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45)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45화(213/343)
“저는, 해체 이후를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담백하게 진실을 입에 담았다. 말을 꾸미는 것보단 사실만 담거나 사실을 숨기는 게 더 익숙한 인간이라 어쩔 수가 없다.
“멤버들이랑, 너무 친해져서요.”
“확실히 정이 많다, 넌.”
원래 내가 정 없어 보인다는 말을 수시로 듣고 살던 인간인데, 예상했던 대로라는 뉘앙스라 조금 당황스럽다. 저 사람 눈엔 내가 그렇게 보이나 보다.
“그러고 보면 이든이도 그런 얘기 하더라고.”
“…그래요?”
“응. 장수할 대로 해서 한 사십 대까지는 하고 싶다고.”
“음, 예상보다 짧습니다.”
“더 하면 이제 그건 아이돌 그룹이라고 보긴 어렵지? 그냥 어떤 집단이잖아.”
준성 선배가 말하고 나서 헤실헤실 웃었다.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하다. 통계적으로 사십 대까지 아이돌 그룹이 유지되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니까.
“차라리 계모임을 하나 해. 이든이 말대로 사십까지 하고. 우리도 하나 할까, 지금 논의 중이거든.”
“…돈으로 묶인 관계가, 조금.”
“아니면 삼국지 나오는 유비처럼 저주라도 걸어. 한 날 한 시에 같이 죽는 걸로. 그럼 억지로라도 친구하겠지.”
“…이미.”
내가 말끝을 흐리자 이번에는 준성 선배가 박장대소했다.
“벌써, 저주는, 해 놨다고?”
“저주는 아니고, 깨지지 않을 약속.”
“그게 아니고, 네가 깨지지 않게 만들 약속인 거잖아.”
준성 선배는 한참을 박장대소하며 손뼉을 쳐댔다. 당연히 깨지지 않게 만들 약속인 게 사실이라 달리 할 말이 없어 가만히 있었다.
차차 웃음이 잦아들고 차 밖에 펼쳐진, 조명에 반짝이는 한강의 모습이 창문으로 차갑게 비쳐 왔다.
준성은 새삼 감상적인 기분이 들었는지 툭 한마디를 건넸다.
“넌, 더 성공하고 싶진 않아?”
“성공은 원래 같이 누릴 사람이 있을 때 의미 있다고 합니다.”
“어우, 어렵네. 철학과 아니랄까 봐.”
선배는 의자에 기대어 누워 차의 천장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래도, 생각해 봐. 나도 너 나이 때 그런 거 상상했거든.”
여전히 천장을 바라본 채였다.
“그룹 활동 말고도 뭘 할지. 팬분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 나란 인간이 어떻게 이미지화 되었으면 하는지. 그룹 활동이 전부는 아니라서, 개인 목표가 없으면 좀 지친다고 해야 하나. 나도 목표 많이 세웠었어.”
그렇게 말하는 준성 선배의 목소리엔 즐거움과 회한이 서려 있었다.
누구에게나 추억이 있을 테니, 나는 알지 못하는 어떤 순간이 한 폭의 그림처럼 머릿속에 미화되어 있을 테다.
실제와는 다른, 시간의 흐름 속에서 풍화되어 정확하진 않지만 그렇기에 의지할 수 있는 기억이.
“…많이 이뤘나요?”
조심스레 물었다.
앞으로 내가 걸을 길을 이미 걸어본 인간, 첫 번째 재계약을 누군가의 도움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무사히 넘긴 그룹의 리더.
여태껏 많은 조언을 구했지만, 단 한 번도 이 사람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물어본 적이 없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절반도 못 이룬 것 같은데.”
씩 웃는 입꼬리에서 황혼에 선 노인 같은 연륜이 묻어났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산전수전 다 겪은 일군 아이돌의 리더인가 보다.
“여쭤봐도 됩니까.”
“뭐야, 꼰대 얘기 듣는 취미가 있었구나, 우리 후배! 예전에는 사람을 말 한마디로 휘어잡더니, 귀여운 구석이 있어.”
꼰대는 누가 묻지 않아도 자기 과거를 늘어놓는 사람이지 않을까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어도 준성 선배는 나의 부탁을 분위기 속에서 읽어낸다. 곧 당찬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래, 오늘 내가 아이돌 생애에 있었던 이야기 다 해 준다!”
이날, 나는 준성의 아이돌 생활 이야기를 약 두 시간가량 들었다.
