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44)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44화(212/343)
오늘은 첫 만남을 촬영하는 날.
1화가 방영되기 전 온라인으로 공개될 예정인 식사 자리다. 멤버들 사이의 케미를 보여 주는 게 목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출근한 고깃집. 마이크도 없이 소형 카메라로만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다.
예정보다 이르게 1등으로 도착한 나는 좌석에 앉아 있다가 할 게 없어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안녕하십니까.”
“아, 쌀쌀해라. 초면인 것처럼 그러면 아저씨는 상처를 받아요.”
“아이참, 네가 그러면 애가 굳지…….”
예전에 ‘도망쳐!’에서 뵀던 그 두 분.
어느 출연자―성함이 진화였는데, 정신적으로는 진화하지 못했던 양반이다.―가 염병을 일으켜서 하차하고 인기가 시들해질 뻔했지만 두 분이 고생해서 어떻게든 이겨냈다는 후문이 있다.
이경우 선배님과―어떤 PD와 동명이인이다.― 류한호 선배님.
그때처럼 젠틀한 옷차림으로 머리도 단정한 이경우 선배님과 그때처럼 내일을 살 의욕이 남지 않아서 일단 오늘은 산다는 듯이 허름한 차림으로 손을 흔드는 류한호 선배님.
“형이랑은 방송 몇 개를 같이 하는 거야.”
“내가 너 아니면 밥을 못 먹고 산다는 증거지, 뭐.”
“뭘 또 그래. 누가 들으면 오해해, 동화 씨가 형 오해할라.”
“내 방송 중 8할이 너랑 하는 거고, 너는 한 4할이지 않나? 그 정도면 오해가 아니라 이해라고 봐야지.”
저런, 구구 계산으로도 방송을 두 배 많이 출연하시는구나.
선배님들의 방송 사정을 깊게 알고 싶지는 않아서 미리 집게를 잡고 고기를 올렸다.
“그래서, 어떻게 잘 지냈어, 동화야?”
“네, 방송도 하고 그렇게 지냈습니다. 선배님은…….”
“우리는, 고생 좀 했지.”
“웬 놈이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 해 갖고.”
세상에. 절대 방송용이 아니다.
“어우, 입 좀……. 근데 형은 알고 있었다며?”
“소문 구린 거야 누가 몰랐나. 장수하려면 소문만 들어도 반은 가지.”
“나는 왜 몰랐니.”
“너는 남 안 좋은 면을 아예 안 보잖아. 몇 번 말했지만, 넌 단명할 팔자야. 나중에 죽으면 묘비명으로 ‘시야가 좁았던 한 남자, 결국 갑니다.’ 이렇게 적혀 있을걸.”
묘비명으로 개그를 치다니, 방송용이…….
“그럼 장례식장에 형은 안 오겠네. 오는 사람들이 다 그 모양일 텐데.”
세상에, 자기 장례식으로.
“그래도 네 장례식인데, 상주라도 서야지.”
“상주 자리에서 사람들 벌레 보듯 할 거잖아. 그래도 와 주셨는데, 그건 안 되지.”
아무런 미소도 없이 툭툭 말을 뱉는 둘은 마치 일상적인 대화라도 하는 것만 같다.
그리고 이 두 분은 아직 모르는 한 가지 사실이 있는 것만 같다.
“그런데 인원 더 있는데 아직 안 왔네.”
“동화가 먼저 와 있었잖아, 네가 처음이었어?”
“네, 그리고 지금도 녹화 중입니다.”
지금 소형 카메라로, 이 식당에서 촬영이 진행 중이다.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머나, 우리 장례식 얘기 다 나갔겠네.”
한호 선배님이 아무 생각 없이 툭 말을 뱉고는 물을 한 잔 마셨다.
“…그게 문제가 아니지 않나?”
그러니까. 나는 이경우 선배님의 말에 격하게 공감하려다가 참았다.
멍하게 중얼거리던 선배님은 예의 바른 미소를 장착하고 자리에서 일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한 제작진에게 다가가 무언가 공손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충 부디 편집 좀, 이라는 소리.
선배님이 다시 자리에 앉고는 멋쩍게 웃었다. 참,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다.
“아직 다 안 와서 시작 안 한 줄.”
저런, 어떻게든 후배를 안심시키려는 표정이네.
“큰 카메라도 없고 말이야.”
짧게 한마디만 남기고는 여상스레 상추를 들어서 한 입에 먹는 한호 씨.
고기도 없이, 하물며 쌈장도 없이.
* * *
처음 계획을 들었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멤버. 현역 아이돌이 두 명이라니, 뭔가 심오하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스케줄 때문에!”
“어우,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래. 애초에 늦은 것도 아니야.”
