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33)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33화(201/343)
아, 개운한 아침.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어깨를 돌렸다. 아이돌 제작 공방, 제작은 사실 주문 제작이었지만 안타깝게도 클라이언트가 사라지는 바람에 제대로 된 공예품이 나올 수 있게 됐다.
“정말, 개운해.”
핸드폰을 보니 매니저님의 연락도 오지 않은 상황.
화양 어르신―화양 씨라는 호칭이 얼마나 경솔한 선택이었는지를 깨닫고 정정했다. 그분은 조선 시대에 살았어도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경(임금이 이품 이상의 신하를 이르는 말)이라 불렸을 것이다.―의 도움으로 만들어 낸 오늘. 만끽할 예정이다.
[저도 잊으시면 안 됩니다. 정말, 이런 불법적인 일을 행하게 하시다니!]‘너 설레했잖아. 최근엔 심장 떨리는 일이 없다며.’
[어쨌든 기지생 사랑한다고 한마디 부탁드립니다.]미친 존재.
[계약 조건입니다.]‘…사랑해.’
[죄송합니다. 토 좀 하고 오겠습니다.]족쇄에서 풀린 정경우 PD님은 역사 속에서 자유가 없었던 사람이 그러하듯 얼떨떨하고 불안할지도 모르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최대한 자신의 양심에 찔리지 않는 방향으로 재미있게 편집을 해 주시겠지.
숙소의 베란다로 나갔다.
새벽 어스름, 아직 완전히 동은 트지 않았다. 그러나 가로등은 꺼질 시간이 되어, 은은한 여명이 세상을 덮어 모든 사물의 경계가 흐릿하게 뭉쳐졌다.
유화인데 모든 색의 경계에 강박적으로 붓질을 수백 번씩 한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리고 시간이 서서히 흘러가면, 그 경계가 복구되며, 혼란 속에서 물체가 불쑥 튀어나오는 순간이 있다.
저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명확해지고, 내가 저걸 보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지고, 그리고 그로 인해 나 역시 경계선을 얻어 다른 이가 볼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면 그 시선 속에, 내가 존재하고 있겠지. 어쩜 이렇게 상호의존적인지 모르겠다.
“…뭐 해, 내가 지 교수보다도 존경하고 사랑하는 동화 형.”
마치 지금처럼.
“풍경 감상 중. 그나저나 호칭이 기네.”
“네가 이렇게 부르라면서요, 형님. 까먹으셨나요?”
“그럴 리가. 다음 회차 게스트로 나올 때까지 형이라고 부르기로 한 약속, 안 잊었지.”
“요즘 컨디션 장난 아니네요, 우리 형.”
“응.”
기분이, 좋거든. 거대한 세상에, 레고 블록 정도 되는 영역만큼은 깽판을 친 기분이라.
그것도 정말 내 개인적인 욕심으로.
“저는 형이 좋으면 다 좋아요.”
“존댓말은 빼. 계약서에 없었잖아.”
“저는 형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해요.”
안 하고 있잖아, 망할 놈아.
베란다로 걸어 들어온 류이든은 난간에 턱을 걸치고 숨을 들이켰다.
“고생 많았어, 동화 형.”
“그러게.”
류이든은 갑자기 말문이 열린 듯 순식간에 온갖 말을 쏟아냈다.
‘대체 무슨 일을 하려는지 모르니까 불안하더라.’, ‘그래도 잘 끝난 것 같아서 다행이다. 매일 걱정했다.’, ‘뭘 했는지 몰라도, 너한테 위험한 일만 안 했으면 좋겠다.’ 등등 끊임없이 내 안위만을 한껏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최종적으로 한숨을 푹 내쉬더니, 한마디로 말을 끝냈다.
“그래도 난, 자랑스러워.”
“뭐가.”
“몰라, 멋져. 우리 동화.”
류이든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저 류이든은 내게 정서적 지지를 보내고 싶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네가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결과를 맞이하든, 널 응원할 거라는 무조건적인 지지.
하여튼 동물들은 이래서 문제다. 빨리 영악함을 일깨우고 인간을 몰아내야 할 것 아니야.
난 한마디 툭 던졌다.
“형한테 예의 없네.”
“…우리 동화 형.”
그래, 이제야 옳게 된 기분이네, 동생.
* * *
음, 불쾌한 아침.
정경우는 잠에서 깨어나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눈을 떴다. 미리 편집해 둔 걸 다 갈아엎는 게, 얼마나 무모한 선택이었는지 뼈저리게 깨닫는 중이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 끝이다. 오늘 촬영은 완전히 새로운 편집이니까.
