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21)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21화(189/343)
지속적인 기습. 그리고 지속적인 피드백. 내가 이들을 위해 우선 해 줄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
지금 시각은 새벽 세 시 무렵. 손에는 커피가 여러 잔 들려 있다. 편곡 팀원분들의 기강을 확립하고, 연습에 미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계략의 일환이다. 모두들 내가 담당한 이상 의지나 노력이 부족해 보여서 탈락하는 건 원치 않는다.
단체 연습실이 쫙 깔려 있는 복도를 걸어가며, 불이 켜져 있는 곳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정적. 모두들 편안한 얼굴로 이쪽을 보다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하나, 둘, 셋…, 총 열두 명. 만족스러운 숫자다. 아무래도 곡과 안무가 완벽히 나와서 그런지 열의가 높아진 듯싶다.
“…와, 씨. 뭐지, 헛것 보나.”
나와 큰 접점이 없는 한 연습생분은 자기 눈을 비비다가 다시 나를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맞습니다. 실존 인물입니다.
“커피 드시면서 힘내세요.”
사회성 특강의 성과를 과시하며 나는 커피를 한 잔씩 돌렸다. 다행히 모자라진 않았다.
“…저, 왜 오셨는지, 여쭤봐도.”
못 올 곳 온 사람처럼 왜 그러실까. 다른 분들도 가끔 와서 연습 봐주고 그러신다던데. 루카치 선배님에게 들어서 다 알고 있습니다.
“제가, 연습을 조금 봐드리고 싶어서요.”
지동화의 새벽 교실, 스케쥴 끝난 저와 연습에 지친 여러분들이 서로 힘겹게 나아가는 시간입니다.
모두들 경악하는 와중에, 그중에서도 우리 편곡팀에 있었던 사람들만 익숙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분들은 모두 나에게 개인 교습을 받다시피 편곡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빠르게 열을 맞춰 섰다.
“선생님, 오늘도 오셨네요!”
다람쥐놈 옆에 서 있던 지상 씨가 손을 흔들었다. 류이든과 석준을 반쯤 섞어 놓은 인간이라고 내 마음속에선 결론지었다.
“원하지 않으시는 분들도 있을 테니, 원하시는 분들만 따로 옆 연습실로 가실까요.”
하지만 알고 있다.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지금 이곳에 무수히 많은 카메라 세례가 쏟아지고 있기에, 차마 원치 않는다고 말할 수 없음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해 드리겠습니다.
* * *
언젠가 말한 적 있지만, 정의가 무엇인지 밝히는 것보다, 무엇이 정의가 아닌지 밝히는 게 더 쉽다. 도둑질은 사정이 이해될 수는 있어도 정의라고 부를 수는 없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이 가담할 수도 있는 그 짓거리처럼.
“어, 동화 씨, 하하, 좀 어색하네요.”
“잘 들어가셨나요?”
물론 일개 출연자라서 당장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몰래몰래 정보를 퍼뜨려서 프로그램 자체를 망하게 하는 수도 있지. 내 방식대로 아무렇지 않게 난장을 낼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지이기도 하다.
“동화 씨랑 연습생이 함께 편곡한 곡, 나쁘지 않다고 내부에서 칭찬이 자자해요!”
특별함을 노리지 않고 무난하게 듣기 좋은 곡을 만드는 건 의외로 어렵지 않아서 내가 손을 거의 대지 않았는데도 연습생들이 알아서 잘 편곡해 줬다.
“그날 연습생들이 엄청 주눅 들었잖아요. 최종 확인할 때.”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에이, 너희들 잠이 오는 게 신기해, 라고 말만 안 했지, 사실상…….”
그저 현실을 말해 줬을 뿐이다. 대체 어떻게 경쟁 오디션장에서 둘이서만 편곡하고 있는 꼴이 나올 수 있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아직 새벽도 아닌 시각이었는데 말이다.
“어쨌든, 오늘도 힘내 주세요! 냉정한 평가 해 주시면 돼요.”
“네, 그럼.”
어차피 일단은 잠정적인 일. 벌어질지 아닐지도 확신할 수 없는 일. 우선 나한테 당장 득이 되는 건 없는 일. 지금은 가만히 할 일 하면서 만일을 대비할 수밖에 없다.
류이든이 보기엔 내 대비가 ‘급발진’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은 서로 다른 거니까.
* * *
곡이 완성되고, 본격적인 무대 준비를 위한 개인 연습이 마무리될 시점. 기존의 평가를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는 하는데, 사실 큰 의미는 없다.
