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29)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29화(197/343)
정당한 노동에 정당한 대가.
이 단순한 명제를 둘러싸고 얼마나 많은 논쟁과 역사적 반례가 존재했을까. 정경우는 읽고 있던 사회학 책을 덮었다.
오늘 밤에도 꿈에 동화 씨가 나왔다. 뭐지, 짝사랑일 리는 없는데.
그날 이후 정경우는 지동화가 ‘무언가를 알고 있음’을 서서히 알게 됐다.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이 하나의 대화를 정경우가 처한 상황에 완벽하게 맞출 수는 없을 테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지동화의 표정 변화도 정신 나간 인간의 그것 같았다. 스몰 토크를 하는 인간의 모습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모습.
수많은 의문이 뒤따랐지만, 정작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다. ‘어떻게 알았지? 윗선에 누구랑 연결되어 있나?’ 같은 의문은 상시 찾아오지만 그 답은 찾을 수 없다. 그보다 정경우에게 더 큰 문제가 된 것은 죄의식에 가까웠다.
“죄책감이 인간 형상을 갖춘 느낌…….”
대학교 시절 들었던 미디어 분석 강의. 추상적인 수치보다는 구체적인 한 장면이 훨씬 더 호소력이 있다고 하던데, 이게 그런 건가.
어떤 뮤지컬에서 ‘죽음’이라는 역할이 괜히 있는 건 아닌가 보다. 효과가 확실해. 롤랑 바르트 신화론이 딱 이런 느낌인 것 같은데.
‘분명히 트롤링을 한 연습생의 잘못을 덮는 짓거리.’
투표 조작을 제의받으면 당장 하차하겠다고 당차게 생각해서 사직서를 품에 안았지만, 자신이 한 짓, 남의 부탁을 받아서 긍정적으로 편집해 주는 짓이 실질적으로 투표 조작이랑 다를 게 뭔가.
투표 조작에 비하면 이 정도는 괜찮다는 생각이 깔끔하게 씻겨 내려갔다. 사직서라는 얄팍한 방패 뒤로 숨었던 자신의 민낯이 밝혀진 것만 같았다.
‘그냥 합리화한 거야. 잘못된 건 알지만, 투표 조작만 아니라면, 그리고 편집을 좋게 해 주면 순위가 안정적일 테니 정작 투표 조작은 부탁받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그러면 내심 사직서도 낼 일 없을 거라고…….’
이 정도는 괜찮다느니, 이 정도 부탁을 조금 들어준다면 최소한 투표 조작까지 가지는 않을 거라느니, 얼마나 치졸한가.
어쨌든 지동화라는 모습을 갖춘 죄책감에 사로잡힌 결과, 편집을 하는 과정에서 더욱더 공평성을 찾게 됐다.
의도보다는 투명함, 최대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담는 편집을 하려니, 조연출이 우스갯소리로 ‘약간 페이크 다큐 느낌 나네요. 객관적이라서. 저는 지금이 더 좋아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눈가의 다크서클은 짙어져 간다. 어제는 꿈에 지동화가 왠지 모를 이유로 쓰러진 박은구의 맥박을 재고 있길래,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지동화가 미소 지으면서, 자기가 죽여 놓고 당당한 모습이 보기 좋다고 칭찬하는 투로 답했다.
“아, 아아…….”
정경우는 머리를 싸맸다. 죄는 짓지 말고, 지었다면 책임을 져야겠지.
* * *
[야 ㅆㅂ 은구 까던 새끼들 어디 갔냐](아제공 백스테이지 영상, D조 무대 준비 비하인드 컷, 분량상 삭제되었다는 문장을 담고 있으나, 내용상 삭제하는 게 옳은지는 미지수.)
오피셜 떴네? ㅈㄴ 니들 뇌피셜로 한 사람 죽이려는 거 잘 봤다 ㅅㅂ 은구가 멘탈 튼튼하고 팀장 역할 잘 수행하는 걸 그렇게 돌려 깎냐
댓글
―써방 좀
└왜? 너 와플 빠니?
└아 ㅋㅋㅋㅋㅋㅋ 남의 픽 조질 때는 ‘추측’으로 난리치더니 오피셜 공유하는 거에 지랄을 하네 ㅋㅋㅋㅋ
―이거 보면 그냥 은구가 양보하고 넘어간 게 단데 와플이 까일 필요 있?
└분위기 개 살벌한데? 나 같아도 ‘아, X발 안 넘기면 이 새끼들이 린치 까겠다’ 싶을걸
└와플만 까이는 거 에바긴 해 은구 빼고 다 묶어놓고 패야 됨
―아니 이게 본편에서 편집되는 게 말이냐? 본편에서는 ㅅㅂ 무슨 은구 사회성 없는 병신처럼 묘사해 놓고 ㅋㅋㅋㅋㅋㅋ
└근데 그건 팩트긴 하잖아 ㅎㅎ
저런, 사회성 없는 사람한테 실례네.
