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42)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42화(210/343)
집단이 비밀을 유지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불특정 다수인 대중에 가까운 집단이 비밀을 유지한다는 건 놀라울 지경이다.
류이든은 작업실 소파에 등을 누였다. 한창 진행하고 있는 앨범 녹음 와중에 정신없이 회사와 대화하고 와서 그런지 늘어진 게 보였다. 힘들어 보이네.
“기사는 우리 회사가 어떻게 잘 막았다고는 하더라. 나중에 터질 듯이 기사 나는 게 좋긴 하니까.”
움찔, 석준이 고개를 푹 숙였다.
반면 류이든은 늘어졌던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우며 손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준아, 어깨 펴! 사람이 실수도 하고 그러면서 사는 거지!”
류이든이 석준을 격려하며 옆에서 응원했다.
그래. 스포일러 정도는 얌전한 잘못이지.
연예계 사생활 논란이 어제도 한 건 터졌던데 그거에 비하면 석준은 얌전하다.
말할 때 큰 고민 없이 말하는데도 생기는 논란이 고작 스포일러인 걸 보면 애는 착한 건 확실하다.
“다음부턴 그래도 실수하면 안 돼. 회사에 혼나면 나도 마음이 아파.”
“…죄송합니다―”
정작 류이든도 석준만큼 혼난 것 같지만, 리더라 어쩔 수 없었나 보다.
“뭐, 이 정도는 혼날 만하기도 해. 다음에 또 그래도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는 장난스럽게 웃어넘긴다. 류이든의 육아 기술이 정말 훌륭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주 훌륭한 리더야.
“난 이만 가 볼게. 작업 끝내고 일찍 와.”
그래도 스케줄이 끝나고 불려가서 한마디 듣는 건 분명히 피곤한 일이라, 지친 걸 숨기려 하지만 티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류이든이 떠나고 고요한 작업실.
석준은 입을 뻐끔거리며 어쩌면 좋을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저는― 왜 이렇게 멍청할까요.”
“너, 별로 안 멍청하다니까.”
만약에 정말 멍청했다면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그렇게 해석하지도 못하겠지. 누가 그 이야기를 공주의 자기 파괴적인 선택으로 해석하겠니.
대부분은 비과학적이고 괴상한 이야기 정도로 이해하고 말 것이다.
다만, 다른 분야에서 조금, 아주 조금 덜떨어진 구석이 있을 뿐이다.
“이 정도 실수는 대부분이 하기도 하고.”
“…형―님은 한 번도 안 했잖아요?”
그러고 보면 류이든이랑 나를 제외하곤 다들 자잘하게 스포일러를 한 경험이 있다.
대형 사건은 석준이 두 번 정도 일으켰지만, 채하민은 방송 방영일을 착각해서 한 번, 이현재는 녹음하고 오는 길에 켠 W앱 라이브에서 신곡을 흥얼거리면서 한 번.
“그건…, 내가 일정을 착각할 리가 없어서?”
그리고 류이든은 모든 멤버들의 대략적인 스케줄과 방영일을 외우고 있으니까. 정말 리더 자질 하나는 뛰어난 사람이다.
“와…, 대단해요…….”
확실히.
“류이든은 대단한 사람이긴 해.”
난 월간 지동화 마무리 작업을 위해 다시 컴퓨터를 만지작댔다.
옆에 있던 석준도 다시 의자를 당겨 앉았다.
“두 형님 절반만 닮고 싶습―니다.”
“스포일러만 안 하면 안 닮아도 돼.”
네 개성이 얼마나 훌륭한 건지, 너만 모르는 것 같네. 네 모습대로 살다가 자연스럽게 변하는 거면 모를까.
“그래서, 어때, 곡은 마음에 들어?”
“네! 최고입니다.”
한창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이다.
“이제 형님이 후렴구만 해 주시면 됩니다.”
“…그 정도는 뭐.”
채하민 때부터 컨텐츠의 본질이 어긋나는 기분이지만, 이미 한 번 선례를 남겨서 별로 상관은 없을 것 같다.
* * *
어느덧 여름.
파릇한 나무의 향기가 나는 캠퍼스에서는 과제가 한창이다. 중간고사가 끝나면 피어나는 과제 덕분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계절인 셈이다.
에너지드링크와 커피의 도움 없이는, 즉, 혈중 카페인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지 않으면 곧 쓰러질 것만 같은 시기.
