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12)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12화(180/343)
장기의 묘미는 단 하나 있을 완벽한 수를 찾아 나가는 과정에 있다. 목화와 나는 서로를 불타는 눈빛으로 노려봤다. 그러면서도 둘 다 입가에 미소를 빼먹지는 않았다.
이 공간에 있는 요소로는 모두 논쟁을 마쳤고, 재미난 수들이 난무했다. 언제 이렇게 컸는지, 새삼 감탄스러울 뿐이다.
그리고 아마도 피날레. 갑자기 카페의 문이 열리며 웬 인파가 쳐들어왔다.
“…세상에.”
목화가 순간 침착함을 잃고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런, 아직 덜 컸다. 고작 카페에서 촬영하다가 웬 좀비 떼가 들어올 수도 있지.
서버분이 한 좀비에게 다가가 주문을 받을 때, 좀비가 팔을 물어 버리자 익숙하다는 듯이 머리를 몇 번 쓰다듬으시더니 주머니에서 주사기를 꺼내 목에 꽂았다.
“으어?”
목화의 멍청한 목소리에 나는 어깨를 토닥여줬다. 이건 함께 헤쳐 나가라고 제작진이 주신 선물이다.
“형.”
“어? 왜, 왜, 형?”
아니지, 내가 네 동생이잖아. 개연성 챙겨. 이 프로그램의 규칙이라고.
“요즘 참 기승입니다, 그렇죠?”
“…아, 그러게. 뉴스에 말 많더라. 좀비 바이러스.”
“보건부에서 위드 좀비 바이러스 시행한다던데, 형은 치료제 챙겨 다니십니까?”
“요즘 그거 없이 어떻게 살아.”
“좀비분들이 동아리 회식 나온 것 같은데, 이젠 익숙한 풍경이네요. 차 한 잔 더 마실까요?”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신음들. 끼익 소리가 날 듯이 움직이는 배우분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편안하게 차를 마시는 우리. 정말, 봄이었다.
* * *
“머리 아파, 형.”
“나도.”
점점 갈수록 돈이 어디서 생기는 건지 연기자분들 숫자가 많아져서, 촬영할 때마다 힘들다.
PD놈도 생각하던 걸 실현한다는 게 즐거워 죽겠는지 날이 갈수록 안색이 밝아지는데, 그에 비례해서 내 가슴 속 깊게 응어리진 복수심도 날카로워졌다. 소인배의 복수는 십 년이 지나면 늦는 법이라 어떻게든 빨리 복수하고 말 예정이다.
“이 프로, 이상하다. 집에서 편집본 보면서도, 이게 대본일까 아닐까 의심했는데…….”
“저 PD가 이상한 거야.”
“아니, 형도 이상해. 대본 없이 이걸, 아무렇지도 않게……. 음, 이건 나만 알고 있어야지.”
저런, 적응은 모든 생물의 기본 소양인데 그걸 내 탓을 하면 안 돼, 목화. 물론 1화 때부터 적응 완료한 건 사실이긴 해도, 그만큼이나 환경이 급변했거든.
잠시 촬영이 쉬는 시간, 목화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고생 많았어.”
“오늘 촬영 끝이야?”
“너, 벌칙 해야지.”
“…아, 맞다. 벌칙은 뭔데?”
나는 잠깐 생각하고는 폭소했다. 평소와는 달리 크게 웃는 나를 목화는 의아하게 보다가 핸드폰을 꺼내 들어 촬영했다. 일단 웃는 게 급하니까 잠시 무시.
“오랜만이네, 네 재롱 보는 건.”
“…재롱?”
“응. 보면, 애교 부리기 같은 것들이 목록에 있더라.”
“어? 벌칙이라길래 심각한 건 줄 알았는데, 별거 아니네?”
“내 기준으로 짜놓은 거라서.”
예전에 벌칙 내용을 하나 살펴본 적 있는데, 정말 하고 싶지 않았거든.
“여러분, 기다리셨죠! 죄송해요. 저희도 벌칙이 처음이라 어디 있는지 찾아 헤매서…….”
PD님이 달려오면서 촬영 수신호를 알렸다. 뒤에 오시는 분들은 로또 추첨기 같은 걸 끌차에 실어 밀면서 따라오고 계셨다.
“진짜, 형은 미친 사람이야. 어떻게 이런 걸 하면서 한 번도…….”
“촬영 중인데, 목화.”
“이거 X튜브니까 이 정도는 괜찮지 않아?”
“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나 싶은데, 일단은 넘어가자.
“오늘 벌칙 받으실 분은 총 두 분입니다.”
뭔. 헛소리하지 마세요, PD님. 제가 제 몸 상태 하나 모를 것 같습니까. 후반부에 한 번도 심장이 요동친 적이 없는데.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짜증이 목 끝까지 올라오는 기분이다.
