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38)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38화(206/343)
야심한 밤. 다크서클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우리 존경하는 경우 씨가 가셔도 된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마지막 피드백인데 어떻게든 완성되는 꼴은 보고 싶은 마음에 거절했다.
어찌나 부담스러워 하시는지, 아무리 봐도 나를 불편해하시는 게 분명하다.
그리고 밤 11시. 드디어 모든 작업이 끝나고 나는 눈을 약간 비볐다.
“완벽하네요.”
연습생분들이 원하는 모든 걸 이루기 위한 피드백이 드디어 끝났다. 듣고 말하고, 십자수하고 있다가 다시 듣고 말하고를 반복하다 보니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갔다.
“이제 퇴근하시나요, 선생님?”
현재 나와 꽤 친해진 다람쥐 한 마리가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커피를 홀짝였다.
그는 언제부턴가 선생님이라는 말을 입에 붙였다. 먼저 태어난 건 맞아서 할 말은 없지만, 과분한 호칭인 것 같기는 하다.
“네, 이제 가려고요.”
집에서 주괴 같이 하자고 약속한 어른이가 한 명 있어서.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예의를 아는 짐승인 다람쥐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저, 편곡 실력이 엄청 늘었대요. 회사 사람들이.”
“그만큼 편곡을 했으니까 그렇습니다.”
뉘앙스가 딱 봐도 그 모든 게 내 덕분이라는 식으로 말할 것 같기에 원천 차단했다.
자기가 열심히 한 걸 타인의 덕으로 돌리는 것만큼 좋지 않은 습관도 없다. 우리 멤버들의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선한 짐승들 특유의 습성이지만, 인간은 원래 조금 덜 선할 필요가 있다.
“다, 은구 씨가 열심히 해서.”
나는 목소리에 강세를 실었다.
상대를 억누르는 화양 씨와 상대에게 신뢰를 얻는 류이든을 옆에서 보고 관찰한 결과, 대충 그 중간쯤의 뉘앙스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네.”
은구 씨가 조용히 입술을 삐죽거렸다.
“…데뷔하면, 나중에 찾아봬도 되나요?”
“아니어도 괜찮아요.”
“와, 미친…….”
“입 험한 건 꼭 고치고요.”
은구 씨가 웃자 그의 볼에 보조개가 패었다. 무엇이 웃긴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분 좋아 보이니 됐다.
“엄청 존경했어요. 저희 소속사 있으셨을 때부터.”
나는 볼을 긁적였다.
“…저도! 저도 존경해요!”
다 쓰러져 죽은 눈을 하고 있던 불법 샘플러가 소리쳤다. 자기를 공개적으로 지적한 사람에게 존경을 표하는 건 얼마나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일지 상상하기 힘들다.
“음, 고맙습니다, 두 분 다.”
나는 남은 커피를 모두 들이켜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낯간지러워라.
“일주일 후 본무대, 집에서 지켜보고 있을 거예요.”
생각해 보면, 이 서바이벌, 모든 곡에 내 손이 닿아서 그런지 정이 안 갈 수가 없네.
지금 몸값에 비해 높은 페이를 받고 있음을 알아서 더 열심히 했다지만, 그래도 알 수 없는 뿌듯함 같은 게 몸에 차올랐다.
“그리고 은구 씨랑 한진 씨, 제 곡 잘 불러줘서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덕분에 돈도 많이 벌어 간답니다.
* * *
음악 방송 활동이 없을 때 계속 쉴 수 있었던 건 과거의 일이다.
요즘에는 단체든 개인이든 페어든 일단 스케줄이 많이 잡혀 있어서 멤버들이 다 같이 모여 TV를 볼 일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한 집단이 성공 궤도에 오르고 나면 그 정서적 유대감이 감소한다는 연구를 언젠가 본 기억이 있는데,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래서 지금 같은 시간이 더 소중한 것 아닐까.
“아, 우리 동화 형이 지켜낸 방송이네……. 아니었으면 언젠간 터지고 연습생분들만 상처 입었을 거야. 자랑스럽다. 지, 동, 화.”
류이든이 귓속말로 짜증나게 하는 것도, 같이 있어야 겪을 수 있는 경험이다.
“동화야, 팝콘 튀겨 왔어. 준이가 알려 줬는데, 내가 해 준 음식이 그립다길래!”