오랜만에 만나는 준성 선배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한창 고기를 굽던 중인 식탁에 앉으며 내 쪽으로 손을 흔들어 주는 준성. 그러면서도 다른 두 선배에겐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차리는 걸 보니, 참 대단하다 싶다.
“아직 안 온 사람도 있어.”
“뒷담 중이야, 형?”
“어, 강희야, 들어오던 김에 가서 물 좀 떠오고.”
‘도망쳐!’ 출연진 세 명, 전직 ‘디텍션’ 출연자 한 명, 그리고 근본 없는 나.
멤버 면면을 보니 참 화려하다. 심지어 강희 씨도 전직 아이돌이잖아. 이게 대체 무슨…….
“어우, 형들이랑 도망쳐 말고도 얼굴 보는 건 좀 끔찍한데?”
“그러니까. PD님한테 너나 나 둘 중 하나는 빼라 그랬거든.”
한호 씨가 오이를 쌈장에 찍고 한입 먹었다.
“나 뺀다길래 그냥 입 닫았지. 어느새 이렇게 못난 어른으로 커 버렸어.”
“원수랑 같이 겸상도 할 줄 아는 나이긴 해.”
웃고 있던 때, 모든 멤버가 모이자 기다렸다는 듯이 장 PD님이 자리에 다가와 앉았다.
“여러분, 즐거우신가요.”
그게 무슨 회식 시간에 부장님이 말할 법한 말입니까. 장해진 팀장님이 들었으면 경기 일으키셨을 것 같은데.
“아, PD님. 이거 무슨 프로그램이에요, 근데?”
“형은, 그것도 모르고 출연 확정한 거야?”
“돈 벌어야지. 입에 풀칠도 좀 하고, 나중엔 나도 부귀영화 좀 누려봐야지 않겠냐.”
한호 선배가 자연스럽게 화두를 던졌다.
몰라서 저런다기보단, 1화 이전에 방송 컨셉이나 명확하게 하자는 소리겠지.
장 PD님도 그걸 아시기에.
“뭐, 단순하게 말하면 여러분들은 큰 문제를 해결하는 심부름꾼들이에요.”
“심부름꾼?”
“네. 인생이 끝까지 몰려서 일단 의뢰한 건 다 해결해 주는 사람들?”
뭐야, 그게. 나는 퀴즈 프로인 줄 알았는데. 말만 들으면 불법 용역이랑 다를 바가 없잖아.
“그래도 강력 범죄는 일으키지 않아요. 양심적인 도둑들 같은 거죠.”
저런, 불법 용역은 아니네. 아니지, 불법이긴 한 용역이구나.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중인지 출연진들 모두 멍하니 PD님을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헛소리를…….”
한호 선배님의 합리적인 의문.
“어쨌든, 오늘은 약간 몸풀기 시간이에요. 제가 문제를 하나 가져왔는데, 풀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의문을 가볍게 묵살해 버리는 장 PD님.
“양심적인 해결사 노릇을 하다 보면, 몸보단 머리 쓸 일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이 어딨습니까. 해결사면 떼인 돈 찾아주는 사람들인데, 그분들이 머리를 많이 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희도 머리를 간단하게 풀어 볼 건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잘 듣고 이유를 설명해 주세요. 첫 번째는 수리 영역.”
“…PD님은 무슨 그런 얘기를 삼겹살 쌈 싸 먹고 있는데 해요.”
준성이 억울한 눈초리로 양 볼에 가득 든 음식을 연신 씹어 댔다. 음, 선배답지 않은 귀여움이다.
그러나 그런 귀여움도 보이지 않는지, 장 PD님은 폭주 기관차처럼 문제를 쏟아냈다.
“신발이 서로 다른 색으로 네 켤레, 그리고 그 신발과 각각 색깔이 같은 가방이 네 개가 있습니다. 당신이 눈을 가리고 ‘모든’ 신발을 하나씩 한 개의 가방에 넣을 때, 네 개의 신발 중, 딱! 더도 덜도 말고 세 켤레만 같은 색깔의 가방에 들어갈 확률은 얼마일까요!”
준성이 힘겹게 꿀꺽, 목으로 밥을 넘기며 중얼거렸다.
“확률이 뭐 분의 뭐잖아. 어떻게 계산하는 거야, 동화야?”
저런, 확률과 통계 시간에 잠을 조금 주무셨나 봅니다. 별말 없이 귓속말로 답변해 드렸다.
“반반이지. 원래 세상 모든 일은 일어난다,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반반이거든.”
그러는 와중에도 현자 한호 선생님은 우문에 현답을 남겼다.
“아니, 그 당신이라는 양반은 왜 눈을 가리고 넣는담. 참 세상 어렵게 사네.”
“그러니까.”
나는 가만히 앉아서 쌈을 싸 입에 넣었다.
