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08)
저런, 그걸 입으로 말하면 외압이 작용한 건 아닐까.
“분명히 자의임을 예비 회장님께 분명히 해 두라고 회장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아, 골머리 아파. 내가 속으로 생각할 것까지 예상하고 지시 내린 회장님이나, 시켰다고 거리낌 없이 밝히는 사람이나 대단하다면 대단하다.
“예비 회장님?”
다른 멤버들의 시선이 채하민에게로 꽂혔고, 채하민은 불퉁한 표정으로 비서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멤버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으나, 내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서 나는 류이든의 귀를 붙잡았다.
“…이든, 네 얘기야.”
“…어?”
“네 얘기라고.”
“어? 아, 네, 감사합니다. 블로센스 리더 류이든이라고 합니다.”
류이든은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넘어가자는 식으로 사회적인 미소를 입에 올리고 손을 내밀었다.
나는 둘의 화기애애한 악수 장면을 바라보다가, 비서님께 입으로만 ‘절대 아닙니다.’라고 벙긋거렸다. 비서님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몇 번 들썩였다.
“아, 저였으면 엎드려서 받아먹었을 텐데.”
“형, 빨리 가요, 휴가 다 간다.”
채하민은 비서님의 말에 ‘나, 불쾌해요.’라는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이현재와 류이든이 그 반응에 흠칫 놀라서는 둘이서 속삭였다.
“하민이 아버님이 동화랑 하민이를 후계자 경쟁 시키나 봐.”
“…와, 그거 그럴듯하네요. 맞는 것 같아요.”
“어쩌지, 우리는 누구 편 들어?”
“음, 각 보다가 이길 만한 사람을 고르는 걸로.”
아니야, 이것들아. 채하민은 내 의사를 존중하고 있을 뿐이라고. 물론 저분들도 장난으로 그러는 것이란 사실쯤은 알지만.
“안내드리겠습니다. 여기가 입구입니다.”
비서님의 안내에 따라 오른쪽으로 꺾인 길에 들어섰을 때, 우리를 맞이한 건 상어 한 마리였다. 뭐야, 망할. 왜 상어 박제가 있는데. 그것도 정성스럽게 유리박스 안에 고정까지 해서.
모두가 말없이 있다가 내가 도대체 무슨 의도인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 보니, 조형물이 아니라 실제 상어라는 사실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판넬을 읽으니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서는 불가능한 물리적인 죽음’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었다.
…설치 미술 전시회였잖아.
이건 배치부터가 놀라는 것을 의도했나 보다. 길이 꺾이자마자 상어의 입이 바로 보이도록 배치한 데다가 그 거리도 가까웠다. 순간적으로 잡아먹히나 싶은 생각이 들게끔 만드는 게 목표인 걸까.
“으아아아으어.”
뒤에서 뭔지 모를 소리가 들렸다. 채하민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옆에 있는 류이든의 팔뚝을 꽉 부여잡고 있었다.
석준도 이현재의 등 뒤에 숨어서―그 덩치로 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이 상어보다 더 놀랍다― 소리 질렀다.
“음, 오늘이 아직 전시 시작일이 아닌 게 다행이네.”
그러게, 아니었으면 민폐 그 자체였겠다.
“뭐, 뭐야, 그림, 그림 아니야? 진짜 상어야?”
채하민이 놀라서 점진적으로 다가와 내 옆에 섰다. 그러고는 다시 내 옷자락을 부여잡으며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왜 애를 갖다가 여기에…….”
채하민은 이를 갈듯이 은은하게 분노했다. 예술 작품으로 박제된 생명을 보고 분노하는 채하민, 어디 가서 보기 쉽지 않은 모습이다.
“제목이 심오하네요…,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서는 불가능한 물리적인 죽음, 무슨 소린지두 모르겠어요.”
우리를 가만히 지켜보던 비서님은 정말로 큐레이터라도 된 듯이 해설해 주셨다.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 하나는 관객이 압도적인 크기에 눌려서 죽음에 관해 생각하게 만드는 것, 다른 하나는 거대하고 나를 쉽게 죽일 수 있는 존재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 보는 것. 그게 작가 의도라고 합니다.”
철학은 예술과 상당히 친밀하다. 철학이 예술을 수단으로 이론을 설명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예술이 철학을 토대로 화풍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철학의 한 분야에 해당하는 미학의 존재가 그 밀접한 관계를 보여준다.
그래서 그럴까, 이해하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다만, 공부와 친하지 못했던 우리 하민이는 멍한 표정과 분노 사이 어디쯤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죽음을 생각하라구요?”
이현재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상어의 입 앞에 쭈그려 앉아 상어의 입 안을 올려다봤다.