“아…, 다크서클, 왜 이렇게 짙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자신이 선택한 일이다. 대체 무슨 연유로 쏟아진 천재일우의 기회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고른 방송에 책임을 다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지은 죄가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어도, 그래도, 이것만으로도…….
모든 일이 얼추 정리되고 나서야 정경우의 머릿속에 여유가 생겼다.
최근 방송국 내에 있었던 소란. 국장님이 침울한 표정으로 멍하니 하늘을 보고만 있다는 소식이나, 국장실에서 여러 고성이 오갔다는 이야기.
모든 게 시끄럽기만 해서 편집에 방해된다고 생각했을 뿐이지만,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들리는 소문에는 퇴사를 고려하고 있다는데, 대체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 건지…….
“음, 알 게 뭐야, 몰라.”
정경우는 재킷을 입으며 여전히 그 안에 들어 있는 사직서를 한 번 만지작거렸다.
아, 몰라. 여행이나 갈래. 이번 프로그램 끝나면 떠날 거야, 이 회사. 사내 정치 상황 따위 알 게 뭔가 싶다.
어쨌든 오늘 드디어 악몽이 끝났다. 습관 같은 악몽이 끝나고 동화 씨를 꿈에서 뵙지 않고 맞이한 아침.
육체적으로는 지옥과도 같았지만 정신적으로는 상쾌…하지는 않아도 두려움은 없었다.
오늘 촬영에, 동화 씨가 오겠지. 정말 의문투성이이고, 대체 자신이 무슨 일을 겪은 건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머릿속에 여유가 생기니 다시 또 궁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을래. 따지고 보면 무언가를 바로잡을 동기를 제공해 준 사람이니까.
그리고 출근한 방송국. 조연출이 오늘은 늦게 와도 되니까 조금 쉬고 오라고 해서 평소보다 늦게 출근했더니, 이미 출연진도 출근한 상태인 것 같다.
“안녕하세요.”
어우, 벌써부터 최종 보스가.
“안색이, 안 좋으십니다.”
스몰 토크. 친밀감의 표현이 분명한데 지난번의 기억이 PTSD처럼 떠올라 흠칫하고 말았다.
“아, 아니요, 괘, 괜찮아요.”
지동화의 걱정스러운 표정은 점점 심화되었다. 진지하게 아파 보이고 안색이 새하얬다.
옆에 스쳐 지나가던 루카치도 그 모습을 보고는 한껏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PD님, 피부가 하얗다 못해…….”
병든 환자 같아요. 뒷말을 뱉지 못한 루카치가 입을 가리고, 지동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건강 문제를 짚는 루카치를 바라보다가, 문득 정경우는 지동화에게 눈을 돌렸다. 그러자 지동화는 지 교수 같은 미소를 입에 올리더니, ‘감사합니다’라고 소리 없이 입만 움직였다.
“아, 나 진짜…….”
정경우 PD는 무서웠다. 인간이 갖는 공포는 미지에서 오는 공포가 가장 크다고 했다.
뭔데, 진짜. 꿈에 또 나올 것 같아. 출연자가 무서운 PD라니, 이게 뭐야.
그러나 자비가 없는 입은 계속해서 소리 없이 입 모양만으로 대화를 청했다. ‘존경스럽습니다.’
데자뷔. 정경우는 확신했다. 지동화, 자신이 무슨 일을 했고, 이후에 무엇을 선택했는지 다 알고 있다.
잠깐만, 알면 존경스러울 수가 있나, 자신은 쓰레기인데. 오늘도 정경우는 복잡한 머리를 추스를 수밖에 없었다.
* * *
“이제 결선까지 본방은 몇 회 남은 거야?”
“6회 정도 남았습니다.”
“어우, 진짜 얼마 안 남았네. 촬영은 엄청 오래전에 시작한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까 우리 막내.”
오늘도 시작이다. 이 망할 칭찬 레이드.
“이번에 애들 무대 하라고 곡 하나 줬다며.”
어차피 남는 곡은 많고, 앨범에 넣기에는 컨셉이 안 맞고, 버리자니 아까운 계륵 같은 곡도 있기 마련이다. 개중에 남는 거 하나 던져주는 건 그렇게 큰일도 아니다.
“…네.”
“아, 벌써 설레네. 무슨 곡일지.”
“그러게요. 막내가 사랑스러운 곡 쓰는 거 상상했는데.”
“지난번 컴백 곡도 사랑스럽드만. 애들 연애 얘기.”