PD님이 주의한 사실을 잊지 말자,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고기에서 터져 나오는 맛을 즐기며 꾸역꾸역 집어삼켰다.
“우리 막내 의견이 궁금하네요!”
“맞아요. 우리 동화 후배가 또 한 머리 하거든요. 확률이 뭔지도 알고 있더라고.”
언제부턴가, 어딜 가든, 막내 입장에 처해 있어서 그럴까. 어째선지 자꾸 부둥부둥 아기 어르듯이 다루는 것만 같은 기분.
꿀꺽, 목에 남은 걸 마저 삼켰다.
“0입니다.”
“0?”
“예, 네 개 중 세 켤레만 같은 색 가방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 사람들, 아예 생각도 안 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다들 밥 먹느라 바빠서 문제도 제대로 안 들은 게 분명하다.
“어? 안 돼?”
다른 사람들처럼 열심히 밥을 먹고 있던 강희 선배님이 슬며시 반문했다.
“네.”
“왜?”
“…네?”
“왜 안 돼?”
이 사람, 정말 생각도 안 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철학적으로 모르는 걸 묻는 건 죄가 아니지만, 사유하지 않음은 죄가 될 수 있어서, 강희 선배는 죄인임이 분명하다.
나는 충격받은 표정으로 잠시 멍하게 강희 선배와 아이컨택을 이어 나갔다. 그 시선 사이에서 의문과 경악이 교차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제는 나머지 분들도 모두 강희 선배를 놀라운 눈초리로 쳐다보며 경악하고 있었다.
“너는, 직업 참 잘 골랐다, 강희야.”
그걸 지켜보던 이경우 선배님이 흐뭇하게 웃으면서 강희 선배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대견하게 큰 자식을 바라보는 아버님 같은 인자함이 묻어나왔다.
“머리 쓰는 직업 골랐으면, 지금쯤 많이 고생했겠는걸.”
“…왜요, 지금 저만 몰라요?”
아이컨택이 끝나고, 나의 눈은 저절로 PD님을 향했다. 이어지는, ‘말했잖아요.’라는 입 모양.
그리고 자연스레 고개가 원상 복구되며 식탁에 앉아서 모두 유사한 모습으로 볼에 고기를 넣고 씹고 있는 선배들의 얼굴이 눈에 들었다.
“이야, 벌써 첫 촬영이 기대되는데? 고요할 때 동화가 혼자서 무쌍극 찍는 거잖아!”
한껏 들뜬 경우 선배.
“그러게. 동화가 우리 멱살 잡고 끌어 주겠지. 이 방송 조금 꿀 빨 수 있을 듯?”
그저 어떻게든 편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한호 선배.
“우리 자랑스러운 후배.”
잘생긴 미소로 마치 자기가 업어 키운 자식 바라보듯 아련한 눈으로 말하는 준성 선배.
그러고는 형이라고 있는 인간들이 전부 다 흐뭇하게 미소 지으면서 내게 엄지를 치켜 올렸다.
그 눈에서 ‘너만 믿는다!’라는 확신이 들어차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안 되나?”
그러는 와중에도 여전히 왜 안 되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강희 선배.
생각하고 있으니까 죄가 없지만, 차라리 죄인이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실제 촬영 때는 긴장돼서 이렇게 못 할 것 같아요.”
“약한 소리! 우리는 너 그렇게 안 키웠다!”
안 키운 게 맞습니다, 전 상당 기간 혼자 컸거든요.
* * *
촬영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
준성 선배가 같은 차에 올라탔다. 이게 더 효율적이라 당연한 일인 듯싶다.
“엄청 오랜만이네, 우리 후배.”
“…네.”
“어우, 마음이 따수운 걸 알아도 아직 무서워.”
먼 과거, 나와 ‘사소한’ 갈등이 있었던 준성 선배라 그런지, 나한테 고맙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무서워하고 있다.
말마따나, 마음이 따스한 시골 할머니의 어디를 무서워하는지 모르겠다.
“TOT 선배님들은 다들 잘 지내시나요.”
“응, 지난번에 재계약하고, 나는 솔로 계약도 얹어서 했잖아? 그러고 그냥 순풍에 돛 단 듯 순항 중.”
“…네.”
무거운 침묵.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룹이 해체하면, 어떻게 하실 계획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와, 엄청 직설적인데?”
준성은 말과는 다르게 전혀 곤란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나를 들여다보면서 조심스레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을 뿐이었다.
“음… 글쎄, 예언이랑 상의해 보고 듀엣으로 남을 수도?”
그건, 내가 바라던 방향의 대답이 전혀 아니어서 그런지, 나는 별로 답할 말이 없었다.
“너는?”
눈이 마주친다.
언젠가와는 정반대로, 들여다보는 주체가 아니라 그 객체가 된 것만 같았다.
“너는 어쩌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