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31)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31화(199/343)
―이건, 샤르데나식이 아니잖습니까!
TV 화면 속에 있는 정신에 문제 있어 보이는 인간의 소리를 들으며 나는 짜증 섞인 눈초리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 프로그램 특성상, 나는 현재 아이돌로서 앉아 있는 거라 ‘웬 모르는 사람이 염병 떠는 걸 지켜보는 중’이다.
“저 인간, 입 다물었으면 좋겠어.”
X튜브라서 좋은 유일한 점, 조금 험한 워딩도 괜찮다는 점. 나를 욕하는 거라 더 거리낌 없이 입을 열 수 있어서 좋았다.
“형, 그래도 교수님인데.”
아쉽게도 그 교수, 언젠가 내 손으로 죽일 거야. 그보다.
“너도 그랬으면 해, 이든.”
부디 닥쳐 줘.
“진짜 우리 동화가 교수님 반만 닮았으면 좋겠다. 형한테 닥치라고 그러고…….”
작은 소란에도 TV를 보는 데 여념 없던 채하민. 채하민은 옆 사람이 뭐라 하든 상관없이 천천히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근데 나 이거 왜 보는지는 알 것 같아. 약간 뇌를 비우는 느낌이야. 뇌가 정화되는 중…….”
그러니, 나는 수치로 뇌가 어지러워지는 중인데. 저걸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본 거지. 조회수가 백만이 넘는다고, 저딴 게.
이게 대한민국이 망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아직 남은 인생이 기니까.
“동화가 헛소리 진지하게 하니까 장난 없긴 하다. 하민이랑 듀엣곡 가사 들을 때도 느꼈지만…….”
닥쳐, 이든. 안 그래도 수치스럽다고.
“저런 건 어디서 읽은 거예요?”
“뭘.”
“샤르데나요.”
그것 참 사소한 궁금증이네.
화면 앞에는 ‘현 이탈리아 지역에 있던 한 왕국.’이라는 자막 다음에 ‘지 교수님은, 가끔 시간관념이 없으신 편이다.’라는 자막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래, 시간관념이 없긴 하네. 최소한 자기가 사는 시대는 지켜야 하는 건데. 하지만, 그건 지 교수지 내가 아니야, 현재.
“한 번만 문학적으로 허용해 주세요.”
전 세계에 있는 모든 문학인에게 사과하렴. 이걸 어떻게 문학에 비견할 수가 있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과외생이었을 적 습관 탓에 이현재가 질문하면 입이 자연스럽게 열리고 만다.
“이탈리아 역사 찾아보다가.”
“그건, 왜요?”
“마키아벨리 책을 읽다가 궁금해졌거든.”
“그건, 또 왜.”
뭐야, 물음표 살인마야? 대학원에 적합한 인재네.
“…집에 있길래. 어렸을 때는 다 그러잖아. 눈앞에 있으면 일단 읽고.”
그와 동시에 멤버들은 이현재와 나머지로 나뉘었다. ‘역시 멋져.’라는 표정의 이현재와 ‘역시…….’라는 표정의 멤버들.
“난 가끔 네가 이해가 잘 안 돼, 우리 동화는 참, 정말.”
나도 그런데. 네가 이해 안 될 때가 있어, 이든.
“집안에서 책만 보지 좀 말고, 나랑 같이 조기 축구 같은 데 나가자.”
“미안한데, 진짜 아저씨 같았어.”
그것도 비호감인.
“맞아요.”
이현재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비호감 아저씨.”
“야, 나 정도면 잘 늙은 아저씨야.”
…아니야, 형. 그런 거에 ‘잘’이라는 말 붙이지 마. 한 번 늙어 본 입장에서, 잘 늙은 건 아닌 것 같아.
[맞습니다. 저도 나이가 꽤 되지만, 저건 잘 늙은 건 아닌 것 같습니다.]너도 그래.
[…서운해.]류이든 닮아가네, 기지생.
[모욕적 언사는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주의할게. 내가 생각해도 심했어. 언어는 그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격언도 있는데, 내가 내 격을 너무 떨어뜨렸네.
* * *
“아니, 깻잎부터 시작해서 새우에, 롱패딩에, 또 뭐 있었지, 어쨌든 난리도 아니었잖아.”
나는 그걸 전해 듣고 이민을 해야 하는지 잠시 고민하다가, 외국도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는 걸 깨닫고 좌절했다.
눈앞 TV에서는 깻잎을 갖고 논쟁하는 이들을 온화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지 교수님이 있다. 연기 잘했네. 저 때 내면은 방송에선 보여 주기 힘든 상태였는데.
