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30)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30화(198/343)
교통사고 그 자체였다. 애초에 술자리였으니까. 그냥 인맥 하나 쌓는다는 느낌으로 만남을 수락했다.
그리고 눈앞에 쏟아졌던 자료들. 자기 인생 전체를 뒤진 것 같은 분량.
사소한 흠집 하나하나를 모으고, 큰 기스 몇 개를 모으니, 마치 중고 차량 가격이 떨어지듯이 제 인생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화양은 짜증스러운 눈초리로 파일을 훑어보다가 툭 던지고는 막걸리를 잔에 채웠다.
“흠, 불성실하게 살았네. 왜 이렇게 더러운 얘기가 많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라는 표정이네.”
화양은 피식 웃으며 막걸리를 홀짝였다. ‘수제라더니, 별로네.’라는 중얼거림은 덤이었다.
“우아하지 못한 짓이니 욕은 못 하겠고, 음.”
고심하는 척 의자에 기대 턱을 조용히 쓸어내린다.
“그건 열심히 산 게 아니라 남 등쳐 먹고 사는 거지, 멍청한 것아. 아, 이거 혹시 욕인가?”
그건 자기도 똑같으면서.
“라는 표정이네. 나 정말 잘 맞히지? 내가 친구한테 사주 좀 봐달라고 했더니, 글쎄, 자기는 사주를 보면 안 될 사주라면서 염병을 떨지 뭐니. 생각해 보면, 나한테도 신기 같은 게 있나 봐.”
물론 화양 개인은 그런 거 믿지도 않지만. 기 좀 살려주려고 사주 봐달랬더니 단칼에 거절한 친구가 서운할 뿐이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웃고 있는 화양의 모양새를 보니 목을 조르고 싶었다.
“그런데 같지는 않지. 어떻게 너랑 내가 같겠니.”
화양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야 내가 쓰레기인 걸 알고.”
다음은 상대방.
“너는 모르고. 전혀 다르지.”
손이 파르르 떨렸다. 이런 모욕 속에서도 칼을 쥔 인간이 눈앞에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에 압도당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걸 보던 화양은 재미가 없었는지 지루해진 표정으로 혀를 몇 번 찼다. 모양새가 애새끼 괴롭히는 것 같아서 썩 유쾌하지 않았다. 나이 오십 먹은 양반이 뭐가 이렇게 기개가 없는지.
“그럼 이제 본론. 네가 저지른 몇 가지 개짓거리 중에, 네 윗선까지 연결된 것도 있더라.”
“…그래서 어쩔 셈인데.”
“아니, 그렇게 공격적일 필요 있나. 그냥 네가 노리던 이사 자리는 끝났을 뿐인 건데.”
손이 재차 파르르 떨렸다. 방송국장을 원한 건 아니었지만, 그 밑까지는 어떻게든 기어들어 갈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거래하기로 했거든. 너 정리하는 걸로 전부 묻어주기로.”
화양은 해맑게 웃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순진한 미소였지만, 화양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미소에 속을 것 같지는 않았다.
심지어 말하는 내용조차 사실이 아니었다. 아직 거래는 시작도 하지 않았고, 이 인간을 만난 뒤에 할 예정이었으니까.
“그런데, 짜증 나지 않아? 대체 당신이 왜 정리되어야 한담. 똑같이 쓰레기인 거잖아. 따지고 보면, 그 사람들을 위해서 노력한 것도 사실이긴 하고.”
한참 동안이나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네가 왜? 어째서? 노력했잖아.’ 눈앞에 있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는 장작이었다.
물론 그녀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쓰레기짓을 하며 산다는 건, 언제든 당할 수 있다는 걸 전제로 하는 거니까.
짜증 낼 일이 뭐가 있나, 다 자기가 초래한 짓인데.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매사에 완벽해지는 수 말고는 없다.
하지만 너무 매력적인 거짓말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애초에 사이가 조금씩 틀어지던 것들, 같이 헛짓거리를 하고 살았음에도 ‘당신 버려졌어.’라는 짧은 말을 믿을 정도로 얄팍한 관계망. 어쩜 이렇게 매력적인 사냥터가.
“그러니 말해 봐. 우리도 거래를 할 수 있잖아.”
화양은 자료를 정리해서 테이블 아래로 내렸다. 완전히 새로운 거래 장소.
“혹시 알아? 그치들 자리가 네 것이 될지.”
지동화가 부탁한 것도 들어주면서 겸사겸사 콩고물도 몇 개 더 얻어 가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 * *
“누이 좋고 매부 좋기는 무슨.”
나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실이긴 하죠? 저희도 동화 씨도, 이 프로그램 덕을 많이 봤으니까.”
