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34)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34화(202/343)
사람의 행동을 예측하는 건 번거롭고 귀찮은 짓거리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A4 용지 몇 장을 쓰면서 예측하신 겁니까?]심지어 보지 않은 사람의 행동거지를 예측하는 건 특히.
그 사람의 지위와 주변 소문을 근거로 판단하는 건 정말이지 머리가 아픈 일이다.
[그걸 또 하셨으면서 아픈 소리 하십니다! 저라면 정말 귀찮아서 그저 무시했을 겁니다.]다행히도 우리 경우 씨나 다른 분들이 협조적으로 도와주신 덕분에―사실 나는 별로 한 게 없다. 화양 씨를 도운 게 전부니까―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었다.
[하지만.]닥쳐. 시끄러워, 기지생.
[글을 귀로 들으시다니, 공감각적이시네요.]어쨌든, 해피엔딩을 맞았다고 해서 소설처럼 끝이 나면 얼마나 좋을까.
아쉽게도 망할 인생은 죽기 전까지는 살아야 하는 법이라.
[죽고 나서도 사셔야 합니다.]저런, 영생이네. 나중에 만날 수 있으면 영생 때 팁 좀 가르쳐 주고. 하여튼 기지생 덕분에 요즘 홀로 생각할 시간이 부족해서 문제다.
정경우 PD님의 머릿속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히 잘 모르겠지만,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는 건 분명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내가 어떤 연관이 있다고 믿을지도 모른다는 것 정도.
화양 씨 뒤에 꼭꼭 숨어 머리카락 하나도 비치지 않고 싶었으나, 우리 경우 씨를 건드릴 만한 방법이 달리 없었다.
그러니까, 우린 대화가 필요하다.
여러 생각으로 복잡할 머리를 정리해 드리고, 나라는 인간은 길바닥에 뒹구는 흔한 연예인이라는 확신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무, 무슨 대화를 나눌까요, 우리 동화 씨?”
왜 시선을 피하십니까. 저는 마음이 아픕니다. 그냥 뒤가 조금 구린 구석이 있는 시골집 할머니인데. 어딜 가든 흔히 볼 법한 사람이잖아.
“시간 괜찮으시다면, 비밀 얘기를 해 보고 싶습니다, PD님.”
“…비밀이요?”
PD님이 멍하니 의자 하나를 손짓했다.
예의 바르게 목례하고 자리에 앉았다. 공기의 밀도가 높아진 듯 적당한 불편함이 침묵 속에 가라앉았다.
우리 경우 씨가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이게 말이 되는 그림인가, 싶다.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어. 조금 전까지 즐겼지만, 이후 업무에 차질이 생기는 일만큼은 막아야 한다.
“무슨, 비밀 얘기일까요?”
“PD님에 대한 제 존경심이죠.”
“…네?”
“PD님이 특정 연습생을 편애하는 건 아니신가 싶었는데, 제 오해였습니다. 클립을 추가로 공개해서 여론을 바꾸는 그림을 그리고 계신지도 몰랐거든요.”
“…네?”
“그래서, 존경스럽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찾아뵀습니다. 제가 멍청한 생각으로, 잠시나마 훌륭한 분의 뜻을 곡해한 게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닌데요.”
“저는, 알고 있습니다. 굳이 그렇게 부정하지 않으셔도, 제가 얼마나 별꼴이었을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우리 경우 씨는 경악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표정을 관리하자, 이 모든 게 사실인 것처럼.
존경은 거짓말이지만, 거짓말이면 어때. 무언가 더 많은 걸 아는 놈보다는 제대로 모르면서 의기로운 마음에 설친 얼뜨기 정도가 낫다.
더 아는 건 없고, 편집과 실상을 비교해 보면 분명 ‘편애’가 있는데, 정의로운 심성 때문에 은근히 마음에 걸렸지만, 배배 꼬인 성격 탓에 대놓고 말은 못하고, 딴에 대가리에 든 건 많아서 묘한 비유를 들면서 난리를 친, 어린 새끼 정도.
딱 그 정도를 원한다.
* * *
‘아, 저 인간, 백 프로 구라야.’
지금 뭘 원하는지는 알겠다. ‘저는 아무것도 모른답니다, 존경하는 PD님!’이라는 말, 순진해 보이는 표정, 그리고 거기서 읽히는 감탄의 감정.
더 무서워, 젠장. 왜 저러는데, 대체 뭔데.
“그렇군요! 아, 맞아요. 저도 놀랐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눈앞에 대고 물어볼 수도 없으며, 더군다나 어디 가서 하소연하는 것도 두려울 지경이다.