나는 글을 대충 훑어보다가 노트북을 닫았다. 옆에 앉아 있던 류이든이 꺄르르 웃으며 박수쳤다.
“성공이네!”
“…이게 이럴 수가 있나.”
어이가 없네. 이렇게 수월하게 풀릴 수가 있을까.
“아니, 너, 이거 노린 거라며. PD님이 혼자서 생각하다가 그냥 비하인드컷 푸는 거.”
“이상적으로는 그러면 좋겠다는 거였지.”
이상적인 게 성공할 거라고 진심으로 믿는 인간이 어딨어. 확률상 가능은 하니까, 그렇게 되면 좋기야 하겠네, 정도로 생각한 거지.
“우리 하민이랑 준이는 그럴 것 같은데. 음, 현재는 이상이라는 게 머릿속에 있을까 싶다. 아마 없겠지?”
음, 이 느낌은 뭘까. 정확히 류이든에게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무엇인가 싫은 느낌.
“너는 사람 관찰하는 버릇 좀 어떻게 해 봐.”
“너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동화 형.”
거울 치료, 별로 좋다고 보지 않아.
“어쨌든, 이러면 끝난 거 아니야?”
류이든은 해맑았다.
“뭐가.”
“다 해결된 셈이잖아.”
“일부러 그러는 거지, 너.”
“당연하지!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하민이랑 보드게임이나 하자!”
나는 벽돌 쿠션을 류이든에게 툭 던지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화양 씨한테 연락드리고 나서.”
류이든은 벽돌 쿠션으로 자기 머리를 내리치며 ‘왜 말했지!’라고 계속 소리치고 있었다. 류이든이 말하지 않았어도 편집하는 꼴 보고 화내지 않았을까 싶긴 하지만, 어쨌든.
머릿속에 외워 둔 계획서를 펼쳐 본다. 채하민이 선물로 준 파쇄기로 실물은 이미 모두 사라졌지만, 머릿속에는 생생하게 살아 있다.
“가끔 나는 우리 동화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어.”
안타깝다는 눈초리. 류이든이 벽돌 쿠션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물었다.
“이번 건은 솔직히 너랑 엄청 관련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게. 사실 아무 상관없다.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니, 도덕이 어떠니 중얼거리지만, 나는 멤버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믿는다.
류이든도 나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럴 인간이다. 인간으로서 넘을 수 없는 선만 넘지 않으면 나머지는 다 버릴 수 있는 인간이겠지.
솔직히 남보다는 우리 멤버들과 가족이 우선이지. 훗날 살게 될 실버타운에 입주할 예정이 아니라면 굳이 누군가를 도울 필요는 없다.
그러니 오늘 이렇게 개짓거리를 하는 이유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원인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아주 단순한 이유. 류이든이나 채하민, 어쩌면 석준의 흔적일지도 모르는 것.
“…그냥 깽판 치고 싶은 거야.”
그저 난동을 부리고 싶을 뿐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마당의 흙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땅을 파는 개 같은 심정일까.
사실 아무 상관없고, 집에 들어가면 마음에 들지 않는 흙을 밟지 않아도 되지만, 그냥. 왠지 그 흙에 살고 있는 다람쥐가 눈에 밟히고, 조금 무리하면 흙을 개선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거기다 하필이면 다람쥐가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으니 개로서 측은지심이 들고 만 셈이다.
“우리 동화 사랑스럽네.”
“…뭔.”
뒷말이 이어지려다 말았다.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데 쌍욕을 하기는 쉽지 않다.
“스스로 개라고 부르다니. 동족이야, 우리.”
“닥쳐.”
만물의 영장인 나와 동족으로 분류되고 싶다니, 어쩜 그렇게 양심이 없는지.
류이든이 벽돌 쿠션을 내 손에 건네고 조용히 머리를 내밀었다.
“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쿠션을 베고 소파에 누웠다. 아, 스케줄 이후에 작업하러 왔다가 무슨.
고개를 들어 올린 류이든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하고 싶은 거면 응원할래, 그냥.”
시끄럽네. 나는 쿠션을 류이든에게 던지고 다시금 생각을 정리했다.
‘계획 I(Idea, 이데아)’, 정경우 PD님이 죄책감에 시달리다 편집의 공평함에 무게를 실을 때,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한 추측.
잘리진 않을 것이고, 죄책감을 해소했으니 퇴직하지 않을 것이나, 다만 반대로 공평함으로 인해 특정 연습생이 위험에 처하게 되면, ‘조작을 해 달라’라는 소리까지 나올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결국 나머지 다른 계획 A~F까지도 결론은 ‘조작을 해 달라’라는 소리까지 나올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점. 대략 삼 주. 혹은 한 달. 사람들의 여론이 변화할 때까지. 그리고 이로 인해 등수에 변동이 발생할 때까지.
