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4)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4화(24/343)
24.
‘우리 현재, 이번 무대 찢어서 데뷔하게 해주세요, 아멘.’
신에게 기도하는 그녀는 간절했다. 이번 무대가 방영되고 5일간 시행되는 인터넷 투표는 40%라는 높은 비중으로 점수가 산정된다. 심지어 20%는 3차, 4차 경연 현장 투표, 30%는 3차 4차 개인 직캠 조회 수니까 그 중요성은 더 높아진다.
‘우리 현재 떡상하게 해주세요, 그 보컬 실력으로 탈락하면 아이돌판에 미래는 없습니다… 아멘…….’
그녀는 관객석으로 발을 옮기며 간절하게 빌었다. 아마 수능 전날에 했던 기도보다 이번 기도가 더 간절할 테다.
그녀의 옆으로 지동화 팬이 응원용으로 나눔한 ‘겨울이 가도 지지 않는 꽃, 영원히 사랑해’라는 문구와 지동화의 미소가 함께 그려진 판넬을 들고 가는 것이 보였다.
‘부럽다… 쟤들은 이런 기도 안 해도 되겠지…….’
물론 지동화의 팬 중 일부는 매일 아침 새벽에 물을 떠서 천지신명께 빌고 있지만, 이현재로 인해 아이돌판에 처음 들어온 그녀에겐 모든 게 낯설기만 했다.
‘하, 그 여우 같은 얼굴에 홀려서 인생 저당 잡혔다, 진짜.’
이현재가 조금만 덜 예뻤어도 해피 캠퍼스 라이프를 꾸려나갈 수 있었는데, 이게 다 이현재 잘못이다.
저 고귀하게 생긴 왕자 같은 분위기에 심지어는 여우상이라니, 이걸 보고 인생을 걸고 싶지 않을 수가 없잖은가.
* * *
‘우리 현진이 데뷔하게 해주세요, 제 이번 학점 올 F여도 그러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발, 신이 있다면, 제발!’
설명했지만, 이번 무대는 김현진에게 너무나 중요하기에, 그녀도 이현재의 팬처럼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다.
‘양아치같이 생겼지만 해맑은 바보 캐릭터가 데뷔하지 못하면 이 케이팝의 미래가 어두워집니다! 제발!’
그녀는 점점 더 간절해진다. 새학기가 시작한 지 꽤 돼서 곧 1차 과제 제출일이지만 신경 쓰이지가 않는다. 그저 저 날 티 나지만 웃으면서 뛰어다니는 모습으로 사람 심장 부숴버리는 놈이 잘됐으면 할 뿐이다.
‘나는 너한테 학점 다 걸었다!’
그녀는 조용히 소리치며 관객석으로 들어갔다.
* * *
이렇듯 기도하는 이들로 가득한 관객석, 약속된 시간이 되자 관객 입장이 종료되고, 이동석이 올라와 매끄러운 진행을 이어간다.
심사위원석을 니체 소속 연예인과 트레이너들이 채우고, 마침내 무대인사가 시작되었다.
먼저 무대로 오른 것은 류이든 팀. 청량한 분위기의, 4년 전 여름을 휩쓴 ‘Paradise’를 4인곡으로 편곡했다.
피지컬이 좋은 류이든이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센터에 서서 ‘같이 떠나자’는 킬링 파트를 부르는 모습이 꽤나 환호성을 얻었다. 또한 석준의 랩 역시 청량한 느낌을 잘 살려서 듣는 데 불편함 없이 술술 넘어갔다.
다만, 전체적인 퀄리티는 좋지 못했다. 보컬 포지션의 두 명이 실력이 좋지 못해, 시원한 고음이 터져 나오는 파트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후일담이지만, 류이든이 이현재나 지동화 중 한 명만 있었어도 우리 팀도 이겨볼 만했다고 말할 정도로, 아쉬움이 남는 무대였다.
그리고 이 무대를 지켜보고 있는 준성 역시 같은 생각으로 아쉽다는 코멘트를 남겼다.
“좋은 재료로 요리를 시작했는데, 전체적인 밸런스가 부족해서 맛없는 요리가 나온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비유적 표현이라 어렵지만 해석하자면…….
‘팀운이 개망했다는 거지. 반면에 저 팀은…….’
준성은 이전 중간평가 때 들었던 편곡본을 생각하며 이렇게 생각했다.
‘…지동화, 솔로 앨범 수록곡, 성공적.’
* * *
이번엔 지동화 팀이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고 있던 이현재의 팬은 갑자기 속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꾹 누르며 잠시 멈칫했다가 울부짖었다.
“이현재 옷 쩔어―!”
그러자 해진 오버핏의 붉은 계통의 스웨터와 무릎이 보일 정도의 반바지를 입고 있던 이현재가 그걸 들었는지 약간 발그레해져선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들어줬다.
그리고 그걸 보고 이현재의 팬은 이제 언어라고 볼 수 없는 무언가를 미친 듯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 마음을, 이 마음을 뭐라고 부를지, 덕질이 처음인 그녀에겐 알 수도 없었거니와 견디기에도 버거웠다.
