게 아니라 인생 모델로서도 손색이 없음 ㄹㅇ 공부를 지동화처럼 했으면 인생이 바뀔 듯 └실제로 공부를 지동화처럼 했던 지동화, 그는 도대체 무엇인가… 익숙해졌다가도 가끔 다시 생각해 보면 미친 사람…
이번에 OST가 봄기운에 인기를 끌며, 블로센스에 있는 미친 노동자 한 명의 이야기가 여러 커뮤니티 등지로 수출되기 시작했다.
일단 W앱의 대부분이 작업실이라는 점. 그리고 뭐 하고 있었냐는 물음에 항상 ‘작업 중이었습니다.’라고 담담하게 답했다는 점. 멤버들 역시 작업실 밖의 지동화보다 안의 지동화가 더 익숙하다고 증언했다는 점 등등.
여태껏 작업실 지박령 그 자체였던 지동화,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정을 그대로 물려받은 덕분에 잠의 중요도를 하찮게 여겼던 지동화의 지난 행적이 유머 게시글처럼 만들어지고는 했다.
‘지동화가 공부를 지동화처럼 했다면.’이라고 말하다가도, ‘아, 지동화는 공부도 지동화처럼 했지.’라고 자답하기도 했다.
심지어 하나둘 터지는 배우들의 사생활 문제들, 이미 시작됐거나 시작을 앞둔 드라마가 그에 따라 엎어지기 시작하면서 핫한 이슈를 만들었고, 그 와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드라마라는 점 때문에 블로센스와 그 미친 노동자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기도 했다.
원래라면 묻혔어야 했는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클린한’ 드라마라는 점 때문에 관심이 커지다니, 인생은 운 없이 살기 힘든가 보다.
지동화가 명예욕이 있었더라면, 이런 커뮤니티의 반응에 기뻐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정작 지동화는 그런 명예에는 관심이 없었고, 도리어 시간이 지나서 이때 화제가 된 것을 몹시 수치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지동화의 멘탈 수업 : 수업 시작’ 후기]클래식 음악으로 교양 프로그램인 척하는 거 개킹받음ㅈㄴ 홍대에서 뜨개질하는데 클래식 틀면서 인터뷰하는 거 진짜 ㅅㅂㅋㅋㅋㅋㅋㅋ교양 있는 클래식과 그에 걸맞은 헛소리, 그리고 이게 헛소리라는 걸 알려주는 진지한 문체의 자막, 그리고 이 모든 걸 애드립으로 소화했다는 미친 지동화까지… ㅈㄴ 거를 타선이 없는 룸넛 필수 시청 작이다…
댓글
―난 ㅅㅂ 저 똑똑한 머리를 이런 데 써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배덕감 느껴져 어쩌지 └입덕 포인트입니다.
―컨셉이 개 어이없음 대체 왜 EBS에서 할 법한 교양 프로 형식인 거임? ㅈㄴ 지동화랑 잘 어울리면서도 안 어울려서 실소만 질질 흘림―(지동화가 은은하게 카메라를 바라보는 짤 캡처, 그 눈빛이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지은광… 블로센스의 숨은 광기…
지동화가 세상에서 가장 저주하는 프로그램에 인기가 몰리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어째서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걸까. 나는 그저 멤버들과 그리고 우리를 응원해 주시는 팬분들과 소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어째서 저런 예능 같지도 않은 예능 영상물의 조회수가 기괴할 정도로 높이 올라가는 것일까.
내가, 저걸 왜 한다고 했더라.
분명 컴백 시기랑 겹치니, 다른 멤버들에게 애정을 느끼는 창구로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사소한 마음가짐이었다. 촬영 부담도 적으니 컴백 후에도 무리가 되지 않을 것 같았고.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가, 내 수치스러운 모습을 수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며 웃는 것이군. 어차피 벌어진 일 부여잡고 있어 봤자 바뀌는 것이라고는 내 멘탈 상황밖에 없으니 우선 침착함을 유지해야겠다.
“너무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마. 생각해 보면, 나쁘지 않은 일이잖아.”
류이든은 머리 세팅을 받으며 답했다. 가끔 보면, 저 인간, 내가 아무 말 안 했는데도 무슨 걱정을 하는 중인지 눈치채는 재주가 있다. 고도로 발달한 눈치는 독심술과 구분할 수 없나 보다.
“덕분에 아이돌에 그렇게 관심 없는 사람들도 너를 알아보는 거고, 한 분이라도 더 우리 팬이 될 가능성이 생기는 거잖아?”
