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20)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20화(188/343)
자기 자신을 설명할 때 우리는 곤혹을 겪고는 한다. 지금, 왜, 이 행위를 하는지 설명할 때, 가끔 그 이유를 알지 못할 때가 있다.
나는 왜 아이스크림 가게에 갈 때마다 이 맛만 먹을까. 나는 왜 이 사람을 싫어할까. 나는 왜 어떤 일에는 둔하지만, 어떤 일에는 예민해질까.
이런 질문을 문득 던질 때, 말문이 막힌다면 높은 확률로 타인의 영향이 미친 탓이라고 한다.
어렸을 적에 부모님과 처음 먹었던 맛의 아이스크림을 자주 찾는다든가, 이유 없이 싫은 사람이 어렸을 적에 나를 괴롭혔던 사람과 닮았다든가, 그리고 무수히 많은 일련의 사건으로 어떤 선호를 가지게 되었다든가.
즉 다른 사람이 지금의 나를 설명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한 철학자는 타인의 발자국이 진정한 자신의 기반이 된다고 주장했다. ‘나’는 당신과 맺는 관계라면서.
그럴듯해. 지금 나나 채하민이 그렇듯이 다른 사람 때문에 무언가 많이 변했으니까.
사람이 도화지라면 서로가 서로에게 물감으로 미친 듯이 색칠하는 걸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지는 않을까. 어떤 사람은 검은 물감을 칠하고, 어떤 사람은 빨간빛으로 물들이고. 그렇다면 채하민이나 다른 멤버들은 어떤 색으로 내 속에 남았을까.
‘혼자만 존재한다는 것은 함께 존재한다는 것의 결핍 형태이다.’라는 말이 달리 공감되지 않았었는데, 요즘은 와닿는 걸 보면 참 사람이 변하나 보다.
갑자기 내가 목화에 얽힌 가정사와 과거의 삶을 털어놓으니 채하민은 ‘화들짝!’ 이후 ‘수긍!’, 그다음엔 ‘눈물!’로 귀결됐다.
“흐어어, 슬픈데에! 어쩐지! 할머니가 귀인이라고 한 게 다 이래서!”
진짜, 룸 아니었으면 도망쳤어. 조금만 더 개방적이었으면 벽돌이 손에 들려 있었을 거고.
“그럼, 처음엔 엄청 당황스러웠겠다아, 동화야아.”
“뭐, 네 덕분에.”
“으응? 우리 별로 안 친했잖아, 처음엔.”
아, 그땐 기지생 특제 AI 상태라.
[첨단 기술의 결정체이자 딥러닝의 끝입니다.]그리고 통계학의 위험성, 망할 놈아. 진즉에 채하민이랑 친구를 했어야지, 잘못된 것이라고밖에는 볼 수가 없다.
[당신 성격에 말 같잖은 소리 하지 마십시오! 애초에 당신이 누군가한테 먼저 다가갈 수 있을 리가!]그러면 한 번 더 리프시켜 줘. 채하민이랑 일찍 니체로 와서 다른 멤버들과도 조금 더 친해지게.
[진짜 양아치 심보라고 세뇌를 시켜서 그런지 양아치가 다 됐습니다. 언어가 사고를 제약한다는 사피어 워프 가설이 옳나 봅니다!]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변했어, 정말.
앞에서 엉엉 울고 있는 채하민을 보고 있으려니,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 어차피 저 망할 놈, 내일 되면 술 때문에 기억 못 하겠지. 대나무숲이라는 걸 알고 소리치는데도 후련한 걸 보면 옛날이야기에 지혜가 있긴 한가 보다.
* * *
채하민을 추스르고 나서는 길, 나는 절로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고 말았다.
“안녕하십니까.”
“동화야아, 누구랑 인사해애.”
조용히 해 봐. 지금 비유하면 직속 상관과 외주 업체 당사자랑 대화 중이잖아.
“아, 오늘 잠시 외출한다고는 들었는데 이리로 왔네, 동화?”
“네. 얘랑 친목도 다질 겸 왔습니다.”
장해진 팀장님도 나처럼 옆에 혹을 하나 달고 있었다. 거나하게 취한 정경우 PD님이 장해진에게 부축을 받으며 반쯤 쓰러지듯 걷고 있었다.
“…도와드릴까요?”
“아니, 얘 정도는 업고도 갈 수 있어. 의외로 운동 열심히 하거든, 나.”
사무실에서 반쯤 죽어가는 모습만 봬서 그런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 정도로 활력이 넘치는 분이신지.
근데 내일도 연습은 진행 중이니 출근하셔야 할 게 분명한데 저렇게 만취하시다니. 뒤가 없는 사람인 줄은 몰랐는데, 대단하신걸.
