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15)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15화(183/343)
그냥 넘어갈까, 3초 정도 고민하다가, 짜증이 치밀어서 지적했더니, 한다는 소리가 ‘순수 창작물’이 맞다는 인정이라니.
말을 하지 않는 건 괘씸한 정도지만, 거짓을 뱉는 건 도를 넘어선 부정행위다.
다른 연습생들은 다들 실력으로 승부하겠다고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웠을 텐데, 유명하지는 않아도 퀄리티 하나는 보장된 곡을 샘플링 했으면서 그 부분도 자기 것인 양 혀를 놀리다니, PD님 지시고 컨셉이고 나발이고, 다른 연습생들의 노력이 안타까워서 최대한의 경고를 남겼다.
급히 전달된 PD님의 쪽지에는 ‘그냥 솔직하게 평가해 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라는 체념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첫 심사부터 컨셉을 포기하게 만들다니, 죄질이 무겁네. 이쯤 되니 어떻게 편집될지에 대한 생각은 반쯤 버리게 됐다.
나는 옆에서 쪽지를 보며 키득거리는 루카치 선배님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어 주고 심사나 준비했다. ‘가치 없음’은 한 명이 딱 한 번 선언할 수 있는데, 초장에 난장을 내놨으니 이제 ‘극대노’할 일은 없지 않을까.
…라는 기대는 곧바로 다음 무대에서 좌절되고 말았다.
이름이 생소한 소속사라고 해서 편견을 갖지는 않았다. 두 명이 사이좋게 나와서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은 흐뭇하기도 했다. 심지어 짧은 대화 끝에 시작된 곡이 ‘클라우디 블루’라는 걸 알았을 때는 괜스레 뿌듯한 기분도 들었다.
이것들이 입을 열고 노래하며 춤을 추기 전까진. 고등학교 축제 무대라면 기쁜 마음으로 박수를 쳐 줬겠지만, 꿈을 위해 노력했음을 증명하기에는 지나치게 자격 미달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슬리는 것.
“음, 편곡을, 회사에서 해 줬나요?”
“저, 저희가 직접…….”
누가 보면 제가 혼내는 줄 알겠습니다.
“가창이나 안무 평가는 다른 분들 의견과 같아서 더 드릴 말씀은 없지만, 저는 실력을 더 쌓기 전까지는 회사에 편곡을 맡기시는 게 좋겠다는 말씀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지 않은 편곡이었습니다.”
누가 뭐라든 내 곡이다. 내 곡을 누가 내 눈앞에서 손수 망치는 장면을 보고 있으니 짜증이 치밀어 죽겠다.
‘당신들 같은 수준 미달이 부르라고 쓴 곡이 아니고, 우리 멤버들처럼 준비된 짐승들을 위해서 쓴 곡입니다.’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참았다.
이번에 자체 제작에 힘을 실어준다고, 편곡 가능한 사람들은 편곡해도 괜찮다는 방송국의 언질이 있었다지만, 이렇게 형편없이 할 거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물론, 무대는 잘 봤습니다.”
“…잘 본 거, 맞지?”
마이크를 들지 않고 의문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루카치 선배님.
앞에서 열심히 춤추고 노래해 줬는데 잘 봤다는 말 한마디 정도는 붙이는 게 예의라고 류이든이 가르쳐 줬으니, 충실히 따를 뿐이다.
* * *
“저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작곡을 들고나오셨다면, 자신이 있었다는 뜻일 텐데, 제가 부족해서 그런지, 곡 안에서 그 근거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꿀꺽, ‘그딴 곡으로 실력 평가에 나올 생각을 어떻게 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라는 말이다.
“춤 실력은 출중합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곳이 댄서를 뽑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호흡이 불안정해서 음이 너무 자주 흔들려 불안한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꿀꺽, ‘너는 춤밖에 할 줄 아는 게 없고 노래는 듣기 끔찍한 수준이다.’라는 말이다.
박은구는 대기실에서 곧 있을 평가 무대를 기다리며 가끔씩 터져 나오는 지동화의 예의 바르지만 무서운 지적에 점점 몸이 위축됐다.
차라리 노래도, 춤도, 작곡도 제대로 못하는 인간이 하는 지적이라면, 이렇게까지 무섭지는 않을 텐데. 다 할 줄 아는 사람이 하나하나 따지면서 뭐라 하니까, 뼈를 얻어맞는 기분이다.
“하, 씨, 긴장돼.”
갓에이에서 출연한 인간은 두 명. 이번에 준비한 곡은 지동화 선배님께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고른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솔로 편곡본. 심지어 자신이 직접 편곡했다.
