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17)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17화(185/343)
장해진은 오늘도 흡연실에서 담배를 태우며 일정을 정리했다. 자신이 관리하는 아이돌들의 모든 일정이 머릿속에 흘러다니며, 어떤 컨셉, 어떤 기획, 어떤 방송에 출연하는 게 득이 될지 계산한다.
이 바닥에서 구르며 연애도 포기하고 늘 야근에 야근뿐인 삶을 살고는 있지만, 그래도 빛나는 연예인들의 모습을 보면 위안이 되는 게 사실이다.
그녀는 핸드폰 진동에 전화를 받았다.
“경우냐?”
―어, 잘 지내?
“오랜만인 척은…….”
새로 한 대를 입에 물었다. 이놈과 전화를 할 때면 혈중 니코틴 농도가 급감하는 기분이다.
“그래, 우리 동화는 어때.”
―음… 그것 때문인데 말이지.
“네가 먼저 사죄한다고 섭외한 거야, 알지?”
감당도 네가 하는 거고, 대처도 네가 하는 거야. 장해진은 한숨같이 연기를 내뱉었다. 예전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 그것 때문에 자신이 직접 찾아가서 정경우의 명치를 후려 패고 언젠가 갚으라는 한마디 말만 남겼었다.
정경우는 어떻게 경력을 인정받아서는 하필 HBS로 기어들어 가길래 ‘죽일까?’라는 생각 만만이었는데, 이렇게 돌아올 줄은 몰랐다.
―아니, 불평하는 거 아니야, 해진아.
“그러면 뭐.”
―그, 동화 씨 컨트롤 실패했거든? 말한 대로는 안 될 것 같아. 친절한 심사위원으로 이미지 높이기.
“어머, 그래서 네 장례식 날짜는 알아보고 있고?”
―나쁜 거 아니라니까.
정경우는 웃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금 심각한 게 누군데.
―말한 거랑은 달라도, 좋게 나갈 것 같아.
“지난번에도 말은 청산유수였지.”
―믿어 줘, 이번엔. 진짜 논쟁 날 것 없이, 딱 절묘하게 할게. 오늘 촬영분까지 보니까 확신이 들어. 애초에 우리 관계 떠나서 생각해도, 좋게 나갈 수밖에 없는 사람이야, 동화 씨.
“뭐, 무슨 일 있었어?”
―하하, 그게…….
* * *
“여러분들은, 저와 함께, 첫 단체곡을 편곡하게 될 겁니다.”
나는 열 명 정도 있는 연습생들의 면면을 살폈다. 귀찮아 죽겠어, 이 방송. 뭐 이런 것까지 시킨담. 심지어 백 명의 단체곡이라니, 누구 머리에서 나온 건지.
게다가 본격적인 설명을 왜 나한테 시키는 건지 알 수 없다. 작업에 들어가기 전 라포―상호 신뢰 관계―라도 형성하라는 걸까.
“이번 서바이벌은 자체 제작에 집중하고 있어서, 지금 여기 계신 열 분은, 그만큼 집중 조명을 받을 확률이 높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만큼 실수했을 때 후원자분들의 질책을 받을 확률도 높습니다. 다른 분들이 보컬과 댄스 트레이닝만 방송될 때, 여러분들은 추가로 이 부분도 방송될 테니까요.”
‘질책’이라는 단어에 개인연습생 출신의, 불법 샘플링 같은 헛짓거리를 했던 연습생이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래도 자기가 품질 평가에서 했던 헛짓거리를 곱씹고 있나 보다.
내 생각에, 당신은 그냥 통편집일 뿐인데. 어느 미친 PD가 범죄를 저지르는 현장을 방송에 내보내서 자체 논란을 만들겠어. …아니겠지? 방송국에는 제정신인 사람의 숫자가 적어서 확신할 수는 없다.
“열 분은 편곡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알고 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원곡과 제가 주도해서 편곡한 1절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아마도 나를 섭외한 건, 이런 작업을 염두에 둔 선택 같다. 공식 노동자 이미지가 이렇게 나를 엿 먹일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물론, 계약대로라면 돈은 과할 정도로 받겠지만. 그냥 멍청한 척하고, 자본주의는 불멸이고 돈은 신이라 소리치고 싶을 정도다.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마우스를 딸깍였다. 먼저 나오는 원곡. 반주는 없이 멜로디 라인만 쓸쓸하게 흘러나왔다. 돈을 벌겠다는 생각뿐인 후렴구 위주의 후크송이다. 대중성만을 한없이 겨냥한, 어쩌면 그래서 심심한 곡.
“어떤가요?”