정경우 씨는 채하민처럼 비몽사몽하다가 내 목소리를 듣고는 정신을 차렸는지 펄쩍 고개를 들었다. 내 목소리에 각성제라도 들었나, 왜 저러셔.
“동화 씨이! 미안해요! 내가아, 내가! 용기가 없어서! 미안해애!”
“닥쳐, 미친놈아. 함부로 입 벙긋거리면 어쩌려고, 이 XX.”
장해진 팀장님은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걸쭉한 발음으로 쌍욕을 뱉으며 정경우 PD의 입을 막으려 손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정경우 PD는 약 먹기 싫어하는 어린애같이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면서 계속 소리쳤다.
“미안해애, 내가 다 책임질게! 내가 다 사죄할게요! 사랑해, 동화 씨!”
아니, 뭐가 그렇게 미안한 건지. 지난번의 일은 갚은 셈 아닌가. 아니면 이번에 나, 편집으로 엿 먹을 예정인가.
“뭐가 그렇게―”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경우 PD는 큼직하게 소리쳤다.
“내가 사지로 끌어들였을 수도 있단 말이에요! 동화 씨, 큰일 날 수도 있다고!”
그러자 채하민이 맞불로 소리쳤다.
“나빠요! 동화한테 왜 그랬어요!”
정말, 아직 식당을 나가기 전이라는 게 충격적일 뿐인걸. 다행히 룸만 있는 식당이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곧바로 느껴지진 않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이곳으로 몰리는 건 피부에 느껴질 정도였다.
“하민, 조용.”
“저 사람이 널!”
“제발.”
나와 장해진 팀장님은 빠르게 밖으로 나서며 계산을 했고, 그동안 사과와 분노가 교차하는 대화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내가 재빠르게 마스크를 씌워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내일 아침에 뜨거운 감자로 등극할 수 있었겠다, 이 망할 토끼 놈아.
나와 장해진 팀장님은 서로 웃으며, 그리고 서로 각자의 일행 입을 꼭 부여잡았다. 채하민은 조금 진정됐는지 얌전하게 입이 막힌 채 눈으로만 정경우 PD님을 째려보고 있었다. 정신 차려, 저 사람이 우리 캐스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인간 중 하나야.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팀장님.”
“그래, 너도. 매니지 팀이랑 얘기 많이 해서 컨디션 무리 없게 조정했는데, 내일 일정 없지?”
“네.”
“푹 쉬어.”
“네, 그럼.”
짧은 목례 후, 집에 돌아가며, 나는 집에 들어가서 류이든한테 물어볼 것들을 정리했다.
음, 소문이 필요해, 내가 출연하는 이 프로그램의 소문이.
* * *
숙소에 들어가자 이미 잠에 빠진 석준을 뺀 현재와 이든 둘이서 보드게임을 하는 중이었다. 저것들, 바쁜 와중에 어떻게든 유의미한 휴식을 취하려고 보드게임에 점점 맛을 들이는 중이다. 차라리 나처럼 바느질을 하는 게 어떨까 싶지만, 자기들이 즐겁다는데, 뭐.
“어, 형, 왔어요?”
“응. 오늘 방송 잘 촬영했어, 현재?”
“네, 그냥 노래 부르는 게 다였거든요. 형, 방금 룰 미스.”
그런데 요즘 보니 그저 이현재한테 생긴 새로운 취미에 류이든이 억지로 맞춰 주는 중은 아닐까,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아, 이거 여기다가는 못 붙이나?”
“네.”
분노 이후에는 걱정인지, 채하민은 현재 세상에 있는 온갖 염병이란 염병은 다 떨면서 나를 걱정하다가 쓰러진 상태다. 썩 나쁜 기분은 아니지만, 부끄러움은 전부 내 몫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하민, 집인데.”
“…응.”
음, 설명이 모자랐나 봐, 그만 일어나라는 뜻이었어, 미친놈아. 나는 어이가 없어서 실소 몇 번 하다가 일단 침대에 시체 같은 채하민을 던져 놓았다.
“으억!”
아파하다가 다시금 잠에 빠져드는 놈은 간단히 무시. 나는 겉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며 밖으로 나왔다. 술 냄새를 빼야 하니 베란다에 걸어두고 소파에 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더럽게 긴, 하루였어.
“형, 좀 잘 해 봐요.”
“미안해, 내가…….”
“제가 계속 이기면 노잼이잖아요.”
“나도 노력 중이란다……. 그러니까 운적 요소 좀 더 많이 들어간 걸로 하나 사자!”
“어, 딱 기다려요, 바로 주문 중.”
