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14)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14화(182/343)
“정말로 순수 본인 창작물이 맞나요?”
“…….”
“음, 알겠습니다. 저는 ‘가치 없음’을 선언합니다. 이유는, 작곡을 많이 하셨으니 아시리라 믿습니다.”
적막이 내려앉는 촬영장. 나는 쥐고 있던 마이크를 내려놓고 무표정한 얼굴로 서류를 향해 눈을 돌렸다. 꼴도 보기 싫을 정도로 수준 미달이다. 앞에 서 있던 연습생분은 입술을 몇 번 깨물고는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말을 내뱉을 뿐이었다.
“어우, 증말 냉기가 감도네, 우리 후배.”
“그래도 이런 캐릭터 하나 필요해. 아는 거 많은데 냉정하고 칼 같은 캐릭터.”
내 옆자리의 루카치 선배님은 실실 웃으며 나랑 눈을 맞췄다. 이런 애는 처음 본다는 눈초리였다.
“컨셉, 안 지켜도 돼, 후배님?”
그에 서류 앞에 붙은 메모를 읽어 보았다.
―동화 씨는 조금 따스하게 응원해 주는 컨셉으로 부탁드립니다! PD가!
“원래 냉정한 건 내 컨셉인데, 나랑 바꿀래요?”
“…지금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하면 후배님 거짓말이 과한 거지.”
어쩌다가, 내가, 이런…….
* * *
아이돌 제작 공방, 컨셉부터가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명확하게 정의해 놓지는 않았지만, 참가자는 부속품, 데뷔할 그룹은 완제품, 그리고 그걸 코칭하는 우리는 장인이라고 잠정적으로 부르고 있으니까.
인간을 어떻게, 라는 생각에 반발감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갈 수 있을 정도의 사회성을 류이든 덕분에 길러냈다.
처음 PD님과 대면하여 인터뷰를 하는 날, 그 얼굴을 보기 껄끄러운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정경우 PD님, 안녕하십니까.”
‘더 넥스트 니체’ 제작하셨던 분이다.
“오랜만이에요, 죄송하고 그랬는데.”
참, 이 사람한테는 고마워해야 하는지 면상을 보자마자 싫은 기색을 표해야 하는지 헷갈린다. 의도와 결과 중에 무엇을 더 중시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 하지만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라는 게 있으니 이번에는 감사를 품도록 하자.
“아닙니다.”
장해진 팀장님 말로는, 이번에 준성과 나 중에 굳이 나를 넣은 주요 이유 중 하나가 감독님의 강력한 의견 피력이었다고 하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HBS가 왜 갑자기 화해 무드를 잡는 건지는 모르겠으나―아무래도 화양 씨의 개입이 어느 정도는 있지 않았을까―어쨌든 좋은 기회는 맞지.
PD님과 메인 작가님은 내 역할에 대한 설명을 한참 이어 나갔다.
“그래서, 동화 씨는 연습생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부각하려고 해요. 활동 기간이 다른 분들에 비해 짧기도 하고, 그게 더 이미지적으로는 좋은 점도 있거든요.”
음, 좋은 일. 실속을 챙기는 건 나쁘지 않다.
“그, 최대한 긍정적으로 편집해 드릴 거예요. 속죄하는 마음이라서.”
“잘 알겠습니다.”
일단 아이돌판의 관심이 모두 모이는 프로그램, 블로센스라는 그룹을 대표해서 출연하는 격이니 이미지를 최대한 긍정적으로 만들어 보자.
솔직한 말로 PD님께서 나서서 도와주신다는데 거칠 것도 없다. 음, 순풍에 돛 단 듯, 흘러가는 대로, 시키는 대로, 그룹 얼굴에 먹칠만 하지 말고 돌아오자.
그때, 나는 그렇게 다짐했던 게 분명하다.
* * *
‘벚꽃, 낙하’가 연속으로 1위 행진을 하고, 수많은 공약을 이행하고, 행사를 달리고, 더럽게 정신이 없는 나날. 여름이 곧이라 뜨개질을 할 수는 없어서 십자수를 시작했다.
“…난 가끔, 네가 나랑 같은 세대가 맞나 싶어, 동화야.”
정신을 해치려는 류이든의 소리를 무시하고, 토끼와 여우가 사이좋게 잠자고 있는 자수를 완성해 나가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명경지수가 뭔지 가르쳐 준다. 처음 류이든이 추천해 줬을 때는 이렇게 빠져들 줄 몰랐는데, 인생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내일, 아제공 첫 촬영인가?”
나는 실을 갈아 끼우기 위해 반짇고리를 뒤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 약간 긴장된다.”
“왜 형이.”
“원래 동생 일은 형도 걱정되는 거거든. 집 지키는 개잖아, 내가. 매일 외출하는 가족 안전한가 생각하는 거라고.”