저 PD놈과 다시 마주할 일이 생길 줄은.
“솔직히 저는 놀랐어요. 동화 씨라면 단칼에 거절할 줄 알았거든요. 저야 매일 밤 동화 씨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며 울었지만, 동화 씨는 아니었을 테니까……. 이게 짝사랑의 슬픔 아닐까요?”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제 마음이 돌아설지 모릅니다.”
내가 지난 이 주 동안 얼마나 많은 고민과 고심을 거듭한 끝에 이 자리에 앉았는지 아십니까. 부디 제 결심을 흔들리게 하지 말아 주십시오.
아이돌 제작 공방 촬영을 마치고 돌아왔던 날, 장해진 팀장님이 웃는 얼굴로 ‘멘탈 수업 2교시’를 촬영하자는 제안이 왔는데 어떡하겠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경기를 일으켰다.
‘설마, 제가 나갈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크하, 아니, 나갈 리가 있겠니. 팬분들이 좋아하셨으니까 우리도 아쉬워서 말이나 한번 해 본 거지.’
‘…정말, 그걸 좋아하시나요.’
나는 알 수가 없다, 진짜로. 내 손으로 X튜브에 들어가 한 번도 모니터링 해 본 적 없기 때문에 얼마나 인기인지 실감이 안 나기도 하고.
‘응? 어. 사람들은 잘생기고 똑똑한 사람이 미쳐 있는 걸 꽤 좋아하거든.’
‘…그건.’
그때 나는 차마 뒷말을 끝맺지 못했다. 팬분들의 취향이, 내가 이해하기엔 가끔 아득하다고 느낄 때가 있으니까.
‘그래도 단칼에 거절하긴 좀 그러니까, 3일 정도 시간 줄게. 한번 더 생각해 봐. 다음 곡 작업에 집중하고 싶으면 안 해도 괜찮고. 수치스러워서 그런 거여도 괜찮고.’
그러고 나서, 짤막하게 있었던 또 다른 일. 팬사인회였다. 어느 팬분이 ‘멘탈교육학개론’이라는 제목이 써진 책을 들고 와서 내가 잠시 말을 잃고 말았다.
‘이건…….’
‘전공 서적이에요. 제가 요즘 인터넷 강의로 듣고 있거든요.’
‘감사합…, 니다?’
순간적으로 자신이 지 교수라는 역할로 답을 해야 하는지, 전혀 무관한 아이돌로 답을 해야 하는지 설정 충돌이 발생해서 미묘한 대답을 하고 말았다.
‘교수님이었어요? 저는 아이돌인 줄 알았는데…….’
고객의 니즈를 확인하고 지동화는 곧바로 아이돌로서의 페르소나를 착용했다.
‘저는 그 교수 수업이 마음에 들지 않던데. 강의 평가에 자수 꽉 채워서 욕 썼습니다.’
팬분은 꺄르르 웃으시면서 ‘멘탈 수업 강의 노트’를 선물로 건넸다.
처음에는 단순한 해프닝 정도로 끝일 줄 알았지. 이후에도 수많은 팬분들께서 지 교수에 대한 굿즈를 가져 오지 않았다면 말이다.
‘…지 교수로 해 줄래요?’
이분은 자주 얼굴을 뵙는 분인데, 분명 내게 반말을 하셨지만, 지금만큼은 존댓말을 꼬박꼬박 지키고 있었다. ‘지 교수’에게는 존댓말을 해야 한다는 집념.
‘네, 학생분, 제 수업은 마음에 드셨나요. 오늘도 평안한 멘탈로 보내고 계시고요.’
‘와…, 개쩐다……. 진짜 지 교수님.’
다시 말하지만, 이 분은 나의 실물을 꽤 여러 번 보신 분이다.
짧은 팬 사인회였지만, 나는 아이돌로서 존재했다가, 교수로서 존재했다가를 반복했다. 누군가에게는 지독한 컨셉질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페르소나의 분리인 셈이다.
그리고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 이 페르소나를 좋아해 주는 분들이 분명히 계신데, 없애 버려도 되나.
밥 먹을 때 틀기 좋다면서 2부 기대한다는 팬들의 말을 들으며, 나는 깨달았다.
나라는 인간은, 죽을 정도로 위험한 일만 아니라면, 팬분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어 한다는 것을.
나는 과거 회상을 멈췄다.
그래, 내가 선택한 길이다. 나의 수치와 나의 치욕, 그걸 즐겨주시는 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배려. 2부 정도는 해도 괜찮겠지.
“원래 PD들이 집착이 좀 있어요. 뮤즈 같은 거죠.”
