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10)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10화(178/343)
“…쓰레기장이요?”
내 짤막한 대답이 터지자 순간 공연장에 적막이 감돌았다.
“음, 부연 설명이 필요해요! 동화가 미쳐서 쓰레기장을 돌아다닌 건 아니고요. 미술관에 갔는데 쓰레기장 같은 형태의 작품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류이든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은 사회자님에게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참고로 류이든이 올라오기 전에 이렇게 답하자고 정했다. 지루할 수도 있으니까 약간의 웃음 포인트로.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금의 부끄러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이다, 쓰레기장 보고 곡 쓴 건.
“아아, 그렇군요. 예술품을 보고 곡을 쓰신 거군요. 제가 백스테이지에서 곡 듣고 있다가 정말 깜짝 놀랐거든요, 곡이 너무 좋아서.”
얼굴에 금칠이 지나치십니다. 조금 당황스러울 지경이네요.
“감사합니다.”
담백하지만 분명 부끄러워하는 게 틀림없는 내 반응에 씨익 웃으신 사회자님은 능숙하게 말을 돌렸다.
“이번 타이틀을 작업할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한번 여쭤볼 수밖에 없습니다. 동화 씨는 어떤 생각으로 이번 곡을 작업하셨나요?”
“그 작품이, 쓰레기장에 추억의 물건을 매립해 둔 작품이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좋고 즐거웠던 기억이라도, 언젠가는 정리해야 할 수도 있다는 다짐을 곡으로 썼습니다.”
사회자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웃었다. ‘대학 시절 연애 생각이 나기는 하더라고요.’라고 답하는 걸 보면, 곡이 전하고자 했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신 것 같다.
“이번에 나온 정규 1집, ‘in Somnia’에 수록된 곡이 총 열두 곡인데, 그중에 여덟 곡이나 동화 씨가 작곡이랑 편곡에 참여했다고 하거든요. 인터넷에서 ‘블로센스 공식 노동자’라고 불리더라고요? 작업량이 얼마 정도 되시는지 너무 궁금했거든요. 여러분들도 궁금하시죠?”
관객석에서 ‘네!’라는 답이 터졌다. 그러자 멤버들은 모두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 속삭였다.
“이거, 말해도 되나?”
“일만 하는 애 이미지가 너무 강한데, 지금도.”
“…괜찮을 것 같기두 하구.”
지금 공연장에서 내 이미지 걱정을 왜 해. 애초에 일을 열심히 하는 게 나쁜 이미지인지도 잘 모르겠다.
“오오, 멤버분들이 심각하게 상의를……. 조금 심한가요, 혹시?”
“일단 동화가 자체적으로 노동법을 어긴 건 확실하거든요. 주에 40시간 근무.”
“동화 형이 동화 형을 고소해두 할 말 없어서…….”
내가 할 말이 많은데, 현재야. 스스로 고발하는 게 말이 되냐고.
“시원하게 최초공개 합시다. 하루 평균 몇 시간 작업하시나요?”
음, 평균 몇 시간 있는지는 들쭉날쭉해서 잘 모르겠는데.
“별다른 일정 없으면 보통 작업실에 있습니다.”
내가 짧게 답변하자 곧바로 멤버들의 증언이 쏟아져 나왔다.
“작업 시간 통계는 모르는데, 휴식 시간 통계는 알아요. 하루에 밥 먹는 시간 제외, 안 쉰다구 보시면 돼요.”
“저는 동화랑 룸메인데, 아침에 동화 얼굴 보기가 힘들어요. 맨날 작업실에 있어서. 놀아 달라고 말하기도 전에 정신 차려 보면 사라지고 그래요.”
“작업실에 따로 이불이랑 베개까지 다 마련돼 있는데, 쓰는 건 본 적도 없고요.”
“제―가 동화 형처―럼 일했으면 믹스테이프 두 장 냈을 겁―니다.”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하네. 하나같이 내가 잘못한 걸 성토하는 모양새라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팬분들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쏟아지는 작업 에피소드에 하나둘 경악하셨는지, 외마디 비명이 울리기도 했다. 그러다 한 팬분은 과하게 안타까우셨나 보다.
“잠 좀 자! 그러다 죽어!”