나는 맞는 색의 실을 찾아 세 가닥을 바늘에 꿰며 웃었다. 미친개가 지키는 집이면 안전은 할 것 같다.
“형도 개인 활동 꽤 잡히지 않았나.”
생각해 보면 정작 본인도 집 나가는 개면서 가족 걱정은 더럽게 많다.
“에이, 그걸 지금 말하면 형이 서운해?”
나는 내일 있을 첫 번째 ‘원석 평가’를 생각했다. 그냥 늘 있는 첫인상을 보여 주는 장소 같은데, 이름은 거창하기 짝이 없다.
“상냥할 예정이야.”
“네가?”
류이든은 절대 믿을 수 없다는 투였다.
“아니, 우리 빼면 다른 사람한테 상냥함이라곤 평상시에 없는 네가?”
“응.”
지금 내 모습을 봐, 흔들의자만 있으면 시골 마을에 사는 인자한 할머님과 다를 바가 없잖아. 손자들 챙기는 심정으로 좋은 말만 한가득 해 줄 심산이야.
그때, 나는 그렇게 웃었던 게 분명하다.
* * *
그리고 나는 몰랐다. 가만히 있던 할머님이 입만 열면 사람의 정곡을 찔러대는 사람일 줄은.
처음 세트장에 들어가서 한쪽에 와글와글 앉아 있는 백 명의 연습생에 압도당할 뻔했다. 그러고 나면 그제야 세트장의 구조가 눈에 보였다. 심사위원석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조라 마음에 들지 않고, 이미 세팅된 연습생들은 자신이 어느 정도 수준일지 예측해서 목걸이를 목에 걸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건, 무대 디자인이 19세기 영국의 공장을 연상케 하는 앤틱한 디자인이라는 것 정도.
너무 자극적이야. 나는 십자수나 뜨개질이 마음에 드는 인간이라, 이런 자극성이 익숙지 않다. 이런 식으로 촬영하면 공장 노동자들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도 일으키는 거 아닌가 몰라.
촬영이 시작되기 전, 옆자리에 앉은 대선배님, 블루잭의 리더, 루카치 선배님과 잡담을 하며 십자수나 놓고 있었다. 연습생석에서 시선이 꽂히는 게 느껴졌으나 무시하며 털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외워 둔 도안을 떠올리면서 실을 갈았다.
“아니, 동화 씨는 십자수로 취미 바꿨네요?”
“네, 뜨개질 철은 지나서.”
“준성이가 후배님 무섭다고 그렇게 난리를 치던데, 이것만 보면 무서울 게 없는데.”
아, 그건 제 업보가 깊답니다.
“선배님이랑 작업하면서 그러시는 것 같습니다.”
“아, 이번 타이틀도 준성이랑 같이 작업하고 있다면서요. 진짜, 잠을 안 주무시네. 준성이도 학을 뗐다 그러더라고요. 걔도 노력으로는 알아주는 앤데.”
그러다가 루카치 선배님은 앞에 있는 종이를 뒤적였다.
“아, 이건 언제 또 다 읽는담. 동화 씨는 읽었어요?”
“다행히도 저는 다 외워왔습니다.”
“진짜…, 이상한 사람…….”
우리 멤버들이랑 하루만 지내보시면, 제가 평범하다는 걸 느끼실 겁니다, 선배님.
“촬영 들어갈게요!”
나는 십자수를 좌석 아래로 내리고, 오크통 모양이지만 푹신푹신한 의자를 들어 안쪽으로 다가앉았다.
솔직히 말해서 기대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니, 어떤 무대를 보여 줄지, 그래서 어떤 감상을 느낄지.
서바이벌의 자극성을 싫어한다고 말은 해도, 꿈을 이루려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노력한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조금 더 순하고, 편집의 개입이 배제되면 정말 가치 있는 자리 아닐까.
이번 방송의 MC이자, 아이돌 공작소의 MC이기도 한 예성 씨가 무대 중앙으로 걸어 올라오며 날 보고는 웃었다.
“안녕하십니까, 후원자 여러분들.”
르네상스 시대라도 되는지 시청자분들을 예술 후원자로 여기는 말에 은근히 미소가 올라왔다. 메디치 가문이 예술에 후원했듯, 아이돌 제작 공방에 지원해 달라는 뉘앙스라서. 아이돌의 제작 과정을 예술에 빗대는 건 괜찮은 일이다.
“오늘은 원석 평가의 시간. 눈앞에 계신 이 심사위원님들이 참가자들의 무대를 보고, 어느 수준인지 평가하는 자리입니다. 총 등급은 R, S, A, B, C 순이지만, 이외에도 ‘가치 없음’ 등급이 있습니다. 심사위원님들 중 한 분이 ‘가치 없음’을 선언하면, 다른 분들의 의견은 모두 사라지고, 등급 평가 최하점이 부여됩니다.”
