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36)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36화(204/343)
사소한 문제는 사소해서 유독 문제가 된다. 대놓고 말하기는 뭣하지만, 신경에 거슬리는 일처럼.
차라리 대판 싸운다면 채하민과 그러했듯 화해하고 끝낼 수 있겠는데, 멱살 잡기에는 사소해서 은근한 응어리처럼 남아 있다.
“그래서 컨셉은 예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사연 라디오예요. 파일럿 프로그램이라 인기 떨어지면 그냥 끝나겠지만, 저는 믿어요. 우리 두 분이 환상의 케미를 보여 주실 거라고!”
가령 지금처럼 내일 있을 보이는 라디오의 최종 대본 확인을 위해 모인 자리에서도, 묘하게 우리 둘이 어색하다.
작가님은 사람 좋게 웃고 계시지만, 아마도 오묘한 어색함을 눈치채시지는 않았을까 걱정될 따름이다.
“사실, 블로센스 두 분을 섭외하는 건 확정했는데 누구를 뽑아야 할까 고민이 많았거든요. 그러다가 사연 읽을 때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일 분 위주로 섭외했답니다!”
석준은 슬픈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서 ‘정말 다르긴 하더라.’라는 깨달음이 묻어났다.
오늘 방송국에 오면 뭔가 해결될 줄 알았더니, 웬걸, 분실물이 없느냐는 물음에 작가님이 ‘네!’라고 단호하게 말해 주셨다. 이쯤 되면 기억력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의심될 지경이다.
처음에는 도둑질을 의심했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막말로 도둑이 있다 하더라도 가방 안에 지갑을 두고 수첩을 훔쳐 가는 건 비합리적이다.
대부호의 저택에 잠입해서 부엌에 있는 이쑤시개 훔쳐 가는 거랑 뭐가 달라.
…이게 뭐 하는 짓이람. 빨리 부지런하게 빵을 먹기나 해야겠다.
* * *
회사 앞에 헬스장. 아, 내가 여기에 발을 들이다니.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으며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고 있자니, 나와는 달리 더럽게 밝은 얼굴을 하고 있는 류이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하하, 내가 말했지! 언젠간 너랑 같이 다시 오고 말 거라고! 요즘 나는 이 시간이 제일 기대가 된단다, 동화 형!”
“부디 닥쳐 줘.”
지금 몇 년 전에 했던 다짐이 꺾여서 나 스스로가 증오스럽거든.
“…하.”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
그 말의 출처가 유베날리스의 풍자시인 건 알고 있니, 망할 개.
원래는 운동에 미친 로마 사람들을 비꼬면서 ‘부디 그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기를 바란다!’라는 식으로 말한 거다.
“…너도 꼭 건강한 정신이 깃들기를.”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중얼거렸다. 그런 내 어깨 위에 툭 얹어지는 손.
“너는 네 건강한 정신이 꼭 건강한 육체에 깃들었으면 한다.”
언젠가 네가 죽는다면, 아마도 그날 나는 경찰에 자수를 해야 하겠네. 안타깝다, 이든이 형.
이게 다 그 망할 놈의 빵 때문이다. 버리려니 너무…, 그래서 다 처먹었다. 당일에야 ‘지구에 민폐 좀 끼쳐도, 뭐.’라고 생각했었지만, 고작 이걸로 지구에 민폐를 끼치려니 양심이 썩을 것만 같아서.
“하하하, 형, 우리한테도 강제로 먹여 놓고!”
“혼자서 그걸 다 먹을 수는 없잖아.”
그리고 절반 이상은 홀로 먹었단다. 석준 몰래 먹느라 급하게 먹어서 얼마나 힘든지 아니.
“뭐, 덕분에 우리 동화 몸에 근육 좀 생기겠네. 오늘도 어제처럼?”
“아니.”
내일 스케줄인데, 어제처럼 하면 내일 라디오 하다가 토할 것 같은데. 나는 별 생각 없이 벤치프레스에 누웠다.
“…절반으로 해 줘.”
“그래! 고객님 원하는 대로! 오늘만 빵을 몇 개 드셨죠?”
“…다섯 개.”
“땡! 기억력 좋은 우리 고객님이 일부러 액수를 줄여 말하시네요. 선생님은 슬퍼요?”
개인 PT 선생이 한집에 살면서 뭘 먹고 뭘 하는지 다 관찰당하는 삶이라니.
“…열 개.”
“와! 정확해. 그럼 그만큼 운동을 해야 하지만, 특별히 봐드립니다, 형님!”
형님 같은 소리. 준이가 말해야 어울리는 단어야, 그거.
