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46)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46화(214/343)
시체를 눈앞에 두고 나는 잠시 머릿속으로 오늘 있었던 일을 되짚어 봤다.
우선은, 처음으로.
우린 하나같이 양아치 같은 차림새로―그중에서 내가 가장 선해 보인다는 준성 선배의 피드백이 있었다. 여담이지만, 준성 선배는 문신 토시에 금시계, 금목걸이, 루즈핏 반팔을 입은 진짜배기 불량배 룩이다.―시내를 활보하다가 의뢰서에 적힌 주소를 찾았다.
“…와, 여기 뭐야, 엄청 오래된 건물인데.”
큰길에서 두 블록 정도 나가면 있는 허름한 상가. 도심의 전형적인 특성이다.
“아니, 그래도 이런 건물이 아직 남아 있네. 우리 어렸을 때나 볼 법한 기와집인데.”
한호 선배는 추억에 잠긴 눈으로 건물을 바라봤다. 확실히 뒷골목에 거대한 기와집이 아직 남아 있다는 건 믿기 힘든 일이다.
강희 선배가 조금은 성급하게 대문을 두드렸는데도 별다른 반응이 없자, 경우 선배가 소리쳤다.
“계세요?”
다시 정적. 우리는 눈을 맞추고 동시에 소리 질렀다.
“계세요!”
그러자 끼익―, 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
“누구?”
“고양이 찾아 드리러 왔어요, 어르신.”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경우 선배의 옷차림이 소위 말하는 일수꾼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게 문제다.
“아! 아아! 그 한량들이구나. 전에 김 할매 머리 뽑아 주고 용돈 타 갔다며?”
오, 우리끼리 만든 설정을 대사에 반영하다니, 이 방송, 리얼하다.
“저희는 의뢰금이라고 부른답니다, 어르신.”
젠틀한 경우 씨.
“그걸 의뢰금이라 부르면 저희 급이 너무 낮아 보이잖아요.”
강희 선배가 깔끔하게 태클을 걸었다.
“…이미, 충분히.”
“사실 네 말 대로긴 해, 막내야.”
나와 준성 선배가 짧은 만담을 마무리 지었다.
“어여, 들어와.”
“아니, 어르신, 여긴 뭐, 어느 시대 골동품 취급해요?”
뒤따라 들어가자, 마당 곳곳에 세워진 기묘한 모양의 비석들.
한호 선배의 질문처럼, 대체 어느 시대 물건인지 감도 오지 않았다.
“모르지, 어느 시댄지. 그냥 흘러오는 대로 사고, 나가는 대로 팔고, 그러다 보니까.”
나는 마당 말고 주변을 둘러봤다. 건물 안에 들어가기까지 도심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예상보다 엄청 넓다. 원래 기와집이 여러 건물이 있던가?”
“안채나 사랑채, 이런 걸로 이뤄져 있지.”
최고령답게 한호 씨가 나서서 설명을 시작했다.
“구조는 집안 사정 따라 조금씩 달라도, 잘사는 양반들은 다 컸어. 여기 지나면 이제 안마당이네.”
“어우, 잘 아네. 자네는 나이가 몇인가?”
“마흔일곱입니다, 어르신.”
“내 손자랑 띠동갑이구만?”
어르신을 따라 안채에 들어가자, 밖과 달리 몹시 현대적으로 꾸며진 내부에, 수많은 그릇, 토기, 목걸이 같은 것들이 전시된 공간이 펼쳐졌다.
그 한편에는 식탁과 찻잔이 놓인 고즈넉한 접객실이 있었다.
“어여 앉아. 내가 고양이 사진 보여 줄 테니까.”
할머니는 찻잔과 주전자를 건네고 뒤를 돌아 서랍장을 몇 번 건드렸다.
“와, 저거 봐라. 저런 건 얼마 할까.”
“형, 늙어서 저런 거 사 모으기 전에 결혼부터 해.”
“둘째야, 비혼주의자 무시해?”
“형은 비혼주의가 아니라 미혼이잖아, 그냥. 작년에는 나한테 선 좀 봐 달라고 그렇게 말했으면서.”
“올해 들어서 포기했다. 나는 결혼할 팔자가 아니야.”
첫째의 자기비하가 펼쳐질 때, 갑작스레 할머니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우! 손자새끼, 들어오면 내가 때려 패든가 해야지.”
“왜, 왜 그러세요, 어르신?”
가장 심약한지 강희 선배가 마시던 차를 질질 흘리며 켁켁 대다가 물었다.
‘쟤는…, 내가 누차 입 간수 제대로 하랬더니.’라는 악담이 한호 선배의 입안에서 터져 나왔지만, 다들 웃음을 꾹 눌러 참았다.
“아니, 얘가 내 서랍장 비밀번호를 자꾸 자기 멋대로 바꾸잖니, 성질나게.”
저런, 사이가 안 좋으신가 보네.