벚꽃 낙하가 애들 연애…, 였구나. 나름대로 진지하게 썼는데, 사십 대가 바라보는 세상은 나도 아직 경험해 본 적 없어서 몰랐다.
“PD님, 팀은 다 정해진 거예요?”
“네. 동화 씨 곡도 이미 누군가가 가져갔어요.”
여전히 나랑은 눈을 마주치는 걸 피하는 정경우 PD님.
아, 멘탈 수업 그 망할 놈이랑 비교하면, 정말 친해지고 싶은 분인걸.
“동화야, 누가 가져갔으면 좋겠어.”
“…방송되면 논란 터지진 않을까요.”
“PD님 믿고 지르는 거지.”
나는 웃으며 경우 씨를 쳐다봤다. 전부 티 나게 시선을 돌리고 종이를 읽는 척한다.
음, 연기는 소질이 없으신걸.
“그럼, 저는 한진 씨나 은구 씨가 가져가 주면 좋겠습니다.”
“이유는?”
편곡하는 애들 중에 제일 성실해서.
“편곡 실력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역시 실력만 있으면 동화 사랑 받는 게 어렵지가 않다니까? 우리 중에 연습실 방문 횟수 PD님이 통계 내주셨는데, 동화가 압도적 1등이라잖아.”
“동화가 우리도 그렇게 사랑해 주면 좋을 텐데. 회식 좀 가자, 동화야.”
“…지난번에.”
“그땐 취한 걸 못 봤잖니.”
대체 무슨 술자리 각오가 그렇습니까. 저 취하면 멤버들 협박하는 술버릇이 있어서 안 됩니다.
한국에는 빨리 나이에 의한 관습이 사라져서 막내를 챙겨주는 분위기가 없어졌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언제나 촬영장에 오면 칭찬만 듣고 있으려니 병적으로 미칠 것만 같은 기분이다.
“어쨌든, 한번 볼까요, 팀 구성?”
루카치 선배님이 내 곤란함을 읽고는 빠르게 주의를 끌었다.
“VCR로 보는 거죠?”
“네. 지금 틀게요.”
우리 경우 씨는 드디어 내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게 감격스럽단 듯이 벅찬 눈으로 자리를 떴다.
끝나고 찾아가서 조금 더 대화를 나누다 가야겠다. 절대로 누군가를 괴롭히는 게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 아직 못다 전한 말이 있으니까.
* * *
지동화는 VCR을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지동화 담당 카메라맨은 단 한 번도 촬영한 적 없는 격렬한 표정 변화에 줌인하여 클로즈업을 찍었다.
세상에, 지동화 치열이 조금이나마 드러나다니. 하늘이 깜짝 놀랄 일이었다.
VCR 화면 속에서는 자신이 작성한 곡의 팀이 결성되는 장면. 박은구가 중앙에서 권한진, 지상과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뒤이어 그 팀에 와플 1이 합류하려는 낌새를 보이자 지동화의 얼굴엔 어느새 함박웃음은 사라지고 냉정한 분노가 눈에 서려 있었다.
이내 지상이 웃는 얼굴로 무어라 속삭이니 포기하고 떠나는 모양새가 나오자 그는 다시 흡족한 표정으로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단 몇 초 만에, 표정 변화가 가장 적어서 찍을 때 자신이 혹시 촬영을 멈춘 건 아닌가 의심하고는 했던 인간이!
카메라맨은 깜짝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주 당연하게도, 이런 특이사항은 PD의 귀에도 들어갔다. 촬영할 때 쓸 만한 부분을 짚어서 알려주는 경우도 가끔 있었으니까.
“…네?”
정경우는 아주 당연하게도 그 부분이 뭔지 호기심이 들어 확인했고, ‘와플’에 대한 적개심이 드러나는 표정을 보며 확실히 깨닫고 말았다.
“…다 알았구나. 미친, 어쩌지. 튈까.”
그리고 정경우가 목 끝까지 치미는 공포감에 회의실에서 나서려 할 때, 똑똑, 정갈하고 예의 바른 노크 소리가 울렸다.
‘아…, 노크 소리가 명함 역할을 대신하네.’
정경우는 허탈하게 자리에 주저앉았다.
“네…, 들어오세요.”
끼익.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이음새가 어긋나 들리는 금속 마찰음. 아주 천천히 열리는 문. 그리고 몸이 들어설 수 있는데도 머리만 내밀어 자신을 돌아보는 얼굴까지.
“안녕하십니까, PD님.”
“…네, 동화 씨.”
정경우는 합리적으로 의심했다. 저 인간이라면 자신을 괴롭히기 위해 일부러 과장된 표정 변화를 보여 줬을지도 모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