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22)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22화(190/343)
채하민은 작업실에 앉아서 불안한 눈초리로 말을 걸었다.
“나, 실수한 건 없지, 진짜, 동화야!”
놀랍게도 내 비밀을 모두 아는 첫 번째 짐승이 될 수 있었던 채하민은, 술이 웬수라 대부분의 대화를 기억하지 못했다. 유일하게 알고 있는 건, 내가 동생에게 했던 일 정도. 그래서 다음 날 일어나서 눈물 흘리며 다시 날 부여잡고 우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러고 나서 PD님과 만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곤 계속 저 상태다.
“응.”
나한테 왜 그러냐고 노발대발한 거 빼면.
“아아, 나는 술이 왜 이렇게 약할까……. 너랑 끝까지 술 마시는 게 꿈인데.”
다시 태어나렴. 환생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있으면 그쪽이 빠를 거야.
“생각해 봤는데, 너랑 듀엣곡.”
“응.”
“내가 완전히 곡을 다 준비하면, 네가 영상 컨셉이랑 안무를 짜는 게 어떨까 싶어.”
“오, 분업! 설렌다, 좀.”
채하민은 박수를 짝짝 소리 나게 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생각해 보면, 작업할 때 채하민을 부르는 빈도가 현저히 적긴 했지. 완성본을 듣고 안무를 짜는 데 참여하는 게 더 일반적이었으니까. 놀이공원 처음 오는 아이 같은 얼굴이라 잠시 날뛰게 내버려 뒀다.
“그럼 언제 작업 들어갈 거야, 동화야?”
“그래서 초본을 써 왔어.”
“…응?”
채하민이 설레어 하던 자세 그대로 굳었다. 당혹감이 느껴지는 얼굴로 뭐라 말을 할지 고민하는 듯 입술을 오물거렸다.
“그러니까, 음, 다 썼다고, 동화야?”
끄덕.
“우리 술 마시러 간 게 이틀 전인데?”
끄덕.
“그러니까 하루 만에 썼다고?”
고개만 끄덕거리는 것도 지겨워 죽겠어, 하민아.
채하민은 마지막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자 손을 들어 내 어깨를 톡톡 후려쳤다.
“제발 좀 쉬어! 왜 안 쉬는데! 왜!”
“아니, 쉬는 겸 쓴.”
“그만! 그 말도 너무 많이 들었어! 어제 휴일인데 어디 갔나 했어! 작업실에도 없길래 뭔가 했는데!”
“몰래 작업하는 건 익숙해서.”
너희들이랑 지내면서 는 것 중 하나가 도주란다.
“자랑이냐고, 동화야…….”
채하민은 이내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한숨을 푹 내쉬며 소파에 드러누웠다.
“나 안 해. 나 일주일 뒤에 할 거야! 차라리 나랑 놀아 줘, 놀러 가자!”
“바빠.”
“그럼 쉬어! 쉬라고! 나는 진짜 걱정돼서 죽을 것 같아, 동화야…….”
아, 조금 재밌다. 잔소리 들을 일이 살면서 손에 꼽아서 그런지 잔소리 듣는 상황이 유쾌하게 느껴지고 있다. 음, 나도 점점 멤버들을 닮아가는지 제정신은 못 되는 것 같아. 아무리 봐도 근묵자흑이라는 말이 옳다.
“어쨌든 들어봐, 하민.”
제목은 ‘Pieces’. 채하민의 이야기를 들으며 했던 쓸데없는 생각에서 영감을 받았다. ‘나’라는 인간을 설명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상대.
서로가 서로에게 자국처럼 남아서 자신을 구성하는 요소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채하민에게 내가 그렇듯, 그 반대도 그렇겠지. 당연하게도 부모님부터 목화, 다른 멤버들까지, 나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가 되었고.
나는 말없이 일단 곡을 틀었다. 우선 구색만 갖춰 둔 부분을 뛰어넘고, 가이드 녹음까지 붙어 있는 후렴구로 바로 넘어갔다. 이제는 전혀 부끄럽지 않은 비너슈니첼 소리와 함께.
채하민은 여전히 삐진 모양새였지만 귀만은 열려 있었는지 소리에 집중했다. 개인적으로는 몽환적이라면 몽환적인, 해 질 녘 노을이 어울리는 베이스 라인이 마음에 들었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타인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 곡은 왜 또 좋아!”
채하민은 짜증 난다는 듯이 온몸을 뒤틀면서 소파를 부술 듯이 몸부림쳤다.
“뭐라 할 수도 없고, 진짜.”
“가사도 대충 써 뒀어, 후렴구는.”
나는 다른 버전을 재생했다. 가이드 라인 대신 내가 직접 쓴 가사가 흘렀다. 몽환적으로 흘러가는 베이스 라인 사이 짧게 한 마디 정도 흥얼거리듯 들어가는 가사다.
‘I’, made with pieces of you.
‘I’, getting colored by you.
나도 옆에서 같이 흥얼거리고 있는 와중에 채하민은 곤란하다는 듯이 손을 움찔거리며 물었다.
“…나, 못 알아들으면 안 되겠지?”
