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40)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40화(208/343)
아이의 세계를 동경하는 사람이 있다.
모든 것에 편견이 없고 순수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졌던 시절을.
어렸을 때는 모든 것이 새롭고 신비하니까.
물론 아버지의 일기에 따르면 나는 한창 클 때 그저 시큰둥했다고 하는데, 애초에 어린왕자로 살기에는 글렀다는 소리다.
그래서 양심 고백을 하자면, 석준이라는 인간을 나는 대하기 어렵다. 채하민은 선하지만 아이는 아니고, 류이든도 선하지만 개라서 그런 것이다.
이현재는 선하…긴 하다. 영악한 면모가 있어서 그렇지.
하지만 석준은 정말로 순수하고 편견이 없다. 어떻게 저런 아들을 길러낼 수 있으셨는지, 석준의 부모님께 비법이라도 듣고 싶은 심정이다.
솔직히 남이 보기엔 모자라 보여도, 은근히 생각이 깊은 인간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순수하다니, 옛이야기에 현자를 찾는 사람에게 아이를 보라고 말했다는 고사가 괜히 있는 건 아닌가 보다.
그래서 만들어 낸 석준과의 대화법. 정서적으로 지지해 주면 대개는 해결된다.
아버지의 일기에 따르면 나는 태어날 때부터 감정적인 인간은 못 됐다고 하는데 정말 노력 중이다.
“동화 형니임…….”
실제로 석준은 라디오국 대기실에서 감동 중이다.
부디, 이 모든 장면을 누군가 보지 않았기를. 다 큰 성인 둘이서 이렇게 해괴한 일로 웃고 울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기를…….
그러나 오늘은 라디오가 예정되어 있었고, 수치가 무엇인지 모르는 석준이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덕분에 모든 게 밝혀지고 말았다.
오직 ‘어째서 지동화가 수첩을 잃어버렸을까. 그게 가능은 한 일일까.’라는 부분만은 의문으로 남겨둔 채로.
* * *
그리고 돌아온 숙소, 류이든이 우리를 맞이하면서 활짝 웃고 있었다.
“수첩 찾았다며! 준아! 기쁘냐!”
“네!”
“아니, 그럴 줄 알았어. 방송국에 있었지?”
아니, 훔쳐 갔는데, 누가.
그리고 시작된 2차 설명회. 어느새 모든 멤버들이 모여서 내 설명을 듣고 있었다.
대체 이게 뭐라고 우리 그룹의 대형 화제로 부상했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초등학생이라니. 우리 봉주 반만 닮았으면 좋겠네.
아이를 보면 경계심이 누그러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걸 영리하게 활용할 줄 아는 시점에서 아이라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차라리 석준이 나아.
“아니, 그러면 초딩이 그런 거야? 방송국이 뭐 그렇게 보안이 허술해.”
“…라디오국이라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심지어 직업 체험 날인 걸 온 방송국 직원들이 알고 있으니, 지나가다 보이는 초등학생 한 명쯤이야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류이든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미간을 확 찌푸렸다.
“아, 불평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선생님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전부 다. 어떻게 그러냐.”
불평불만, 경찰과 기자를 가족으로 둔 정의로운 인간답다.
그런데 알 게 뭐람. 찾았으면 그만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신경 써서 힘 빼는 건 비합리적이다.
내 앞에 그 아이가 있었으면 진지하게 윤성호와의 면담을 마련해 줄 의사는 있지만, 말도 안 되는 상상이다.
“그대로 찾았으니까 다행이다. 그 친구가 엄청 용감하네.”
“그걸 훔칠 거면 남한테 자랑두 하면 안 되는 건데, 바보네요.”
채하민은 채하민답게 류이든과는 달리 한 아이의 용감함을 칭찬했고, 이현재는 완전 범죄에 성공하지도 못할 거면 왜 훔쳤냐는 말을 남겼다.
하나같이 생각이 다른 걸 보면 참 어쩌다 이렇게 모였나 싶다.
그리고 이 사건의 주인공인 우리의 석준은 수첩을 보면서 헤실거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심정에 슬퍼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참 난리다.
온 세상에 석준 같은 인간만 가득하다면 그건 유토피아일까, 아니면 지옥의 열화판일까.
“여기―, 뮤를 위한 자리―, 남겨 뒀습니다.”
석준은 지퍼백에 봉인해 뒀던 씰을 꺼내서 앞에서 한 장 건너뛴 자리에 스티커를 붙이고 위를 코팅지로 깔끔하게 덮었다.
“흐허.”
정말 바보같이 웃는 데 선수네, 준.
“행복해…….”
이현재가 눈살을 찌푸리다가 체념한 듯 웃었다.
“그래요, 형이 행복하면 됐죠…….”