“이것 좀 풀어 봐 봐. 애가 이렇게 힌트만 덜렁 던져 주는데 결국 못 풀어서 집 들어오면 멱살 잡고 풀라고 협박해야 풀어주거든. 고양이 사진이 이 안에 있는데, 참.”
“막내야!”
“네?”
“머리 좀 써라!”
“사표…는 안 되겠죠.”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장 앞에 섰다. 그리고 곧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향기야. 녹슨 쇠를 만지고 나면 손에서 날 법한 향기다.
“혹시, 이거 녹슬었나요, 어르신?”
“응? 아니. 산 지 얼마 안 됐어.”
* * *
#해결사무소 지동화 개인 인터뷰
‘비린내, 녹슨 쇠를 만지고 나면 손에서 날 법한 향기가 났습니다. 그래서, 파상풍 주사를 언제 맞았나, 잠시 생각했고.’
지동화는 다시 생각하니 조금 불쾌한지 코를 만지작댔다.
‘파상풍 주사요?’
‘네. 죽으면 사표 수리 해 준다고는 하지만, 아직 젊어서.’
말을 잠시 멈춘 지동화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웃었다.
‘피 냄새 같기도 했고요.’
* * *
나는 불쾌한 향기에 미간을 찌푸리며 할머니가 건네주는 종이를 공손하게 받았다.
“형들, 같이 풀어야죠.”
“어우, 우리는 그런 거 못 한다, 얘!”
강희 선배가 얄밉게 소리치자 옆에 있던 한호 선배가 재빨리 목젖을 후려쳤다.
거친 기침 사이로 경우 선배와 준성 선배가 쌍수를 들고 환호했다.
“줘 봐, 우리 준성이도 대졸이다?”
“물론 한국대는 아니지만!”
“준성이 과도 경쟁률 빡셌어!”
“실용음악과고, 연예인 전형이었지만!”
“연예인 전형? 넷째 형은 연예인이었나요.”
“아, 맞다. 컨셉이… 그런 걸로 하자. 몰락 아이돌.”
나는 탁자 위에 종이를 올렸다. 거기엔 짧은 글이 실려 있었다.
―힌트 : 26=47, 4를 제외한 숫자만 옮겨서 옳게 바꾸시오.
“이 싸가지 없는, 뭔 놈의 손자가 할머니한테…….”
“얘도 참 제정신인 애는 아니네. 우리 회사에 취직시켜서 내내 갈구자, 첫째 형.”
“음, 혹시 제가 합격한 사유가 그건가요?”
“아우, 아니야. 넌 준성이가 커피 탈 사람 뽑자고 해서 합격한 거야.”
“…더 비참하네요.”
어쨌든, 한호 선배의 말마따나, 아무리 예능이라지만 제정신인 손자는 아닌 것 같다. 할머니가 풀 수 있든 없든, 재수 없게 저게 뭐 하는 짓이람.
어쨌든 정답은 ‘7의 제곱=49’니까, 비밀번호도 7249인가 보다.
4를 고정한 건 순서를 명확히 하려고 적어 둔 단서 조항이니, 손자가 예의는 없어도 아예 못 열게 만들고 싶은 건 또 아닌가 보다.
그리고 그때 스쳐 지나가는 PD님의 당부. ‘절대 모른 척해 주세요.’
나는 말없이 잠시 가만히 문제를 보는 척했다.
“아니, 얘는 뭐 이런 걸로 힌트를 줘. 우리 집 주소는? 뭐 이런 거면 되잖아.”
“형들, 전 실음과라 잠시 빠질게요.”
“저는 고졸이라.”
“그럼 나는 중졸이라.”
“나도 고졸.”
“안타깝게도, 우리 막내가 풀어야겠네!”
“…네?”
이 쓰레기 같은 형들이. 진짜였으면 전부 멱살 잡았다. 업무 과다잖아.
심지어 아무리 봐도 한호 선배와 준성 선배는 자기들도 이미 풀었는데 저러는 것 같다. 분량을 챙겨 주는 건지, 컨셉을 지키려는 건지, 이도 저도 아니면 그저 귀찮은 건지.
“7의 제곱은 49라고 바꾸면 됩니다.”
“9는 없잖아?”
“네?”
강희 선배의 말에 무의식적으로 반문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전에 한 번 경험한 덕분에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가르쳐 줄 수 있었다.
“6을 뒤집으면 됩니다. 옮기라는 게, 돌리지 말라는 뜻은 아니니까.”
“…와, 와! 그러네! 우리 막내가 진짜! 대졸은 다르다더니!”
대졸 아니어도 많이들 푸실 수 있는……. 하물며 형 옆에 계신 다른 두 사람도 푼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두들 하나같이 나를 띄워주려 환호하며 몸을 흔들어 댔다. 막내 자리, 더럽게 마음에 안 들어.
“총각, 비밀번호 알아낸 거야?”
“네, 지금 열어 드릴게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칸을 돌려 7249에 맞췄다.
