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27)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27화(195/343)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간절한 인간들이 뭉쳐서 만드는 장면이 자극적이라서 인기를 끄는 측면도 있다.
다른 매력도 많겠지만, ‘꿈’과 ‘성공과 실패의 교차’, ‘타인과의 갈등’같이 자극적인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건 간절함이 있기에 가능할 테다.
하지만 방송적 재미를 떠나서,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은근히 압박 주면서 ‘네가 양보해.’라는 분위기를 집단적으로 만드는 건 보기 좋은 모양새는 아니다.
나는 은구 씨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약간, 네가 양보해라, 팀장 아니냐, 뭐 이런 얘기를 들어서…….’
‘둘이서 싸우는데요?’
‘네, 뭐. 갑자기 팀원 전체가 그러니까, 그럼 그렇게 하겠다고 했어요.’
그때 가만히 있던 한진 씨가 불퉁한 표정으로 궁시렁궁시렁.
‘암만 봐도 이상하다니까? 너 말고 나머지 애들은 원래도 친한 사이였다며. 다 같이 짜고 엿 먹인 거라니까.’
‘그렇게까지 했겠냐고, 멍청한 인간아. 카메라 다 도는데?’
다람쥐는 참지 않고.
‘어우, 멍청한 동생아……. 나는 진짜, 네가 너무 걱정된다……. 지상이도 아냐?’
‘알면 형처럼 난리 칠 거 뻔한데 왜 말해?’
‘저런…….’
일방적으로 한 사람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듣는 건 문제가 있지만, 별 상관도 없는 제삼자인 한진 씨의 이야기까지 듣고 나면 아무래도 기울 수밖에 없다. 은구 씨는 꾸준히 그 사람들 잘못은 없다고 변호하는 뉘앙스이기도 했고.
물론 악독한 인간이라면 정치질을 위해 일부러 저러나 의심해 볼 수도 있겠지만, 다람쥐는 인간이 아니다.
게다가 은구 씨는 올곧은 다람쥐로서 죽음이 영원한 잠이라는 고대 그리스적 가치관에 감명을 받은 짐승. 잠을 줄여 가면서까지 노력하는 이가 정치력이 모자라다는 이유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건…….
“그렇다고 해도 어쩔 수 없지 않나?”
핑크색 목베개를 걸치고 의자에 눕듯이 앉아 있던 류이든. 의아한 눈초리로 나를 흘기며 답했다.
“애들이 알아서 할 일에 간섭할 순 없잖아.”
옳은 소리.
“그러니까 나한테 허락된 짓을 해야지.”
“어쩌게?”
“중간 평가 하거든.”
너한테 배운 거, 잘 써볼게, 이든.
* * *
나는 연습생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쪽을 죽 훑으며 지정 좌석인 긴 탁자에 앉았다.
“어우, 기대돼.”
저도요. 나는 루카치 선배님의 말에 짧게 동의했다. MC님의 부재로 이번엔 가장 어린 내가 진행을 맡기로 해서 간단하게 목을 한번 풀고 PD님의 오케이 사인을 기다렸다.
“후배님, 저기 애들은 밤을 완전 꼬박 새웠나 봐요. 앉아서 졸고 있네.”
“편곡 다시 한 팀일 겁니다.”
“완전 새로?”
“네.”
“엥? 편곡 점검 어제 아니었어요?”
“그때 제가 시켰거든요. 죄책감이 심하답니다.”
기지생이 들었으면 뇌 내 신경 활성화가 어쩌구저쩌구 하겠지만, 인간 중에 그걸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잖아.
“뭐, 후배님이 재미로 그러실 분은 아니니까…….”
“…네.”
아닐 겁니다, 아마.
[몽테뉴가 ‘기억력이 좋지 않은 사람은 거짓말을 해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던데, 기억력이 좋으셔서 다행입니다!]쉿.
“어쨌든, 저도 기대됩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 많이 했거든요.
“그보다 두 팀이 걱정이네요. 편곡하는 애들 없는 팀.”
“…사실 제작진 쪽이 해 주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요. 그만큼 연습이 가능하니까.”
“버려진 애들 느낌으로 편집될까 봐…….”
느낌상 제작진들이 편곡팀 열 명 전원 생존할 거라 생각하고 짜둔 계획 같았지만, 어쩔 수 없다. 들어 보니 사생활 문제랑 능력 부족으로 떨어진 건데, 어쩌겠어.
그때 PD님의 촬영 들어가겠다는 신호. 순간적인 정적이 내려앉으면서 다른 분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됐다.
“콜라주, 중간 작품 평가가 있겠습니다.”
푸흡. 루카치 선배님에게서 터져 나온 웃음.
“야, 진짜 큐레이터 같아요. 진지해.”
“그러게. 정장 입고 저러니까 더 그렇다.”