“목화 씨는 동화 씨가 비난 1스택 쌓자마자 난장 나셨고요”
헤실헤실. 류이든보다 짜증나, 저 인간. 내 표정이 설레 죽겠다는 듯이 실눈을 가늘게 뜨고 있는 PD놈은 온몸을 전율에 떨면서 소리쳤다.
“동화 씨는 목화 씨한테 형이라 부르는 순간 난장 나셨답니다!”
지금 내 표정이 어떨지 상상조차 안 된다. 평소에 안 쓰던 얼굴 근육까지 당기는 느낌이다.
“아, 무승부였네.”
목화놈.
절대 심박수가 높아지지 않게 만들겠다는 다짐은, 진즉에 틀려 처먹은 거였군.
“자, 그럼 우리 멘탈 수업 역사상 처음으로! 벌칙 뽑기 시간이 있겠습니다.”
“하하, 기대된다.”
다 나가 주십시오. 세상에 홀로 있고 싶은 기분입니다.
그런 내 바람과는 달리 세상은 움직인다. 목화와 PD님이 짝짜꿍을 맞추더니 곧바로 로또 기계의 버튼을 눌렀다.
“형, 형! 와서 이거 올려! 공 나온대!”
기뻐하지 마, 동생아. 제발, 부디, 부탁할게. 형은 지금 죽고 싶거든. 하지만 오랜 습관은 버릴 수 없어서, 동생의 부탁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나는 좀비 같은 발걸음을 옮겼다. 위드 좀비 바이러스를 실천 중이다.
플라스틱 뚜껑을 들어 올리자 공이 하나 미끄럼틀을 타고 스르륵 내려왔다. 단두대의 칼날이 내리치는 걸 기다리는 프랑스 귀족이 된 것만 같다. 스릴이 번지점프보다 심한걸.
“3번! 대망의 첫 벌칙은!”
목화의 선언.
“노년 체험입니다!”
PD님의 답변까지. 뭔지 모르겠지만, 하고 싶지가 않다.
* * *
목화와 함께 얼굴의 분장을 지워내고 있을 때, 문득 머릿속에 피어나는 회의감.
“…이거 느낌 묘하다.”
“그러게.”
노인정 체험 같은 거 해 보고 싶지는 않았는데.
“김춘자 할머니… 친절하셨어. 오늘 처음 온 나한테도…….”
연기자야, 정신 차려, 목화. 어떻게 편집이 될지 궁금해 죽겠네.
뚝뚝, 수건으로 뺨에 흐르는 물기를 닦아냈다. 어떻게든 되겠지, 망할 프로그램. 망해 버려라.
현실을 받아들이고 제대로 수행하려 노력하고는 있지만, 부디 망하기를. 회사를 잘 다니고 있으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회사가 망하기를 바라는 사회인의 자세를 습득했다.
“형, 맞다, 그거 들었어?”
“뭐.”
“서바이벌 오디션 한다더라, 새로.”
“또 염병이구나.”
그 망할 놈의 서바이벌. 무슨 연례행사처럼 돌아오는데, 그 본질은 별로 다르지 않아서 제목만 바뀌었을 뿐이라는 인상이다.
“형, 형 출신이잖아.”
“고향을 혐오하는 거, 의외로 흔한 현상이야.”
당시에 내가 살아남은 입장이기는 해도, 떨어지는 이들의 슬픔을 너무 가까이서 봐 버렸다.
물론 데뷔의 기회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이고, 그걸 함께 응원하는 문화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편집하는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시청률에 미친 인간들이 괴랄한 짓거리를 벌이는 꼴이.
“어쨌든, 진한이 형이 말하는데, 형을 섭외하려 한다는 소문이 있다더라.”
“안 나갈 건데.”
프로그램 하나 잘못 골라서 내가 무슨 고생을 하고 있는데, 나갈까 보냐.
“그리고, 아직 3년 차인 날 왜 섭외해.”
“그건 이상하긴 하다. 형이 실력 하나는 확실해서 그런가.”
곡 만드는 기계 정도로 섭외할 속셈인가. 정말 싫은걸.
“근데 하면 좋잖아. 이슈도 엄청 될 거고.”
“관심은 원래 양면적이잖아.”
연예인이 된 이상 좋은 관심만을 골라 받기는 힘들다. 서바이벌에서 코치진 같은 걸로 섭외되면 실력이 뭐니 염병이니 첨병이니 난리를 칠 것도 생각해 보면 별로다. 욕먹는 거야 상관없어도, 불필요한 가십거리를 이쪽에서 나서서 제공할 일이 있을까 봐.
“그거야 그렇지. 근데, 형이나 나나 그런 거 신경 안 쓰잖아.”
목화는 수건으로 얼굴을 마저 닦아내고 개운해졌는지 깊게 숨을 내쉬었다.
“이번 곡도 잘 써서 그런지 다 입 다물었기도 하고.”