여기에, 어느덧 졸업 학기를 앞두고 과제와 더불어 졸업 논문을 작성하고 있는 한 여인이 있다.
“…아, 죽고 싶은데.”
그녀의 친구들은 늘 하는 소리를 또 듣는 게 지겨운지 별다른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맘때 우울감을 호소하지 않는 대학생이 도리어 이례적이다.
“컴백…, 해 줘.”
“기사도 안 나오던데, 무슨.”
우리 사이 비밀이라 말은 못 해도, 곧 한다고 했거든. 심지어 동화가 동생이랑 작업 중인 곡 있다고도 했어. 네가 뭘 알아!
빨리 졸업하고 현장 뛰러 갈 생각뿐인 그녀. 취업 전, 마지막 불꽃을 태우려는 심산이다.
“그러다가 졸업 전에 컴백하고, 취업 후에 다시 컴백하면 어쩌게.”
“…너, 저주 걸어, 지금?”
인간된 도리로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지, 무슨 소리를.
아, 쉴까. 노트북을 켠 지 십 분도 채 안 되었지만 그녀의 손은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켜 SNS를 눌렀다.
“엥.”
“왜. 컴백해?”
“아니, 씨, 무슨, 이렇게 갑자기 곡을 공개해?”
“…진짜 컴백이라고?”
“아니, 월간 지동화라고…….”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일반인한테 자세한 설명은 해 봤자 보통 의미가 없다. 어차피 못 알아들을 테니까.
제목, ‘잠’이라는 아주 짧은 길이. 뮤직비디오는 아니고 가사에 여러 가지 색채와 조형물을 곁들여 편집한 리릭 비디오다.
지난번 채하민과의 듀엣이나, 이현재의 개인 곡 모두 메이킹 필름이 공개되었는데, 이번에는 이례적이네.
그녀는 모두의 말을 무시하고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평화로운 사운드. 듣기만 해도 잠이 솔솔 밀려 올 것만 같았다.
안 그래도 현재 혈중 카페인 농도가 낮은 상태여서 순간적으로 눈을 감았다가 정신을 잃을 뻔했다.
잠
석준이 짧은 한 글자만 툭 읽더니 영상에 노이즈가 끼며 곡 사이사이 기계음이 뒤섞였다.
평화로운 숲에 웬 로봇이 출연한 것 같았지만, 로봇에 이끼가 낀 듯 오묘하게 어우러졌다.
I’m falling asleep for spindle
저녁 무렵 어스름 없이도
I’m falling asleep for spindle
그저 오래 자고 싶은걸, 한 백 년
‘뭐지. 내 일기인가.’
지동화가 매력적인 음색으로 흥얼거리는 후렴구. 그런데 가사 상태가 심상치 않다.
“…야, spindle이 뭐야?”
옆에 있던 영문과 친구가 하품하며 답했다.
“축.”
“어?”
“그, 뭐야. 톱니바퀴 같은 거 있으면 그 가운데 박아 놓은 거.”
“…뭔.”
그녀는 잠시 곡을 멈추고 친구에게 가사를 보여 줬다.
“이거 무슨 소리야?”
그녀의 친구는 갑자기 던져진 해석 문제에 잠시 머리를 굴렸다.
“아, 그건가 보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 물레 바늘 원어가 저거거든. 물레 바늘 때문에 처잔다―, 그런 거네.”
무슨 컨셉이야, 이건 대체.
그녀는 가볍게 감사를 표하고 다시 곡을 재생했다. 지동화의 후렴이 기묘한 곡조 위에서 끝나고 석준이 중저음의 목소리로 랩을 하기 시작했다.
그저 자고 싶어, 한 백 년 정도
눈 뜨고 나면 다 잊어질 정(情)도
하라는 건 많아, 한 백 개 정도
내겐 너무 버거운 그 정도(定道)
뭔데. 뭐냐고. 엄청 반항적인데.
그런데 곡은 또 왜 묘하게 슬퍼. 석준 목소리는 왜 또 감미로운데.
이것뿐인 것 같아, 내가 고를 수 있는 건
펼쳐진 현실이 두려워, 할 수 있는 건
도피래도 좋아, 나는. 점점 더 깊어져 가는
코앞에 다가온 물레 바늘, 이제 콕 찔리면
석준이 조금은 빠른 속도로 음절을 뱉어가며 고조된 분위기.