예성 씨는 이외에도 여러 인사를 하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심사 시간.
백 명의 무대를 오늘 안에 다 평가해야 하니, 체력이 부족하지는 않을까. 그런 심심한 고민이나 하고 있었다. 나 같은 인간은 가치 없음을 선언할 배짱이 없으니,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려는 심산이었으니까.
첫 무대를 보고 내 표정이 썩기 전까지는.
* * *
아이돌 제작 공방의 참가자 중, 갓에이 출신 연습생인 박은구는 심사위원석에서 반짝거리고 있는 지동화를 보며 눈을 빛냈다.
‘멋지다, 진짜.’
데뷔 3년 차에 저 자리에 오른 미친 사람. 엄청난 작곡 실력과 상위권의 노래 실력, 기본기가 탄탄한 춤 실력까지. 여기에 있는 아이돌 연습생들에게 지동화라는 인물은 ‘현재의 성공’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게다가 기사로만 접해 봐도 알 수 있을 정도의 성실함. 저런 자리에 올랐음에도 연습실과 작업실을 제외하면 그 흔한 목격담도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사람.
‘연습생 때부터, 멋있었어.’
다른 사람들은 재수 없니 뭐니 중얼거리더라도, 박은구도 자발적 아싸인 입장이라 상관없었다. 항상 평가 상위권, 작곡은 언제나 1등, 심지어 가르칠 게 거의 없다며 불평하던 레슨 선생님의 말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십자수, 엄청 멋져…….’
그의 나이 현재 열일곱. 우상의 모든 것이 멋져 보일 나이였다.
저 사람 앞에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긴장돼 미칠 지경이라, 첫 평가 무대를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침착하자, 곧 내 차례다.’라고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뇔 뿐이었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는 그의 귓속으로 여러 평가의 말이 지나갔다.
“오, 무대, 엄청 괜찮은데요?”
“이거 자작곡인가요?”
“네. 자작곡입니다.”
“편곡도 아니고 완전 생으로?”
“네!”
그는 눈을 뜨고 지동화 쪽을 바라봤다. 다른 심사위원들이 호의적으로 무대를 보고 있는 것과는 달리 미간을 약간 찌푸리고 불쾌하다는 표정이었다.
모든 심사평이 어느 정도 마무리됐을 때, 지동화가 마이크를 들었다.
꿀꺽, 박은구는 그 조용한 기세에 침을 삼키고 말았다. 사나운 호랑이 한 마리가 노려보는 기분이라. 저 형이 저렇게 매서운 눈을 지은 적이 있던가, 그의 머릿속에 충격이 맴돌았다.
“혹시, 작곡을 많이 하시나요, 평소에도.”
“네!”
무대 위에 ‘R등급’의 예측 목걸이를 걸고 밝게 웃는 참가자. 실력에 자신이 있나 보다.
“…이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실력으로 만드신 곡이 맞고요?”
“네.”
“순수 창작물인 거네요?”
“맞습니다!”
지동화는 마이크를 잠시 떼고 무표정하게 내려다보다, 눈을 한 번 깜빡였다.
“그럼 여쭙는데, 29년 전에 발표된 곡인 다이스의 ‘시티 뱅’이라는 곡을 아십니까.”
그러자 연습생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분명히 아는 기색. 이곳의 어느 누구도 모르는 눈초리였지만, 둘만 아는 무언가가 진행되고 있었다.
“불법 샘플링은, 아마추어 수준에서는 보통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마추어로 계속 남을 생각이 아니시라면, 다음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마추어로 계속 남을 생각이 아니시라면.
모두 데뷔를 위해 모인 이 자리에서, 가슴을 후벼파는 듯한 심사평이었다.
“정말로 순수 본인 창작물이 맞나요?”
연습생은 별다른 답을 입에 올리지도 못하고, 입술을 달싹이기만 했다. 샘플링한 곡을, 자신이 전부 만들었다고 말하는 건 분명히 잘못된 짓이니까.
“음, 알겠습니다. 저는 ‘가치 없음’을 선언합니다. 이유는, 작곡을 많이 하셨으니 아시리라 믿습니다.”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온 지동화. 십자수를 뜰 때와 똑같은 평온한 인상이다. 첫 연습생의 무대부터 선언된 ‘가치 없음’. 이후 있을 첫 번째 미션에서 등급별로 메리트가 주어진다는 걸 생각하며 제작진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준수한 실력에 괜찮은 페이스라 밀어줄 생각까지도 가지고 있었는데, 초장에 지동화가 부숴버렸다.
박은구는 손발을 떨며, 저 앞에서 실수하지는 않을지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