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43)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43화(211/343)
“동화야, 힘들다아…….”
“두 발로 서, 하민.”
너는 그렇게 나약하지 않잖아. 나보다 체력도 좋으면서 왜 그래.
빈집털이를 위한 데뷔 준비가 가속되며 연습량이 늘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지쳐 보인다.
“아…, 쉴 때가 좋았는데. 나중에 나이 들면 계속 쉴 수 있겠지?”
그건 너처럼 돈이 많을 때 가능한 거란다. 꽤 많은 사람들이 늙었다고 해서 편하게 쉬지 않아.
노년을 안식의 세대라고 부르던 건 대가족 체제와 농경 사회가 역사의 저편으로 넘어가며 함께 끝났다.
“뭐, 그렇겠지.”
너는 돈 많잖아.
“빨리 블로센스 실버타운 자리나 알아봐야겠다…….”
너무 일찍 일어나서 굶어 죽을 새 같은 짐승아.
“이든 형―님, 저 오늘 W앱도 실―수 안 했습니다.”
“장한데?”
“연일 최고― 기록 갱신!”
사고 치지 않은 기간을 세고 있는 건, 숨을 쉬며 살아간 날의 수를 세는 거랑 비슷하지 않을까. 그 누구도 당연한 일을 기념하지 않으니까.
“누가 말려 주긴 해야 하는데, 평소면 동화 형이 해 줄 텐데…….”
그리고 아주 작은 혼잣말로 석준을 지켜보며 안타까워하는 이현재. 석준의 세계를 존중해 주기엔 이현재는 너무 현실적인가 보다.
그렇게 평소와 한 치의 다름도 없이 무난하게 흘러가는 연습실 풍경. 평화롭다면 평화롭,
“저리로 가, 하민.”
“서운하다아, 동화야.”
“…술 마셨어?”
너 술 마실 때랑 말투가 똑같은데.
“뭔가, 오늘 운세가 안 좋았어.”
그걸 믿어?
“막 친구가 바빠질 거래.”
그래서, 그걸 믿냐고. 놀라울 지경인걸, 하민.
“근데 나한테 동갑 친구는 너밖에 없단 말이야?”
“…삼단 논법이네. 내가 바빠질 것이다.”
그리고 그건 대전제에 오류가 있으면 결론도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단다. 점괘로 알아낸 대전제로 내린 결론은 큰 가치가 없지 않을까.
채하민은 내 말에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 눈에는 무언가 확실한 믿음 같은 게 보여서 한숨이 나오려 했다.
“곧 컴백할 거라 다 같이 바빠진다는 뜻 아니었을까.”
“…어? 그런가?”
“해석은 다양하니까.”
“…음. 그럴 수도!”
곧 다시 해맑아지는 걸 보면 저놈, 자기도 점괘를 안 믿는 건 아닐까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석준과 이현재랑 함께 깔깔대며 웃고 있던 류이든이 급정색을 하며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네! 팀장님, 전화 받았습니다.”
순식간에 손짓 몇 번으로 고요해진 연습실. 이 개성 넘치는 것들을 순간에 통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짐승이다.
동물농장 서열 1등, 조지 오웰에겐 돼지였겠지만 나에게는 개 한 마리다.
“아, 동화요? 네, 알겠어요. 지금 쉰 지 좀 돼서 바로 보낼게요.”
“…봐, 이럴 줄 알았어.”
곧바로 드러눕는 채하민.
하민, 그거 우연이야. 가끔 우연이 겹치고 겹치면 정말 믿기 힘든 일도 쉽게 일어나는 법이잖아.
류이든은 빠르게 통화를 마치고 나와 눈을 맞췄다.
그러다가 그새 옆으로 시선이 빠져선 드러누워서 좌우로 몸을 뒹굴거리고 있는 채하민을 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개인 스케줄 잡힐 것 같다는데, 회의실로!”
“으아, 진짜, 동화야아, 마음이 아프다아…….”
“음.”
저런, 안타까워라. 나는 누워 있는 채하민을 툭 밀어내고 가볍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 별일이야 있을까.
* * *
“간단하게 말하면 고정 출연 섭외인데…, 한 번 촬영으로 2주에서 3주 분량이고, 총 12화입니다. 대략 구구 계산으로 다섯 번 정도만 촬영하면 그만이니까, 부담은 덜하긴 하죠?”