류이든은 아빠 미소를 지으며 이현재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이현재가 냉정하게 쳐내니 ‘힝―’이라는 끔찍한 의성어와 함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인간이라는 꼴불견 표정을 지었다.
어쩌지, 벽돌 쿠션이 없어서 진짜 내리칠 것만 같은데. 저 인간이 나한테 남긴 색깔은 그리 보기 좋은 색은 아닐 거야.
“이든.”
“우리 동화 형은 항상 형 소리를 떼먹더라.”
“대신 말해 주잖아.”
“왜?”
류이든은 목소리만 듣고는 뭔가 심각하게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이현재한테 들리지 않을 거리로 다가앉아서 속삭였다.
“그 정도 일 아냐.”
“뭔데, 그럼?”
“혹시, 아이돌 제작 공방, 이상한 소문 같은 거 없어?”
그러자 류이든은 미세하게 눈가를 꿈틀거리고 입꼬리를 작게 파르르 떨었다. 어떻게든 표정 관리에 들어간 얼굴이지만, 우리가 짧게 본 사이도 아닌데, 안 들킬 거라 생각하는 게 우습다.
“…현재.”
“네, 내일 살아서 봬요, 이든 형.”
이현재는 어느새 정리를 끝마쳤는지 은은한 미소와 함께 방으로 쏙 들어갔다.
“다 불어.”
“아이, 아직 말해야 할지 말지 고민 다 안 끝났는데.”
“정보는 알면 알수록 좋잖아.”
“추측이라서 혹시 혼선 줄까 봐. 형아는―”
“애교 부리면 진짜 멱살 잡을 거야.”
“달에 한 번은 잡으면서!”
억울한 척하지 마, 보통 합당한 이유가 있어서 잡았으니까. 딱 한 번 심심해서 잡은 적 있지만, 류이든 스스로 뭔가 잘못했겠거니 생각하길래 말없이 지나갔다.
“여튼, 말해 봐. 뭔데.”
* * *
류이든은 차근차근 말을 정리해서 전달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표정으로 듣고 있는 지동화의 눈치를 보면서.
‘아, 이럴 줄 알고 편지로 전해 줄까 생각했는데!’라고 후회해도 늦었다. 들킨 걸 어쩐담.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약가안, 조작 냄새가 난달까? 추측이지만?”
한껏 썩어들어가는 표정. 지동화가 진지하게 짓는 경멸의 표정이 뭔지 오늘 처음 알아 버린 류이든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진짜 인간 취급도 안 해 주는 눈빛이야.
류이든은 자기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손이 바들바들 떨리는 걸 막지 못했다.
“음…….”
“그런데, 사실 알아도 별수가 없잖아? 우리가 뭐 보이콧을 선언할 수도 없고, 폭로를 할 수도 없고, 그래서 그냥 모르는 게 약이라는 생각으로 바로 말하지는 않았던 거고. 그러니까 나는 조금 용서를 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야, 사랑하는 동화야.”
“형한테는 아무런 화도 안 나. 형은, 나 생각해 준 거란 거 아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표정은 경멸로만 가득 찬 건 어떻게 된 건지 조금 여쭤봐도 될까요, 선생님? 제가 살면서 처음 보는 것 같아서요.
지동화라는 인간을 잘 아는 류이든은 고심했다. 저 인간은 윤리적 기준이 높지만, 악인을 엿 먹일 때에 한해서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모든 수단을 고려하는 인간이다.
최악의 결과를 예방하기 위해서, 없던 일로 만들 수만 있으면 과장 조금 보태서 사람도 묻을 인간이다.
“…누구 죽이고 그러면 안 된다, 동화야?”
“무슨 소리야. 내가 굳이.”
‘아니, 너 가끔, 정말 가끔 제정신 아니잖아. 고도로 발달한 지능이 광기랑 구분 못 한다는 말이 옳다는 걸 너로 알았다고, 난.’이라고, 류이든은 속으로 소리쳤다.
심지어는 ‘내가 굳이’라는 말이 ‘다른 사람 손을 빌린다면, 얼마든지’라고 들리는 지경까지 도달하고 말았다.
“어차피 경우 PD님 얘기 들어보면 그런 짓 할 사람도 아닌 것 같았고. 알아서 잘 막으시겠지.”
화재 진압 시도.
“사람 일은 모르잖아, 형.”
실패. 경멸을 지우고 냉정하게 무언가를 고심하고 있는 지동화를 보니, 다 글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동화 명예 소방관 자리에 있는 채하민이 만취해 쓰러진 지금, 아무도 지동화가 폭주하는 걸 막을 수 없다고, 류이든은 씁쓸하게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