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37)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37화(205/343)
심야 라디오의 시작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대기실에 마주 앉았다.
“…준, 눈 치워.”
자연스럽게 가방에서 빵을 꺼내 뜯고 있자니 석준의 부담스러운 시선이 쏟아졌다. 안타까워하고 미안해하는 표정이 납득되지 않는다.
“형님, 제가 먹을 테니까, 운동 가지 마세요!”
배려해 준 건 고맙지만, 내 책임을 남한테 미룰 수는 없지. 나는 빵을 하나 베어 물고 석준에게 다른 빵 하나를 넘겨줬다.
“많이 남았어.”
“…저는 구하려고 해도 못 구했는데―”
“돈은, 많은 걸 해결해 주잖아.”
빵, 더럽게 맛없어. 차라리 하민이가 해 준 지옥의 한 상을 먹는 게 나을 것 같다. 채하민 셰프의 당돌한 비법으로 만든 가장 흉악한 한 상.
나는 여물 씹듯 빵을 씹다가 별생각 없이 씰을 뜯었다. 또 중복이겠지. 기대조차 되지 않는다.
찌익, 경쾌한 소리와 함께 뜯자, 그 안엔 웬 외계 생명체 하나가 있었다.
빌렸던 수첩이나 석준이 가지고 있던 수첩에서도 본 적이 아예 없는 낯짝. 아직까지 석준도 모으지 못한 녀석인가 보다.
나는 자랑스럽게 석준을 툭 쳤다.
“이거.”
“네?”
“외계인.”
이름은 뮤래. 그리스 숫자로 사십을 뜻하는 놈이야.
“…형님.”
그러나 예상과 달리 석준은 기뻐하기보다 무언가를 억누르고 있는 모양새였다. 기쁨을 억누르는 건, 아닌 것 같다.
석준은 이번에는 입을 움찔거리다가 손으로 눈을 틀어막았다.
“형님…….”
부르다 죽을 이름처럼 부르지 말아 줄래.
“형님은, 신인가요?”
“…드디어 미친 거구나.”
석준은 여전히 내 손에 들려 있던 스티커를 조심스레 전해 들고는 벌벌 떠는 손으로 살포시 품에 안았다.
“사랑스러운, 내 새끼…….”
그거 네 자식이면, 너는 뭔데.
석준은 한참을 꼭 끌어안다가 가방에서 밀봉 백을 하나 꺼내서 집어넣고는 테이블 위에 가만가만 올려뒀다.
그 모든 걸 의아하게 쳐다보던 내 시선을 느꼈는지 석준이 감격에 젖어 흐느끼듯 뱉어냈다.
“얘가…, 제일 안 나오는 아이입니다…….”
그러니.
“네 가방에 넣어둬. 또 잃어버리면 어떡해.”
나는 다시 평소대로의 표정으로 돌아와 빵을 씹었다.
여전히 더럽게 맛없어. 채하민 손맛을 그립게 하다니.
그러나 석준은 평소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네 가방’이라는 말에 반응해서 움찔대더니 다시 고개를 들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손부채질에 열심이었다.
아마도 내가 희귀한 스티커를 아주 당연히 ‘네 것’이라는 식으로 말한 게 감동스럽나 보다. 그럼 그걸 내가 가지겠니. 근본이 뭔지도 모를 뮤라는 생명체를.
우리의 미친 광전사 석준은 눈물을 모두 말려냈는지 소리쳤다.
“형님한테, 제 모든 걸 맡길게요!”
“거절할게.”
인간은 남이 가지는 게 아니란다. 그 망할 주머니 괴물 놈들은 권리 보장을 못 받아서 네가 가져도 되지만.
“정말입니다! 앞으로 저는 무조건 형님 편이에요!”
그건 건전한 소통 방식이 아니야, 준.
“…든든하네.”
* * *
본격적으로 시작된 라디오. 우리는 세트장에 들어가 편하게 앉았다.
말이 라디오지, 본질은 그냥 생방송인데, 우리의 미친 공룡 석준이 실수하지는 않을까, 마음 한편에 고민과 걱정을 품은 채 나는 입을 열었다.
“잠이 오지 않으면 찾고 싶은 두 남자, 저는 동화.”
대본 누가 썼어. 잠이 오지 않는 게 반복되면 정신의학과에 도움을 받아야지 사람을 찾으면 쓰나.