이현재는 석준을 이론적으로는 이해하지만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긴 힘든가 보다.
석준은 어떻게든 자신의 시간을 물리적 형태로 남기려고 노력하는 유형이라 그렇다. 저 스티커 한 장 한 장은 자기가 쏟은 시간을 대변하는 기록에 가깝다.
자신이 무언가를 열렬히 아꼈다는 증거이자 어떤 순간 무언가에 깊게 몰입했다는 흔적.
…이라고 의미 부여해 주고 있지만 흔한 주덕일 뿐이긴 하다.
“준.”
“네!”
“작업실 갈까.”
“네!”
주괴하러 간다는 생각에 신난 모양새. 어찌나 즐거워 보이는지 모른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이것저것을 챙기며 가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작업실에 도착했을 때, 내가 아무 말 없이 작업 모드로 컴퓨터를 세팅하자, 석준은 상황을 파악하고는 조용히 항의했다.
“형님! 사기잖아요!”
사기라니.
“나는 놀러 가자고 한 적이 없는데, 준.”
가방에 들고 온 게임기를 내려두고 좌절한 표정으로 무릎을 끌어안는 석준.
류이든 다음으로 덩치가 큰 놈이 저러고 있으니 어울리질 않는다.
“오늘 라디오에서 작업량이 적다고 느끼는 것 같아서.”
“…네?”
아닌데, 분명 많다고 했는데, 라는 의문이 한가득 들어 있는 표정.
“원래 많다고 말할 수 있으면, 정말로 많지는 않은 거거든.”
불평할 시간이 있다는 건 정말 바쁘지 않다는 명확한 증거다.
석준은 무언가 말하려다가 포기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길고 긴 학습 끝에 어차피 내가 작업실에 끌고 온 이상 멀쩡한 정신으로 나가기는 글렀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새다.
“안 그래도 월간 지동화 소재가 없었는데, 네 개인 곡 하나 같이 쓸까.”
오늘 네가 보여 준 여러 모습을 보면서 쓰고 싶은 곡이 생겼단다.
“너는 어떤 가사 써 보고 싶어.”
“동화 괜찮―나요? 제가 좋아하―는 거.”
“…Fairytale?”
“네―”
순간 석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랑 똑같이 어떤 옛 추억을 떠올리고 있는 게 틀림없다. 참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변하지 않은 대화.
그래, 확실히 모자란 인간은 아니다. 그저 순수할 따름이다.
* * *
해외 프로모션. 동남아부터 동북아 일대에 걸친 프로모션은 꽤나 호황이었다.
일단 일본 반응이 좋았고, 태국 같은 동남아의 일부 국가에서도 확실히 반응이 좋았다.
아무래도 지동화가 곡을 어떻게든 먹히게끔 쓰는 게 확실하다고, 장해진은 조용히 생각했다.
“이번에, 하민이랑 같이 찍은 영상이 인기가 엄청 많던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예산이 나올까 싶어서 조금 뒤로 미루자고 했더니, 갑자기 회사에 투자금이 들어왔던 날의 기억을 장해진은 아직 잊지 않았다.
그 돈으로 무대, 소품, 조명, 편집까지 모든 것에 돈을 때려 박았더니,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영상이 만들어졌다.
상황상 한 번 더 해외로 나갔다가, 돌아와서, 작은 규모라도 콘서트를…….
장해진의 머릿속에서 블로센스의 성공을 위한 온갖 계획이 수립되었다가 무너진다.
아무래도 아이돌이 성공해야 자신의 커리어도 성공하는 거니까, 그녀는 오늘도 야근을 한다.
그리고 울리는 전화벨.
“어, 왜.”
―술?
“야근.”
―아, 아쉽네. 사표 기념으로 술 마실 사람 찾고 있는데 쉽지가 않다.
“…뭐?”
장해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날 이후로 별말이 없길래 당연히 아무 짓도 안 하고 무난하게 넘어간 줄 알았는데.
“조작 못 하겠다고 난리쳤구나.”
―아니, 완전 틀렸단다.
장해진은 사무실을 둘러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야. 한잔해.”
어차피 원래 했어야 할 일은 다 끝났고, 친구 퇴사 기념 술자리도 안 나가주면 쓰나.
―지난번 거기로 가?
“아니, 지난번에 우리 애들 만난 거 보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거든. 너, 술 마시면 개 되는 걸 내가 까먹었지 뭐니.”
* * *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
“요약하면, 갑자기 상사가 좌천됐다?”
“어우, 상상만 해도 행복한데 왜 퇴사를 해.”
“내가 스탯을 잘못 찍어서, 재시작 한 번 하게.”