그리고 김현진의 의상을 보고 그 마음을 똑같이 느끼고 있던 케이팝 덕질 N년 차인 김현진의 팬은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었다.
‘덕심이 차오른다― 현진아!’
무대인사가 끝나고 나오는 VCR, 지동화가 이현재랑 같이 작업실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장면, 채하민이 지동화의 작업실에서 해맑게 웃는 장면, 김현진이 밥을 사 와선 지동화의 작업실에 배급하는 장면이 짤막하게 지나간다.
그리고 지동화가 인터뷰실에 앉아있다.
[Q. 작업일은 얼마나 걸렸나요?]‘총 5일 걸렸습니다.’
그리고 화면이 바뀌고 채하민, 이현재, 김현진 순서대로 한마디씩 던진다.
‘동화는, 작업할 때 두 시간만 잤을 거예요. 안무 연습이랑 같이 하느라…….’
‘동화 형은 가끔 보면… 인간이 아닌 것 같아요.’
‘밥도 잘 안 먹으러 나와서 맨날 저희가 따로 포장을 해서…….’
그리고 다시 지동화.
[Q. 왜 그렇게까지?]‘…소년다운 모습이 무엇일지 잘 이해가 안 돼서, 현재 연습생이나 현진 연습생을 참고하며 세세한 것을 만지느라.’
지동화가 멋쩍게 웃으며 끝난 인터뷰 장면 이후 컨셉 회의 장면이 나왔다.
그곳에서 지동화는 소년다움을 어필하는 게 이 곡을 커버하기 가장 좋은 길임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렇게 보면 지동화가 김현진과 이현재에 맞춰 무대 컨셉을 준비했다는 인상을 물씬 풍긴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고 있던 김현진과 이현재의 팬은 조용히 속으로 생각했다.
“시발… 지동화 천사야?”
실수로 김현진의 팬이 육성으로 뱉어내는 바람에 옆의 지동화 팬이 웃긴 했지만. 김현진의 팬은 그런 건 아랑곳없었다.
그리고 VCR은 무대 연습 절반, 멤버들 간 케미를 절반 보여주면서 끝이 났다.
‘확실히… 니체 엔터 덕후 마음 잘 알아.’
괜히 아이돌계에서 배운 변태로 소문난 기획사가 아니다. 이렇게 관계성을 퍼먹이다니.
* * *
그리고 곧 시작되는 무대. 어두운 조명 속에서 보름달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면… 지동화가 있는 팀 무대는 항상 스토리가 있네…….’
지동화가 소설가로 일한 경력 때문에 스토리를 넣는 데 강박증 비슷한 게 있다는 걸 아무도 몰랐다.
보름달 배경과 함께 느릿한 신스가 우울함과 아련함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지키면서 울려 퍼진다. 음산한 무덤 위에서 달빛을 받으며 춤추는 이의 모습이 떠오르는 음악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뛰쳐나온 지동화가 어두운 조도의 조명을 받으며 곡을 연다.
터벅터벅 소리, 고갤 들면 늘 너
I wanna say Hi, but I’m afraid, oh
상처 난 내 손이, 그댈 울게 할까
그래, 그러니 나는 오늘도 늘 네게
(Don’t close to me)
지동화가 녹음한 영어 내레이션이 흐른 뒤 채하민이 씁쓸하게 웃으며 걸어 나온다. 그러자 지동화가 고개를 휙 돌려 옆을 바라본다.
알잖아, 그런데도 다가가고 싶은 맘
그래, 난, 상처뿐일지라도 감당하고파
어쩌면 네가 다르진 않을까,
그렇게 믿으며 그냥 기대고 싶은 난
(Please close to me)
마치 한 명의 인물 속에 있는 두 개의 심리를 표현한 듯, 채하민이 다가가려 한다면 지동화는 두려움에 발걸음을 멈춘다.
그렇게 스토리를 확정한 뒤, 김현진과 이현재가 각각 채하민, 지동화와 유사한 역할을 맡은 듯 노래한 뒤 코러스에 접어든다.
이현재와 김현진이 중앙에 서고 지동화와 채하민이 뒤쪽 사이드에 서서 흘러나오는 둔탁한 비트에 맞춰 군무를 춘다.
한 손으로 눈가를 거칠게 쓸어내리고 몸을 옆으로 돌려 반대쪽 손을 입술에 댄 뒤 떼어내며 부드럽게 전신 웨이브를 타는 안무에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날카로운 손톱으로 그대 손을
맞잡을 순 없으니 Don’t close to me
이현재가 슬프듯 단념하며 노래하자, 이후엔 김현진이 센터로 나와서 노래한다.
내 손을 맞잡아 찔리는 것을
부디 참아주길 Please close to me
그리고 김현진이 옆으로 걸어가는 것을 이현재가 돌려세워 어깨를 부여잡는다.
아쉬워하는 김현진과 안타깝게 바라보는 이현재의 시선이 교차한다.