어디 위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신나게 말하고 있던 채하민이 화들짝 놀라서 사방팔방을 주시할 정도의 성량. 꽤 넓은 공연장인데도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잠시간의 정적 후에 쏟아지는 폭소와 환호. 팬분들도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
“이야, 이거, 동화 씨는 팬분들을 위해서라도 작업량을 줄여야 할 것 같아요.”
“그, 음, 죄송합니다.”
“동화 씨가 오늘 처음으로 당황하는 모습, 귀하네요. 다른 멤버분들은 동화 씨 좀 안 말리시나요?”
류이든과 채하민이 사회자님의 말씀에 펄쩍 뛰며 날뛰었다.
“저희가 매번 그러는데 말을 들어 먹지를 않아요. 하루는 저란 하민이가 동화 푹 쉬는 날이라고 정해 두고 문 앞에서 못 나가게 감시했는데,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탈출했거든요.”
아아, 그때, 채하민은 버섯 요리로, 류이든은 장해진 팀장님께 부탁드려서 시선 돌린 다음에 작업하러 갔던 날이구나.
“오, 또 이거 안 들어볼 수가 없겠는데요.”
그나저나 타이틀 곡 이야기가 어째서 내 작업 청문회로 돌아간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 * *
이미지라는 건 다분히 중요하다. 인간의 뇌는 어떤 이미지가 각인되고 나면 사라지지 않는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가령 ‘류이든―강아지’라는 연결망은 만들어지고 나면 잘 사라지지 않는다.
지동화의 멘탈 수업에서 형성된 미친놈 같은 이미지와 오랜 시간이 누적되며 만들어진, 일밖에 모르는 인간이라는 이미지는 계속 들러붙어서 진창처럼 따라다니겠지.
오명은 아니라지만, 사실과 다른 이미지라 안타까울 뿐이다. 일밖에 모르지 않고, 멤버들 눈에 일로 보이는 게 내게는 휴식에 불과한 건데.
지동화의 멘탈 수업도 마찬가지다. 조회수가 아무리 봐도 우리 팬분들로만은 나올 수 없는 지경이라, 이현재 말대로 머글(연예인 덕질을 하지 않는 사람을 총칭하는 말)분들도 보시는 게 분명하다.
그분들에게 나는, 미친 교수 같은 이미지로 기억되겠지.
“잘나가던 대학 교수인 내가 이 세계에선 초과 근로 노동자? 푸흡, 역시 인터넷에는 별 희한한 말이 많네요.”
이게 다 저 인간과 나머지 제작진놈들 때문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친해져 버리고 만 PD님은 어떻게든 한 대 내리치고 싶다. 계약 끝날 때 미친 척 한번 할까.
“어쨌든 우리 프로그램이 성공한 건 다 동화 씨 덕분! 요즘 방송국에서 엄청 주시하고 있는 블루칩! 진짜 어느 커뮤니티를 가도 동화 씨 얘기가 꼭 하나씩 있어요. 천재는 천재긴 한가 봐요!”
“…계약 연장은 없습니다.”
“서운해요.”
“저는 해방될 날이 기대돼요.”
2화가 업로드되고 나서 조회수가 잘 나와서 그런지 요즘 추가 계약 어필을 하고 계시지만, 어림도 없다. 어딜.
“괜찮아요. 이대로만 가면 소속사 직원분이랑 잘 협의해서 이야기 끝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어른의 세상이 더럽다는 걸 보여 드리겠습니다!”
제가 실제 나이는 선생님보다 몇 살 많답니다.
“어쨌든, 오늘은 지난주에 말씀드렸던 대로, 시크릿 게스트가 있어요.”
“네, 들었습니다. 저희 팀 리더 나오면 탈주할 예정입니다.”
그 인간이랑 얼굴 마주하고 멘탈 수업을 촬영하면 백기 세 번으로 견딜 자신이 없다.
“다행이네요, 촬영은 진행할 수 있어서. 동료 교수랑 함께하는 티타임 컨셉이에요.”
아주 우아하고 고상한 척은 다 한다. 본질은 헛소리가 난무하는 생존 활극인데.
“…시작입니까?”
“네. 백기 챙기셨죠?”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카메라 촬영이 시작됐다는 신호를 보고 미소를 입에 올렸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오늘도 공부하기 좋은 하루입니다.”
이 망할 직업.