혹시 모르잖아, 알고 보니까 대기업의 숨겨진 친척이면 어떡해. 아니면 정치인이 돌봐주고 있는 사람이라거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해서, 아무런 권력이 없다는 건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른다.
특히 저 눈, 너무 깊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
그래서 정경우는 언젠가 다가올 퇴사를 떠올릴 뿐이었다. 할 줄 아는 게 방송 일밖에 없으니 관련해서 복직하겠지만, 어차피 한동안 못 볼 사람!
그래서 정경우는 미소를 지었다.
“우리 동화 씨가 그랬구나……. 저는 당황스러웠거든요. 그래도 이렇게나마 제 마음을 알아주시니 고마울 따름이에요.”
거짓말이면 어때. 긁어 부스럼보다는 모르는 게 약이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고 있던 지동화는 마주 웃어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 완전히 안 믿네.’
류이든이었으면 어떻게 속아 넘겼을 것 같은데, 이래서 우리가 그룹 활동을 하나 보다, 싶었다.
그러나 그나마 다행인 건, 정경우 PD가 ‘부디 모른 척하자, 서로.’라는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뒷말이 나올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지동화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 * *
“…그렇게 마무리?”
마무리라기엔 정작 아이돌 제작 공방이 끝나지 않았지만.
“응, 이제 데뷔하는 것만 보면 될 것 같아.”
마지막 날 생방송을 한다고 하는데, 현장에서 축하하기는 힘들 것 같고, 스케쥴 끝내고 와서 멤버들과 함께 볼 예정이다.
기왕이면 은구 씨는 데뷔하길. 집 앞 나무에 위태롭게 살던 다람쥐놈이 숲을 찾아 떠난다는데 집 지키는 개로서 축하할 마음 한가득이다.
“어우, 우리 PD님이 안타까울 지경이네……. 잘못이야 하긴 했지만.”
“그러게.”
거기까지 말하고 나는 옆에 앉아서 졸고 있는 석준을 한 번 흘깃 바라봤다. 옆에서 이렇게 떠드는데도 아무런 걱정도 없는 표정이 인상적이다.
“설레지?”
우리 리더는 내 마음을 오해했는지 섣부른 추측을 제시했다.
지금 밴 안에 타고 있는 건, 나와 석준, 그리고 류이든. 류이든은 다른 스케줄 때문에 동승했을 뿐이다.
“준이랑 동화가 단둘이 예능 출연. 진짜 무슨 그림일지 상상도 안 가.”
“…그러게.”
말 그대로다. 석준이랑 단둘이 대화한 기억이, 그렇게 많지가 않아서.
이현재가 나한테 달라붙어 있을 때, 석준은 독고다이를 실천한 인간이라 그렇다.
누구는 우리 팀 내에서 정신적으로 가장 단단한 인간을 고르라고 할 때 나나 류이든, 어쩌면 이현재 중 한 명을 꼽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석준을 꼽고 싶다.
‘단단하다’라는 게, 다른 사람으로 인해 변하지 않는 걸 의미한다면 석준만큼 단단한 인간은 없을 테니까.
괜히 탄생화가 소나무인 인간이 아니다. 한결같이 잘 울고, 한결같이 즐겁고, 한결같이…, 미친놈.
나는 아직 석준이 나를 간호할 때 바퀴벌레처럼 기어나가던 일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공룡이랑 바퀴벌레가 같은 시대에 살았단 게 분명하다는 증거다.
그런데 우리의 단단한 석준이 최근, 나를 조금 피하는 느낌이다.
“어떻게 생각해.”
“너 무서워하던데. 준이 요즘 우리 방에서 가끔 얘기하더라.”
장난스러운 목소리였지만, 넘어가긴 쉽지 않은 소리였다. 왜, 요즘, 이렇게, 다들.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뭐라고.”
“동화 형은 눈이 무섭대. 막 남을 때릴 것 같다던데.”
“…세상에.”
꽃으로도 때리지 않는 난데. 사람을 때린 건 네가 처음인 난데, 이든. 어떻게 석준이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어.
“내가 봤을 땐 일단 나를 때리는 걸 멈춰.”
“헛소리.”
내 몇 안 되는 삶의 낙을 빼앗아 가려 하다니, 리더 실격이다.
류이든은 자기 말이 일축당하자 삐진 척하다가 갑자기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피하는 게 아닐걸.”
“어제 거실에 둘이 있을 때, 한마디도 대화를 안 했어.”
“그거야…….”
류이든은 뭐라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얼굴 근육이 움찔대는 걸 보니 말하고 싶은 게 있는 건 분명하다.
억지로라도 말을 뱉어내게 하려고 할 때였다.
