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26)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26화(194/343)
인기가 조금 있는 것,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 블로센스 공식 통계청이 내준 결론이었으니까.
“…신기하긴 해요.”
“그래?”
“네. 제 개인곡도 나름대로 스폿 받았던 것 같은데, 조회수 올라가는 속도가 달라요.”
음, 저런.
“…전혀 좋지 않은데.”
가사에 들인 공이 다르다고. 이현재가 머리를 싸매며 하나하나 고심해서 짜낸 문장들로 이루어진 곡보다 어떻게 내가 ‘아, 모르겠다. 포기하자. 망할.’이라는 상태로 쓴 가사의 곡이 더!
“사실 이게 알고리즘이구, 이게 밈이구, 이게 옳게 된 인터넷 세계이기는 해요. 저는 유입될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니까, 졌잘싸의 표본 같은 것 아닐까요?”
‘졌잘싸’가 뭔데. 문장 단위로 말해, 망할 MZ세대야.
“지금 혹시 놀리는 거야, 현재?”
이현재는 맑고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은요.”
내 눈을 들여다보던 이현재는 손을 휘저었다.
“이상한 생각 사양할게요. 저는 그 곡 부른 것만으로두 영광이었는걸요. 세상이 얼마나 달라 보이던지.”
난 아직 그게 잘한 짓인지 잘 모르겠어. 윤리는 항상 너무 어렵거든. 지금 너만 보면, 네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게 보여서 좋은데, 가끔 차단함에 보이는 메시지가 눈에 밟힐 때가 있어, 현재.
“어쨌든, 더 오를 것 같아요. 영상이 조금 정신 나간 것 같은 매력이 있어서……. 형, 멘탈 교실 보시는 분들은 다 재밌게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약간 교수님의 이중생활 같은 느낌으로.”
“…그럴 리가.”
“이미 그렇게 즐기시는데요? 지 교수님, 채 교수님이라고 불러요.”
전국의 훌륭한 석학들이여, 저의 부덕을 용서하십시오. 아니, 내 부덕은 아니어도 어쨌든. 저는 당신들의 이름을 더럽혔습니다.
“물론 곡이 인기가 있다기보다는… 밈이 된 느낌이긴 한데요.”
“다행이네.”
그게 대표곡 소리 들었으면 마음이 아팠을 거야. 곡은 마음에 들어도 가사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거든. 언제 한번 뜯어 고쳐서 앨범에 실을 거야.
나랑 채하민의 듀엣곡이 저 모양이라니, 월간 지동화가 아니라면 어떻게든 막았을 텐데.
* * *
그런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편곡 중간 평가를 하려고 잠시 편곡 멤버들만 모인 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나는 하나같이 가사는 제대로 발음하지 않고 허밍으로 멜로디만 부르고 있는 연습생분들을 보며 썩어 들어가는 표정을, 굳이 숨기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교수님!”
다들 이제 안 무서워하거든, 망할. 입이 험한 시골 할머니가 사실 마음은 온화하다는 게 들킨 셈이다.
물론.
“여유가 만만입니다.”
아무렇지 않게 분위기를 조지는 건 공부를 하지 않아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교수님이라고 불러줬으니, 아주 잠시 대학생활을 했을 때의 기억을 되살려 볼게요, 연습생 여러분.
“오늘 피드백 날인데, 아무래도 오늘 제가 놀랄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좋은 곡들이 제 귀를 황홀하게 해 줄지 저는 기대가 만만입니다.”
하하, 이건 논문 첨삭이라고 하는 겁니다.
저는 공격적인 빨간색 펜이 아니라 안심을 주기 위한 파란색 펜을 들고, 정작 첨삭의 내용은 가슴을 후벼 파듯이 적을 예정입니다. 저는 첨삭에서 크게 지적받은 적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들어보니 기분이 별로라던데요.
그리고 우리 연습생들은 알고 있다.
우리 할머니가 비록 온화하지만 완벽주의자라서 방에 먼지 한 톨도 두지 않는 성격이라는 것도, 그래서 아끼는 손주라도 먼지 묻은 신발로 자기 방에 들어오는 건 허락할 수 없는 성격이라는 것도.
싸하게 내려앉는 긴장감. PD님, 제가 이렇게 열심입니다. 방송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 중입니까. ‘오늘은 무서운 분위기 연출 약간만 부탁드려요!’라는 말을 이렇게 충실히 지킵니다.
“이번에 20명이 탈락했고, 저랑 부딪힐 일이 많으신 여러분은 여덟 분이 생존하셨습니다.”