“준입니다. 반가워요, 여러분.”
“저희가 라디오 출연은 자주 해 봤지만, 진행으로 앉은 건 처음이라 조금 두려운 마음이 큽니다. 여러분의 많은 도움 부탁드릴게요.”
그러자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채팅들.
그 화력이 엄청난 걸 보면서. 이 시간까지 기다려 주신 분들에 대한 고마움과 내일이 일요일이라는 것에 대한 안심이 차올랐다.
그리고 이어지는 근황 토크. 대본을 대충 쓴 게 분명해서 ‘아무거나 팬분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야기.
“최근에, 준이가 대성통곡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순식간에 라디오 촬영 현장은 고해실이 되어 나는 찬찬히 내가 짓지 않았지만 책임져야 했던 사태를 말했다.
“그래서 동화 형님이 운동을 했다니까요, 여러분.”
석준이 쾌활하고 빠르게 경악스러운 목소리로 말하자, 댓글창 역시도 충격과 공포에 물들기 시작했다.
‘동화야… 요즘 정신적으로 조금 힘들어……?’라는 진지한 뉘앙스의 댓글을 보고 피식 웃고 말았다.
“어쨌든, 이 라디오는 근본이 없어서, 저랑 준이가 여러분들 사연을 읽고, 고민도 같이 얘기해 드리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원래 메뉴가 잡다한 분식집이 전문점보다 편한 마음으로 밥 먹기 좋듯이!”
석준은 신이 났는지 확실히 평소보다 말씨가 빨랐다. 그 외계 생명체를 얻은 기쁨이 아직 채 식지 않은 게 분명했다.
“그럼, 근본 없는 라디오 방송, 지동화와 석준의 ‘일단 방송은 시작했습니다’,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이야기 나눠 볼 주제는 사소한 일상 속 고민입니다. 아마도 다음 주도 그럴 것 같습니다. 이 방송은, 별로 근본이 없어서.”
근본 없는 방송답게 나한테 꼭 석준에게 개인적으로 말을 건넬 때는 편하게 반말을 사용해 달라던 작가님의 요청을 잊지 않고 실천했다.
근본이 없는 게 근본인 컨셉의 방송이라니, 얼마나 역설적인지 모른다.
“저는 열아홉, 작은 루미너스입니다.”
석준은 은근히 간드러진 목소리로 조용히 운을 뗐다.
그래, 그러고 보면 석준, 음색 하나는 우리 중에서 제일 멋진 인간이었지.
“편하게 살다가 어느덧 고3이 됐어요. 아직 아무런 꿈도 없고, 목표도 없고, 그러다 보니까 공부할 이유가 없어서 그런지 예전에는 습관처럼 하던 공부가 지금은 너무 괴로워요. 공부를 해야 하는 건 잘 알고 있는데, 책상 앞에만 앉으면 왠지 눈물이 납니다.”
저런. 안타까운 감탄이 절로 나왔다.
“동화 DJ님, 현직 한국대에 다니는 학생으로서, 따끔한 한마디 부탁드려요!”
“고3…….”
“동화 형님이 얘기해 주실 게 많을 것 같습니다.”
“잘못 얘기하면 오늘 팬 한 분이 떠나실 것 같은데 괜찮을까 모르겠네요.”
“형님이 해 주는 조언은 보통 틀리지 않으니까!”
너 그렇게 속없이 사람을 믿기만 하면 언젠간 사기당하고 나앉을 거야, 준아.
“그럼, 주제넘게 조언을 드려 볼까요?”
댓글창에 ‘교수님 말씀하신다. 집중해.’라는 뉘앙스의 말이 도배됐다.
저 교수님 밈은 아이돌 제작 공방이 끝나고도 한참 이어질 텐데, 부담스러워라.
“우선 마음고생이 심하실 것 같습니다. 응원의 말씀 드리고 싶어요. 고3이 원래 공부하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깔려서, 열심히 해도 칭찬보다는 더 열심히 하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많거든요.”
“서운할 것 같아요. 열심히 해서 칭찬을 바랐는데, 당연하지 식의 반응이면.”
“그렇지.”
어쨌든.
“그래서,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도 흘리고 있는, 대견하고 응원해 드리고 싶은 분에게 따끔하게는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 쉬어도 괜찮으니, 쉬면서 마음 추스르고 다시 공부 열심히 하길 바란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말을 끝내고 잠시 정적. 생방송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준, 네 학창 생활은 어땠어.”