“민트 초코 같은 거겠지. 파인애플 피자나. 심지어 화장실에 휴지 거는 방법으로도 논쟁하기도 하고.”
대규모 논쟁은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서 오는 걸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떤 집단에 속해 있음을 느끼고, 심리적 안정감을 확인하고, 상대방과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 반대편과의 투쟁에서 희열을 느끼는.
인터넷 문화가 이런 논쟁 자체를 발명하진 못했겠지만, 확산에는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지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내가 저분은 아니라 잘 모르지만,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하시겠네.”
“아, 지 교수님이랑 친구하고 싶다. 내가 뭐라고 하든 받아들여 주실 거야…….”
류이든의 중얼거림. 어쩌지, 진짜. 내 폭력성이 훗날 문제가 되는 일이 있다면 나는 정식으로 류이든을 고소할 거다.
네가 기른 폭력성이잖아.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부모인 네가 대신 책임을 지는 게 옳지 않을까.
“나도, 지 교수님 있으면 고민 상담 많이 할 것 같아.”
채하민조차 그렇게 중얼거리니 뭔가 기분이 이상해졌다. 뭐 하는 거지, 지금, 이것들. 아무리 내가 ‘지동화’로 존재하는 거라지만, 당사자가 여기 있는데.
“그렇죠? 저는 동화 형으로 충분하지만.”
“지 교수님은 뭔가 아무리 이상한 말 해도 다 들어줄 것 같지? 동화랑은 다른 느낌으로 친해지고 싶어!”
그게 나라고, 멍청한 토끼 놈아. 대체 왜 분리된 건데. 라이프니츠가 말한 식별불가능자 동일성의 원리에서 내가 벗어나 있나. 대충, 두 대상이 가진 성질이 완전히 같으면 같다는 원리인데.
“나도 아무리 이상한 소리든 다 들어.”
“표정이 달라. 동화는 마음씨가 따스한데, 지 교수님은 표정이 따스해.”
나는 화면 속에서 고민상담의 탈을 쓴 헛소리를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교수님을 봤다. 그리고 백기를 들자마자 미간을 찌푸리고 얼굴을 감싸 깊은 한숨을 내쉬는 ‘나’의 모습이 이어졌다.
지 교수, 저놈은 위선자가 틀림없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표정은 다르긴 한데, 저 인간, 속으로는 별 이상한 생각 다 하고 있을걸.”
겉과 속이 다른 인간보다야 똑같은 인간이 백 배 낫다.
“형―님, 지 교수님 욕하면 안 됩니다― 저도 존경―하는 분인데.”
“맞아, 동화야. 그리고 교수님은 속으로도 따스한 생각만 하실걸. 인품이 얼마나 훌륭하신데. 우리들 멘탈 챙겨 주시려고 밤잠도 설치는 분이셔.”
석준과 류이든의 헛소리에 멍해진다. 갑자기 세계에 통용되던 규칙 하나가 뒤바뀐 느낌이다. 그리고 그걸 나만 어색해하고 있고.
그러니까, 세계의 모든 바다가 콜라로 바뀌었는데, 나만 검은 갈색의 바다를 보며 경악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형이, 저 인간에 대해 뭘 알아.”
“잘 알거든. 내가 지 교수님 악개라서. 아, 지 교수님 같은 형 한 명 있으면 좋겠다……. 나 놀리지도 않고 따스하게 품에 안아줄 거야…….”
잠깐. 이게 뭐지. 나 지금 심박수 측정기 차고 있나. 아무리 봐도 나를 엿 먹이려는 제작진들의 농간인데.
PD놈은 눈이 마주치자마자 두 손을 들며 아무런 지시도 없었음을 표현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것들이, 방송의 재미를 위해서 나를 놀리고 있단 뜻이군.
…재미 때문이 맞겠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내가 손을 들고 말하자 PD놈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예사롭지 않게 빛나고 있는 걸 보아하니,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러면 그 기대를 충족시켜 드리는 게 좋겠네.
* * *
지동화가 나가고 류이든은 웃음을 터뜨렸다. 작은 미소는 소리 내는 웃음으로, 그리고 폭소에서 광소로 이어졌다. 옆에 있던 채하민도 꺄륵 작게 웃었다.
“아, 우리 동화, 귀엽네, 진짜.”
“그러게. 동화나 지 교수님이나 다 똑같이 착한데. 귀여워라.”