하민아. 상대적으로 그런 거였어. 주괴빵보다는 네가 해 준 음식이 맛있었을 뿐이라고, 망할.
다행히 팝콘이라 요리가 아닌 조립에 가까운 상품이라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먹고 쓰러져서 은구 씨 데뷔할지 말지를 못 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물론, 이것도 함께 있기에 할 수 있는 경험이다.
“형님, 제가― 어제 주괴를 하는데, 형님이― 잡고 싶으셨던 거―, 잡았습니다. 저랑 오늘도…….”
석준이 이렇게 부쩍 치대는 것도……. 차라리 모이지 않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그럴 리가 없어야만 한다.
나는 팝콘을 조금 집어 입에 넣었다가 오묘하게 밍밍한 맛에 놀라고 말았다.
제품이 잘못되었을 확률과 채하민이 기묘한 조리로 석학들의 연구 결과를 망쳐 놓았을 확률 중에 뭐가 더 높을지 잠시 고민했다.
그래, 맛이 아예 없는 게 맛없는 것보단 낫겠지.
그리고 시작된 프로그램. 다른 멤버들은 서바이벌의 기억 때문인지 조용히 집중해서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편곡, 네가 도와줬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류이든이 이미 시작된 첫 번째 무대의 음악을 듣더니 물었다.
“응.”
“듣자마자 알겠다.”
“그래?”
“어. 스타일이라는 게 진짜 있긴 한가 봐.”
나는 무대를 보며 조용히 입안의 볼살을 씹었다.
저 중에, 열두 명이 탈락한다고.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건, 모두에게 소중한 꿈이라는 뜻일 텐데도.
“…저런 건 내 취향이 아닌가 봐.”
“뭐가?”
“서바이벌.”
“누가 몰라, 그걸.”
움찔, 채하민이 몸을 떨었다. 나에게 서바이벌을 추천한 장본인이라 무언가 찔리나 보다. 별로 그럴 필요 없는데 말이다.
두 번째 무대가 시작하자 채하민은 언제 움찔했냐는 듯이 환호하며 은구 씨를 응원해 댔다. 대체 뭐에 그리 꽂힌 건지 모르겠네.
언제나 서바이벌 무대는 아름답다. 모두들 최선을 다했다는 게 묻어나는 결과물이니까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물론 은구 씨네 무대는 실력도 좋아서 더욱더 아름다웠다.
그러나 노력은 아름답지만 정직하지는 않아서 저 중 열두 명은 배신당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속이 쓰라렸다.
저 중에 나랑 지지고 볶은 편곡팀의 숫자만 네 명. 내 기습 방문으로 나랑 같이 밤을 새우듯 연습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대부분.
그러자 내가 이 시스템의 일부였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옆자리에 앉았던 석준은 내 표정을 보더니 움찔거렸다가 내 손등에 툭 손을 얹었다.
“…괜찮아.”
“형님은 가끔―, 생각이 너무 많습니다.”
집중하는 멤버들 사이로 석준이 목소리를 낮춰 중얼거렸다. 다른 멤버들은 듣지 못한 듯 이쪽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주괴도 그렇고―, 너무 많이 생각하면, 뭐든 심각―해지는 것 같습니다.”
약간 낯선 기분.
석준의 저런 진지한 한마디를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는 사실에 약간 놀라고 말았다.
“오늘 먹을 마시멜로나― 오늘 만날 주괴를 생각하면―, 훨씬 행복합니다.”
정말, 안 맞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은근하게 미소가 올라왔다. 석준이 해맑고 속 편해 보였던 건 그래서였나 보다. 고민이나 걱정보다, 오늘 먹을 쿠키 한 조각에 행복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어린 왕자 같은 인간이다. 그러면 나는 거기 나오는 숫자밖에 모르는 사업가 정도 되려나 몰라.
그날의 단체 TV 관람은, 은구 씨, 한진 씨, 그리고 나랑 친해지진 못했지만 류이든을 닮아서는 능글맞았던 지상 씨를 포함해 총 5인이 합격하며 끝이 났다.
채하민이 환호하며 박수를 치는 것과 달리, 나는 여전히 무대에 남아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의 그림자가 더 눈에 밟혔다.
그래, 석준이랑은 다르게 나는 이런 인간인가 보다.
* * *
지동화와 석준의 기묘한 라디오. 방송 컨셉이 없는 게 컨셉인 이상한 라디오.