* * *
운치 있는 숲이 병풍처럼 널찍이 퍼져 있는 카페. 일 때문에 온 것만 아니라면 더 좋았을 곳에서 나는 녹차와 민트를 섞은 기묘한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대체 무슨 맛이야, 이건. 먹다 보니 먹을 만했지만, 객관적으로 맛있는 음료라고는 말 못 하겠다.
하지만 ‘이 한 잔이 영혼을 치료해 주네요.’라는 표정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미 샤르데나식이라 시킨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교수님, 오늘은 어쩐 일로 여기 오셨나요?”
“제 동료 교수분과 미팅을 할 예정입니다.”
“전공은?”
어떻게 알아.
“강원도 도민분들의 소비 심리를 분석하는 걸 전공하고 있는 분입니다. 최근엔 스놉 효과가 발생하는지 아닌지를 연구하더라고요.”
옆에서 익숙한 듯 검색하던 작가분이 실제로 있는 효과라는 걸 확인하고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평소에 존재하지도 않는 걸로 중얼거리던 게 익숙해지셨길래 일부러 변화구를 던졌다. 커피 한 잔, 이득.
“개인적으로 존경하시는 형님분이신가요?”
음?
“…네.”
내 눈이 날카로워지고, PD님이 은은한 미소를 지을 때, 나는 백기를 꺼내려다가 말았다. 저 인간, 오늘은 어떻게 나를 엿먹이려고 활개를 치는지 궁금해. 굳이 ‘존경하는 형’이라고 말했다는 건, 절대 내가 존경할 리 없는 사람이 오는 걸까.
잠깐. 굳이, 형님이라고. 내 뇌가 미친 듯이 케톤과 포도당을 연료로 일하기 시작한다. 모든 가능성 중에서, 굳이 형님이라는 말로 함정을 깔아놔야만 하는 존재를 물색한다.
수많은 가능성이 사라지고 하나의 이름만이 머릿속에 남았을 때, 나는 곧바로 백기를 들어 올렸다.
아니, 올리려 했다.
“어, 저기 오시네요.”
나처럼 슈트를 빼입은 몸. 단정하게 정리한 머리와 눈이 나보다 좋은 주제에 패션용으로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는 인상 좋은 얼굴. 그리고 안경 너머로 순수하게 나에 대한 호의로 가득한 맑은 눈까지. 모든 것이 지나치게 익숙하고 반가워서 서글펐다.
“안녕, 동생?”
…목화야, 여전히 잘생겼네.
늦었지만 나는 제대로 백기를 들어 올렸다. 한 손으로 눈가를 가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하루, 내가 목화 동생이라고……. 세상에, 정말 싫은걸.
“뭐야, 형, 예상했을 줄 알았는데.”
“너 나오기 3초 전에 깨달았어.”
PD님은 신나서 죽겠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동화 씨! 제가 질문하자마자 눈치챌 줄 알았어요.”
“…PD님.”
“하, 이거 기획할 때 진짜, 죽는 줄, 알, 크흡, 흐흡.”
반쯤 쓰러지려는 PD님을 무시하고 목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제 전화할 때는 오늘 스케쥴 없다더니.”
“그래도 요즘 잘나가는 그룹인데 없을 리가.”
“의아하긴 했는데, 네가 거짓말할 수도 있을 거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없었어.”
“아, 내 전공은 그래서 강원도 소비 심리학이야?”
“…응.”
부끄러워라.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도저히 목화의 얼굴을 똑바로 볼 자신이 없었으니까.
“아, 여기 꼭 게스트로 오고 싶었어. 형의 가장 수치스러운 모습을 일열 직관하고 싶었거든. 벌써 설렌다.”
“저 인간들, 너도 수치스럽게 할걸.”
“형, 나 몰라? 나한텐 수치심 같은 거 없는 거.”
“맞아요! 그리고 애초에 목화 씨는 당황스럽게 할 예정이 없어요! 오늘 컨셉은 존경스러운 형이 동생이 되면 어떨까, 라고요!”
닥쳐 주세요, PD님. 계약 끝날 때 미친 척할 확률이 실시간으로 상승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십니까.
목화는 자연스레 테이블에 앉아서 내가 마시고 있던 음료를 보며 미소 지었다.
“이게 샤르데나식이야?”
“백기 타임이야, 지금.”
“아, 미안. 너무 좋다, 형을 놀려도 합법인 프로그램.”
아, 이, 망할 직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