“저는, 반에 한 명씩 있는 조용한 사람. 제가 남고 출신인데, 반에 저랑 취미가 같은 친구가 없어서 조금 그랬습니다.”
“음, 그래?”
“네. 아무래도 친해지기가 조금…, 또 조용히 있으면 제가 덩치가 있어서 그런가, 다가오는 것도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그 인간은 잘 망했나 모르겠네. 박우진, 부디 망하기를. 소인배의 복수는 일어나지 않은 일에도 한을 품는 것이다.
“우리 팀에서 제일 순한 사람인데.”
“그래도 요즘에는 형님이 같이 주괴도 해 주시고 그래서 좋습니다.”
“아, 이건 또 팬분들이 모르시는데.”
역시 근본 없는 방송.
정말 아무 소리나 막 해도 괜찮은 방송인가 보다. 이렇게까지 다른 선을 타는데도 아무런 개입도 없다니.
그렇게 시작된 잠시간의 주괴에 관한 이야기. 과연 이게 윤리적인지에 대한 논쟁이 재차 발발했다.
가만히 방송을 들으며 잠에 빠져 들던 루미너스분들 중 일부는 부서져 가는 동심에 눈물을 흘리는 밤이 되었다.
* * *
연예계는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런 근본 없는 방송을 들어주시는 분이 이렇게 많을 줄은 예상도 못 했다.
아이돌 제작 공방 덕분에 생긴 인지도 덕을 많이 보고 있단 확신이 드는 느낌.
심지어 X튜브에 올라오는 클립들도 하나하나 보고 있자니 기분이 오묘했다.
석준과 나눈 일상적인 대화에서 재밌었던 부분, 자신이 보기에 흐뭇했던 부분을 발굴해 내 클립으로 남기시다니.
고마우면서도 평소 몸가짐을 바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현재.
“편곡, 좋지 않습니다.”
나는 오늘도 아이돌 제작 공방의 막바지 촬영에 힘쓰고 있다.
남은 인원 총 스무 명. 백 명을 제치고 살아남은 이들 중에서도 단 여덟 명만 데뷔.
얼마나 잔인한지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연습생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샘솟고 만다.
“기본 베이스 리프가 옛날에 자주 쓰던 방식인데, 복고가 컨셉이 아니고서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특히 이번 무대는 세련된 섹시미가 컨셉이잖아요?”
그래서 좋은 말만 해 주려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도와드릴 테니, 같이 다시 한번 고민해 봅시다. 처음부터. 박자는 유지해서 안무에 지장은 없지만, 퀄리티는 높일 수 있게끔.”
정말로, 노력은 하고 있다.
하지만 노력하는 모든 일을 성공할 수 있다면 그건 유토피아잖아. 아쉬울 따름이다.
나는 말을 마치고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그 뒤에 앉아 주눅 들어 있는 두 남자의 모습을 살펴봤다.
애초에, 밸런스가 말이 안 되잖아. 다람쥐랑 불법 샘플러가 한 팀에 있는데 상대 쪽 유닛에서 어떻게 좋은 편곡을 낼 수 있을까.
“지난번 미션에서 1등, 그 결과 현재 음원 성적 1등, 은구 팀 나와 주세요.”
굳이 한 번 더 언급하는 것도, 제작진이 시켜서 그런 거지, 안 그래도 주눅 든 친구들을 놀리려는 못된 심보는 아니다.
다람쥐 한 마리가 깊은 심호흡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팀을 대표해서 나오는 박은구.
“지난번엔 제 곡 잘 편곡해 줘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제 지갑과 석준의 스티커 수첩이 행복해합니다.
“이번에도 잘했겠죠?”
오늘을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출연하면, 내가 출연할 일은 없을 테니까, 최대한 도울 수 있는 건 도와주고 가자는 마음이다.
그래서 회사와도 얘기를 해서 오늘 저녁에는 아무런 스케줄도 없는 상태.
모든 단점을 최대한 지적해서 최종 무대에 어울리는 곡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뿐이다.
“오늘, 편곡팀은 잠을 조금 줄였으면 하는데, 괜찮을까요?”
사실 질문의 형태를 띤 명령이라는 사실을 이들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애초에 내가 여기 편곡 선생으로 왔잖아. 싫어도 어쩔 수가 없다. 선생이 지닌 습관이 그런 걸 어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