“매사에 진지한 게 매력이네요.”
지난번부터 내가 뭐만 하면 속된 말로 ‘우쭈쭈’ 해 주는 분위기. 나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분위기가 잠잠해지길 기다렸다.
“어쨌든, 공식적으로는 오늘이 본 무대 전에 본격적으로 조언을 드릴 수 있는 날이니, 최선을 다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처음으로 보여 주실 팀 있습니까? 팀장이 거수해 주시면 됩니다.”
[현재 감정 상태 : 재미. / 추정 사유 : 팀장들이 다 편곡 팀이라 손을 들기 위해 많은 용기가 필요할 것을 알아서. / 평가 : 변태 같음.]추정 사유가 틀렸기에 나는 기지생의 메시지를 무시하고 연습생분들을 쳐다봤다.
다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이론적으로 생각해 봐도 눈이 마주치면 호명될 가능성이 열 배는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렬하게 느껴지는 시선. 자기를 호명해 달라는 느낌.
나는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자기가 나설 용기는 없지만, 처음으로 보여 줘도 괜찮다는 자신감이 느껴지는 눈빛. 모든 연습 영상을 미리 봤던 나로서는 납득할 수 있었다.
“음, 한진 연습생.”
나와 눈이 마주치자 번개가 튄 듯 몸을 한 번 떤 한진 씨는 힘겹게 답했다.
“…네?”
“오른손을 한번 들어 볼까요.”
권한진 씨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내 말을 따라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편곡팀 연습 동안 나에게 시달린 경험 때문인지, 반사적으로 내 말을 따르는 모양새였다.
“네, 한진 팀장의 자원으로, B조가 처음으로 보여 주시면 되겠습니다.”
“사기잖아, 동화야.”
지은영 선배님을 필두로 다른 코치님들, 연습생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자원 맞나요?”
“손을 들었으니까요.”
분명 거수 시 자원이라고 달아 뒀는데도 만약에 불만이 있다면 계약서의 독소 조항을 제대로 읽지 않은 잘못이다.
권한진은 다른 팀원들에게 인디언밥을 맞으면서도 웃고 있었다. 원래 이런 건 사이 좋은 팀이 그 결과물도 좋은 법이지 않을까.
* * *
권한진 팀에 대해선 칭찬이 이어졌다. 애초에 잘할 걸 알고 시킨 게 사실이라서.
실력이 바로 프로급이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겠지만,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려고 노력한 게 돋보인다는 점은 이런 칭찬 릴레이를 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여기서 짤막한 의문. 이다음에 과연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까. 더욱이 무대 퀄리티가 개판이라면 겁나서 엄두가 안 날 법도 하다.
“…다음 팀, 아무도 없으시면 제가 호명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사기 안 치나요?”
“은구 연습생, 손 들어 주세요.”
그러니까 맘 편하게 욕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좋은 상황 아닐까.
“…네.”
좌절한 표정으로 손을 올리는 은구 씨. 그 옆에서 같은 소속사인 상 씨―이름이 ‘지상’이라니, 외자 이름은 정말 부르기 까다롭다―가 힘내라며 애교 부리듯 아양을 떨었다. 뭐야, 류이든 같아.
“동화가 칭찬했지, 편곡?”
“네, 다들 돋보이게 잘 편곡했다고…….”
난 편하게 앉아서 대형을 갖춰 서는 D조를 지켜봤다.
일어날 때부터 은근히 알 수 있는 은구 씨만 무리에서 떨어져 있다는 인상.
나 고등학교 때 자주 있었던 일이네. 나 같은 성격일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귀찮긴 하겠다.
겉으로만 보기엔 알 수 없는, 분위기상으로만 느껴지는 묘한 거리감. 정치력이 없는 인간은 정치력이 좋은 인간을 옆에 둬야 하는데, 아쉬울 따름이다.
그리고 시작되는 음악.
편곡은 참 깔끔하게 잘 됐는데, 실수가 잦다는 점, 자신이 돋보여야 할 부분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제대로 된 무대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고등학교 장기자랑 현장이었다면 모를까. 편곡과 안무가 떠먹여 주는 걸 아주 격렬한 몸짓으로 뱉어내는 게 참 보기 좋았다. 앞선 팀이랑 비교돼서 더더욱.
나는 어제 외워 온 정보를 떠올린다. ‘와플 스튜디오’ 소속 연습생이 총 세 명. 개인 연습생 둘에, 기타 잡다한 엔터 소속 연예인 둘. 그리고 은구 씨.
팀장이 직접 멤버들을 뽑았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절반 정도는 폐기물로 골랐을까. 차라리 다트에 이름을 달고 맞혀도 이것보단 잘 뽑을 것 같은데, 이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이거 끝까지 보긴 했는데.”
루카치 선배님이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일단 센터.”