물론 채하민은 그 둘을 다른 존재처럼 여기고 있다. 지동화는 독사인 척하는 애완용 뱀 같은 느낌이고, 지 교수님은 사람과 친구를 먹는 백 년 산 뱀 요괴 같은 느낌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둘 다 선하다는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류이든에게 채하민의 말은 가만히 듣고 있기 힘든 소리였다.
“그건 아니야, 하민아. 동화가 얼마나……. 너한테만 그러는 거야.”
“아니에요, 형. 그게 아니라, 동화 형이 형한테만 야박한 거예요.”
류이든은 잠시 말을 멈추곤 눈을 감고 곰곰이 뭔가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한 게 더 좋은 거지.”
“…고무신이 다른 신발보다 특별하긴 해두, 좋은 신발이 되지는 않아요.”
“고무신만의 매력에 빠진 걸 수도?”
“…형은, 가끔 부정적인 생각이 전혀 없는 것만 같은, 그런.”
이현재는 차마 ‘망상증’이라는 격렬한 단어를 입에 올리지 못하고 잠시 꾹 눌러 참았다. 지동화 다음으로 존경하는 인간한테 그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석준은, 우리 동화 형님은 어딜 갔기에 이리 오래 걸리는 걸까, 내심 걱정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다들 천하태평하니 자기도 천하태평하게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마치 그 기지개가 신호탄이라도 되듯이 문이 벌컥 열리고, 또각또각 울리는 구두 굽 소리.
‘어, 동화, 오늘 내가 준 운동화 신었는데.’라며 채하민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단정한 머리, 단정한 수트 차림, 단정한 구두. 거기에 은은한 미소까지.
“…와, 뭐야.”
지동화가 평소 지 교수가 하던 차림으로 와서는 의자에 앉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지 교수라고 합니다. 평소 오랜 팬이었습니다, 블로센스 여러분.”
“…형, 혹시 많이 힘들어요?”
이현재가 조용한 목소리로 묻자 지 교수는 고개를 갸웃하다 웃었다.
“초면인데요, 현재 씨.”
류이든이 감격에 찬 눈으로 지 교수를 쳐다본다. 두 손을 번쩍 들어서 지 교수를 끌어안았다.
“선생님! 뵙고 싶었어요! 유튜브로 볼 때마다, 친구 하고 싶었어요.”
지 교수는 웃으며 등을 토닥여준 뒤 류이든의 귀에 속삭였다. 그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고 류이든에게만 들리게끔 묘하게 조정된 목소리였다.
“저는 당신같이 초면에 남을 끌어안는 무례한 인간이랑 친구 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든 씨.”
엿이나 먹어라, 강아지.
지동화는 속으로 생각했다. 너희들이, 분명 ‘나’와 ‘지 교수’가 다르다고 말했으니, 이것도 다르게 받아들여야만 해. 그래야 모든 행동에 일관성이 생기는 거니까.
그리고 내가 화면 속에서 연기했던 ‘지 교수’라는 인간은 무례를 참고 넘어갈 인간은 못 됐다. 초면에 끌어안는 게 예의인 세상이라면 모를까.
“앗, 실수. 요즘 속마음을 그대로 말하는 버릇이 들어서요.”
PD놈은 오디오 감독님에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전해 듣고는 고개를 숙인 채 미칠 듯이 웃었다.
아마도 저 인간, 머릿속으로는 ‘멘탈 수업 2교시’에서 류이든을 게스트로 초대하는 상상이나 하고 있겠지. ‘지 교수님은 앙숙과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어쨌든 내 능청스러운 표정을 본 류이든은 파르르 손끝을 떨었다. ‘이럴 리가 없어…….’라고 중얼거리다가 털썩 주저앉았다.
이건 내가 멤버들에게 거는 모종의 결투 신청이다. ‘지동화의 멘탈 수업’은 서로를 엿 먹이려는 제작진과 출연자 사이의 투쟁이 벌어지는 곳.
제작진이 제시한 ‘불가해한 상황’을 어떻게든 합리적으로 해석해 내는 게임이다.
PD놈은 곧바로 사람을 투입해 멤버들에게 심박수 측정기를 착용시켰다.
멤버들은 당황한 눈초리였지만 시키는 대로 심박수 측정기를 착용했다. 이럴 때는 서로 뜻이 통한다는 게, 좋은 일인지, 짜증 나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여러분, 요즘 좀비 바이러스랑은 조금 친해지셨나요. 위드 좀비 바이러스 시행한 지 꽤 됐는데.”
즉, 지금부터 내가 지껄이며 만들어 갈 세계관, 이 모든 걸, 너희는 자연스럽게 해석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PD놈이 공들여 준비해 줄 벌칙에 참가해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