앞선 사람들이 ‘클라우디 블루’를 들고나와서 쌍욕―과 다를 바 없는 예의 바른 평가―을 들어 처먹은 걸 떠올리면 호흡이 가빠져서 미칠 것만 같았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놈은 천하 태평한 모습으로 ‘뭐, 잘 되겠지.’라고 느긋하고 미련 없어 보이는 말을 지껄였지만, 자신은 차오르는 긴장을 막을 수 없었다.
“아니, 구, 뭘 그렇게 떨어.”
“닥쳐 봐, 형, 죽을 것 같아, 지금.”
“동화 선배님이 옛정 생각해서 봐주시겠지―”
“형은 늦게 들어와서 모르겠지만, 저 형, 그런 사람 아니야. 로봇이랑 비슷한 사람이라고…….”
오늘 편곡 욕먹으면, 숙소 가는 길에 자살한 것만 같아. 어쩌지. 이대로 죽기는 싫은데. 아, 그래도 존경하는 사람의 손에 죽는 거니까, 영광일까. 중얼중얼, 박은구의 입속에서 염불을 외듯 온갖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게 왜 동화 선배 손에 죽는 거야. 그냥 자살이잖아?”
“상이 형, 닥쳐 줘, 제발…….”
지상은 부루퉁한 표정으로 박은구가 쓰러져 가는 현장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명치를 후려쳤다. 둘 사이의 약속, 한 사람이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다른 한 사람은 반드시 그 사람의 명치를 쳐 주기로 했으니까.
어딘가 터지는 것 같은 신음과 함께, 미쳤냐는 눈초리. 지상은 만족스러운지 헤실거리며 은구의 명치를 쓰다듬으면서 ‘아빠 손은 약속.’이라고 흥얼댔다.
“너는 그러다 자살하는 게 아니야. 그렇게 긴장만 하다가 제 실력도 다 못 뽐내서 자살할걸.”
“…형은, 참, 속이 편해서, 부럽네.”
“그래서 여기 뽑힌 거잖아?”
그렇다. 돌판에는 가끔 삶에 미련이 없어 보이는 인간만이 갖고 있는 묘한 매력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경우가 있다. 지상, 저 인간이 그런 타입이지, 젠장. 박은구는 입술을 짓씹었다.
“화장 번진다!”
안 맞아, 그것도 더럽게 안 맞아. 회사에서 유일하게 친한 친구 하나 있는 게 이런 인간이라니.
“내가 위로 못 해 줘서 미안, 잘 못하거든.”
“…알아. 형, 긴장 풀어주려고 지랄인 거.”
“너는 입이 너무 걸어. 아이돌 지망생 맞아?”
“팬분들은 아직 없어도, 생기면 형이랑 같겠냐?”
“나 안 소중해?”
“…고맙기야 해도, 닥쳐.”
그리고 박은구는 스태프의 콜이 있을 때까지 계속 심호흡에 집중했고, 지상은 그런 박은구 옆에서 이번 편곡 버전을 들으며 몸을 풀었다.
* * *
마침내 무대에 올라 인사를 했을 때, 그리고 냉정한 지동화의 시선을 마주했을 때, 박은구는 한껏 몸이 굳고 말았다.
귀엽다는 듯이 대선배 발라드 가수, 지은영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갓엔터 분들이네요. 요즘 선배 그룹이 또 핫하죠?”
“그러고 보면, 동화 후배가 원래는 갓엔터 출신이지 않았나? 인연 있는 사이예요?”
박은구는 기대를 접었다. 애초에 세상을 홀로 살았던 사람이다. 친구 전무. 할 일 다 함. 잘함. 재능충. 머릿속에 지동화를 수식했던 수많은 단어들이 떠다녔다.
“지상 연습생은 초면이지만.”
어?
“은구 연습생은 구면입니다.”
숨이 턱 막혔다. 긴장돼, 어쩌지. 연습생 때 저렇게 돼야겠다고 지향했던 사람이, 어떻게.
“저랑 같이 작곡 레슨 받았습니다.”
“…와, 미친.”
박은구가 중얼거리자, 지상이 아무렇지 않게 웃는 얼굴로 은구의 명치를 후려쳤다.
“구, 정신 차려.”
“컥, 크흡, 헉.”
루카치가 쾌활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서로 정신 차리게 해 주는 건가?”
“그룹 활동하면 저런 것도 정해?”
안무 제작으로 유명한 김승호도 따라 웃으며 물었다.
“네, 명치 쳐주기처럼 과한 건 아니지만요.”
“아니, 왜 그래요. 혹시 동화 씨랑 사이가 안 좋았나?”
“아, 아니에요! 제가 엄청, 존경, 존경하는, 그, 어, 진짜, 멋진 형이었어요…….”