“잘 모르겠네요. 너무 젊어서.”
“그야 그렇죠, 평소에 죽음을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요.”
안타깝게도 저는 그렇습니다. 철학 공부 하다 보면 웬 것들이 죽음 이야기를 더럽게 자주 해서요.
“아마도 그렇기에 만든 작품이 아닐까요. 잘 경험하지 못하는 걸 경험할 수 있도록.”
비서님은 그러고는 우리가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뒤로 물러나서 정중한 자세로 서 있었다. 안타까워, 부당업무.
“어때, 동화야. 뭔가 와?”
“…이걸로 아이돌 음악을 만들자고?”
“곡 발표하자마자 화제는 되겠다.”
그리고 우리 커리어에 화재가 나겠지, 망할 놈아. 우리 그룹의 죽음에 관해 생각하게 되겠네.
* * *
전시관은 마치 미로처럼 구성돼 있었다. 여러 방이 서로 얽히고 얽히며, 지금 내가 이 공간 어디쯤에 있는지를 인지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협소한 장소에서 집중할 대상이라고는 설치된 미술품 하나, 각 방의 분위기가 모두 달라서 온전히 시선을 빼앗아 갔다.
개념 미술 작품도 사이사이 배치되어 있어서 멤버들이 이해를 포기하는 사태도 가끔 발생했다. 벽에 설치된 물컵인데 제목이 ‘오크 나무’인 작품이라거나, 꽤 넓은 벽을 가득 채운 한 사람의 이름 같은 작품은 충분히 머리 아플 수 있었다.
“으아, 나는 평범한 전시일 줄 알았는데.”
“그러게, 내가 생각한 미술 전시랑 느낌이 좀 다르다. 예쁜 그림 보러 오는 마음이었는데.”
“그래도 동화는 엄청 즐거운가 봐. 표정이…….”
“…똑같은데요, 하민이 형?”
“아냐, 신난 거 티나.”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거대한 쓰레기장. 방의 중앙에 사방으로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어서 안이 쓰레기처리장처럼 보였다.
철조망에는 재활용 불가 표지와 일반 쓰레기 표지가 붙어 있었고, 그 옆으로 계단이 있어서 원한다면 올라가 쓰레기장의 안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게 만들었다. 작품명은 ‘우리가 한때 사랑했던 것들, 이제 쓰레기인’.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 밑을 내려다봤다. 철조망 안은 갖가지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그림이나 조형물, 팔찌, 자세히 봐야 보이는 반지. 특히 반지는, 아무리 봐도 커플링으로 제작된 것 같았다.
“이 작가는, 관람객들에게 소중했지만 이젠 쓸모없어진 물품을 버리고 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참여형 작품인 셈입니다.”
간단한 설명이지만, 다분히 충격적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버리고 간 추억이, 거대한 물리적 실체를 갖추고 있는 모습이라니.
형체가 없으면 그 의미는 불안전해지고는 한다. 단순히 생각으로 남은 것과 그 생각을 글로 옮긴 것 사이에 크나큰 차이가 있는 것처럼, 기억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작가는 쓰레기장으로 만들어 표현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왜 이 물건들을 버렸을까. 꿈을 포기했거나, 연인과 헤어졌거나, 아니면 문자 그대로 필요가 없어졌거나.
무수히 많은 이유로 한때 소중히 여겼던 것들이 버려지는 걸 보고 있으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비서님은 내가 눈을 빛내며 쓰레기장 안의 물건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걸 보면서 흐뭇해하시더니 입을 열었다.
“저도 하나 버렸습니다.”
“뭘, 버리셨나요?”
“저기쯤에 있는 반지요. 보이실지 모르겠습니다. 작가님이 좋아하시면서 저 반지는 잘 보이게 두겠다고 하기는 하셨지만.”
저런.
“…그렇군요.”
“버릴 때 홀가분해지던데요. 참 재밌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 출발하는 기분도 들었거든요. 버리는 행위에서 오는 감각이 이 작품의 의도였는지도 모릅니다.”
추억의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건, 미련과도 같다.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에게 되새기는 장치가 된다. 그러니까, 저 말은 이 작품이 그걸 ‘버려도 괜찮다’라고 속삭이면서 미련을 떨쳐내도록 도와주고 있다는 뜻이라는 해석이다.
“제 친구도 붓이랑 그림 몇 점을 가져와서 버렸다고 합니다. 예전에 화가가 꿈이었다고 했거든요.”
입 안이 씁쓸하다. 내 뒤에 언제 왔는지 모르겠지만 이현재가 서 있었다. 품을 뒤지더니 가슴 안주머니에서 볼펜 하나를 꺼내 쓰레기장 안으로 던져 넣었다.