애초에 편집의 덕을 본 인간이라면 편집이 공평해질수록 그 힘은 후달릴 수밖에 없다.
“우리 동화, 아주 똑똑해.”
“똑똑한 인간은 이렇게 사서 고생하지 않아.”
“우리 동화, 아주 멍청해.”
“…닥쳐 줘, 형.”
똑똑하지 않다는 게 멍청하단 뜻은 아니야. 네가 멍청하다는 건 똑똑하지 않다는 뜻이지만.
* * *
화양은 나이 먹고 이렇게 고생을 할 줄은 몰랐다. 이게 다 요망한 놈 때문이다.
“…가을아, 대체 뭘 낳은 거야.”
그녀는 지갑 한편에 넣어둔 사진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돈을 달라고 하면 어렵지 않을 텐데. 투자금은 최근 회수가 정말 괜찮으니까.
정보와 회유 및 위협, 그리고 투자, 이 모든 게 돈으로 귀결되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요망한 놈.”
아주 깍쟁이야. 정작 돈에는 관심도 없다 이거지. 집을 한 채 달라고 하면 쉽게 줄 수 있을 텐데, 요구하는 게 하나같이 까탈스럽기 그지없다.
그녀는 별 생각 없이 차에서 내려 와플 스튜디오 건물 앞에 섰다.
“사소한 궁금증인데, 확증인가?”
옆에 있던 비서가 고개를 완만하게 끄덕였다.
“아니어도, 그렇게 될 예정입니다.”
“좋아.”
세상에, 어떻게 이런 잔인한 일이 있담. 방송국 사람들한테 뒷돈을 대주면서 자기 연습생이 반드시 데뷔할 수 있도록 조작을 청하다니.
하필이면 그 방송이 대한민국의 핫이슈인 상황이라 꼬리 자르기도 전에 고발당하면 어쩌려고.
게다가 저런! (사실인지 아닌지 불명확하지만, 곧 사실이 될) 횡령 비리까지 저지르다니. 어떻게 이리도 극악무도할 수가 있담.
화양의 순수한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불법적인 일을 자행하면서 한 회사의 대표라는 명함을 유지하고 싶다면,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음, 성용아.”
“네.”
“여기 가고, 다음 행선지는 어디니.”
“도련님이랑 저녁 드시고, HBS 예능국장님과 짧은 술자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어머, 어떡한담. 그 사람은 좌천 위기 아니었니? 김 이사 라인에서 꼬리 자르기 당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비서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낮게 답했다.
“…그렇게 될 예정입니다.”
“아이고, 내가 나이를 먹었더니 시간 선후를 까먹었구나. 우리가 다녀오고 나서 그렇게 될 예정이었지. 아차차.”
화양은 과장된 몸짓으로 머리를 톡 쳤다. 채신머리없는 짓이지만, 말도 안 되는 거래를 성공시키리라는 만족감의 표현치고는 얌전했다.
문화 전반에 거미줄을 떨쳤다고는 해도, 이걸 위해 손해 본 게 얼만지 알 수가 없다. 정말 차라리 집 한 채를 사 달라고 했으면!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르겠지, 요망한 놈.”
가지고 있는 카드 중 몇 장을 버렸고, 또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지.
장기 몇 판으론 성에 차지 않겠다. 하루는 통으로 시간을 내서 장기를 해야, 그 요망한 놈이 일부러 져 주는 짓도 안 하겠지.
얼마나 티 안 나게 져 주는지 처음에는 정말 이긴 줄 알고 나이에 맞지 않게 기뻐했다는 게 쪽팔려 죽는 줄 알았다.
지동화가 요구한 것은 단순하다. “더러운 것들이 제가 출연하는 방송에 손대는 게 불쾌합니다.”
그래놓고 한다는 소리가 부탁드린 적 없다는 소리니, 머리를 한 대 때려주고 싶은 기분이다.
“그나저나, 우리 동화 놈은 뭐 한다니.”
화양은 문득 고개를 돌려 비서에게 물었다. 자기는 이렇게 고생하게 만들어 놓고 과연 뭘 하고 있을까.
“멘탈 수업 회의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아, 그 정신 나간 프로그램, 끝난 거 아니구나.
“하기 싫다더니?”
“자세한 사항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최근에 일이 좀 바빴지.”
인센티브나 두둑하게 챙겨 주는 게 옳다. 화양은 화창한 햇살을 보며 웃었다. 산책이 하고 싶은 기분이다.
“그럼 가자.”
비서는 말없이 경호원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우, 나는 성정이 올곧아서 이런 짓 하러 가는 게 무서워, 정말.”
거짓말. 비서는 웃고 있는 화양을 보며 차오르는 많은 말을 숨겼다. 위험한 인간이지만, 자기 식구에겐 따스한 사장. 돈이 참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