저런, 그렇게 어려운 단어는 아닌 것 같은데 내 발음이 별로인 걸까. 아쉽게도 그런 것 같지는 않으니 채하민이 학창 시절을 연습에 충실하게 보냈다는 사실로 봐야 할 것 같다.
“아마도.”
“준이랑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했어야 하는데. 이럴 때 알아들었으면 멋졌을 게 분명해…….”
저런, 언어는 언제나 중요한 건데 이제야 잘못을 깨달았구나.
“어때?”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아직 미완성된 초본을 남한테 보여 주는 건 류이든이나 석준 말고는 처음이라 그런지 반응이 궁금했다.
“…쉬라고 말하는 게 잘못된 건지 진지하게 고민 중이야, 동화야.”
“곡이 좋아서?”
“조금만 일을 덜 잘했으면 좋겠다, 그런 거지.”
채하민은 자리에서 훌훌 털고 일어나서는 다시 자리에 풀썩 앉았다. 해탈한 것처럼 천장을 바라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래도, 조금 쉬엄쉬엄해, 동화야. 요즘엔 쓰러지는 일 없었어도, 나 아직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거든. 오늘 듣고 진짜 심장이 철렁.”
채하민은 요란하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건, 몰랐는걸. 요즘은 컨디션 관리를 스스로 잘하고 있어서 여전히 옛날 일을 떠올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약간 부모님 속 썩이는 자식이 된 기분인데.
“이번엔, 일찍 들려주고 싶어서 그랬어.”
정말로 술집에 나설 때부터 머릿속에서 작곡하고 있었거든, 하민.
“…음, 미안.”
채하민은 머리를 한 번 크게 휘젓고는 웃었다.
“십자수 시간 좀 늘려라! 동화야! 잠도 좀 더 자고!”
잠은 너도 잘 못 자면서. 요즘 드라마 때문에 이곳저곳 얼굴 비추는 사람이. 생각해 보면 쟤도 나만큼 일 중독이지 않나, 허구한 날 안무 커버 영상 올리던데.
순간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채하민은 쓰러진 적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 * *
[아이돌 제작 공방 제작 설명회.JPG](기자 회견 현장 촬영 사진)
(기사 전문 링크)
우리, 얼굴만 보고 뽑기로 약속해. 얼른.
댓글
―ㅋㅋㅋㅋㅋㅌㅋㅋㅋㅋㅌㅋㅋㅋ 단호하네
―야 근데 코치들 캐스팅 빵빵하다고 생각하면서 봤는데 지동화가 저기 낄 수가 있…. 나…?
└작곡 화제 특별 전형.
└화제성 원툴이 맞다고 봐야지 ㅇㅇ
└일단 HBS에서 니체 소속을 부른 것부터가 ㅅㅂ 말이 안 되긴 해 ㅋㅋㅋㅋㅌㅋㅋㅌㅋㅋ
└그래도 작곡이나 편곡 능력 하나는 검증돼 있으니까
―와 대형 서바이벌 하나 오냐 충분히 긴장된 돌판인데 ㅅㅂ ㅋㅋㅋㅋㅋㅋ
└언제까지 긴장을 줄 셈이야… 악개 대전 열릴 거 생각하면 갑자기 나 ptsd 올 것 같아
└몇 주 후에 최애픽 생길 거 다 안다
―절대 지켜지지 않을 약속… 덕질 dna는 얼굴만 보게 만들지 않아…
└춤선/입꼬리/목소리/손/말투/성격 기타 등등에 사고당할 사람이 생길 예정
―아 또 정병 제조기 시작됐냐…. 이러고 한 처먹을 내 모습이 벌써 보여 ㅅㅂ…
―돌판 ㅈㄴ 뜨거워질 예정.
음, 정말 가끔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을 때가 있다. 이현재가 보여 준 게시물을 읽는데 왜 같은 한국어를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그러니까 요약하면…, 이분들은 곧 있을 서바이벌이 뭣 같을 게 분명한데두 볼 수밖에 없다, 그런 말을 하구 있어요.”
음.
“그럼 안 보면 그만이라는 말은 무의미하겠네.”
“그렇죠? 약간 그런 거 아닐까요. 아플 거 알면서 딱지 떼는 느낌?”
“뭐, 나는 화제 수준에도 안 드네.”
“다행이라면 다행이네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말을 움직였다. 이현재가 가져온 추상 전략 보드게임을 하며 놀고 있는 와중이라서.
“이거 괜찮지 않아요? 판 없이 말만 있어서 주머니에 들구 다니기 딱. 대기실에서도 놀 수 있구.”
“이번에 정산받은 거 8할이 보드게임에 들어간다는 소문이 있던데, 현재.”
“틀렸어요. 절반 정도예요.”
마지막으로 말을 움직이고 나는 다시 태블릿으로 시선을 돌렸다.
“…또 졌네. 이든이 형 마음을 알 것두 같아요.”
“일부러 져 주는 건 싫잖아.”
“음, 약간 승부욕이 타올라요. 기다려 줘요. 두 달 후에는 제가 이겨요.”
