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11)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11화(179/343)
“그럼 다시 시작할게요.”
“네!”
목화가 헤실거리고 있어서 대놓고 불평도 못 하겠다.
“시작!”
PD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미리 시켜둔 녹차 민트 티를 건넸다. 먹다 보니 은근히 먹을 만했으니까. 너도 당해 보라는 심보는 절대 아니다.
“동생.”
세상에.
“네, 교수님.”
“에이, 사석인데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요. 우리 동생이 애교가 좀 넘치잖아.”
우리는 이 방송의 룰을 자주 까먹고는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평정심을 유지한다는 게 모토다. 내가 심박수 체크에 단 한 번도 걸린 적이 없어서 제작진분들도 잊은 것 같지만, 오늘은 조금 위태롭다. 형이라는 호칭에 집착하는 건 아니지만, 내 뇌가 격렬하게 거부하고 있다.
“꼰대십니까.”
이를 악물고 말하니 목화가 웃음을 참기 위해서 잠시 심호흡을 하며 하늘에 구름이 흘러가는 걸 쳐다보고 있었다.
“날이, 맑네.”
“…네.”
찾아온 고요함. 새소리까지 겹쳐 드니 이게 다 뭐 하는 짓인가 싶다.
“기다리는 중이야.”
“뭘요.”
목화는 하늘을 올려다보던 시선을 이쪽으로 떨어뜨리며 서글프게 답했다.
“형이라고 부르기를…….”
아련하게 말하지 마, 미친 동생아. 누가 보면 친형제 아닌 줄 알겠어. 아무래도 PD놈의 강력한 권고 사항이 있었나 보다. 반드시 형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명령이.
심호흡. 계약을 파기할 수도 없는 노릇. 목화를 류이든처럼 대우할 수도 없는 법. 상황은 피하기만 한다고 개선되지 않는다는 생각. 나는 숨을 들이켜며 입을 벌렸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 머릿속에서 하나의 이야기가 흘러갔다.
먼 옛날, 그리스에선 아폴론에게 영원한 삶을 소원했지만, 영원한 젊음을 빌지 않았던 한 무녀가 존재했다. 그녀는 영생을 살면서도 늙어가기만 했다고 한다.
어느 날 한 소년이 그녀에게 과거 아폴론이 그녀에게 물었던 것처럼 ‘이젠 소원이 뭐야!’라고 물어보자 그녀는 짧게 답했다고 한다. ‘죽고 싶어.’
[그건 저한테나 어울리는 이야기인데요!]결론은 나도 같아. 그리고 넌, 내가 살고 싶게 만들 예정이니까 다른 결론일 거고.
[반했습니다!]닥쳐.
어쨌든 나는 입을 열고 단 한 음절을 힘겹게 내뱉었다.
“…형.”
“크흡.”
목화는 곧바로 웃음이 터졌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품 안에서 백기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한참이나 미칠 듯이 폭소하며 즐거움과 광기 사이 어디쯤에서 온몸을 비틀고 있었다. 저놈도 심박수 장치를 달고 있을 테니, 어떻게든 복수하고 말 테다.
“소원 성취했다.”
“…고작 이게 소원이면 어떡해, 목화.”
“고작이면, 계속 들어준다든가?”
“세상에.”
목화는 백기를 내리고 넥타이를 단정하게 조정했다.
“시작할게요.”
“네, 역시 이런 편한 분위기가 좋죠.”
“저만 불편한…….”
“시작!”
나는 습관적인 미소를 장착했다.
“어쨌든 동생.”
“네, 형.”
“흐읍.”
다시 하늘을 바라보는 미친 동생 놈. 마라토너가 경기 끝나고 들이마시는 숨도 그것보다는 얕겠다, 망할 동생아. 돌아가는 길에 뭐라도 한마디 하지 않으면 억울해서 오늘 두 발 뻗고 잠들지 못할 것만 같다.
“내가 어제 심오한 토론 주제를 봤어, 동생.”
또 깻잎 같은 개소리를 할 셈이냐.
“뭔지 궁금합니다. 우리 형님은 사려가 깊고 현명해서, 제가 어떤 답을 내더라도 그것보다 나은 해결책을 찾아주실 테니까요.”
이곳은 지동화의 멘탈 수업. 어설픈 자는 살아남지 못한다. 나와 제작진이 서로의 목에 얼마나 많이 그리고 자주 칼날을 겨눠왔고, 또 얼마나 많은 장기를 뒀는지, 우리 목화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상황이든, 말이 나왔다면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하는 이곳, 만일 무언가 바꾸고 싶다면 앞에 나왔던 말들과 개연성 있게 이어져야만 하는 이곳.