짙은 다크서클과 몸에 밴 커피 향기.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도 팀장님인지 알아보겠다.
최근에 소동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 2팀 팀장인 장해진 팀장님이 1팀장을 제쳤다는 소문이 들리는 걸 보면 정말 노력하고 있으신 것 같다.
TOT랑 우리를 자기 손으로 관리하고 있으니 저렇게 노력하지 않으셔도 이미 압승일 텐데.
“어쨌든, 그래요. 이번 국내 활동 끝내고 해외로 잠시 눈을 돌릴 예정이니까, 이런 개인 활동도 미리 할 수 있으면 좋긴 하죠. 장 PD님, 그러니까 디텍션 PD님이 의외로 방송 잘 만들기도 하고. 항상 마이너한 것만 만들어 대서 문제긴 한데…….”
장해진 팀장님은 한참 방송의 컨셉에 대해 설명하다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돌렸다.
“뭐, 결론적으로는 이번 활동 홍보는 잘 되겠죠? 체력만 부족하지 않다면 나가는 걸 권해 드립니다.”
“그럼.”
“나가겠다고 할 걸 뻔히 알기 때문에, 체력 관련해서는 하민이랑 이든이한테 또 개인적으로 물어볼게요.”
다시 한번 눈가를 비비고 뺨을 두어 대 친 다음, 공적인 대화는 끝났는지 말을 살포시 놓는다.
“그룹에 진심인 건 너무 고맙고, 또 장한데, 가끔은 개인의 영달도 생각해 보는 건 어때, 동화야.”
“…네?”
“철학은 네가 더 잘 알잖아. 뭘 선택할 때 고려사항에서 자기가 배제되는 거, 은근 문제지 않아?”
보통은…, 그렇다. 개인을 고려하지 않은 선택은 윤리적으로 논쟁거리가 될 수밖에 없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나도 무엇이 옳은지 명확히 알지는 못하겠다.
“그룹은 이미 자리 잡았으니까, 네가 뭘 하고 싶은지 말해 주면, 그거 위주로 개인 활동 지원해 줄게. 다른 멤버들한테도 다 말할 예정인데, 너는 겸사겸사.”
기억과 기억은 뇌 속에서 연결되어 있다. 연상 작용은 날카로워서, 준성이 말했던 ‘그룹 활동 이후의 미래’라는 언급이 떠올랐다.
“어쨌든, 체력 문제 확인할게. 네 체력은 이든이 말이 제일 믿을 만한 것 같더라…….”
나는 지난번 이현재가 말했던 개인 곡 때처럼 조금 당혹스러웠다.
“어쨌든, 오케이! 돌아가도록! 연습 적당히! 내가 퇴근할 때도 불 켜져 있으면 걱정이 돼서 나 정신을 잃을지도 모른다?”
“…네.”
그래서 별말 없이 돌아오는 수밖에는 없었다. 깊게 고민해 보지 않은 주제를 쉽게 입에 올릴 수는 없는 법이다.
연습실에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 휴식이 연장됐는지 채하민은 여전히 누워서 뒹굴거렸고, 나머지 셋은 뭐라 말하며 꺄르륵대고 있었다.
소리를 내며 들어가자, 안에 있던 채하민이 놀라운 반동력과 참 대단한 코어 힘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내 쪽을 돌아봤다.
“뭐라셔?”
대단한걸.
“개인 활동.”
“와! 진짜! 운세가 이상하다 했어.”
그래, 틀린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고 하지.
채하민은 좌절한 것을 티 내듯이 과장된 몸짓으로 풀썩 쓰러져 입을 틀어막았다. 아주 옛날 극장에서나 볼 수 있었던 비련의 주인공 같은 자세다.
“…동화랑, 못 놀아. 요즘도 준이랑만 놀아주는데.”
너도 주괴해. 숫자만 보면서 하는데도 나름대로 재밌어.
“요즘 동화 형 인기가 대단한 것 같아요.”
“맞아요. 형―님이 TV만 틀면 나올 때까지 응원하겠습니다.”
그건 조금, 음. 뭘까, 알 수 없는 거부감 비슷한 건.
류이든은 퍼뜩 두 명의 동생을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노동의 시간! 동화가 써 준 곡 완벽하게 소화할 때까지 못 돌아갈 예정!”
“더 바빠졌잖아…….”