곡이 끝났길래 조용히 물었다. 나란히 앉아서 따라 흥얼거리던 연습생들이 순식간에 굳었다. 내가 그렇게 무서울까, 본질은 여전히 시골 할머니랑 같은데.
그러나 질문을 했으면 답을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법이다.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게 어색할 법도 하니까. 나 역시 입을 닫고 조용히 바라보니까 그저 침묵이 흐를 뿐이다. 어떤 연습생은 불편한 기색으로 몸을 움찔거렸다.
그리고 이 짙은 침묵을 깨고 조용히 올라오는 손. 어찌나 용감한지.
“심심한 것 같아요.”
은구 씨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똑같습니다. 멜로디 라인만 있는 원곡은 정말 뛰어난 게 아니고서야 대개는 심심합니다. 이번엔 제가 편곡한 겁니다.”
아이돌 제작 공방의 촬영 시작도 전부터 류이든과 석준의 감상평을 쥐어짜며 편곡했다.
멜로디가 그렇게 특출나지는 않으니 반주를 화려하게.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신나게. 여름밤의 불꽃놀이가 생각나게끔, 팡팡 터지는 전자음들이 활발히 뛰어다녔다.
그 사이로 루카치 선배님의 목소리로 녹음한 가이드 라인이 자연스레 묻어났다. 괜히 일군은 아니라는 듯이, 대단한 실력이다.
“이번엔, 어떻습니까. 참고로 아첨은 사양할 겁니다. 혹평은 좋습니다. 의견을 말해 주세요.”
창작물을 내놓는다는 건 그런 뜻이니까. 근거만 있다면 욕해도 받아줄 생각이 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모두들 좋다는 얘기나, 채워진 것 같다는 얘기만 할 뿐이었다. 저런, 안타까워라.
그리고 다시 한 손이 굉장한 긴장과 불안으로 떨면서 스윽 올라왔다.
“네, 은구 연습생.”
“너무, 그, 강렬하기만, 한 것 같, 아요. 프리 코러스에서라도, 한 번 쉬어가는 게 더 듣기, 편할…….”
말하다가도 주변에서 쏟아지는 시선에 움츠러들었는지 끝을 흐렸다. 음, 다람쥐 닮았네. 앞으로는 다람쥐라고 불러야겠다.
다른 연습생들은 박은구의 말에 불안한 눈초리로 나를 힐끔거렸다. 곧 터져 나올 화산 폭발에 대비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사화산이랍니다. 제가 괜히 멘탈 수업 교수겠습니까.
애초에 저런 일로 분노할 멘탈이었으면 이런 방송에 출연하겠다고 답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람하고 부딪칠 게 뻔히 보이는 방송이니까.
나는 절로 나오는 미소를 입가에 올렸다. 연습생들은 처음 보는 모습인지 안 그래도 큰 눈들을 더 크게 키웠다.
“정확합니다.”
내 말에 정작 지적했던 박은구가 놀라서 ‘흡’이라는 괴상한 신음을 흘렸다.
“그래서 그걸 고치면 이렇게 되는 겁니다.”
나는 모든 반응을 무시하고 마우스를 딸깍였다. 똑같은 초반부를 지나서, 박은구의 말대로 프리 코러스에 힘을 빼 곧 있을 후렴구에서의 화려한 폭발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여기저기서 신음 같은 아쉬운 목소리들이 흘러나왔다. 모두들 이해했나 보다. 애초에 저런 지적을 해 줄 사람이 나오기를 내가 바랐다는 것을.
방송이니까, 조금이라도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 만한 장치를 마련하고 싶어서 준비한 시나리오다. PD님도 흔쾌히 찬성해 주셨고. 애초에 편곡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면 전부 다 눈치를 챘겠지만, 말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때요, 박은구 연습생. 조금은 나아진 것 같습니까?”
“흐억.”
내 질문에 박은구 연습생은 덜덜 떨리는 고개를 힘겹게 끄덕였다.
“여러분들이 곧 데뷔해 편곡 과정에 참여하게 된다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을 줄 알아야 하고, 또 다른 사람의 의견에 이견을 제시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나는 다람쥐 같은 표정으로 입술을 씹고 있는 사람에게 미소를 지어 주며 나머지 말을 이었다.
“오늘처럼요.”
나는 연습생들에게 USB를 보여 줬다.
“여기에 제가 작업한 파일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기한은 이틀, 여러분들은 그 시간 내로 어떻게든 결과물을 만들어야 합니다.”
절반밖에 안 되는 곡을 편곡하는 데 열 명이나 달려드니까, 무리는 아닌 일정일 것이다.
“중간중간, 제가 작업 과정을 확인하러 올 예정이니, 힘내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편곡 팀의 조장은 아까 저희가 준비한 음, 테스트 비슷한 것에 통과하신 은구 연습생이 맡아 주시면 됩니다.”