뒤에서 ‘이랬는데 틀리면 우리 다 부끄러워서 어째?’라는 말이 짧게 흘러나왔지만, 그 말에 답하듯 달칵하며 자물쇠가 풀렸다.
환호성과 갑갑한 속이 다 풀렸다는 듯이 안도의 숨을 내뱉는 할머니.
“그런데, 할머니. 손자분은 서른다섯이나 먹고 저런 짓을 아직도 해요?”
“그래. 내가 정신 좀 차리라고 몇 번을 말해도 듣는 시늉도 안 한다.”
“쫓아내 버리죠. 알아서 먹고살 나이인데.”
“그래도 어찌 그래. 애가 불쌍한 애야. 해 달라고 하면 속은 뭐라고 해도, 몸이 먼저 움직인다.”
경우 선배는 그 심정이 이해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게도 나는 자립심 정도는 길러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뭐.
나는 잡스러운 생각을 하며 캐비닛을 당겼다.
멈칫. 짙어지는 향기. 불쾌한 시야.
“…넷째 형.”
“왜, 막냉이.”
준성 선배가 내 부름에 자리에서 일어나 캐비닛을 들여다봤다.
하나, 둘, 숫자를 셀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준성 선배가 비명을 질렀다.
“뭔데! 왜!”
우당탕, 뒤로 넘어진 준성 선배를 붙잡으려다 체격 차이 때문인지 나까지 넘어지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기와집 안은 정적으로 둘러싸였다.
나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쥐 사체가 있습니다. 캐비닛에.”
모형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별로 놀라진 않았지만, 준성 선배에겐 아니었나 보다. 그도 그럴 게, 쥐가 대못에 박힌 모형이라 놀랄 수밖에 없나 보다.
준성 선배는 놀란 가슴을 부여잡으며 제자리에서 몇 번 뒹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준성 선배의 손을 잡아줄 때, 문득 할머니의 심각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놀라지 않고 그저 심각하게.
* * *
#해결사무소.
지동화와 준성의 인터뷰 장면이 교차 편집 되어 있다.
‘놀라지 않는 게 수상하시더라고요.’
‘놀라지 않는 건, 이상하잖아요?’
그리고 다시 지동화와 준성의 말이 차례대로 나왔다,
‘할머니께서 놀란 기색이 전혀 없으셨습니다.’
‘동화가 하나도 안 놀라고 침착하게 저를 불렀다니까요.’
‘그때 뭘까, 잠시 이상한 기분이었습니다.’
‘동화 얘는 뭘까. 그런 생각을 했죠.’
* * *
상황이 정리되고 할머니가 급히 봉투에 쥐 시체를 담아 치우고는 손을 씻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어우, 손자가 장난을 쳤나 봐.”
“이런 일이 자주 있으신가요.”
나는 곧바로 방금 전 표정에서 느꼈던 의문을 입에 담았다.
“…하아, 부끄럽네. 가끔. 가끔 저래.”
예의를 중시하는 경우 선배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리를 들은 철학자 같은 표정이었다.
한호 선배는 혀를 차며 ‘썩을 놈.’이라고 중얼거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준성 선배는 내 어깨에 고개를 파묻으며 ‘너, 너, 일부러, 일부러 그랬어, 막내야?’라는 외마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형과 추억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라고 짧게 속삭여 줬다. 류이든에게 배운 대처법이다.
“어쨌든, 여기 사진.”
“아, 얘가 우리가 찾을 세바스찬이에요?”
경우 선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진을 건네받았다.
흰 고양이가 곤히 자고 있는, 아주 귀여운 사진이다.
“어디서 마지막으로 보셨어요, 어르신?”
“나야 집에서 봤지. 세바스찬이 가끔 외출 나가기도 하거든. 그런데, 하루가 지났는데 안 들어온 건 오늘이 처음이라……. 직접 찾아보려고 해도 늙어서 그런지 무릎이 영 성치가 않아.”
“아아…….”
그러니까 아무런 증거도 없이 고양이를 찾아야 한다는 거네.
“그나마 자주 놀러 가는 곳은 몇 군데 아는데, 좀 짚어줄까? 나도 찾아는 봤어도 여럿이 보면 또 다를 테니까.”
…여기까지 생각을 떠올린 나는 눈을 뜨고 발치에 있는 너무 리얼한 시체를 다시 한번 쳐다봤다.
할머니가 짚어준 곳 중 첫 번째 장소, 외딴 곳에 있는 공장에 들어갔다가 발견한 것.
우리는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여기까지 들어올 때만 해도 즐거웠는데, 힌트와 열쇠를 발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세바스찬을 맞이할 준비를 했던 우리는 웬 시체를 맞닥뜨리고 말았다.
“…살인이네?”
“살인이지. 등에 칼 박힌 거 봐요.”
“경우야, 어떡해? 신고해?”
평소라면 당연히 한호 선배 말대로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고 신고부터 했겠지만, 이건 예능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주 당연히 무슨 단서가 남겨져 있겠지.
그래.
“저기, 녹음기가 놓여 있습니다.”
저런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