채하민은 한 번 더 과장된 몸짓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세상에, 진짜 흘렸잖아. 미친 연기력인걸, 하민. 연기 수업 그만 덜어도 좋을 것 같아.
* * *
그날 밤, 이미 밤이었지만 더 깊어진 밤. 나는 평상시처럼 뜬눈으로 천장을 쳐다봤다.
작업을 하다 보니 생긴 버릇, 이대로 잠들어도 될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욕망은 모방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무언가를 따라 하려는 생각 없이 욕망은 생기기 어렵다.
부자를 따라 하고 싶은 마음에서 물욕이 생기기도 한다는 게 그 근거다.
어떤 이는 욕망이 결핍에서 생긴다고 한다.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채우고 싶은 마음에서 욕망이 생긴다는 소리다.
사실은 결핍은 나보다 우월한 타인이 있을 때 인식되고, 그 타인을 모방하려 할 때 욕망이 발생하는 거니 하나의 선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나를 이해해 봐야 한다.
어째서 그토록 우리 그룹의 성공에 집착했는지, 그 욕망의 근원을 이해해 보자.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 살아갈 때 귀찮은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가족이겠지, 뭐.’
망할, 생각해 보면 이렇게나 단순하다. 나의 결핍은 가족이니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관계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공간. 어느 순간부터 숙소를 집이라 부르게 된 것도, 전부 다 뻔한 이유다.
음, 수치스러워. 내 속을 깊이 파고드는 건, 마치 발가벗고 있는 나를 마주하는 기분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싱숭생숭한 마음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가족과 달리 그룹은 언젠가 해체할 수도 있잖아.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이 칠 년을 기준으로 해체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고.
그래서 더 성공에 집착했는데, 정작 사람들은 그 끝 이후를 생각하라고 하니 기분이, 형용하기 어렵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날카로운 연상 작용.
뇌세포가 격렬하게 운동하면서, 그동안 있었던 많은 사건, 내가 술 마신 날 주정을 부렸던 일, 그리고 실버타운 계획에 관심 없는 척 적극적으로 동의하면서 건물 자리를 실제로 알아봤던 일까지 모두 떠오른다.
‘…세상에.’
그동안 얼마나 질척였는지 깨닫고 말았다.
만약에 내가 그 멤버들이었다면 곧바로 분석해 냈을 정도로, 얼마나 티를 냈는지도 깨닫고 말았다.
“동화야…, 안 자고 뭐 해…….”
그때 뒤척이던 채하민이 옆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비볐다. 아무래도 나도 모르게 몸을 조금 비틀어댔나 보다.
인간의 모든 생활에는 역사가 있고, 대부분은 흑역사라서 나도 견디기 힘들었던 게 분명하다. 그때 라디오에서 웃었던 나를 벌하고 싶은 마음이다.
“미안, 이제 자려고.”
이만 생각을 정리하자. 답이 없는 고민이니까. 내 마음의 본모습을 이해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 활동은, 해야겠지. 그룹의 홍보도 홍보지만, 나를 지켜봐 주시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더 많이 ‘나’를 보여 드려야 한다.
* * *
“오랜만이네, 동화 씨! 처음 봤을 땐 신인이었는데, 어느새 경력이 쌓였고, 격세지감 그 자체.”
디텍션의 PD였던―시즌 3로 종결했으므로 ‘였던’이다.―장 PD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려니 감회가 새롭다.
“어떻게든 한 번 더 부르고 싶었는데, 방송국 사정이 영 개판이었거든. 투자 좀 많이 받고 만들려고 난리 좀 치느라 늦었어요.”
장 PD님은 한숨을 내쉬고는 조연출이 건네준 종이를 내게 건네줬다.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까. 처음부터 고정으로 부르는 거니까 잘 설명해 줘야 하는데.”
턱을 긁적이며 고심하던 장 PD.
“중요한 건, 알겠다고 바로 풀지 말기?”
“…네?”
장해진 팀장님 설명으로는 분명히 출연진들과 힘을 합쳐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송이라고 했는데.
방송의 본 목적을 제대로 수행하지 말라는 소리에 나는 멍청하게 반문하고 말았다.
“더 중요한 건, 문제를 풀기 전에 한 삼십 분은 기다려 주기?”
“…네?”
“더더욱 중요한 건, 모른 척 연기해 주기?”
대체, 무엇을 원하시는 건가요, PD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