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41)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41화(209/343)
스케줄이 끝나고 나서도 쉬지 않고 작업실에 들어오는 생활, 석준은 좋은 체력 덕분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무슨 동화로 가사 쓸 예정이야.”
석준은 내 질문에 곧바로 대답했다. 미리 생각해 온 게 분명하다.
“오로라.”
걔는 진짜로 작품 내내 잠만 자던데. 그쯤 되면 관절부에 문제가 생겨서 깨어났을 때 곧바로 병원에 가야 하지 않았을까.
“네― 어렸을 때 보다가 이해가 안 되는 장면이 많았거든요―”
대충 줄거리를 떠올려 봤다.
“음, 그렇지.”
나는 동감했다.
“어떻게 영양분 공급을 하는지.”
“왜― 물레에 손을― 댔는지가…….”
동시에 나온 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해가 안 될 부분이 조금 다르지 않나.
“손 찔린 게?”
“영양분이요?”
그리고 다시 동시에 나온 반문.
나는 잠시 기다렸다가 우선 답했다. 또 말이 겹치지 않도록.
“그때 링거액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원작과는 다르게 위즈니판에서는 왕과 왕비가 딸이 잠든 게 너무 슬픈 나머지 왕국민들 전부를 재워 버렸다고 하는데, 그러면 누가 누구를 돌봐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는 소리다. 전부 굶어 죽어야 정상이다.
용과 마법이 나오는 이야기라 대충 마법의 힘이라고 해도 할 말 없기는 하지만.
“아. 저는 어려서 그런 생각은 못 했습니다.”
나도 어릴 때가 있었단다, 준아. 너는 순수한 얼굴로 사람 먹이는 데 채하민이랑 똑같은 재주가 있구나.
“그래서, 물레는 왜?”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석준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아무리 주워들은 정보가 없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왕녀임이 밝혀지고 나서는 누군가 한 명쯤은 저주에 관해 주의를 주지 않겠느냐고.
확실히 열네 살까지 모르고 살았다고는 해도, 이상하긴 하지.
물레를 다 태웠다고는 하더라도 첨단공포증 정도는 심어 줘서 추가적으로 방지하는 게 나은 것 같기는 하다.
그러면 말레피센트의 계략으로 물레를 마주쳤을 때 호기심이고 나발이고 무서워서 도망치지 않았을까.
“형님―, 그건 너무 무서―워요.”
미안, 더러운 어른의 사고방식이란다.
“어쨌든, 그래서?”
“일부러 찔린 것 아닐까요.”
말없이 이어질 설명을 기다렸다. 최근 나와 하는 대화 빈도가 부쩍 늘어난 석준답게 곧 뜻을 깨닫고 바로 설명을 이어갔다.
“좋아하는 사람이랑 신분 때문에 결혼도 못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차라리 평생 이 사실을 잊고 싶어서, 일부러.”
사실 원작과 위즈니 판본 사이 스토리적인 차이가 있다.
원작에서는 정말 뜬금없이 왕자가 등장하는 반면, 위즈니 판본에서는 왕자와 만나서 대략 2분 만에 사랑에 빠진다.
이런 게 정말 사랑일 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후 자신의 신분을 알게 되자 슬퍼하다가 물레를 보곤 호기심에 찔리고 이후 왕자로 인해 구출.
원작에서는 ‘슬픔’ 따위 없어서 석준처럼 해석할 수도 없겠지만, 위즈니 판본에선 가능하다.
“그러니까, 물레에 찔린 게 공주 선택이라는 거네.”
즉, 신분 차이로 인해 2분 만에 사랑에 빠진 남자랑 결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힘들고, 그런 삶을 받아들일 자신은 없어서, 차라리 잠을 통한 망각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정말 이런 선택을 할 사람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네, 주인공의― 선택이 없는 이야기는,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석준은 품에서 종잇조각을 꺼냈다.
“잠이라는 제목으로 미리 가―사만 써 둔 게 있습니다―”
월간 지동화, 처음으로 가사가 완전히 완성된 상태에서 작곡을 해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했다.
* * *
이틀 후, 나와 석준은 청취율이 꽤 좋은 덕분에 토요일 하루 두 시간에서, 토일 각 두 시간으로 늘어난 라디오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라디오국에 도착했다.
가방에 지퍼를 꼭 여미고 매니저님에게 맡겨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일단 방송은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여러분들과 대화를 할 지동화.”
“석준입니다.”
라디오. 보이는 라디오가 아니면 들을 사람이 현저히 적을 게 분명한 사라져 가는 매체.