집단을 위한 개인의 희생이라니, 잔인해라. 실제로 그냥 웃긴 영상 정도로 우리 팬이 아닌 분들도 보신다고 하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근데, 프흡, 웃기긴 하드라. 네가 말을 안 해 줘서 뭔가 했는데, 어머머, 나 어제 보다가 종일 웃었어.”
그만.
“무슨 개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크흡.”
“그게, 컨셉이야.”
내가 원한 게 아니라고. 정말로 내가 원하는 대로 영상을 찍었으면, 모모지 같은 영상물이 하나 더 나왔겠지.
나는 한숨을 내쉬며 거울을 들여다봤다. 셔츠가 상당히 크다. 오버핏이라고 부르는 그건가 보다. 살면서 연분홍빛의 오버핏 셔츠를 입어 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원래 이렇게 쇄골이 보이나.
그래, 이건 받아들일 때가 됐다. 의상으로 뭐라고 하는 건 이제 그만 체념해야겠다. 나라는 인간이 상품인 순간에 외양은 전문가에게 일임하는 것이 옳다.
“와, 너는 약간 부잣집 도련님이 유학 가서 홈 파티 하러 가는 느낌이다.”
인종차별 당하겠네. 물론 나는 독일에서 잠시 공부할 때 홈 파티 따위 근처에도 가 본 적 없지만.
그러고 보니 독일에서 만난 인연들은 지금은 완전히 없어진 상태다. 그래, 그보다 더 값진 걸 많이 얻었으니까 그 정도는.
“으음, 조금 기대된다, 쇼케이스.”
“저도― 엄청 기대됩니다. 만―약에 저희 대박 나면 위즈니 굿즈 한―껏 살 겁니다.”
나는 채하민과 석준의 대화를 한 귀로 흘리며 이현재의 옆자리에 앉았다. 이현재는 체크무늬 멜빵이라는, 상상만 해도 소화하기 힘들, 그런데 정작 내가 입었던 옷을 입고 천장을 멀거니 보고 있었다.
“뭐 해, 현재.”
“가사 외우는 중이에요.”
자다 깨서도 외울 가사를 굳이.
“그리고 이거 곡 쓸 때두 다시 떠올려 보는 중이에요.”
이현재는 웃음이 나는지 입을 가렸다.
“그때, 형 진짜 독재자 같았는데.”
“어, 나 그거 기억난다, 현재야.”
채하민도 흥미가 동했는지 이야기에 참여했다. 독재자라니, 이렇게 친절하게 독재를 하면 역사 서적에 이름도 못 남길걸.
* * *
때는 공백기 초반, 채하민과 류이든의 주도로 다섯 명이 함께 놀러 가기로 했던 날이었다.
놀이의 구체적 계획은 아주 당연하게도 채하민과 류이든이 짰기 때문에 정작 나나 다른 애들은 뭐 하고 노는지도 잘 모른 채 당일이 밝았다.
당시에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호핀의 타이틀 곡을 다 썼을 무렵이라, 우리 타이틀 곡은 어떤 식으로 완성할까.
사람들이 좋아하는 비트를 통계적으로 찾는 건 어렵지 않다. 한국 시장이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 시장에서 인기 있는 걸 참고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 수준으로 멤버들 체면이 걸려 있는 타이틀 곡을 통계학에만 의지해서 내고 싶지는 않았다. OST는 그냥 듣기 좋으면 그만이지만, 타이틀은 계속해서 우리를 따라다닐 테니까.
그래서 뭔가 경험이 필요했는데, 내 인생에서 봄은 ‘침묵의 봄’ 같은 느낌의 책이 더 익숙해서 문제였다. 애초에 봄의 설렘보다 봄의 비극이 더 친밀한 인간한테는 너무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멤버들과 함께 노는 시간에서 무언가를 얻으면 좋겠다는 흑심이 있었다. 채하민이 가져온 뱀이라든지, 아니면 느긋하게 지켜보는 바다의 푸른 모습같이.
“내가 아버지한테 놀 곳 좀 마련해 달라고 부탁드렸어.”
죄송합니다, 아버님. 제가 막지 못했습니다. 이놈들한테 계획을 맡겼던 게 큰 죄였습니다.
“그런 관계로, 오늘은 미술관에 갑니다!”
“미술관……?”
“응, 아버지네 회사에서 주관한 건데, 원래 오늘 아버지가 보러 가기로 했던 거, 그냥 우리들 가라셔. 미술관 가고 싶다고 했더니 아들 떼 한번 들어주신 거지.”
세상에, 전시를 독점하다니,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만 있으면 안 되는 게 없다더니.
“근데 갑자기 웬 미술관이에요?”
이현재의 질문에 류이든은 내 어깨를 끌어당겼다.
“얘, 곡 쓰잖아.”
“갑자기 웬…….”