“가볍게 세 세트?”
“정말 가볍네.”
“그치? 아, 진짜, 나 착해서 탈이야.”
나는 말없이 봉을 잡았다. 이현재한테 가서 반어법이나 배우고 왔으면 하는 마음은, 우리 사이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 꾹 참을 수 있었다.
그렇게 두 시간. 류이든 기준 ‘간단한’ 운동을 마치고 나는 숨을 가다듬었다.
짜증나는 건, 놀랍게도 예전처럼 죽을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운동에 익숙해지는 나 자신이 싫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 인간이랑 닮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
“고생 많으셨어요, 동화 형!”
아, 이게 다 뭐 하는 짓이야. 대체 뭔데. 왜 나는 지금 운동을 하고 있고, 망할 놈의 방사능 오염 생물들의 스티커를 모으고 앉은 거야. 망할, 뭔데.
이거 혹시 깜짝 카메라가 아닐까. 사실 류이든이 가져 간 거고, 그래서 운동을 시키려는 계략 아닐까.
“…아니야, 뭘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전부 아니야.”
“내가 뭘 했다고.”
“방금 형, 나 죽이려고 했잖아.”
눈치 빠른 건 정말 변함이 없네.
“우리 준이는 알까 몰라. 동화가 빵 미친 듯이 먹고 운동하는 거.”
“몰라.”
“응?”
“…부담되잖아.”
류이든은 덤벨을 들었다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튼, 둘이 묘하게 잘 맞아…….”
“그래?”
“어. 준이 취미에 제일 관심 많은 것도 너잖아. 맨날 설명 들어줬으니까. 최근에는 네가 바빠서 못 해 줬어도.”
“그거야.”
혼자 좋아하면 쓸쓸하잖아. 내 아버지가 철학자가 아니었으면 나도 꽤 힘든 유년기를 보냈을 것 같다.
최근에는 류이든 말대로 바쁘고, 서로 개인 스케줄이 있어서 그럴 시간이 없었지만.
“이제 돌아가자. 너 더 하면 쓰러질 것 같아.”
“형.”
“응?”
“형이라고 불러야지.”
예의가 없네, 우리 동생. 멘탈 수업 받는 날까지 형 대우하면서 예습하기로 했잖아, 수치 견디기. 약속은 약속이다.
* * *
석준은 지동화와 채하민의 방문을 두드리며 결심했다.
둘 사이의 미묘하게 어색한 공기. 블로센스 내에서 가장 눈치가 없는 인간으로 평가받는 석준이라고 해도 모를 수 없었다.
‘이게 다 나 때문…….’
주괴 스티커, 정말 사랑한다. 평소에 굿즈라면 돈을 아끼지 않는 석준이지만, 어머니가 카드 내역을 보고 멱살을 잡은 건 이번이 처음일 정도로.
그러고도 석준은 눈치 없이 빵이 많다며 자신의 가족들에게 빵을 돌리고 스티커는 달라고 했을 정도로.
그걸 모아둔 수첩은 대대손손, 나중에 혹여 자식이 생겨도, 혹여 손자가 생겨도 보여 줄 예정이었고―정상인과는 그 사고 자체가 다르다.―혹여 생기지 않더라도, 블로센스 실버타운에서 동화 형님과 추억을 나누는 용도로 사용할 예정이었다.
총 세 권의 수첩, 그중 한 권, 그것도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것들만을 모아 놓은 수첩.
평생을 홀로 덕질해 온 몸이지만, 만일 친구가 있었으면 입을 쩍 벌리고 손을 부들부들 떨며 말을 더듬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동화 형님보다야.
석준은 지동화가 얼마나 미안해했는지 분명히 기억한다.
표정에 감정을 드러낼 때가 ‘짜증’과 ‘분노’밖에 없는 사람인데도 ‘미안함’과 ‘송구스러움’을 격렬하게 표현했던 사실을.
지동화의 성격상 분명히 본인 실수가 아닐 것도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상실감이 너무 커서 묘하게 거리가 생겨나고 말았지만, 드디어 깨닫고 말았다.
애초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관심도 가져 주는 사람이 흔하지 않다는 사실을.
스티커야, 다시 모으면 되지만 그런 사람은 평생을 살아도 만나기 힘들지 않을까.
석준은 그런 마음으로 문 앞에서 침을 삼켰다. 사람이랑 싸워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화해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윽고 열리는 문. 채하민이 하품을 하다가 웃었다.
“준이, 왜?”
“동화 형―님께.”
“음, 지금은 없는데.”
“아, 작―업하러 가셨나―요.”