“…음, 그러게요. 홀가분해지는 기분이긴 해요.”
무슨 기억이 담겨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무언가에서 벗어나 새로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나 보다.
“형도, 뭐 버릴 것 없어요?”
이현재는 옆에 있는 류이든에게 물었다.
“…음, 연습생 때 가지고 있던 일기장은 버리고 싶긴 하네.”
나는 대화를 배경으로 잠시 작품을 감상하다가 깨달았다.
이거, 곡으로 쓰고 싶다. 이 쓰레기장을 곡으로 남기고 싶다. 말이 조금 우습긴 하지만, 이 추억의 물리적 형태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이 순간을 모두와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영감, 얻은 것 같아.”
그러나 예상도 못 했는지 채하민은 철조망이 신기한지 쿡쿡 찔러보다가 넌지시 던진 말에 화들짝 놀랐다.
“지, 진짜? 나는 당연히 오늘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완전 기괴한 것밖에 없어서!”
이어지는 류이든의 반응.
“잠깐, 동화야, 쓰레기장에게 영감을 받았어요, 라고 인터뷰할 거야?”
“응.”
류이든의 걱정 어린 시선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이 쓰레기장은 마음에 들어서, 그렇게 인터뷰해도 부끄러울 것 같지 않았다.
* * *
그리고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시작된 작업의 나날. 작업실에 비치해 둔 소파 겸 침대에서 자는 날이 주욱 이어졌다. 그리고 대충 초본이 완성됐을 때, 나는 모든 멤버들과 일정을 조율해 작업실에 모였다.
“오늘은, 피드백을 진행할 거야.”
“오, 벌써 1차 완성이야?”
“응. 들어보고, 어떤 느낌인지 말해 줘.”
곡을 쓸 때는 전체적인 느낌을 우선 정하고는 한다. 이번 쓰레기장에서 내가 인상 깊었던 것은 ‘정리(整理)’라는 행위가 갖는 묘미였다.
우리는 무언가를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번 떠올릴 수밖에 없다. 마치 벚꽃이 지는 걸 보면서 벚꽃이 만개했던 순간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떠올리게 되는 것처럼.
그래서 꽃이 떨어지는 장면을 연상시키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상정하고 작곡한 곡이 이번 우리 타이틀 곡이 될 예정이다.
물론 회사와 조율해 봐야겠지만, 만약에 이 곡이 수준 미달이면 어떻게든 고쳐서 타이틀 곡으로 만들 거라 문제없다.
뚝뚝 화려하게 떨어져 내리는 벚꽃잎 무리 같은 멜로디가 끝이 나자, 류이든과 채하민, 그리고 석준이 미칠 듯이 박수를 쳤다. 반면에 이현재는 눈을 감고 아직 여운에 잠긴 듯이 고개를 까딱였다.
“어땠어?”
“좋다, 좋다, 와, 좋아!”
“그대로 가자, 동화야.”
나는 고개를 단호하게 저었다.
“안 돼.”
“어?”
류이든과 채하민은 기립박수 치던 자세 그대로 굳어서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모자라.”
“아니, 또 독 짓는 노인 모드가…….”
“그런데, 아무리 들어도 나는 못 찾겠어.”
이미 수십 번 들었지만, 분명히 모자란데, 무엇이 모자란지 명확히 알기가 힘들었다.
작곡을 하다 보면 이럴 때가 있다. 혼자서는 무엇인지 모를 부족한 점이 있을 때가. 하지만 이럴 때 도움을 받으라고 멤버들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분명하게 알고 있다.
“그래서, 도와줬으면 해.”
나는 미리 준비해 둔 A4 용지를 모두에게 한 장씩 나눠줬다.
“모두, 다섯 개씩, 납득할 만한 문제를 적어줄 때까지.”
이번에는 볼펜을 건네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못 나가.”
그리고 작업실 문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절대.”
시간이 촉박하고 할 일이 많을 때는 작업을 효율적으로 마치기 위해서 계획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게끔 해야 한다. 나는, 오늘 내로 1차본의 수정을 마치기로 계획을 세웠고, 류이든이 자주 말하는 그대로 우리는 서로 의존하는 ‘한 팀’이니까, 도와줬으면 한다.
“아아…, 독 짓는 동화…….”
머리를 싸매고 몸부림치는 류이든.
“노끈보다는 낫네요. 그래두 몸 움직일 때 편하구…….”
현실을 받아들이는 이현재.
“동화야, 혹시 멤버들이랑 상의해도 돼?”
실질적으로 감금당한 상황임에도 해맑은 채하민.
“형―님. 저는 어제부―터, 같―이 했는, 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