나는 손을 치우다가 의미를 헤아리고 흠칫하고 말았다. 말도 한 적 없는 고민을 알아채고 신경 써 주는 건, 고마움보다 당황이 앞설 수밖에 없다. 류이든이나 채하민 중에 누가 먼저 알아채고 계획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낯간지러웠다.
“영감! 영감받으러 가야지.”
솔직히, 장소가 어디든 그냥 너희들끼리 모여서 지지고 볶고 있으면 영감도 생길 것 같긴 한데.
“…음, 그래.”
류이든은 내 어물쩍한 반응에 폭소를 터뜨리고는 어깨를 부여잡았다.
“자, 따라해 보세요. 고, 마, 워.”
마치 처음 말을 가르치는 부모님 같은 모습. 목화한테도 해 본 적 없는 일인데, 지금 뭐 하는 거야, 개.
고맙다는 건, 정말 특별할 때나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어서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머머, 형은 서운해? 자, 고, 마, 워.”
이를 악물었다. 틀린 소리는 아닌데, 어째서 명치를 한 대 벽돌로 후벼 파고 싶은 걸까, 망할.
“…고마워.”
“흐하하, 나는 진짜, 활력소가 따로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이때부터였나, 반드시 류이든을 괴롭힐 것이라고 다짐했던 게.
* * *
매니저님의 차를 타고 미술관까지 왔을 때, 의외로 큰 전시관 규모에 놀라고 말았다. 미술관을 전세 냈는데, 이 정도 규모라면, 대체.
“전세가 아니라, 본격 전시 전에 아버지가 확인하러 올 기회를 우리한테 준 느낌?”
세상에, 더 큰 문제 아니니, 하민아. 집에서 도련님이라 불리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다지만, 이런 특권을 당연시하는 걸 보고 있자니 놀라울 지경이야.
“아버지가 로비라고 전해 달라셨어.”
채하민은 차에 탄 게 찌뿌둥했는지 기지개를 켰다.
“로비?”
“응. 나중에 회사 물려받을 때 잘 부탁한다는 뜻이라셔.”
저런, 아직도 그 야욕을 버리지 않으셨나 보다. 내 무엇을 보고 그리 생각하시는지 잘 모르겠지만 부담스러울 따름이다. 회사는 류이든 같은 인간이 운영하는 게 최고인데, 소개해 드릴까.
“거절한다고 전해 줘.”
“이미 전해 드렸지.”
…아니, 그러면 전해 준 게 아니라 날조한 거라고 봐야지 않을까, 하민.
채하민은 이제 개운해졌는지 밝은 햇살을 보면서 내가 짜준 목도리를 동여맸다. 채하민뿐 아니라 다른 멤버들 전원 내가 짜준 목도리를 두르고 있다.
새삼스럽게, 왠지 내가 마음씨 좋은 동네 할머니라도 된 것만 같은 기분이군.
“형―님, 그래서 무슨 전―시입니까?”
“나도 잘 모르는데, 현대 미술 전시래. 아버지가 좋아하신다고 하더라.”
“오오, 현―대 미술. 뭔―가 멋진 느낌입니다.”
전시관으로 가던 당당한 행진, 나는 류이든과 투닥대느라 제대로 듣지 못한 말이었고, 이현재는 졸려서 눈을 끔뻑이고 있어 제대로 듣지 못했다.
나는 문득 고개를 들어 전시관에 설치된 플래카드를 봤다. ‘이건 예술일까?’라는 제목의 전시를 홍보하는 플래카드.
검정색과 흰색만으로 구성된 플래카드는 장례식을 떠오르게 만들어서 흥미로웠다. 음, 재밌는 전시가 될 것 같아.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 * *
“오랜만이에요, 하민 씨.”
“와아, 오랜만이에요! 여기는 저희 멤버들이고.”
채하민은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정장을 빼입은 댄디한 남성분을 손으로 가리키며 소개했다. 채하민 아버님 회사에 갔을 때 나를 맞이해 주셨던 분이다.
“이분은 음, 뭐라고 소개해야 할까요?”
“아버님 비서 정도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하, 근데 딱딱해서 싫으니까 김찬식 형이라고 소개할게요.”
“음, 그래도 될까요? 회장님한테 혼날 것 같은데.”
그러고 나서 비서님은 우리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이셨다.
“안녕하십니까, 동료분들의 안내를 맡았습니다. 큐레이터 정도로 생각해 주셔도 됩니다.”
저런, 계약서에 없는 부당 업무 아닐까.
“참고로, 회장님 옆에서 떨고 있는 것보다 여기에 있는 게 꿀 빨 수 있을 것 같아서 자원해서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