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1)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1화(21/343)
21.
채하민이 사 온 분식류를 먹으며, 우리는 류이든의 눈물만을 제하고 네 시간 동안 있었던 일을 채하민한테 전달했다.
채하민은 자기 성품답게 류이든한테는 정서적인 공감을, 그 등신 같은 놈한테는 타오르는 분노를 보여줬다.
‘공감 능력은 나보다 채하민이 더 좋을 테니.’
심지어 채하민은 참 채하민답게 울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때 생수를 마시러 나온 석준이 그런 채하민을 보곤 놀라선 무슨 일인지 물었고, 다시 한번 시작된 사연 전달 끝에, 석준도 참 석준답게 울기 시작했다.
그러다 동갑내기인 김현진과 이현재가 연습 갔다 돌아왔는지 땀에 절은 채로 와선 무슨 일인지 물었고, 예상했다시피 울어댔다.
그러자 류이든은 아이들이 자신을 위해 우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처음에는 괜찮다며 말려대다가 본인조차 감정이 받치는지 약간 목매는 소리로 아이들과 함께 훌쩍였다.
나는 나를 제외한 모두가 한마음으로 눈물 흘리는 그 혼란한 상황 속에서 떡볶이에 든 어묵을 씹어 먹으며 생각했다.
‘…맛있군.’
휴일 아니면 자극적인 음식 제대로 못 먹는데 빨리 먹어야겠어.
* * *
밥을 먹고 방으로 돌아온 나는 기지생을 불렀다.
‘기지생, 퀘스트 완료.’
[퀘스트 ‘신뢰’ 완료!당신은 비록 미흡하지만 타인에게 신뢰를 보여주었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보상 : 가능성의 조각, 1회 질문권]
…미흡하다는 설명은 조금 그렇군.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
가능성의 조각은 이전과 같이 류이든이 겪었을 일을 보여주는 거겠고, 1회 질문권은 뭐지?
[당신의 질문에 1회 답변을 제공합니다. 다만, 답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 사용이 취소됩니다.]나는 한숨을 한번 내쉬고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가능성의 조각부터 확인해 봐야겠군. 그래야 어떤 질문을 할지 고를 때 더 많은 정보를 기반으로 선택할 수 있을 테니. …이번에는 채하민처럼 너무 부정적인 결말은 아니었으면 좋겠군.
‘…가능성의 조각 사용할게.’
* * *
나는 채하민의 가능성을 봤을 때 느꼈던, 내가 공중을 부양하는 것 같은 감각에 짧게 몸서리쳤다. 절대 적응 못 할 것 같다.
‘여긴… 우리 회사 회의실이군.’
“이든아… 진짜 마음 정한 거야?”
그러자 류이든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이 마치 3일 동안 물 없이 걷기만 한 사람처럼 지쳐있었다.
‘저 등신, 혹시나 했는데 정말 관두는 거였어.’
그런데 납득이 안 가는군. 이게 나로 인해 바뀔 수 있었던 상황이라고? 이미 마음먹은 걸, 고작 내가 이야기 들어줬다고? 그게 류이든에겐 그렇게나 중요한 지점이란 말인가?
“일단 우리가 초기 대응을 제대로 못 한 죄가 커서, 잡기도 뭣하네…….”
장해진 팀장은 아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초기 대응도 제대로 안 됐고.’
“애들한텐 다 이야기했어?”
그러자 류이든은 멈칫하더니 답한다.
“…이제 하려고요.”
‘…이야기도 안 했어.’
그러니까, 류이든은 애초에 같이 연습하는 이들에게, 자기 고민을, 털어놓지 못했군.
‘그런데 왜 나한텐?’
“그럼, 가보겠습니다.”
류이든이 자리에서 일어나 장해진에게 인사하는 순간 갑자기 눈앞이 일렁였다.
그리고 보이는 곳은 어떤 방 안. 아마 류이든의 방이겠지. 주변을 둘러보다 소파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류이든이 보인다.
‘…류이든이 맥주라고? 그 건강 덕후가?’
그리고 그 앞엔 치킨이 놓여있었다.
‘류이든이… 튀김……?’
납득하기 어렵지만, 자세히 보니 테이블 한쪽엔 담배까지 놓여있다.
맥주잔을 내려놓고 담배를 한 대 베어 무는 류이든은 실내라는 걸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불을 붙였다. 연기를 내뿜는 류이든은 TV를 멍하니 바라본다. 그곳엔 화려한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가수가 나오고 있었다.
류이든은 한숨처럼 다시 연기를 내뱉고 리모컨을 들어 TV를 꺼버린다.
‘잠깐. 손목에 저거… 자해 자국이잖아.’