다람쥐 한 마리가 자리에 앉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백 명 중 스무 명, 20%다. 평균적인 수치로 편곡 멤버들 또한 탈락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지. 아니, 그런데 어떻게 첫 번째 탈락에 스무 명이나 사라질 수가 있어.
“본격적인 첫 번째 유닛 대결이라고 할 수 있는 ‘콜라주’에서는.”
“크흡.”
“저도 웃긴 거 압니다. 하지만 제작진이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셔서요.”
제가 보기엔 제작진 중에 미술에 진심인 편인 사람이 있어서 이렇습니다.
“어쨌든 콜라주에서는, 여러분들이 팀장이 되어 콜라주를 구성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셨을 겁니다. 모든 멤버들이 돋보일 수 있는 구성인가 아닌가, 그걸 중점적으로 피드백해 드릴 것입니다.”
각자 팀원의 개성을 보여 줄 수 있는 무대를 구성할 것. 그게 유일한 규칙인 경연이다.
“각 팀원을 위한 고려 사항이 하나씩 있지 않다면, 저는 가차 없이 재작업을 요구할 것입니다. 팀원의 개성을 파악한 걸 알려 주시면, 그걸 편곡에서 확인할 수 있는지를 체크할 예정입니다.”
술렁술렁. 사흘 후면 당장 무대, 하루 후면 중간 점검. 재작업을 하라는 건 ‘엿 먹으세요.’의 다른 말일 뿐이다.
나도 이러고 싶지는 않은데, 제작진이 원하는 건 연습생들의 멘탈이 붕괴되는 상황인가 보다.
“…평가 기준이 늦게 공개된 것 같습니다!”
연습생 한 명이 참 옳은 소리를 했다. 대견해라.
“맞습니다. 제가 일부러 늦게 공개해 달라고 부탁드렸거든요.”
그리고 내가 한 소리도 옳은 소리다. 한 치의 거짓도 없이 그렇게 부탁했다.
“팀을 고려해서 편곡하는 건, 당연한 거니까요. 시험에서 성적을 높게 받으면 좋다는 사실을 사전에 공지하지 않았다고 문제 삼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편곡을 하는 인간이, 설마 자기 욕심껏 했을까 싶기는 하지만. 혹시 모르잖아, 이기적인 마인드로 자기가 돋보일 부분만 힘줘서 편곡했을지도. 그건 콜라주가 아니라 부조화일 뿐이다.
내가 아이돌 생활을 3년이나 하면서 깨달은 것이지만, 편곡할 인간이 팀 내에 있으면 전체적인 퀄리티를 높이면서도 동시에 멤버들의 개성도 보여 줄 수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분쟁의 씨앗이 심어지니까.
개같이 힘든 일이지만, 카메라에 1초라도 더 담기는 대가로 달게 받아들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럼 들어볼까요, ‘모두’를 고려한 편곡.”
꿀꺽. 침 삼키는 소리. 은근히 기분 좋아. 어쩌면 전생에 교수를 했어도 나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변태 같습니다!]가르치려는 건 어린애도 가지고 있는 심리다. 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아이에게 ‘이건 어디에 정리해야 하지?’라고 물으면 가르쳐 주며 스스로 정리한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다.
[그저 괴롭히는 게 재밌는 거잖습니까!]쉿, 그건 비밀, 기지생.
** *
“…지금까지 설명드린 이유를 모두 합하여, 적어 주신 고려사항은 곡에 반영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재작업을 요청합니다.”
두 번째 사형 선고. 정말, 마음이 아프다. 이렇게 내 입으로 두 팀이나 지옥에 보내 버리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심박수 정상, 반면 뇌를 스캔한 결과 대뇌 번연계 편도체 신경 활성화와 좌뇌의 전전두피질의 활성화를 고려할 때, 현재 감정 상태는 ‘유쾌함’이나 ‘즐거움’에 가깝습니다.]나도 알아. 재밌잖아. 이 두 명, 자기 파트에는 엄청 신경 썼는걸. 시청하시는 분들이 인성 얘기를 하지는 않게끔 그걸 언급하지 않은 데 감사해야 한다.
PD님이야 말하기를 원하겠지만, 알 게 뭐야. 이미 시청률은 잘 나온다던데.
앞에서 절망한 표정을 하고 있던 연습생이 돌아가고 나는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카메라 꺼지면 가서 설교라도 해야 할까, 아니면 주제넘은 짓일까, 잘 모르겠어.
“다음은, 은구 연습생. 들려주십시오.”
저런, 서바이벌 때 채하민 표정이랑 똑같네. 한껏 긴장해 놓고 아닌 척, 의기양양한 척하는 모양새.
“여, 여기, 계획서예요!”