극에 달하자 모든 음악이 멈추고, 인트로에서 처음 들었던 것처럼.
잠
단 한 글자가 뚝 떨어졌다.
마치 최면을 걸듯이 똑딱거리는 메트로놈 소리와 배경에 깔리는 기계적인 효과음들이 겹쳐지며 기묘한 앙상블을 구성했다.
한밤중에 서커스가 펼쳐지는 것 같은 환상의 세계에 초대받은 느낌. 그녀는 이어폰에서 흐르는 소리에 매료되는 기분이었다.
가사 없이 흐르던 멜로디가 끝나자 다시 지동화의 후렴구.
한 백 년 정도 자고 싶다는 게 사실이라는 듯이 몽롱하게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자연스레 입꼬리를 올려 웃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그녀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니, 좋은데, 그래서 이게 뭔데.”
잠 예찬가인가? 왜 묘하게 시험 전날 잠들기 전에 하는 독백 같은 느낌이 드는 걸까.
석준은 4차원스러운 발상을 자주 표현하고는 하니까, 정말 잠을 예찬하려는 그런 의도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블로센스 내에서 채하민 다음으로 잠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고.
“…나도 때려치고 잘까?”
“혹시 졸업 취소되고 싶어?”
“그러게.”
그런데 듣고 있으니 자고 싶은걸.
심지어 시계 똑딱이는 소리가 잠을 유도하는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었다.
* * *
사실 석준이 써온 가사를 처음 봤을 때, 모든 벌스를 소모해서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서 잔다’라는 단순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놀랐다.
그러나 이내 이게 누구의 목소리인지 떠올리고 나서야, 그만큼 현실 도피가 간절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석준의 말대로, 아직 메이킹 필름이 공개되지 않아서 오피셜 설명이 없는 상황이라지만, ‘잠 예찬가’로 화제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하필이면 시험 기간에 공개가 된 덕분에 학생분들이 자고 싶음을 어필하며 프로필에 올려 두기도 했다.
회사원 루미너스분들도 마찬가지로 프로필에 걸어두고 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게다가 채하민조차 숙소로 가는 지금, 배경음악으로 틀어놓은 ‘잠’에 맞춰서 자고 있으니, 할 말이 없다.
조용한 클래식도 아닌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많이들, 주무시고 싶은가 봐.”
“형, 여기 사생활 폭로됐어요.”
방금 이현재가 농담한 것처럼, 심지어는 내가 아이돌 제작 공방에서 잠은 나중에 자면 된다고 연습생들을 응원하던 사진의 배경 음악으로 인용되며, ‘앞과 뒤가 다른 교수님의 실체’라는 유머 글로 소비되기도 했다.
“뭐가 됐든 화제는 좋은 거지.”
류이든은 엄지를 척 치켜세웠다.
“…그래.”
말 그대로 무관심에 묻히는 것보다야 낫긴 하지만. 그래도 팬분들 정도는 원래의 의도를 알아주셨으면 하는 작은 욕심이 있다.
“그런데, 동화 형.”
앞좌석에 앉아 있던 류이든이 몸을 옆으로 빼 나와 눈을 맞췄다.
“그럼 월간 지동화 끝이야?”
음, 그러고 보니 어느새 한 바퀴를 다 돌았네.
“…그러게.”
모든 멤버들에게 개인 곡을 써주겠다던, 서바이벌 때부터 시작된 작업이다. 어느새 끝났다니, 감회가 새로울 따름이다.
그런데 듣고 있던 이현재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죠, 형. 아직 안 한 멤버가 있잖아요.”
“누구?”
류이든, 이현재, 채하민, 석준, 모두 각자의 개인 곡을 발표해서 이번 앨범에 한꺼번에 실을 계획이다.
“형이요.”
“…나?”
“형한테는 개인 곡, 아직 안 써 줬잖아요.”
“오, 맞네. 우리 막내가 참 똑똑해.”
류이든은 이현재의 머리를 털어내듯이 쓰다듬었고, 이현재는 격렬하게 거부감을 표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 혼자 말없이 고민에 빠져들었다.
내가 나에게 써 주는 개인 곡이라니, 굉장히 충격적인걸. 모든 멤버에게 써 줘야 하고, 나 역시 멤버이니 이치에도 맞았다.
하지만.
“…뭘 써야 하지.”
정작 나에게 써 줘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하얘지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