솔직히, 도움이 됐다기보단 한 인간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 * *
공식적으로 정해진 이름, ‘해결사무소’ 1화 촬영 시간. 출근과 동시에 카메라가 따라오며 촬영하고 있었다.
“해결사무소 막내 직원의 사생활 밀착 취재 중인데, 혹시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흥신소 출근은 처음이라 설레는 마음입니다.”
불법은 하지 않는다고 해도, 왠지 그 이름이 떳떳한 것 같지 않은 이름.
“흥신소가 아니라 해결사예요, 동화 씨.”
“…네.”
뒷골목의 불량배들이 본인들을 골목 질서 관리인이라 부른다고 해서 하는 일이 바뀌지는 않잖습니까.
“혹시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요?”
“전혀요.”
절대로 제가 지금 꽃무늬 하와이안 셔츠를 걸치고 여러 군데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상태라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이런 옷차림으로 흥신소가 아니라고 하는 게 웃겨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나는 미소 지으며 카메라맨님과 오순도순 대화하다, 마침내 촬영 세트장인 컨테이너 박스 앞에 도착했다.
음, 이 건물을 흥신소에 비유하면 업계 종사자분들이 불쾌할 것 같으니 취소해야겠네.
“여기가 앞으로 다닐 제 회사인가요?”
“네.”
“퇴사는 어디서 신청하면 되나요.”
되도록 빠르게 사표를 수리하고 싶은데.
카메라맨님께선 아무런 답도 없이 그저 웃음을 흘리실 뿐이었다. 한마디 더 하려 했을 때였다.
벌컥.
문이 열리고 경우 선배가 소리쳤다.
“어림없는 소리! 회사에 한 번 발 들였으면 못 나가는 거 알면서! 우리 막내!”
그거, 고용 비리잖아요, 사장님.
그 옆으로 고개가 빼꼼 튀어나오더니 준성 선배가 활짝 웃는 낯으로 쏘아댔다.
“맞아요! 직속 후배라고 하나 있는데 나가면 어떡해. 내 커피 타 줘야지!”
제 업무 계약에 커피 타기 없으면 안 할 겁니다, 망할 선배님.
“아니, 막내야, 꽃무늬 좀 촌스럽다.”
이번에는 반대편으로 빼꼼 고개가 튀어나오더니 한호 선배가 소리쳤다.
이게 무슨 케르베로스도 아니고, 몸 하나에 얼굴이 세 개라니. 신화 속 괴물 같다.
“…날라리같이 입으라고 하셨.”
“그게 네가 생각한 최대한의 날티라니. 우리 회사에 안 어울리는걸.”
세상에,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감사합니다. 퇴사하겠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경우 선배가 다리를 양쪽으로 확 벌렸다. 그 다리 사이로 강희 선배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이건, 대체, 무슨 생물이야. 나는 절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강희 선배는 그 상태로 꽃받침을 한 채 고개를 들어올렸다. 조금, 아주 조금, 꼴 보기 싫습니다, 선배님.
“에이, 내가 잘 가르칠게요. 너무 뭐라 하지 마, 한호 형.”
“그래! 퇴사할 생각도 하지 마. 명문대생 사기 취업시키려고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런 컨셉이구나. 나, 사기 취업 당한 인간이었어.
나는 허파 속에서부터 헛웃음이 차올라 몇 번 웃었다.
마주 웃던 네 명의 선배는 이제 비켜 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우 선배부터 등을 돌렸, …경우 선배부터?
와장창, 가장 앞에 있던 선배가 먼저 몸을 돌리자 이리저리 얽혀 있던 선배가 한 덩어리가 되어 무너져 내렸다.
“와아! 와아악! 잠깐! 무거워!”
강희 선배의 비명, 위에 누워서 편한지 경우 선배는 자연스레 두 손을 깍지 껴 머리를 받치며 편하게 휘파람을 불다 입을 열었다.
“우리 막내, 출근 환영.”
…대단해.
* * *
컨테이너에 들어가니 소파와 긴 탁자가 전부인 단출한 살림이 눈에 들어왔다.
만화책과 잡지, 그리고 야구 배트가 어우러진 인테리어가 유독 눈에 띄었다.
“취업 사기…….”
이런 회사에서 부르면 누가 출근할까. 바로 내가 출근했구나.
“얼른 앉아, 막내야. 우리 회사는 수평적이라 자리가 따로 없어요.”
“예산 부족 아닙니까.”