“고맙습니다.”
나는 연습 영상을 틀고 계획서를 살펴봤다. 빠르게 왔다 갔다 하며 제대로 반영됐는지 확인한다. 실력은 전혀 보지 않고 그 의도만을 살펴보는 작업. 나는 머릿속으로 초 단위 분석을 마친 뒤 인상을 찌푸렸다.
“…양보가 항상 미덕은 아닙니다.”
라고 내가 말하니까 전혀 설득력이 없네. 채하민이 몇 번이고 해 준 소리, 귓등으로도 안 듣다가 이제는 내 입으로 읊고 앉아 있는 모양새다.
“단 한 명,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멤버가 있는데, 그게 은구 씨라 조금 안타깝습니다.”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었을까. 혹시 이렇게 하면 좋은 편집을 받을 거란 계산일까.
음, 앞 회 차 편집을 보니, 은구 씨는 충분히 그렇게 편집될 가능성은 있겠다.
“…네.”
그런데 표정을 보니 아닌가 보다.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 가득한 걸 보아하니. 분쟁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아니면 제대로 뜻을 표현할 줄 모르는 인간일 수도 있는데, 나한테 먼저 싫은 소리를 했던 인간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가능성이 낮다.
“음…, 팀 내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재작업까지는 아닙니다. 만일 원한다면, 그대로 진행하셔도 됩니다.”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이 정도.
* * *
촬영이 끝나고 재작업 요청을 한 둘에게 다가가 조용히 귓속말로 ‘개짓거리를 한 건 알고 있지만 체면을 생각해 언급은 않았으니, 부디 정신 차리길.’이라는 말을 몹시 예의 바르게 말해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우리의 은구 씨. 불법 샘플러인 한진 씨와 즐겁게 대화하고 있는데, 표정이 무거운 게 보였다. 툭, 어깨를 한 번 건드렸다.
“은구 씨.”
화들짝.
“네?!”
제가 혹시 죽이나요. 사이코패스 이미지는 많이 떼어냈는데 아직 붙어 있는 것만 같아서 아쉬울 따름입니다.
“무슨 일 있었는지 말 좀 해 주실 수 있나요?”
“…아, 그게.”
은구 씨는 곤란한 표정으로 옆에 있는 한진 씨를 쳐다봤다. 한진 씨는 잘생긴 얼굴로 ‘말해, 씨, 다 죽여. 안 그래도 짜증났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싶었다.
“어, 약간, 싸움이, 있어서 싸움을 중재하느라.”
“저런.”
안 봐도 알 것 같아. 살아남고 싶은 마음을 모르지는 않으니까.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염병을 떠니, 자기 자리를 내 주고 화해를 시킨 셈이네. 나쁜 선택은 아니다. 팀 분위기를 조지는 것보다는 얻는 게 더 많을 수도 있지.
“큼.”
한진 씨의 헛기침. 뭔가 더 있다는 신호. 나는 미소 지으며 은구 씨를 조용히 내려다봤다. 심리학적으로 사람은 미묘한 행동거지와 자세, 표정만으로도 상대방을 압박할 수 있다.
혼자 지낼 때는 남이 하는 걸 분석하는 용도로 배워뒀지만, 아이돌이 되고 나니 참 쓸 일이 많다. 우리 준성 선배님 괴롭힐 때도 그렇고. 역시 배워서 나쁜 건 술과 담배, 그리고 마약밖에 없다는 말은 틀리지 않다.
“…그.”
“그저 궁금합니다. 대체 왜 그런 선택을 한 건지.”
제대로 연습에 미쳐 있는 인간 중 하나라 애정이 가서 그렇습니다. 일하지 않는 인간이 일하는 인간을 착취하는 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으니까. 마르크스가 살아 돌아오면 고개를 끄덕일 생각이다.
“아…….”
묘한 압박감과 느슨하게 풀어주는 말, 사람은 압박 속에서 은근하게 기댈 곳을 찾기 마련이다.
‘말하면 해방’이라는 단순한 선택지가 눈앞에 있고, 침묵을 깨는 게 자신의 가치관에 어긋나는 일만 아니라면, 누구든 말하고 싶지 않을까.
“사실은…….”
긴 이야기. 모든 사정을 전해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감사 인사를 전한 후 돌아섰다. 큰 변화 없는 표정에 은구 씨는 안도를, 한진 씨는 아쉬움을 표하고 있는 듯싶었다. 그리고 건물을 빠져나와 차에 올라타며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 꼬와라.”
이 망할 놈의 부르주아들, 어떻게 엿 먹일까. 내일 있을 중간 점검이 기대되어 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