손이 마구잡이로 움직인다. 명치의 통증은 금방 잊히고, 눈앞에서 은근하게 미소 짓고 있는 지동화와 옆에서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는 지상의 시선만이 강렬하다. 아 씨, 쪽팔려. 첫인상 다 망했어.
“진짜예요? 막 괴롭혔다든가. 오늘 보니까 독설이 장난이 아니던데.”
“에이, 독설보다는 팩폭이 더 맞지. 사실은 사실이었으니까…….”
“제가 독설을 언제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진짜 모를 것 같아서 무서워요, 동화 후배.”
“그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드린 말씀이라…….”
“저게 진심이라 더 무서워.”
지동화는 슬며시 미소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박은구 쪽을 바라보며 따스한 눈초리―순전히 박은구의 생각이다.―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쨌든, 노력하던 친구라 기억에 남습니다. 성장한 모습 기대하고 있습니다. 무대, 보여 주시겠어요?”
마이크를 꼬옥 부여잡고, 원래의 동선에 서서, 곧 흘러나올 전주를 기다리며, 박은구는 지상의 팔뚝을 팍팍 쳐대며 긴장을 풀었다. 지상은 익숙하다는 듯이 맞아주면서 고개를 까닥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 * *
무대가 끝났을 때 내려앉는 적막에 박은구는 숨을 깊게 들이켰다. 쓰러질 것만 같다. 흘깃, 지동화 쪽을 바라봤을 때는 무서워 죽을 것만 같았다.
몰랐다. 저렇게 차갑게 평가해 줄지. 납득할 만한 소리를 가장 냉정하고 예의 바르게 말할 줄은. 다른 심사위원분들이 모두 박수를 치며 웃고 있는 와중에도 홀로 완전한 무표정이라 더 그랬다.
“제가, 먼저 얘기해도 괜찮을까요.”
처음이다. 먼저 얘기하겠다고 나서는 것. 지금껏 총 여덟 팀이 나왔는데.
“우선, 편곡은 직접 했나요?”
“…네.”
어떻게 해, 세상에.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자 다른 심사위원분들이 모두 웃었다. 뭐지, 비웃음인가. 시작되는 피해망상은 머리를 좀먹고 들어간다. 저 입에서 나올 사형 선고가 무서워 죽겠다.
“좋았습니다.”
“…네?”
지동화는 박은구의 반응에 의아하다는 듯이 바라보다, ‘아, 저 인간이 납득을 못 했나 보네.’라고 생각했는지 말을 이어 나갔다.
“음, 몇 가지 짚어 드릴까요.”
이어지는 음악 용어로 가득 찬 설명. 자신이 한 편곡을 초 단위로 분석하며 들었다는 사실에 박은구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악기를 어떻게 바꿔 썼는지, 파트 배치를 바꾼 건 어째서 좋았는지, 줄줄 쏟아져 나오는 말들.
“아, 그, 어…….”
그리고 그만, 박은구는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지고 말았다.
* * *
뭐야, 미친. 왜 쓰러져. 다른 사람들은 욕을 더럽게 먹어도 쓰러지는 일이 없었는데.
“아니, 그러니까, 너무 무섭게 말하니까, 연습생이 쓰러지잖아, 동화 후배!”
루카치와 지은영이 꺄르르 웃으면서 나를 타박했다. 억울하네, 잘한 걸 잘했다고 하는 것도 문제라니.
“아우, 지상이는 여유로워서 보기만 해도 편하더라. 춤선이 어찌 그리 고와?”
“저는 편곡 잘 몰라서 노래 위주로 들었는데, 기본기 탄탄하고 좋네. R이나 S에 어울린다. 물론 연습 더 해야겠지만.”
“오늘 동화 씨가 편곡 칭찬한 첫 번째 팀 된 거 축하해요!”
아니, 쓰레기더미에서 그나마 쓸 만한 원석을 발견했는데, 칭찬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학교에서 5인 팀플을 할 때, 조장 외 한 명만 성실하게 참여하면, 그 한 명이 예뻐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이거, 인맥 칭찬은 아니지?”
루카치가 조심스럽게 귓속말로 속삭이자, 미간이 자연스레 찌푸려졌다.
“사실, 저 친구랑 대화해 본 기억도 없습니다.”
“그래…, 내가 의심할 걸 의심해야지. 오늘 회식도 같이 안 갈 사람인데…….”
채하민이랑 석준이 오늘 일찍 와서 놀자고 해서 들어가 봐야 합니다.
“인맥은, 이든이만 쌓는 느낌이긴 해.”
그리고 나는 이날, 총 40팀의 무대를 보고, 혹평 서른 번, 칭찬 여덟 번, 극찬 두 번으로 마무리 짓고, 심사위원분들에게 ‘진실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음을 증명한 친구’라고 불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