애초에 평가가 데뷔에 직결되는 것도 아니고, 인기 투표로 살아남는 멤버가 데뷔를 한다고 하니까. 심지어 백 명이나 되는 사람 중 데뷔하는 인원이 7명뿐이라고 하니, 아주 난장이 날 예정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형적인 것 같은데.”
“뭐가, 동화야.”
지은영 선배님이 관심을 보였다. 말총머리로 끌어올린 헤어스타일이 참 잘 어울리셨다.
“한 그룹인데, 경쟁 요소가 과한 것 같아서요.”
내가 서바이벌 프로에 출연했을 때도 똑같이 느꼈던 의문. 한 그룹이고 데뷔를 하면 함께 응원하게 될 텐데, 어째서 그 멤버들의 팬덤끼리 분쟁을 일으킬까.
경쟁은 몰입을 유발하고, 몰입은 화제로 이어진다는 걸 모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그룹’인 이상 미래를 생각하면 손해가 아닐까. 자신이 응원하는 멤버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망했으면 좋겠다는 식이, 지향할 방향인 것 같지는 않은데.
지은영 선배님은 내 이야기를 차근차근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네 말이 뭐, 틀린 건 없지? 그런데, 어쩔 수 없잖아. 얘네는 아직 확정은 아니어도 3, 4년 정도 같이 활동하고 해체할 애들이니까. 미래를 고려하기엔 짧잖아.”
세상에. 몰랐습니다. 지은영 선배님은 쿠키를 베어 물다가 내 표정을 보시고는 의아하다는 눈초리를 지었다. 그러다 눈치를 채셨는지 얼굴에 경악이 피어올랐다.
“뭐야, 프로젝트 그룹 몰라? 어떻게 사십 먹은 나보다 모르니, 얜.”
“친구한테 들었는데, 얘는 아이돌 문화 지식이 백지상태라던데요?”
백지라기엔 요즘 꾸준히 공부하는 중이라 상당히 채워져 있습니다, 루카치 선배님.
“어머, 얘는 진짜 작곡 공부만 했나 봐. 그리고 요즘 아이돌들은 원래 그런 거 아냐? 개인팬 문화가 더 활발하다고 들었는데.”
“맞아요. 소속사들도 그런 거 고려하고 앨범에 반영하기도 하니까. 그래도 동화 후배 있는 그룹은 사정이 다르다고는 하더라고요. 비교적 악개가 적다고 하던데.”
으음, 악개가 뭔지도 모르겠는걸. 오늘 집에 가서 이현재나 류이든한테 강의 한번 들어봐야겠어.
“그래?”
“네. 의외로 소속사에서 고르게 띄워주려고 노력하고 있대요. TOT가 번 돈으로 안전하게 기르는 느낌. 그리고 무대에서 수납되는 애도 없고. 동화 후배가 미친 듯이 자컨 찍어 파는 중이기도 하고.”
“그래? 신기하네. 나는 동화가 쓴 곡 몰아 들으면서 옛날에 즐겨 듣던 작곡가 곡 생각나고 그러더라. 그 사람 실력이 좋았거든. 동화가 작정하고 발라드곡 써도 좋겠다 싶던데.”
“그러고 보면 신기해. 춤선도 엄청 깔끔해요, 선생님.”
“보컬도 괜찮지. 조금만 더 기르면 솔로로도 흠잡을 데 없을걸?”
“약간 사기 치는 것 같긴 해요.”
갑자기 코치분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나를 칭찬하는 분위기. 각자 나보다 몇 배는 높은 실력으로 무슨 소리들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불편해 죽겠다.
팀 내에서는 나름대로 맏형 근처라 이런 둥가둥가 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겪은 적은 없었다. 다른 곳에서 촬영할 때도 이현재나 채하민 덕분에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있을 수 있었는데, 피할 곳도 없다.
음, 도망치고 싶어. 원형 책상이라 지난번처럼 ‘끝자리’도 아니라서 바느질로 시선을 피할 수도 없다.
“그러면서 취미가 십자수.”
“학교는 한국대라면서.”
“무슨 희귀종인 거지?”
“그러게, 신비로운데? 심지어는 철학과라면서. 어으, 무슨 혼종이니, 얘는.”
나는 그저 침묵을 지킨 채, 류이든의 사회성 특강 심화편의 내용을 따라 ‘그렇습니까, 하하.’라는 뉘앙스의 표정으로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이럴 때는 류이든 말을 들어서 손해 볼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저것 봐, 저것도 입력된 행동이야.”
“기계…….”
“사람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정말 몸을 어찌 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고 싶은데, 출연 계약 때문에 꾹 참고 있다.
“아니, 귀 붉어진 거 보면 사람은 사람인 것 같아요.”