나는 USB를 은구 씨에게 건넸다. 여전히 떨리는 손으로 USB를 받은 은구 씨는 소중한 물건 다루듯, 신줏단지를 모시듯 품에 끌어안았다.
“와아, 씨… 쩐다…….”
음, 대체 뭐가. 일 시키는 게 뭐가 그리 좋다는 거야. 노예 위치에 익숙해지면 수갑의 재질로 자랑을 한다던데, 그런 걸까.
“어쨌든, 작업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 *
정경우는 신나는 목소리로 말을 전했다.
―미소가 사람 미치게 만들던데.
“그래?”
―응, 애니나 영화 캐릭터로 치면 그런 거지. 엄격한 줄 알았는데, 노력하는 건 전부 제대로 봐주는 선생 같은 거.
“너, 애니메이션 끊어야 돼.”
―아니, 그냥 인간적으로도 멋지잖아. 나 어렸을 때 저런 선생님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그리고 짧게 이어지는 대화, 슬슬 전화를 끊어도 될 것 같은데, 정경우는 아직 할 말이 남았는지 ‘음…….’이라고 질질 끌었다.
“아, 빨리 말해. 업무 돌아갈 타이밍이야.”
―이건, 약간 친구로서 의논하고 싶은 건데.
어디 가서 씨부리지 말라는 뜻이구나. 오케이. 장해진은 찰떡같이 말을 알아들었다.
“응.”
―…상부에서, 이상한 지시가 조금 있었거든.
“뭔데?”
―몇몇 애들 위주로 편집해 달라는.
“음, 뭐, 흔한 거 아니야?”
이상주의자는 못 되는 성격이라 그런 것 하나하나 문제 삼고 싶지는 않았다. 편집 잘 해 주는 거야 원래 흔히 있는 일이기도 하고, 장해진도 제 손으로 누군가를 선택해서 분량을 몰아준 적도 있다. 대표적인 수혜자는 채하민.
―이게, 분위기가 이상해.
“왜.”
―…안 되면 조작이라도 해 달라는 뉘앙스거든.
“어머, X발. 투표수에 손대 달라고?”
―응. 하, 씨, 사표 낼 수도 없고. 지금은 사람들 투표권에 걔네가 들어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 어쩌냐, 해진아.
메인 PD 정도면 엄청난 직책인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직책도 아니다. 윗선에서 까라면 까야 하는 입장이니까.
심지어 방송국처럼 판이 좁은 곳은 내부 고발이나 명령 불이행 같은 이유로 해고당하면 소문이 돌아 재취업이 힘든 경우도 왕왕 있다고 한다. 장해진은 엔터사에 근무하느라 정확한 내부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네 뜻대로 해. 어차피 네 성격에 최대한 말리려고 지랄했을 거고, 또 할 거잖아.”
―그야, 그렇지.
그렇기 때문에 장해진은 친구로서 할 수 있는 조언을 입에 담았다.
부정한 일에 손대기 싫어서 내부 고발을 하는 건 멋있지만 비현실적이다. 당장 내야 할 카드값, 생활비, 그리고 이후의 삶에서도 안정적으로 일할 직장.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양심을 택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그건 남이 시킬 만한 일은 아니라고, 장해진은 생각했다.
“그리고, 이건 방송에 아이돌 내보낸 기획자 입장인데.”
그리고 이번에는 직업인으로서의 조언.
“하면, 들키지만 마. 불똥 튀니까.”
―그래, 그래야지. 그래도 최대한 설득은 해 보려고.
그리고 잠시 침묵. 둘은 아마도 설득하는 게 힘들 거라는 예상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돈 같은 사정이 개입되면, 모든 문제는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혹시라도 장해진은 주변을 돌아보며, 들은 사람이 없는지 확인했다. 친구와 함께 함구하기로 약속했으니,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켜줄 셈이다.
“그래, 고생해라.”
―오냐, 너도.
그리고 이 일련의 대화를 듣고 있던 류이든이 있다. 장해진을 찾아갔다가 자리에 없다는 얘기를 듣고, 자연스레 흡연실로 왔다가, 전화를 하고 있기에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상대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장해진의 말만 들을 수 있었지만, 분명히 ‘조작’이라는 두 음절이 귀에 들어찼다.
눈치 하나는 블로센스 내에서 1등인 인간이고, 평소에도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를 정리하길 좋아하는 성격 때문이었을까. 단 두 글자만으로도 대강의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음, 내가 뭘 들은 거람.”
능청스럽게 웃으면서, 지동화에게 이걸 말해 주는 게 좋을지 아닐지 머릿속으로 빠르게 저울이 움직여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