하지만 소리만으로 무언가를 전달한다는 건 꽤나 낭만적인 일이긴 하다.
“셰익스피어는 모든 생활에 역사가 있다는 말을 남겼고, 보통 그 역사는 흑역사인 것 같습니다. 또 니체는 날 죽이지 못하는 고통이 자신을 성장시킨다고 했지만, 보통은 그 고통이 ‘거의’ 죽여 놓기는 합니다.”
아, 약간 내 취향 개그야.
“오늘의 대화 주제는 내 인생의 흑역사. 여러분들의 역사이자 수치스러워서 죽을 뻔했던 고통을 서로 나눠보는 시간입니다.”
“대본 형님이 썼냐는 글이 있습니다.”
“…제가 쓴 게 맞습니다.”
제작진이 쓰라고 시켰거든요. 그러니 내 취향 개그일 수밖에 없다.
“사실 이건 형님 전공―입니다.”
“흑역사가?”
“블로센스 내의 가장 많은 흑역사 보유자―”
“…그게 다 제가 부끄러움을 아는 인간이라 그렇습니다.”
“저희는 모르나―요?”
“보통 모르잖아, 너희.”
특히 너. 수치라는 개념이 아예 없잖아.
나는 꽤 오래 석준과 지냈음에도 석준이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렇게 억울한 표정을 지으면 안 된단다, 망할 공룡아.
“…대본으로 잠시 돌아와서, ‘준 씨는 흑역사가 있나요.’라고 질문해 볼게.”
“부끄러운 과거 얘기라면, 저 어렸을 때―”
“그거 비방용입니다.”
이미 예전에 들었기에 나는 재빠르게 차단했다.
유치원 시절에 있었던 수치스러운 경험담―이뇨 작용과 관련된 사안―인데, 애초에 그걸 공개적으로 말한다는 것 자체가 수치를 모른다는 뜻이다.
“…별로 그렇게 부끄러운 일은 아닌.”
“그러니까.”
“네?”
“보통 모른다고, 너희.”
특히 너, 이 망할 공룡아.
나나 류이든 아니었으면 우리 준이는 이미지가 어땠을지 모른다.
현재는 과묵한 넷째의 비밀스러운 취미 정도의 워딩으로 꾸며진 이미지지만, ‘정말 특이한 친구’ 정도는 가뿐하게 넘어설 수 있을 것 같다.
“여러분들, 저도 말씀드리고 싶지만, 한 번만 봐주셨으면 합니다.”
“아, 형님한테 말 안 한 거 하나 있습니다.”
불안함. 과연 저 인간의 수치스러움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매니저님과 눈이 마주치자 매니저님도 불안한 눈초리였을 뿐이다.
“…말해, 볼래?”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봤을 때였는데.”
“아.”
위즈니 얘기면 괜찮을 것 같아. 어차피 이 부분은 버린 이미지잖아.
“그때, 너무 부러워 보였어요― 계속 자고, 편하겠다 싶어서―”
“응.”
“그래서 어머니가 바느질할 때 바늘로 제 손을 찔렀습니다.”
“…대단한걸.”
정말 여러 의미에서.
특히 네 부모님이 대단하신 것 같아. 어떻게 그걸 견디며 키워주셨을까.
“그런데―, 그때 잠은 안 오고, 아프기만 해서―, 물레가 아니라 그런가 생각했는데.”
그때도 제정신은 아니었구나, 준아.
“그래서 어머니께 물레를― 사 달라고 떼를― 쓴 적이 있습니다.”
“몇 살, 때였는데?”
“중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세상에, 중2병 변종이 발생했나 봐. 내가 어머니였다는 상상을 하고 싶지도 않을 만큼 끔찍한걸.
“…어머님께선 뭐라고 하셨어.”
“물레에 찔려도 잠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한 시간 동안 천천히 알려 주셨습니다―”
역시, 부모님이 부처님이 되기 일보 직전이시겠네.
“…어쨌든, 오늘은 저희가 사연을 미리 읽어 보질 못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의 흑역사를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저런 사연만 수백 개 왔고 그중에 몇 개만 골라서 읽을 예정이라는 거구나.
* * *
“그러니까 버스에 탔는데 앞 사람이 두 명을 찍어서 설렜고…….”
“그런데 착각―이었네요.”
아.
“강의 시간에 저희들 영상을 보다가 괴성을 질렀다는 사연, 잘, 읽었, 습니다.”
이러면.
“요약하면, 어머님께서, 저희들 사진이 프로필에 걸린 걸 보고 남친이냐고 물으셨는데.”