자해의 대표적인 심리적 요인은 스스로에 대한 체벌.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고 그것이 너무나 후회될 때 그 후회심과 자책감을 해소하기 위해 자해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까, 류이든은, 서바이벌에 도망친 자기 자신이, 너무 밉고, 그런데도 다시 도전할 엄두는 안 나서, 자신을 징벌… 미친 새끼.
그리고 순간적으로 눈앞의 풍경이 깨진다.
* * *
환상과도 같은 체험에서 깨어난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마지막 부분에서 숨 쉬기가 어려웠으니까.
잠시 심호흡을 하며 호흡을 안정하게 만든 뒤, 나는 침대를 박차고 옆에 누워 태평하게 폰을 보고 있는 류이든을 때리기 시작했다.
“동화 형, 아니 동화! 왜! 왜! 잠깐만, 때리지, 야! 그만! 제발!”
비록 가능성에 불과할지라도 류이든이 보여준 지나친 멍청함에 분노한 나는 류이든이 부디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사랑의 매를 들 뿐이다.
한 2분간 계속해서 때린 끝에,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류이든에게 답했다.
“이든 형, 인간은 가끔 스스로 후회할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왜 또, 존대, 아니, 그리고 이렇게 때리고는 한다는 소리가, 무슨.”
“그리고 인간 중에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이상을 지닌 이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런 인간이 이상을 포기하는 기이한 선택을 하고는 평생을 그 이상만을 생각하며 후회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형은 그런 사람입니다.”
…이건 내 경험담이니까 사실이다.
내 말을 듣고 한동안 곰곰이 생각하며 자기의 어깨를 문지르던 류이든은 진지하게 답한다.
“…무슨 소리야?”
하, 멍청한.
“…다시 한번 더 가수 되는 거 포기한다고 하면 제 손으로 정말 죽여버릴 겁니다.”
나는 가능성의 조각을 본 여파로 탈력감에 빠져, 그 말만 툭 뱉고는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잠결에 류이든 쪽에서 나는 어떤 소리를 들은 것도 같지만, 깔끔하게 무시했다.
* * *
다음 날, 4차 경연의 팀 조합 설문이 끝났는지 우리는 모두 연습실에 모여 카메라에 둘러싸였다.
“자! 여러분! 설문이 끝났습니다. 누구랑 팀이 될지 궁금하시죠!”
장해진 팀장은 일이 많아 바쁜지 이번엔 감독이 카메라 뒤에서 진행하고 있다.
“네!”
어린애들 위주로 해맑게 답하는 속에서 옆에 앉은 채하민도 소리치고 있었다. 정신 연령은 비슷해 보이니 큰 문제는 아닐 것 같다.
“여러분들 중에 혹시 같은 팀 하고 싶은 연습생이 있는 분 계신가요?”
그러자 한 명씩 돌아가며 이름을 말하기 시작했는데…….
“동화 형이요!”
김현진.
“지동화 연습생이요!”
류이든.
“동화 형님과― 한 번 더 함께할 수― 있다면, 큰 영광일 것― 같습니다.”
석준.
“동화랑 저 한 번도 팀 못 해봤어요!”
채하민 외 다수가 내 이름을 호명해 댔다.
‘…왜?’
나 같은 성격이랑 같이 일하면 피곤하지 않나.
…잠깐, 위치상 내가 마지막인데. 이러면…….
“대부분의 사랑을 받은 지동화 연습생은 누구와 함께하고 싶으신가요?”
말하기 부담스럽군.
모두의 시선을 받고 있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기왕이면 모두와 한 팀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자 다들 탄식을 뱉더니 뭐라 한마디씩 던지기 시작한다.
“재미없어요!”
“동화야, 그냥 나라고 말해버려.”
“동화 형! 어떻게 나를 버릴 수가 있어!”
류이든, 당신은 형이라는 호칭 제발 가져다 버리고.
나는 그냥 씩 웃어주며 마음속으로 모두에게 가운뎃손가락을 하나씩 들어 올려줬다.
하여튼 그러다 공개된 팀원 목록, 나는 A조에 배정됐군. 그리고 한 팀원에 있는 놈은…….
“동화야! 나랑 드디어 같은 팀이야!”
저리 가, 토끼.
“동화 형, 저랑 다시 팀!”
너도 가, 낙제생.
“동화 형, 저 그리웠어요.”
…이현재, 너는 왜 내가 그리운지?
* * *
“다들 앉읍시다!”
낙제생의 주도로 진행되는 선곡 회의. 우리는 둥그런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자, 이번 경연이 선배님들 곡을 커버하는 거였잖아요?”
“응, 선배님들에 대한 존경의 의미도 있고, 좋지.”
“그런데 곡을 자유롭게 선정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
낙제생이면서 진행은 잘하는군.
“…혹시 또 제비뽑기?”
“역시 한국대생! 맞습니다. 누가 한번 뽑아볼까요?”