“어떤 토론이든, 가장 합리적인 답을, 저보다 훨씬 훌륭한 논리로 내주시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형.”
그제야 목화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고 제작진과 나를 한 번 번갈아 바라보다가, 깨달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프로그램이구나.’라는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이게…, 그, 트롤리 딜레마라고 해서…….”
저런. 어쩌나. 제작진놈들이 너를 엿먹일 생각 없다는 건 거짓말 같아, 목화야.
“처음 듣습니다.”
“이게 기찻길에 한 사람이랑 다섯 사람이 각 선로에 있는데…….”
사실 안다. 너무 잘 알지. 기차가 가는 길을 바꿀 수 있고, 바꾼다면 한 사람만이 죽을 때, 선로를 바꿀 것인가를 묻는 사고 실험이다. 어느 쪽을 말하든 조건을 추가하거나 변동시키면서 답하는 사람의 머리를 흔들 수 있는 건 덤이다.
아버지랑 세 시간 넘게 이 주제로 대화한 적이 있단다, 목화야. 네가 피아노 치는 어머니 옆에서 낮잠 잘 때, 나는 아버지랑 토론하는 게 일상이었거든.
아마 그때 내가 가장 먼저 했던 말이 ‘둘 중 한 선로는 원래 기차가 가야 할 길이었을 텐데 거기 있는 사람들은 머리에 문제가 있나 봐.’였던 것 같은데. 지금과는 달리 거침이 없었던 유년기다.
설명을 마친 목화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잊지 않고 모든 조건을 외운 자신을 칭찬해 달라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이 잔인한 프로그램에서 그런 온정주의는 옳지 않다. 한 아이가 자립하기를 바란다면, 칭찬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아, 저는 오늘 처음 듣습니다.”
“어, 정말?”
“네, 형이 먼저 말해 줘요. 듣고 싶어요.”
“…나, 는, 음, 돌릴 것 같은데.”
칸트가 싫어하겠네.
“만약에 그 한 사람이 미래를 바꿀 사람이었고, 그걸 알고 있었다면요?”
아버지가 나한테 했던 거 그대로 당해 봐라, 이 망할 동생아.
* * *
약 삼십 분 가까이 이어진 문답. 나는 계속해서 무수히 많은 조건을 달고, 상황을 바꾸고, 목화의 대답을 비틀었다. 어차피 알아서 편집해 주시겠지. 이 방송, 편집자분들의 실력이 예사롭지 않으니까.
“그러면.”
“잠깐만.”
목화는 백기를 들어 올렸다.
“형…….”
서럽게 쳐다보는 눈빛, 이 프로그램에 처음 나왔을 때의 설레는 마음은 사라져 버리고, 자신의 도덕성이 단두대 위에서 몇 번이고 내리쳐지는 과정을 거쳐 기진맥진한 상황이다. 나는 웃으며 목화의 어깨를 토닥여 줬다.
“저 사람들이 나쁜 거야, 목화.”
“…그런 거야?”
“애초에 이 주제 던지라고 너한테 시킨 것 자체가, 이걸 노린 기획일걸.”
PD는 ‘들켰다!’라는 표정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네가 백기 들고 나한테 뭐라 하는 것까지가 기획이었을 거야. 저 망할 제작진분들.”
“동화 씨, 존칭이랑 멸칭이랑 섞지 마요!”
“형제끼리 싸우는 구도를 기대하시는 거야.”
목화의 눈에 치가 떨리는 배신감이 한가득 들어섰다. 제작진놈들을 주의하라는 내 조언이 생각났는지 깨달았다는 눈으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역시. 어쩐지 형이 너무 매정하다 싶었어.”
아니, 그건 정말 내가 매정했던 게 맞아. 하지만 말로 꺼내지는 않을 거란다.
“어우, 동화 씨, 이거 세뇌 아닌가요!”
어쩌라고요. 원래 외부의 적을 만들어서 내부를 단결케 하는 건 전통적인 방식입니다. 내가 내 동생이랑 단결하겠다는데 뭐가 그렇게 억울하십니까. 이제 백기가 내려가면 함께 투쟁할 거다, 망할 PD.
“그런데, 형.”
나와 제작진 사이의 일상적인 눈싸움을 옆에서 보고 있던 목화는 생글생글 웃으며 중얼거렸다.
“왜, 목화?”
게스트를 내 편으로 끌어들였으니, 오늘 촬영은 내 승리라고 봐도 무방하다.
“나도 돈 받은 입장이거든.”
목화의 눈은 기묘한 빛을 띠고 있었다.
“쉽게 편 먹을 리가 없잖아, 형.”
아까 전, 서글펐던 표정, 연기였네, 영악한 놈.
“아니지, 동생이라고 불러야겠다!”