“이든 씨, 내려야 돼요!”
“네!”
류이든이 개운한 얼굴로 나한테 손을 흔든다. 석준이 자고 있는 것도 톡톡 쳐 깨워 굳이 인사를 받아냈다.
“어, 형님, 저―희 내리면 되나요.”
“아니, 우린 아직.”
류이든은 분명 일부러 석준을 깨우고 간 게 분명하다. 평소라면 자고 있는 동생을 함부로 깨울 인간은 못 되니까.
차에서 류이든이 내리고 둘만 남아 있으니, 침묵.
석준은 개운하게 자고 깨서 기분이 좋은지 기지개를 켜며 기뻐하고 있었다.
“형님.”
“…응?”
“오늘 저희 설명만 듣고 돌아오는 건가요?”
“응.”
생각해 보면 ‘석준은 알아서 잘 살 테니까’라는 마인드로 별로 관심도 주지 못한 것 같다. 믿음을 기반으로 한 방목이 석준에게 서운하게 느껴졌다면…….
석준은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들었다. 표지에 수많은 스티커가 붙어 있는 분홍색 수첩이었다.
정말, 나라면 감당하기 힘들 어떤 것을 당당하게 꺼내 드는 건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평소라면 관심을 보이지도 않을 물건.
그러나 관계 개선의 한 발자국을 내딛는 거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수첩은, 뭐야?”
그러고 보면 이상하기도 하지. 어째서 석준이랑 단둘이 있던 기억이 거의 없을까. 항상 다른 멤버들이, 특히 채하민이 껴 있었던 것 같은데.
“스티커 저장고입니다.”
그게 뭔데. 혹시 수첩의 존재 의의가 표지에 붙여둔 스티커를 보관하는 거라면 너는 경제학을 나랑 같이 배워야 할 거야. 억지로 가르칠 거야.
“…잠시 봐도 돼?”
그러자 석준은 눈을 크게 뜨고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여 내게 분홍색 수첩을 건넸다.
정말 표지가 전부인 거면, 너는 상품의 가치를 다시 배울 예정인 거야, 알겠지. 예전부터 너는 돈을 정말…, 물 쓰듯…….
그리고 수첩을 열자마자 나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 안에는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는 생명체들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내가 기지생의 정체를 몰랐을 때,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어렴풋이 추측한 적이 있는데.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그 모양새가 전부 다른 생명체들이 나를 위협적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모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거 전부, 수첩 끝까지, 다…….”
“네― 전부― ‘주괴’입니다.”
“그게, 뭔데?”
금속덩이는 아니잖아.
“주머니 속 괴물, 모르십니까! 형님 저랑 같은 시대를 사셨는데!”
어렸을 적에 TV를 본 기억이 없어서. 그나저나 이름 왜 그 모양이야.
“여기 하나 더 있습니다!”
오랜만에 말이 빨라진 우리의 석준이 가방 안에서 수첩을 세 권 더 꺼냈다.
“…이게 다?”
“네! 자랑스럽습니다!”
아니, 자랑스러워 하면 안 돼, 준. 네가 번 돈이 다 이 성분이 뭔지도 모를 것으로 대체됐잖아.
“이건, 진짜 구하기 힘들어서, 저 빵을 엄청 먹었습니다!”
“…어.”
그러고 보니, 나도 하나 얻어먹은 기억이 있다. 정말 더럽게 맛이 없었어.
“그래서 이든이 형 따라서 매일 운동 가는 나날! 저 정말 힘들었습니다!”
너는 진짜…, 대단해.
음, 잠깐만.
“그럼 요즘, 그래서 기운이 없었어?”
“네! 진짜! 이든이 형이 죽일 듯이 굴려 대서!”
그 망할 새끼.
“어쨌든, 이거 한 장만 있으면 됩니다!”
석준은 한 손에 수첩을 들고 검지로 방사능에 오염당한 게 분명한 쥐 한 마리를 가리켰다.
저런, 저 아이는 유전자에 손상이 많이 갔네. 이만 보내 주는 게 인륜에 더 부합할 것만 같아.
“…그래.”
석준은 해맑은 표정으로 수첩을 쓸어보다가, 나한테 한 권을 건네줬다.
“이거, 제가 오늘 하루만 빌려 드릴게요.”
저런, 나도 방사능 피폭에 당하라는 뜻이네.
대체 무슨 프로세스가 머릿속에서 돌아갔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의 친밀감을 표시하는 방법이지 않을까.
“형님이 먼저 관심 가져 주는 거 처음이라 기쁩니다.”
나는 실없는 걱정에 빠졌던 과거의 나를 탓하며 수첩을 받아들었고, 그날 바로 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