소파에 앉아 보니, 다행히 소파는 푹신하니 상태가 좋아 보였다.
“어허, 선배가 그러면 네―, 하고 고개 끄덕이는 거야.”
강희 선배님이 말하자, 준성 선배가 미간을 찌푸리며 냄새 난다는 듯이 코앞을 휘적였다.
“그리고, 우리 회사는 가족 같은 회사거든. 그래서 직급이 따로 없고, 호칭은 첫째부터 다섯째까지 형제처럼 쓰고 있어.”
세상에, 그게 무슨 쌍팔년도식 회사 경영인가.
“기획서엔 그런 말 없던데, 혹시.”
“응, 우리끼리 방금 정했어.”
그것도 제작진이 시킨 게 아니라 자기들이 스스로 그렇게 부르다니.
경우 선배의 말에 나는 경악하다가 주변을 돌아봤다.
“알겠습니다, 둘째 형.”
“적응 잘하네! 우리 막내가 잘 들어왔어. 명문대 출신 엘리트. 우리 회사 브레인!”
그러자 준성 선배가 내 옆자리에 앉으면서 친밀하게 어깨동무를 해 왔다. 거리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놀랐다.
“제 후배예요. 형들.”
“아니, 이제 우리 후배니까 쉿 하렴.”
준성 선배를 물 먹이고 자연스럽게 한호 선배가 앉자 다들 소파에 앉아 순간적으로 1초의 정적이 흘렀다.
“저흰, 무슨 일을 하는 회사입니까.”
“아주 좋은 질문이야. 타이밍도 예술이고.”
경우 선배가 자연스레 말을 이어받아 정적이 길어지지 않았다. 그러고는 품 안에서 편지 하나를 꺼냈다.
“해결.”
음, 어쩌라고요.
“오늘 아침에, 한 남자가 와서 우리에게 의뢰를 넣었단다.”
“3개월만이지.”
폐업해. 왜 문 열고 있는 건데.
게다가 자랑스럽게 말하는 한호 선배의 표정을 보고 있으려니 이 방송의 근본이 무엇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런 위험하고, 남들이 하길 꺼려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해결해 주지.”
그러니까 죽을 확률이 높은 심부름꾼이라는 소리다.
“오늘 의뢰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긴장감을 조성하듯 느릿하게 편지를 꺼내는 경우 선배. 손끝에서 종이 한 장이 튀어나왔다.
본인도 지금 와서 처음 읽는지 놀랍다는 듯이 동공을 크게 키웠다.
이내 당당하게 씨익 웃으며 새로 온 취업 사기 피해자에게 회사의 위대함을 알려 주겠다는 듯이 종이를 펼쳤다.
“고양이 찾기야. 세바스찬.”
“이야, 뭐야. 오늘 큰 건 들어왔네. 드디어 무파마 먹을 수 있는 거야? 진라면 순한 맛 말고? 지난번에는 할머니 흰머리 뽑기였잖아! 개당 십 원이라 너만 라면 먹었는데!”
한호 선배가 자연스럽게 환호하며 치고 들어왔다.
준성 선배도 분위기를 탔는지 강희 선배와 얼굴을 마주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어때, 한국대 졸업하고 하는 일이 고양이 찾기! 뿌듯함이 좀 샘솟지?”
준성 선배가 어깨동무한 팔에 힘을 주며 속삭였다.
나도 그에 호응해 입술로 호선을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바로 말했다.
“그래서 사표(辭表)는 어디서 수리하면 되나요?”
“사표는 죽고 나서 내는 법이지.”
“…안 아프게, 가능할까요?”
이 망할 프로그램. 대체 무슨 컨셉인지 이해가 안 된다.
* * *
그리고 다섯 시간 후, 우리는 대체 이 방송이 무슨 컨셉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잠시 모여 중얼거렸다.
“…이거, 예능 맞아?”
“아침엔 분명 예능이었는데. 이런 예능을 사람들이 본다고?”
분명히 처음 시작은 세바스찬 찾기였다. 의뢰인을 만나 고양이 사진까지 받았으니까.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나는 발밑에 놓인 시체―실제 사람이 분장한 상태다.―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형들은, 익숙한가요, 이런 일.”
당황스러운 상황에도 컨셉을 잊진 않았다.
“할머니 흰머리 뽑아 드렸다니까, 얘가 무슨 소릴.”
준성 선배도 똑같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이 예능의 방향성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