그러다 보니 그저 지동화와 석준이 늘어놓는 잡담이 주를 이루고, 청취자들의 사연은 잡담이 지루해질 때쯤 양념으로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애초에 루미너스가 주로 청취하는 라디오인 탓일까, 은근한 광기가 풍기는 방송도 이제는 익숙해져 버리고 만 그들이었다.
[블로센스 내에서 가장 기묘한 조합](석준과 지동화가 마주 앉아서 대화하고 있는 캡처)
둘이 같이 주괴 게임하는 썰이 ‘일방시(일단 방송은 시작했습니다)’에서 나왔다. 안 들은 룸넛은 필수 청취 부탁. ㅈㄴ 힐링물임 ㅇㅇ
어쨌든 둘이 옹기종기 모여서 주괴를 하는데, 준이는 애정으로 아이를 기르듯 하고, 동화는 효율로 숫자 위주로 계산함…
그러면서 둘이 주괴를 기르는 게 옳은 일인지 토론하는데 ㅈㄴ ㅅㅂ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ㅌㅌㅌㅋㅋ 뭐 하는 방송인가 싶다가 은근 집중하게 되더라
라디오 이름을 겁나 잘 지은 것 같아… 동화가 멘탈 수업으로 아무말 단련이 너무 잘 되어 있고, 준이는 평소에도 이상한 말 자주해서 그런지 둘이 시너지가 기묘해… 잘 안 맞는데 잘 맞아
댓글
―??? : 주괴의 자유권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시스템이다.
└??? : 그건 주괴와 트레이너 사이의 정서적 교감을 모르는 것이다.
└??? : 정서적 교감도 강제되면 안 된다.
└어째서… 은근히 교육적…?
└그건 교수님이기 때문.
―근데 힐링되긴 하더라 애들이 청취자 고민에 경청해 주는 기분이라서
―둘 다 나사 하나씩 빠져 있어서 좋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ㅌㅋㅋㅋㅋ 취향 왜 그래 ㅋㅋㅋㅌㅋㅋㅋㅋㅌ
[지동화가 발리긴 한다잉]준이 챙겨 주는 거 개 스윗하네 진짜 운동 나간다는 얘기 듣고 진짜 화들짝 놀랐다
댓글
―우리 리더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석준이 해낸다…
―와 근데 준이도 약간 대인배스러워… 내 덕질 상자 엄마가 아무 말 없이 버리면 나 진짜 꼭지 돌 것 같거든
└맞말
―류이든 제외 모두에게 기본 스탠스가 따스하잖아. 심성 올곧다, 우리 동화!
└‘류이든 제외’ ㅋㅌㅋㅋㅋㅋㅋㅋㅌㅋㅋㅋㅋ
└지동화와 함께일 때 가장 억울한 그 남자.
└서로가 서로의 천적 ㅎㅎ
결국 지동화라는 사람은 어떻게 이미지화되고 있을까.
멘탈교육학과 교수님이면서, 블로센스의 공식 노동자이자, 팀 내 유일한 이성이며, 동시에 은은한 광기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
지동화는 가끔 이 모든 이미지가 문득 웃길 때가 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그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하니까.
작곡하는 인간이라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온갖 것들이 잡다하게 들러붙어 형성한 지동화라는 페르소나.
지동화는 심지가 굳은 인간이라 적당한 거리감으로 자신의 외적 이미지를 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동화의 대외적 이미지는 한 줄로 요약하면, 뭔가 조금 이상하지만 똑똑한 사람이라 그런 것일까, 왜 자꾸 이상한 프로그램 기획자들만 꼬이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동화 씨 섭외하자.”
디텍션을 연출했던 장 PD. 그는 지금 지동화가 그립다. 인터넷에서 주가를 올리는 그를 보면 자신의 방송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차올랐다.
괴짜로 소문난 사람이자, 방송에서 이상한 시도를 하기를 좋아하고, 어떻게든 돈을 따 와서 자기가 원하는 세트장을 구성하는 사람.
“아, 몸값 더 오를 것 같은 모양새긴 하죠?”
“그렇다니까.”
“우리 동화 씨, 이상한 이미지 다 날려 버리고, 똑똑한 이미지만 남겠네요.”
“…그건, 또 모르긴 하지?”
장 PD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지동화라는 출연자는 분명히 무언가 이상한 사람은 맞아서. 아주 기묘한 사람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