마치 더 다가가선 안 된다고 스스로 다그치는 한 사람의 내면처럼 보였다.
이후 두 번째 벌스, 다시 지동화가 센터로 나온다.
지동화는 다른 멤버들이 몸을 숙이고 리듬을 타는 중에, 머리를 헤집으며 옆을 불안하게 흘깃 본 뒤 뒤돌며 노래했다.
밝아 오른 달, 그리고 걸음 소리
도망쳐야 해, 더 멀리 뛰어가야 해
그리고 걷던 중 잠시 멈칫하더니 뒤를 바라보며 아련하게 노래한다.
네가 오는 날, 그리고 울음소리
외면해야 해, 더는 보지 말아야 해
그리고 단념한 듯 다시 뒤돌아 대형으로 들어서고 채하민이 센터로 나온다. 채하민은 비트를 세밀하게 쪼개 작은 동작들을 부드럽게 선보이며 노래한다. 아련한 손끝에 관객들의 시선이 절로 모여든다.
울지 말아줘, 오늘도 와줘
알잖아, 그런데도 다가가고 싶은 나
그래, 내가 상처라 해도 네게 있고파
울지 말아줘, 그러나
(Please close to me)
그렇게 무대는 흘러 비트가 점차 고조되기 시작한다. 이전의 후렴구가 한번 더 나오고, 이현재가 다시 김현진을 붙잡자, 이번엔 김현진이 밀치고는 무대 앞으로 나온다.
그리고 폭풍 전처럼 비트가 순간 고요해지고 김현진이 그 속에서 독무와 함께 노래한다.
채하민과 달리 김현진의 안무는 거친 느낌이 강해서 상처받은 아이의 몸부림 같았다.
상처뿐인 내 손을 어루만져 줘
부디 내게 다가와 줘, 그러니
그리고 비트가 다시 고조되고 이현재가 늑대가 하울링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높은 고음을 몹시 투명하고 맑은 목소리로 지른다.
Please, close, to me―
그리고 그런 이현재를 중심에 두고, 다른 멤버들은 이전의 손을 입술에 맞대는 안무를 선보인다.
그리고 채하민이 센터로 나와 안무를 주도하기 시작하고, 괜히 예비 메인 댄서가 아님을 증명하듯, 무대의 퀄리티를 높였다.
상처 줄지도 모르는 날,
부디 버리지 말아줘
내게 상처 줄지 몰라도 널,
절대 버리지 않을래
그리고 다른 멤버들이 몸을 뒤로 돌린 상태에서 지동화가 센터에 나와 조용해진 비트 속에서 손을 앞으로 내민다. 손이 얕게 떨리는 것이 카메라 화면 속에서 보였다.
Please close to me
그렇게 지동화까지 뒤를 돌며 무대가 끝났다.
* * *
‘제발, 의도했던 분위기였으면 좋겠군.’
원곡의 강렬함을 포기한 대신 애절함이 부각되길 바랐고, 그 속에서 김현진과 이현재가 자신에게 딱 맞는 옷을 입고 날아오르길 기대했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군.
무대를 마치고 자리에 서자 준성이 마이크를 집어 든다.
“제가 인터넷에서 봤는데, 지동화 연습생이 치트 키라고 불린다더군요.”
나는 멈칫한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 무대에서 전 이현재 연습생과 김현진 연습생의 매력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마치 지동화 연습생이 편곡할 때부터 두 연습생의 장점을 자세히 관찰하고 살리려고 노력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의도가 통해서 기뻐해야 할지, 과도한 띄워주기에 반박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군.
“…다른 연습생의 매력이 출중했기에 제 편곡이 빛을 발했을 뿐입니다.”
그러자 준성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더니 답한다.
“그럼, 그 빛, 저한테도 비춰주실 거죠?”
…다분히 능구렁이 같은 놈이군. 대중들이 바라보는 무대 위에서 확답하게 만들어서 나중에 거절하지 못하게 할 심산이다.
하, 이 정도로 구애하면 받아주지 않는 것도 미안하지.
“…영광입니다.”
내가 답하자 준성은 스물여섯 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폴짝폴짝 뛰는 강아지인 양 좋아하기 시작했다.
정말 류이든이나, 얘나, 참 개 같다.
‘4차 경연이 끝나고… 며칠 쉰 다음에 탈락자 발표군.’
…흠, 그 망할 계단은 이번에도 있으려나. 나중에 꼭 한번 부숴버리고 싶군.
이번 무대가 탈락을 막진 못하더라도, 이번 무대로 인해 이들이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심사평이 끝나고 백스테이지로 돌아온 나는 자리에 앉아 숨을 몰아쉰다.
‘그나저나 오늘도 지난번에 와주신 팬분들이 다 오셨던데…….’
앞자리에 앉아 내 응원용 피켓을 들고 있던 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나는 상기한다.
‘…고마우면서도, 낯설군.’
누군가가 나를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안정감이, 정말 고마우면서도 지나치게 낯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