“맞다고 대답했다가 어머니가― 이미 알고― 계셨던 거네요.”
“그러고는 제발, 인생을 살라고, 한마디 들으신…….”
“…형님, 이렇게 웃는 거 처음 봐요.”
안 되는데.
여러 사연을 읽다가 자꾸 웃음이 새어 나와서 큰일이다.
왜 이렇게 우스운 일이 많으신 건지 모르겠다. 정말 셰익스피어 말대로 모든 생활에 역사가 있나 보다.
“어머니가 유쾌하시네요.”
“저도 저 말 들은 적 있는데, 조금 따끔합니다.”
“저희 좋아해 주시는 건 너무 감사한 일이기 때문에, 어머님께서 저희도 따님 인생에 넣어 주셨으면 좋겠네요.”
취미 생활을 인생에 넣지 않으면 인생이 얼마나 팍팍할까. 바느질이나 뜨개질 없는 예전의 삶을 생각해 보면 확실히 꽤 퍽퍽했던 것 같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취미 이야기로 슬며시 옮겨 왔다.
“준이 덕분에 취미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기도 했죠.”
“저 때문에요?”
“응. 예전에 너 보면서 나도 취미나 하나 만들어야겠다 싶어서 뜨개질이랑 바느질 시작했거든.”
석준은 카메라 쪽을 보면서 자랑스럽게 브이 자를 만들어 보였다. 퍽 자랑스럽나 보다.
“제가 이런 사람입니다.”
“…그래, 대단해.”
“맞아요, 제가 대단합니다.”
“…그래.”
대단하다고 말할 때 카메라 빤히 바라보면서 눈에 광기가 어리지만 않았으면 더 대단했을 거야.
높은 자존감과 철저한 자기 긍정, 그러면서도 죄는 짓지 않는 선한 심성.
본받을 점은 많지만 왜 이렇게 꼴 보기 싫은지 모르겠어, 준아.
“그리고 요즘에 형님이랑 곡 쓰는 게 있는데 오로라 공주 얘길…….”
저 미친놈이. 나는 황급히 말을 끊었다.
‘대단한 사람’이라는 키워드가 어떻게 개인 작업물로 넘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석준의 머릿속을 이해하는 건 까다로운 일이라 그러려니 했다.
“준아.”
“네?”
“음, 반문할 게 아니라, 스포일러라는 생각은 혹시 들지 않니.”
“…어, 그거 말하면― 안 되는― 거였습니까.”
혹시 저 밖에서 갑자기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매니저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니.
생각해 보면 여태 모든 스포일러 사건이 석준의 입에서 터졌으니,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주의를 주지 않은 내 잘못이 커.
나는 미소 짓고 카메라를 바라봤다. 무언가 부탁을 할 때는 눈을 마주치는 게 예절이니까.
“자, 오늘 있었던 일은, 우리끼리의 비밀로 할까요, 루미너스 여러분.”
“…헉, 죄―송합니다. 컴백 얘기만 안 하면 되는 줄― 알고.”
“세상에.”
지금 했잖아, 미친놈아.
나는 입을 벌렸다. 시선은 석준의 얼굴에 붙박여 떨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내 눈에는 경악이 가득 차 있을 게 틀림없다.
“…준.”
“…아!”
‘아!’는 무슨.
―블로센스 공식 스포일러 메이커ㅋㅋㅋㅋㅌㅋㅋ
―준아 ㅋㅋㅋㅋㅋㅋㅌㅋㅋㅋㅋㅋㅋㅋ
―동화 표정 겁나 ㅋㅋㅌㅋㅋㅋㅋㅋㅋㅋㅌㅋㅋㅋㅋ 경악 그 자체 ㅋㅋㅋㅌㅋㅋㅋㅋ
―준이와 있을 때 표정 변화가 가장 잦은 우리 교수님…
석준은 입을 틀어막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웃음은 전염되는 법이라 나도 어이없게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여러분, 비밀로 할 게 한 개 더 늘었네요.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어차피 이뤄지지 않을 게 틀림없는 요청.
설마 기적적으로 모두들 약속을 지켜 인터넷에 단 한 줄도 돌아다니지 않을 리는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우리 팬분들을 믿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을까.
“준, 너도 빨리.”
“네!”
석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구십 도로 고개를 숙였다. 마이크에 제대로 들어갔는지는 의문이지만, ‘살려주세요!’라는 간절한 요청도 함께 섞여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나와 석준은 충격적 진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정말로, 그 누구도 커뮤니티에 관련 글을 작성하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