“우리 회사에 진짜 자리 알아볼까? 자컨 PD 구한다고 말 많았거든. 봉급은 예상보다 못할 수도 있는데…….”
“안 돼.”
정경우는 장해진의 말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예전에는 자기가 먼저 구해 달라고 염병을 떨더니, 아주 그냥.
“왜.”
“안 돼. 무서워.”
“뭐라는 거야. 내가 잡아먹니?”
“어우…, 내가 말을 말자.”
정경우는 갑갑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다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박수를 짝 쳤다.
“맞다. 너희 그룹 예능 고정 제의 들어갔지.”
“아니? 아직 고정 제의는 없는데.”
“아, 그럼 곧 들어가나 보다.”
“뭐 하는데?”
장해진은 입맛이 솟아나는 기분이었다.
“이름은 기억 안 나는데 디텍션 그 PD가 동화 씨 원픽이래.”
“아, 기억났다. 그거 씨, 착한 앤데 무슨 싸이코 이미지가 붙어가지고 짜증났었는데.”
“사이코…, 아니긴 하지…….”
정경우의 미련 뚝뚝 떨어지는 말투에 장해진은 더더욱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말투 뭐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오, X발, 오랜만에 욕 나오게 하는데?”
“조심해, 동화 씨 무서운 사람이야.”
“뭐가 무서워. 동화, 착하고 똑똑하고 예의 바르고 평판 좋고 일 잘하고…, 아주 그냥 바람직한 아이돌인데.”
“아, 그냥 해외 이민 가고 다 말해 버려?”
“말해 봐. 뭔데.”
장해진은 떨떠름하게 감자튀김을 집어먹었다.
자기가 PD면서 무슨 개소리를……. 무서워해도 동화가 정경우를 무서워하는 편이 이치에 맞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아니, 이 씨…….”
장해진을 잔을 들었다가 내려놨다. 정경우도 자포자기한 듯 웃으면서 화제를 돌렸다.
“어쨌든, 이번에 그 PD님 투자 많이 받았대. 기왕이면 출연해. 일정 과하게 꼬이는 거 아니면. 일단 디텍션보단 훨씬 대중적으로 만든다고 하니까 손해 볼 일은 없을걸.”
“조언 고맙네.”
“아, 그리고 광고 제의도 한두 건 들어갈 거랬는데, 의류 광고는 후려치기 심하니까 거절하고 다른 거 맡는 게 좋대.”
“…너, 그거 막 말해도 되나?”
“뭐 어때, 어차피 관둘 거. 은혜나 갚고 가는 거지. 또 뭐 있더라. 업계 정보 다 털고 가야겠는데…….”
아니, 웬 보물 고블린이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거람.
장해진은 기묘한 심정으로 일단 정경우의 말을 받아 적었다.
대형 기획사 아이돌의 데뷔 프로모 시기와 해외 출정 시기까지 전부 손에 넣고 약간 놀라고 말았다. 단순 계산으로도 빈집털이 이슈몰이가 가능한 시기가 보였다.
얘, 뭐 하고 사는 애지. 이런 걸 나보다 더 잘 알 수가…….
“소시민은 정보에 예민해야 안 죽잖아……. 나 여행 가 있는 동안 대성해라. 동화 씨는 알아서 잘 클 거 같긴 한데…….”
정경우는 소심한 손짓으로 오징어나 씹으며 중얼거렸다.
* * *
“여러분, 좋은 소식. 컴백 시기 확정됐습니다.”
“와아, 엄청 빨리 컴백이네요!”
일하는 게 즐거운 우리 채하민.
“디오니나 다른 어떤 회사에도 일군 이군 아이돌은 컴백하지 않는 딱 2주가 있는데, 그때, 치고 들어갈 예정입니다.”
데뷔 초반에 대형 그룹 컴백과 겹친 게 트라우마로 남은 장해진 팀장님은 정보에 몹시 민감하게 반응하며 최대한 안전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할 수 있는 시기를 골라 우리를 컴백시키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평소보다 급하게 컴백이 잡힌 걸 보면 그때 말고는 대안이 없나 보다.
“그리고 여러분들 블로센스 감사제를 또 해야 하니까, 연습이 바빠질 예정이네요. 이번 감사제는 온라인으로 진행할 예정이에요. 게다가 미니 콘서트도 일정을 잡아야 하니까…, 한동안은 정신없겠습니다.”
흠칫, 석준의 오른손이 떨렸다.
내 쪽을 흘깃 쳐다보는 걸 보니, 작곡 공부는 쉬자는 무언의 신호가 확실하다.
‘작곡은 계속될 예정.’
입 모양으로 조용히 말해 주자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석준.
자기가 좋아하는 곡 쓸 때는 그렇게 신나하면서 참 이상한 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