와플 1.
“누가 정했어?”
와플 1은 어물쩍거리다가 은구 씨를 봤다. 뻔히 보이는 수. 노력하는 선한 다람쥐를 인간이 겁박하다니, 동물 학대다. 미리 외워둔 모든 것들을 차근차근 꺼내 보았다.
“제작진분들께 들어 보니, 가인 연습생이 먼저 하겠다고 나섰고, 팀원들도 동의해 줬다고 합니다.”
“아니…, 센터가 실수하니까 균형 다 무너져. 실력으로 너무 뭐라 하고 싶지는 않은데, 센터가 되겠다고 본인이 나섰으면 최소한 연습은 했어야지. 실수 없게. 그런데 동작 틀려, 제스쳐 미숙해, 동선 이탈도 해. 중심 잡아줄 애가 그러니까 더…….”
루카치 선배님은 안타깝다는 눈초리로 말을 한다. 아, 재밌다. 정말 재밌어. 한진 씨 팀을 부를 때부터 기대했던 장면인데. 먼저 부르기를 참 잘했다.
어제 은구 씨와의 대화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몰래몰래 스태프분들에게 사정을 여쭤보길 잘했다.
“근데 얘뿐만 아니고 몇 명 더 너무 연습 안 된 게 티나.”
지은영 씨는 깔끔하게 와플 1 씨부터 3, 그리고 기타 둘의 이름을 호명했다.
“보컬은 엄청 흔들리고, 안무도 깔끔하지 않고. 동화가 편곡 잘 나왔다고 칭찬해서 기대했는데, 진짜 편곡만 잘 나왔고, 받아먹질 않아.”
미리 얘기해 두는 것도 참 잘했다. 높여둔 기대감이 떨어지는 것만큼 사람이 실망하는 일은 흔치 않다.
“여기는 다 필요 없고 연습부터. 뭐 피드백해 줄 게 없어. 안무랑 곡 나왔다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건 아닐까 싶어.”
그동안 나는 침묵을 지켰다. 직접 뭐라 할 이유가 없으니까. 이미 다른 분들이 하나하나 손수 지적해 주고 계셨다.
이 장면, 쓰고 싶지 않나. 센터 하겠다고 나섰다가 편곡자가 열심히 편곡한 것조차 말아먹은 연습생. 내가 PD면 버리고 싶지는 않을 것 같은데.
* * *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흘러, 편집본을 확인했을 때, 나는 차오르는 입술을 악물었다. 개인 스케쥴로 불참인 류이든과 이현재를 제외하고 세 명이서 아이돌 제작 공방을 보고 있을 때였다.
“동화 형―님. 오늘 방송 재밌―습니까?”
“응.”
나는.
“오, 뭐 하는데? 나 원픽도 뽑았어. 막 탈락하진 않지?”
“누군데?”
“박은구 연습생.”
저런. 그럼 이번 편에선 마음이 조금 아프겠네. 선의의 피해자 역으로 나올 예정이거든.
“탈락은 안 해.”
탈락하기엔 잘생기고 실력 좋거든. 사람들이 눈이 나쁘지 않다는 증거지.
“다행이다……. 나 투표도 계속 하는 중이거든.”
그런데, 정말 미안하지만, 대체 왜?
작은 의문은 잠시 뒤로하고 우린 프로그램을 감상했다. 웃으면서 내 얼굴을 놀려대는 석준과 가만히 입을 막는 채하민의 공방전이 이뤄지는 등, 평화로운 한때였을 뿐이다.
한 이십 분이 지났을 때 은구 씨가 팀장으로 있는 D조가 모든 부정적인 묘사가 사라진 편집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조금 더 보다가 정말, 아주 은근하게 은구 씨가 잘못한 것처럼 묘사되는 편집을 볼 때는 내 표정이 굳어서 채하민이 흠칫하기까지 했다.
“…음.”
옆에 앉아 있던 석준이 내 얼굴을 확인하더니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피신했다. 예전에 술에 취해서 같이 죽자고 저주를 걸었을 때부터 내 얼굴이 굳어 있을 때 도망치는 버릇이 들었다.
“…동화야?”
나 알 것 같아.
“그, 뭔가 문제가 있었나?”
채하민은 허둥대며 화면과 내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뭐지, 그냥 은구 씨가 열심히 한 것 정도만 알겠는데.”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피신을 끝내고 돌아온 석준에게 미소를 지어줬다.
“형―님. 그게 더 무섭―습니다.”
저런, 안타까워라. 어떻게 하면 우리 준이가 날 무서워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나는 시골 할머니라서 괜찮은데 말이야.
“맞아, 표정만 이렇지, 순하다고?”
채하민의 말을 들으며 나는 조용히 핸드폰 화면을 눌렀다. 알 것 같아도, 궁금해. 왜 이러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