미안한데, 두 달 후에도 똑같이 말하고 있을 것 같아, 현재. 이현재는 그러고 나서 소파에서 잠자고 있던 류이든의 어깨를 톡톡 쳐 깨웠다. 주말에 자고 있는 아버지 깨워서 놀아 달라고 하는 아이 같은 모양새라 묘한 그림이었다.
어쨌든 잘은 몰라도 아이돌 제작 공방은 화제가 되어 이곳저곳에서 불타오르고 있는 것 같다. 일단 HBS에서 작정하고 보도자료를 뿌리는 중이라 그러지 않는 게 이상할 지경이다.
이렇게 보면, 이런 프로젝트를 맡을 정도인 정경우 PD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알아볼 건 알아봐야지 않을까.
“현재야, 쟤 핸드폰 좀 뺏어.”
“형 차례예요.”
“아, 나는 무서워서 못 하겠고, 하민아, 도와줘!”
“동화가 뭐 해?”
채하민은 커피를 쪽 마시며 내 옆에 앉았다.
“이든이 형이 날 호출한 거면, 또 이상한 생각 중?”
“그럴 리가.”
“그치? 걱정이 심해, 저 형은.”
수긍이 빨라서 좋아. 나는 핸드폰을 보며 빠르게 문자를 읽었다. 화양 씨에게서 온 답장, ‘알아볼 테니, 시간 될 때 차라도 한잔 마시자.’
음, 아무리 봐도 이번엔 장기 하나 정도는 떼어주는 게 상도덕에 맞을 것 같다.
* * *
오랜만에 만난 화양 씨는 여전히 새하얀 머리칼을 비녀로 정갈히 하고 단정하게 한복을 입고 있었다. 그와는 달리 얼굴은 늙은 태가 나지 않아서 묘한 언밸런스가 있었다.
“그래서, 장기 하나 떼어준다고?”
“그 정도는.”
“미쳤니. 아니, 내가 어떻게 가을이 아들한테 그런 짓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원. 오랜만에 봐서 못 하는 소리가 없어.”
껄껄 웃은 화양 씨는 말 같잖은 소리 하지 말라면서 손을 저었다.
“들어보니까, 아직 아무것도 안 했어.”
“아직입니까.”
“응. 아직. 편집 좀 잘해 달라는 이야기만 오가고 있더라. 그거야 늘 있는 일이기도 하니까, 뭐.”
“그렇습니까.”
“당연하지. 백 명 중에 집중 조명할 수 있는 사람 숫자는 많지 않잖니. 방송국 사람들이랑 관계가 좋으면 그럴 확률이 높지. 편집을 좋게 해 주는 건 범죄는 아니지.”
음, 확실히. 인기가 분량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 반대가 없으리라고 보기는 어렵겠다. 애초에 더 많이 화면에 비치지 않은 사람은 분량을 받기 힘들 테다.
그래서 그런지 어떻게든 방송 외적으로도 많은 영상을 제공하려고 노력하겠지만, 처음에 방송으로 유입된 분들은 그런 영상을 접할 기회가 적어지겠지. 우리 서바이벌에 비해 인원수가 열 배나 늘어난 셈이라 그런 걸까.
“이상적으로는 그런 것도 없으면 좋겠다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우니 그건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런데 네가 말한 건 사안이 무거워. 실질적으로는 사기에 가까운 행위잖아?”
화양 씨는 짜증 난다는 듯이 미간을 구겼다.
“그런데 아직 확실히 나온 말은 없다. 그냥 인사드리고 술 한잔 같이 마시고 그 정도야. 늘 있는 영업 같은 식이지.”
“혹시, 무언가 알게 되신다면.”
“전해 줄게. 어차피 더러운 인간은 파면 뭐가 나오기 마련이라, 사전 작업도 네가 말한 대로 조금 해 주지, 뭐.”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개소리는. 엄마랑 닮아서 아주 얄미워. 알게 모르게 다 조지면서 정작 자기는 모른 척. 아주 묘하게 말해서 녹음으로도 증거 못 남기게 말하는 건 재주더라, 이것아. 내가 듣기에는 분명 ‘혹시 그런 거면 엿 먹이고 싶습니다.’라는 말이었는데. 녹음한 걸 들어보니 ‘걱정스럽습니다.’라는 뉘앙스더라고. 요망하다, 요망해.”
아쉽게도 들켜 버렸다. 화양 씨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장난스레 혀를 찼다.
“아주 똑 닮았어. 은근하게 자기 원하는 대로 사람 끌고 가는 것까지.”
“…유전자가 참 신기한 것 같습니다.”
화양 씨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크게 웃으시고는 말을 돌렸다.
“장기 떼어주는 건 됐고, 장기나 한판 둘까. 너희 부모님이 같이 가진 취미였는데, 너도 둘 줄 알지? 한 30분 여유 시간 되니?”
오늘 들은 정보의 대가는 장기(臟器)가 아니라 장기(將棋)인가 보다.
“네.”
류이든의 사회성 특강, 윗사람과 게임을 할 땐 반드시 일부러 져줄 것. 오늘 할 모든 게임을 질 자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