“혹시, 우리 리더랑 친족 관계이십니까.”
때리고 싶은 게 많이 닮은 것 같아서요.
“오늘 심박수 측정기 찼으면 벌칙 했을 텐데.”
“여담인데, 목화 출연했던 날, 미리 벌칙 준비해 두셨죠.”
“네.”
“무슨 번호를 뽑든 그 벌칙을 할 셈이었고.”
“그렇죠. 장례식이랑 결혼식을 같이 하는 어르신. 상황극으로는 최고잖아요.”
당당하네요.
“예측을 잘하는 것도 훌륭한 PD의 덕목이랍니다.”
“…하아.”
류이든 친지로 의심되는 인간과 함께 하는 방송이라니,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잡히지 않을 수 있을까. 인터넷 뉴스 상단에 그걸로 등재되고 싶지는 않은데.
PD는 내 얼굴을 차근차근 분석하듯 훑었다. 목화가 나오면 심박수가 오를 수밖에 없음도 추측할 정도로 약삭빠른 인물이라 그런지, 그 시선이 무례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어쨌든, 오늘은 에필로그 겸 프롤로그예요.”
오늘도 촬영을 한다고는 하던데, 무슨 컨셉인지도 몰랐고, 늘 차던 심박수 센서도 착용하지 않았다.
“동화 씨가 지 교수에서 벗어나서 영상을 리뷰하는.”
“관둬도 될까요.”
진절머리가 났다. 내가 하는 헛소리가 싫고 두려워서 멤버들과 함께 하는 모니터링에도 참여하지 않았는데.
“하하, 싫어하실 줄 알고, 오늘은 특별 손님도 여러 분 모셨어요.”
“싫어할 줄 아는데 왜 싫어하는 걸 더 얹으십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다른 멤버들은 모두 스케쥴이 있는 걸 내가 알고 있다는 것 정도.
대체 누가 오려나, 오랜만에 예언 선배랑 준성 선배라도 오려나.
“음수 곱하기 음수는 양수니까?”
덧셈 아니었나요, 망할 PD놈아. 본인도 어이없는지 피식 웃는 꼴을 보고 있자니 갑갑한 한숨이 흘러나올 지경이었다.
“가실까요? 우리 촬영해야죠.”
“…네.”
* * *
“그럼 촬영 들어갈게요. 동화 씨는 저기 가운데 앉아 주시면 돼요.”
세트장, 그리고 가운데에 솟아올라 있는 테이블, 그걸 둘러싸고 앉은 네 명의 짐승들.
“네!”
활기찬 대답.
“…분명, 다들 다른 스케쥴이.”
“‘있다고 알려 주세요.’라고 제가 직접 매니저님과 멤버분들께 요청드렸답니다. 미리 친구들한테 물어서 오늘 촬영 있을 법한 걸로 골라서 알려 드렸어요. 우리 동화 씨 속이는 게 하늘의 별 따기니까.”
류이든, 벽돌 내놔. 저 인간 내리치고 오늘 인터넷 뉴스를 화려하게 장식할 테니까.
나는 블로센스 전원이 모인 이 순간이 벅차서 숨을 쉬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하아.”
“제가 보고 싶어서 섭외한 건 아니랍니다. 이든 씨가 요청을 했어요. 자기 멤버가 자기들이랑 같이 모니터링을 안 해 줘서 서운하고 슬프다고.”
류이든, 벽돌 내놔. 네 머릿속 구조를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어. 의학의 발달은 해부를 통해 시작됐다고 하던데, 우리 한번 의료 혁명을 이뤄 볼까, 이든.
“드디어, 하네.”
류이든은 이를 악물고 웃었다. 옆에서 채하민도 고개를 끄덕이며 격하게 공감했다.
“모니터링은, 같이 하는 거야, 동화야.”
“…현재야, 나 조―금 무서운데.”
“괜찮아요, 형. 오늘은 제가 지켜 드릴 수 있구 하니까.”
하, 이 망할 것들. 나는 한 번 웃고 말았다. 내 딴에는 미소, 남이 보기엔 냉소라서 석준이 흠칫하긴 했다.
뭐, 괜찮나. 생각해 보면 내 밑바닥을 아는 채하민, 내 본성을 아는 류이든, 뭘 하든 우선 존경해 줄 이현재, 아무 생각 없을 석준이 모인 곳이다.
내가 갑자기 사회 규범에 어긋나는 짓거리를 하더라도 일단은 이유가 있겠지, 라면서 믿어줄 인간들.
“…그래, 보자.”
자포자기는 아니었고, 차라리 도전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래, 한번 해 보자. 과연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