“아? 어? 음! 아?”
채하민은 늘 그렇듯 표정에 모든 걸 드러내면서 ‘이걸 말해도 되나? 딱히 동화가 금지한 적은 없는데, 그래도 될 일일까?’라고 번민했다.
그렇다고 석준에게 답을 안 해 줄 수도 없고.
“아니……?”
“네?”
“그, 음, 운동을 하러…….”
“운동이요?”
석준은 절로 말이 빨라졌다.
블로센스 내에서 운동을 가장 싫어하는 인간을 꼽으라면 백이면 백 지동화를 꼽을 것이고, 루미너스분들이 이 일을 알았다면 물리 법칙이 변한 건 아닐지 궁금해하며 자기 뺨을 한 대 칠 일이다.
충격적인 사실에 석준은 입을 벌렸다.
“…왜요?”
절로 나오는 의문.
“그게…, 빵을, 요즘 많이 먹어서? 이든이 형이, 그, 건강관리를 하라고…….”
진실을 숨긴 채로 사실만을 말하는 것, 지동화 곁에서 그런 걸 자주 목격했던 채하민이라 ‘자기가 생각하기에는’ 능숙하게 진실을 숨긴 채 말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안타까운 건, 채하민은 그렇게 능숙하지 못한 인간이고, 석준이 그것도 눈치 못 챌 정도로 바보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맙소사.”
대체 자기는 무슨 짓을 한 걸까!
잠시 마음을 추스르고, 사라져 버린 주괴들을 애도하는 사이에 이미 지동화는 빵을 먹으며 스티커를 모으고 있었다니.
“동화 형님…….”
“그, 그러게! 요즘 막 밥이 맛이 없대. 빵이 좋다고 그래서…….”
그리고 이걸 눈치채지 못한 채하민은 여전히 능숙하게 진실을 숨기는 중이다.
자기 머리만 숨어 있으면 몸도 보이지 않는다고 믿는 토끼의 모습을 표현한 행위 예술이라고 해도 믿겠다.
* * *
열 장. 그렇게 처먹어 댔는데도 모은 게 고작 열 장이다. 수첩에서 봤던 녀석들 위주로, 지금 남아 있는 것과 겹치지 않는 것들의 숫자가.
이렇게 확률이 더럽다니, 장사할 줄 아는 인간들이네. 자본주의 사회의 악랄함을 이 스티커가 증명하고 있다.
나는 집으로 들어가며 이를 짓씹었다.
이렇게 직접 고생을 해 보니 석준이 겪었을 심리적 충격이 어느 정도일지 감이 왔다. 내가 작업한 곡이 모두 날아간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리고 손을 씻고 방문을 열었을 때, 내 침대 위에 웬 거대 공룡 한 마리가 얼굴을 파묻고 울고 있었다.
뭐지, 지옥인가. 혹시 꿈에 자기가 잃은 주괴 스티커의 망령이라도 나와서 시위하러 왔나.
곁에 있던 채하민과 눈이 마주치자, 채하민은 곧바로 두 손을 모았다. 아, 다행히 내 잘못은 아닌가 보네.
하민, 네가 뭔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내 종아리 근육이 지금 실시간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어서 그런데, 조금 비켜 봐, 의자에라도 앉게.
“동화야, 그게…….”
채하민의 짧은 한마디. 그 말이 촉매가 되어서 석준이 폭발하듯 몸을 일으켰다.
“형님!”
왜 아직도 과속하는 공룡에 대한 규제 법안이 발의가 안 됐지.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이렇게 교통 법규에 무심한 나라가 됐나.
무엇에 이리 흥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격하게 껴안는다. 달려드는 석준, 그리고 놀랍게도 지금 유약해진 내 종아리.
자연스럽게 뒤로 넘어갔다. 오랜만이네, 이거. 블로센스 감사제 이후로 처음인 것 같은데.
눈을 감고 곧 다가올 최후를 직감했다. 그리고 3초 후, 목에 느껴지는 강인한 손아귀.
“와, 데자뷔!”
그리고 보이는 류이든의 낯짝. 나는 익숙하게 일어나 류이든과 석준을 떨쳐냈다.
“형님! 흐어!”
석준의 울음과 류이든의 웃음, 채하민의 안절부절까지 겪고 있자니 피로해지는 기분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 모든 걸.
“하하.”
이현재가 지켜보고 있겠지. 뒤에서 들려오는 웃음에 모든 게 귀찮아지고 말았다.
“준.”
“네! 형님!”
“뭔진 모르겠지만, 모두 용서해 줄게.”
그러니, 내 종아리를 위해 나가주지 않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