내가 미쳤었다. 나보다 눈치 빠르고 머리도 나쁘지 않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착한 동생이라는 틀에 갇혀서 인지하지 못했다. 살아남지 못하는 건 나였군.
“이 프로그램 머리 쓰는 거였구나. 형, 예전에 장기 뒀던 거 생각난다.”
“네가 계속 이겼지.”
“형이 항상 일부러 져 줘서 말이야.”
내가 이길 게 뻔한 게임을 왜 이겨야 하니, 목화야. 차라리 아슬아슬하게 지는 수를 찾는 게 더 재밌었거든.
“얼마나 슬펐는데, 한 번도 실력으로는 이겨 본 적이 없고…….”
목화는 서글프다는 듯이 말하다가 곧바로 웃었다.
“오늘 이겨 보면 좋겠다.”
* * *
저 PD놈, 천재가 맞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여태까지는 주어지는 상황이 나를 엿먹이기 위한 일방적인 도구였다면, 이번 촬영에서는 일종의 기회였다. 자신이 원하는 상황으로 끌어가기 위해서 개연성 있는 포석을 계속해서 깔아가야만 한다.
왜 웃자고 찍는 촬영에서 몇 수 앞을 내다보는 헛짓거리를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최선을 다하자.
“어, 이거 뭐야.”
바닥에 떨어져 있는 블로센스와 호핀의 그룹 사진. 먼저 발견한 놈이 써먹으라고 배치해 둔 거다. 목화는 웃으면서 한마디 던진다.
“내 건 아닌데.”
설정상 여기에는 제작진의 발걸음이 닿지 않은 곳. 내가 남돌 덕질을 한다는 설정이 생겨나려는 순간이다. 부정하려면 ‘어째서 이곳에 아이돌 사진이 있는지’를 설명해야 하므로 포기.
“제 겁니다, 형.”
“아이돌 덕질하는 취미가 있는 줄은 몰랐네.”
“네, 그중에서도 호핀 리더 디키가 최애입니다.”
목화의 눈에서 날카로운 빛이 맴돌았다. 평정심을 잃게 하는 게 중요하다. 옛날부터 목화는 자기 형 최애가 자신인 줄 잘 알고 있는 인간이다.
“…이 친구는 어때.”
목화가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음, 귀엽네.
“인상 좋아 보이는데.”
자기 것은 아니고, 아이돌도 잘 모른다는 설정을 스스로 만드는 실책. 내가 뭐라 지껄이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자충수를 이렇게 심각하게 두다니, 실력이 어릴 적 그대로네, 목화.
“제가 알기로는, 실력은 좋은데 인성이 약간 별로라고 합니다. 하나 있는 형 가슴에 비수 꽂기를 밥 먹듯이 해서.”
내 능글맞은 미소, 얇게 뜬 눈 사이로 이를 짓씹는 목화가 보였다.
“이 친구가 잘생겼네.”
이번엔 내 사진.
“내가 강원도 소비 심리학 전공하기 전에 관상학 전공이었거든.”
미친, 전공을 무슨. 관상으로 아이돌 정보를 모른다는 한계를 타파하려는 심보다. 어떤 비난이든 달게 받아줄게.
“열심히 일할 관상이야. 동생한테 엄청 다정할 것 같고, 애정도 많이 줄 것 같고, 실수로라도 동생한테 험하게 말하면 그날 밤, 밤새 뒤척일 것 같아.”
그거, 어떻게 알아, 망할. 너, 자고 있었잖아.
“닭볶음탕 잘 만들 것 같고, 자기는 쫄쫄 굶으면서 동생 과자는 사줄 것 같고, 동생한테 많이 사랑받을 관상이네.”
나는 백기를 들어 올렸다. 너무 불리하다. 내 멘탈을 공격할 방법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아, 쉽다, 쉬워. PD님! 심박수 어때요?”
“지금은 동화 씨, 정상 범위예요.”
“와아, 진짜 멘탈 관리는 대박이다, 형. 여러분, 이 형이 애정 표현에 엄청 약해요. 옛날부터 그랬어.”
나는 스쳐 지나가는 목화의 말을 모두 무시하고 심호흡에 집중했다. 차라리 장기를 두는 편이 낫겠어.
“목화 씨는 심박수 아까 전에 넘어갔어요!”
진한아, 대체 목화한테 어떤 취급을 받길래 비교당하자마자 애가 분노해서 평정심을 잃니. 리더로서 그래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어.
“그럴 줄 알았어요. 어차피 집 돌아가서 형이 밤새 뒤척일 거니까, 벌칙 달게 받겠습니다.”
나는 해맑게 웃고 있는 목화를 보고 다짐했다.
절대, 안 넘어가, 심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