“수치를 아는 짐승은 인간뿐이라잖아.”
지금, 놀리는 게 분명한데, 어쩌지. 말마따나 이런 건 코딩되어 있지 않은데. 류이든이 옆에 있었으면 멱살이라도 잡았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여러분, 대화도 촬영 중이에요! 백스테이지 영상으로!”
“어우, 더 좋네. 우리 막내 스포트라이트도 받고.”
“그러니까요. 저희 한 10분만 더 칭찬할까요.”
“그러면 동화 귀 불타서 없어질 것 같은데, 괜찮아?”
나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공기가 두터워서 입을 여는 게 버거울 지경이었지만, 용기를 냈다.
“…안 괜찮습니다.”
“아이고! 우리 막내가 드디어 의견 표시를!”
“아, 조금 귀여운데요.”
다, 나가 주세요. 혼자 촬영하고 싶습니다.
* * *
힘겨운 대기 시간이 끝나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대형 화면을 보며 연습생들의 개인 영상을 하나씩 감상했다.
“어우, 얘는 귀엽다. 좋아해 주시겠어.”
“그런데 실력은 여전히 그대로네요. 보컬은 금방 안 느니까 그렇다 쳐도, 춤이 저 정도면 노력했다고 보기에는…….”
“그러게.”
나는 별말 없이 가만히 감상만 했다. 노력 안 한 게 티가 나니까 짜증 나서 뭐라 덧붙일 말이 없었다.
“얘는 그냥 잘해.”
“맞아요. 조금만 더 다듬으면 데뷔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죠.”
그리고 원래 잘했던 사람들도 별로 할 말이 없다. 원래 잘했는데 뭘 더 말하나. 하지만, 내가 기습 연습실 습격을 했을 때 자주 보였던 얼굴들은 굳이 한마디씩 얹어 줬다. 노력은 보상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저분은, 연습실에 갈 때마다 보였습니다. 제가 새벽 세 시에 잠시 찾아갔었는데, 그때도 있었습니다.”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너는 왜 새벽 세 시에 거길 갔어?”
퇴근하는 길에 잠깐 미쳐서요. 저희 편곡팀이 나태했는데 다른 연습생들은 어떤지 너무 궁금했습니다. 류이든 말로는 급발진 상태였습니다.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면 꼭 이 자리에서 말해 주고 싶어서요.”
하지만 그대로 말하는 건 비방용이니까, 조금만 사실을 왜곡해서 말하자.
“와아, 씨, 뭐야. 감동적인데?”
“…그.”
“아니야, 다 알아. 사실은 애들 엄청 좋아하는 거.”
아니요, 나태한 분들은 보고 있으면 조금 나가 줬으면 좋겠다 싶은데요.
그러나 실상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따스한 시선으로, 나를 맑은 눈동자로 보고 있었다. 시선이 어떤 물리적 실체를 가진 것처럼, 뺨에 꽂히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저는 저분 실력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합니다.”
“맞아요, 저도. 춤선 다듬어진 게 보여.”
다시 이어지는 감상. 백 명이나 되는 사람의 영상을 집중해서 보는 건 힘들었지만, 사이사이 낯익은 얼굴들이 보일 때마다 입이 절로 움직였다.
노력한 인간들은 대우받아야 한다. 그리고 나는 저들과 다르게 PD가 직접 좋게 편집해 주겠다고 약속한 사람이다. 내가 굳이 언급하면 저들이 받을 분량도 조금이나마 늘어나겠지.
“지상 연습생은 실력이 좋은 거랑 별개로, 연습실에 항상 은구 연습생이랑 같이 있었습니다.”
같은 소속사 출신이니까, 무조건 방송에 나갈 예정이다.
“권한진 연습생, 춤 실력이 많이 성장한 게 눈에 띕니다. 연습실에서도 눈에 띄었고, 무엇보다 편곡 실력은 제가 보증할 수 있습니다.”
개과천선은 실존한다. 갓에이의 윤성호가 직접 증명했으니 믿어 의심치 않는다. 비록 비양심적이고 아마추어적인 실수를 범한 사람이었지만, 개같이 노력하는 모습이 장했다.
“그럼 어느 정도 등급?”
“네. A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춤이 아직 아쉽지만, 편곡이나 보컬 실력은 정말 좋습니다.”
그래, 실수할 수 있지. 바꾸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 준다면, 없던 일로 할 수는 없을지라도 사람들의 시선은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이런 부분도 참 많이 바뀌었다 싶다. 예전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별로 신경 쓰지도 않고 무시하지 않았을까. 이게 다, 채하민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