그리고 찾아온 정적. 나는 이럴 때 나서는 성격이 아니고, 이현재랑 채하민은 중요한 역할을 맡으려 하는 성격은 아니니…….
“…네가 뽑자, 현진.”
“…제가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맡아도 될까요?”
“다들 훌륭한 분들일 텐데 무얼 뽑든 괜찮지 않을까.”
“그럼 제가 한번 뽑아보겠습니다!”
김현진은 한껏 고민하더니 (확률적으로 고민하는 의미가 없다고 해주고 싶었지만 기어코 참아냈다.) 드디어 하나를 뽑아냈다.
“공개하겠습니다!”
그리고 펼쳐진 종이에는 ‘TOT―Twilight’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아니, 분명 예전에 이동석이 ‘과거를 풍미했던’ 선배의 곡을 커버한다며. 얘네는 지금 현세대를 풍미하고 있는 그룹 아닌가?
그보다… 이 노래 처음 보는데.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아이돌 문화를 공부하고 있는 내가 모를 노래면 최소한 히트한 곡은 아니다.
내가 잠시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채하민이 빠르게 반응했다.
“TOT 선배님들 데뷔곡이다!”
저런, 이제 기억나는군. 과한 컨셉 때문에 망한 곡이잖아. 분명히 컨셉이…….
“…상처 입은 야수.”
“오, 동화도 아는구나!”
상처 입은 야수라는 컨셉을 기반으로, 한번 받았던 상처로 인해 세상이 무서워 스스로를 어둠 속에 가둔다는 굉장히 서브컬처스러운 주제의 곡이다.
거기다가 무대 의상으로 찢어진 셔츠와 바지, 그리고 상처 분장을 매치했지.
다만 큰 문제는, 데뷔 초다 보니 컨셉의 짐승스러움과 달리 멤버들이 어리고 순하게 생겨서 몰입은커녕 장난스럽게 보일 지경이었다는 점.
‘망했군.’
서바이벌에서 탈락하기 전에 한 번은 채하민한테 도움이 될 무대를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이 곡이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일단 무대를 볼까요?”
* * *
“컨셉 그대로 가도 괜찮지 않을까요? 엄청 멋있잖아요!”
너는 괜히 낙제생이 아니구나, 김현진. 너의 그 날티 나지만 어린 티 나는 얼굴에 이 컨셉이 어울리기나 하겠냐.
“저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우등생 이현재는 어디 가고 웬 낙제생이.
나는 속에서 올라오는 한숨을 최대한 참고 채하민을 바라봤다.
“엄청 멋있긴 한데, 우리한테 어울릴지는 잘 모르겠어. 선배님들이니까 소화할 수 있는 컨셉 같기도 하고.”
하민, 그 선배들도 소화 못 했어.
지동화, 머리를 굴리자. 어린 이미지를 드러내면서도 약간은 우울한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컨셉… 그런 게 뭐가 있을까.
“그래도 상처 입은 야수! 엄청 멋있잖아요. 늑대인간 같고!”
…오, 늑대인간?
나는 넋 놓고 듣고 있다가 순간 정신 줄을 잡았다.
“…괜찮은데?”
“응? 뭐가요?”
“늑대인간.”
“네?”
“…늑대인간.”
“아… 예.”
…현진, 지금 싸우자는 거냐?
* * *
장장 20분에 걸친 나의 설명 끝에 아이들에게 컨셉을 확인받았다. 채하민과 아이들이 안무를 따는 동안 내일 아침까지 1차 편곡본을 들고 가기로 한 나는 작업실에 눌러앉았다.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짐승스러운 게 아니라 소년다움, 그리고 그런 소년이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받는 상처다. 그런 컨셉을 담아낼 수 있도록, 원곡에서 분노와 격렬한 이미지는 덜어내고 애처롭고 처연한 분위기를 부각해야 한다.
어떤 악기를 쓸까 고민돼서 모든 현악기 소리를 들어보며 하나하나 점수를 매기던 중, 누군가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대에 내 작업실에 노크하며 찾아오는 사람이면, 이현재겠군.
내가 문을 열자 역시 이현재가 커피를 두 개 들고는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왔다.
늘 그렇듯 잠시 침묵을 지킨 우리는, 또 늘 그렇듯 이현재가 먼저 입을 열며 대화를 시작했다.
“…저도 형이랑 데뷔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미안하지만 나는 이번에 탈락할 예정이라. 팬분들이 이제 슬슬 내 성격에 신물 나서 떨어지실 때가 됐거든.
“음, 나도 데뷔 못 할 수도 있지.”
그러자 이현재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묻는다.
“형은 분위기상 거의 데뷔 확정이던데요?”
…근거가 무엇이니, 진솔하게 말해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