그건 현재가 말을 안 해 줘서 잘 모르겠다. 아직 집계 기간인가 보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형이 곡 썼다고 밝혔을 때부터. 실력이 좋은 건 사실이라 깔 수 없을 거야, 그렇지?”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목화가 조금 변한 것 같다. 무언가 말할 수 없는 회한 같은 게 느껴지는데, 이게 빈 둥지 증후군일까.
“그럼, 이제 자세히 말해 봐. 내가 얼굴 보고 물으려고 벼르고 있었거든.”
저런.
“…곡 내가 썼다고 말 안 한 거?”
곧바로 당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당연한 소리를 말하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라 웃음이 샐 뿐이었다. 뒤끝이 조금 기네, 동생.
“아니, 어떻게 몇 달을 입을 꾹 닫고 있고, 진한이 형은 그걸 알고 있냐. 진짜 서운했다고.”
“진한이가 혼자 알아낸 거야, 그거.”
“…형이 말해 준 게 아닌 건 확실한 거지?”
“응.”
“분하네. 그 인간보다 늦게 알아차리고…….”
그러고 목화는 수건을 정리하면서 ‘아, 돌아가기만 해 봐…….’라며 짜증 섞인 투로 중얼거렸다.
“그 인간이랑 너무 친하게 지내지 말고, 목화야.”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다. 들어보니 호핀의 개노답 삼형제라는 이름으로 현진, 진한, 그리고 이 둘과 질적으로 다른 우수한 인성의 소유자인 목화가 묶여 있더라고.
웃기지도 않는다. 얌전한 동생이 어딜 가서 ‘노답’이라고 불릴 만한 일을 할 리가. 보지 않아도 진한과 현진, 이 두 놈이 문제라는 건 추측할 수 있다. 폭력적이지도 않고, 예의 바르고, 상의 없이 일을 일으켜서 트러블 만들 애도 아닌걸, 우리 목화는.
“이미 돌이키기는 늦었나 봐, 형. 그 인간이 숨기던 비밀을 너무 많이 알아버렸어.”
그러면 큰일이네, 아직 진한을 묻을 수 있을 정도로 내가 크진 못했는데. 화양 씨 손자라 부탁드릴 수도 없고.
“어쨌든, 오늘 스케쥴 끝나고 뭐 없으면 밥 먹자. 내가 살게.”
“효도?”
“응.”
“좋지.”
늙어도 부양해 줄 자식 같은 동생은 하나 있어서 다행이다.
* * *
목화의 말을 듣던 진한은 한껏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억울하네. 왜 선배는 너를 천사 보듯 하시는 거야! 너한테 매일 맞고 사는 건 난데!”
“우리 형,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데 열려 있긴 해도, 버리기 힘든 상식 같은 건 있거든.”
진한은 당당한 목화를 보자 머리라도 한 대 때리고 싶었지만, 질 게 뻔한 싸움에 뛰어들 만큼 멍청하지를 못해서 그저 조용히 물을 뿐이었다.
“그게, 네가 그럴 리 없다는 생각? 그게 상식이라고?”
“응. 내가 누구 죽였다고 말해도, 화 하나도 안 내고, 이유가 뭔지부터 물어볼 형이라.”
“나는, 그냥 선배한테 정보 전달 좀 해 주려고 했던 건데.”
“…근데, 진짜야? HBS가 대체 왜 니체한테 그래.”
“음, 만약에 알려면 더 깊은 비밀까지 알아야 하는데, 감당 가능?”
“아니, 말하지 마. 지금도 귀찮아 죽겠어.”
니체랑 전통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은 HBS가 신규 런칭하는 보이그룹 서바이벌에 코치 비슷한 자리에다 지동화를 캐스팅하려 한다는 소문.
널리 퍼지지는 않았지만, 정보망 하나는 확실한 진한이 말한 거니 믿을 만은 하다.
“우리 형, 알아서 잘할 거니까.”
목화는 W앱이 예정된 방에 앉아 하품을 길게 늘어뜨렸다. 이건 무관심이 아니라, 믿음을 기반으로 한 확신이었다. 자신의 형은 분명히 손익 계산을 제대로 해 보고 출연을 결정할 것이라는 확신.
“멘탈 수업, 진짜 멘탈 단련은 되더라. 나 오늘 방송하다가 정신 확 차렸거든. 방송 어떻게 하는 건지 깨달았어.”
“그거, 진짜 순전히 애드립이었어?”
“비밀인데.”
또, 저만 아는 형의 모습이랍시며 입을 함구하고 있다. 진한은 목화의 활기찬 표정을 보며 ‘순전히 애드립’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동화 선배도…….”
제정신은 아니야. 끝까지 말을 뱉는다면 목화에게 다시 멱살 잡힐 각오를 해야 할 테니까, 그는 거기까지만 말하고 입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