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48)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48화(216/343)
‘있던 시체가 사라졌다 → 누군가가 치웠다 → 누가?’라는 당연한 사고의 흐름.
모든 멤버가 굳어서 멍해졌다가 다시 돌아온 2층 거실. 모두 말없이 있던 중, 준성 선배가 두 손에 고개를 파묻었다.
“아, 예능 아니고 스릴러잖아…….”
아, 놀리고 싶은 마음은 만만이지만 막내라서 말 못 하는 게 한이다.
경우 선배가 준성 선배를 귀엽다는 듯 바라보다가 포문을 열었다.
“그 사촌 놈이 들어와서 치운 거야? 왜?”
비합리적인 선택이긴 하다.
“그러게, 나였으면 우리부터 치웠지.”
“하지 마요, 저, 막 심장이 아파요…….”
“괜찮아, 죽기밖에 더 하겠니, 준성아.”
“그것보다 더한 게 없으니까, 당연한 거잖아요.”
“살면서 다들 한 번쯤은 죽어.”
어차피 죽는 게 예정된 인생, 참 유난이라는 말에 준성 선배뿐만 아니라 다른 두 선배도 경악한 듯 한호 선배를 쳐다봤다.
철학적으로는 옳은 측면이 있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다.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의미 없이 두렵게만 만들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요.”
“그러면 하지 말아 주세요, 동화 형! 제가 이렇게 부탁할게요!”
우리의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워서 의지하고 싶은 형, 준성 선배가 대뜸 무릎을 꿇고 내 바짓가랑이를 부여잡았다.
“지금만으로도 벅차요!”
“강희야, 쟤 처리해라. 감히 막내 입을 막아?”
“네, 첫째 형.”
“우리 넷째도 좀 아껴 줘, 형.”
“막내 들어오기 전에 아껴 줬으면 됐지, 뭐.”
준성 선배가 자연스레 입이 막히고, 나는 차근차근 설명했다.
“세 가지 정도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첫째, 녹음 파일.
피해자가 녹음했다고 본다면, 녹음이 완료된 상태로 있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 차라리 범인이 녹음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인데, 그럼 시체 옆에 있는 게 납득이 안 된다.
둘째, 시체를 먼저 치우는 건 한호 선배 말대로 이상하다. 그 시간에 도망치거나 우리를 처리하는 게 빠르다.
그리고 셋째.
“시체가 사라졌는데, 핏자국도 없었습니다.”
너무 이상하다. 몰입감을 중시하는 이 프로그램의 특성은 그런 의심을 확신으로 이끌었다. 즉.
“…결벽증이구나!”
강희 선배.
“그건, 예상 못 했는데, 결벽증 환자가 살던 방이라기엔, 여기, 조금 더럽지 않습니까.”
“아, 그렇네.”
자기 머리를 톡톡 치면서 ‘그래도 대견했어.’라고 중얼거리는 모습이, 참 멋있다. 자존감.
“그럼 결론은 뭔데?”
“그 시체가, 할머님 사촌인가 봅니다.”
“…웜마, 그렇네.”
맏형 라인 두 명이 곧바로 이해하고는 서로를 끌어안았다.
우리의 기나긴 수식어를 가진 준성 선배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정확히는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는 표정으로 내 어깨에 고개를 누였다.
“동화야.”
“네, 형.”
“그거, 사실 중요한 건 아니네.”
“그렇습니다. 범인이 치웠든, 그 시체가 범인이든, 우리랑 같이 이 건물에 있다는 건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구나.”
잠시 침묵.
“동화야.”
“네, 형.”
“살려 줘.”
“그건 힘들어도, 죽을 때 같이 죽어 드릴 수는 있어요.”
“감동이야.”
그걸 말할 때조차도 표정이 그러면, 누구도 감동받았다고 믿을 것 같지는 않다.
“문은?”
“내려갔을 때 살펴봤는데, 기계장치가 있더라고요.”
“아, 그놈, 잡히면…, 아니야, 잡히지 마…, 그냥 우리 내보내만 줘…….”
도박장에서 전 재산을 날린 사람보다도 무감각하고 공허해 보이는 준성 선배의 표정을 보니 조금 흐뭇한 심정이다.
“준성이 형, 그래도 다행인 점도 있어요. 그 시체가 범인이라면, 1층에 다른 길이 존재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외부에서 들어와 치운 거라면, 어디에 어떤 통로가 있는지 몰라 건들기 애매하지만, 내부에서 사라진 거라면 1층으로 범위가 한정된다.
“…그게, 다행이야?”
“그럼! 다행이지!”
박수 소리가 짝 울렸다. 경우 선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내려가서 뒤져 보자. 비밀 공간이 하나 있다는 거네. 어으, 쓰레기 같은 놈. 보이기만 해 봐.”
“둘째야, 우리 조직 전투력 최약체잖아, 너.”
“…조직이 맞아요?”
“어머, 사내 비밀인데 동화가 알아버렸네. 어쨌든 일어날까?”
능청스러운 경우 선배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준성 선배를 다독이며 끌어올렸다.
힘내세요, 가장 긴 수식어의 선배.
* * *
1층으로 가는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우리는 갑작스레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서로 속삭이면서.
“아까, 2층에서 찾은 일기장이야, 이거.”
“…왜 지금?”
“가는 길, 심심하잖니.”
“…중의적이네요.”
경우 선배의 말에 다시 웃음이 터질 뻔했다.
“얘, 오늘 아침 일기에, 쥐를 잡았다고 써놨더라. 어렸을 때부터 자기를 괴롭게 했던, 쥐를 죽였다고.”
“…그것도, 중의적이네요.”
그리고 다시 웃음기가 싹 가셨다.
아무리 봐도 쥐가 사람을 의미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아무리 봐도 사람 잡았다는 소리 같아.”
“더 놀라운 건, 그런 일기가 총 세 장이나 있었다는 거지.”
“그래서 할머니도 익숙하셨나 보네요.”
그때마다 서랍장에 죽은 쥐가 들어 있었을 테니까.
“무슨 억하심정이 있길래 사람을 세 명이나 죽여?”
“미드 보니까 억하심정 없이 죽이기도 하던데요, 형?”
“강희야, 미드 좀 끊어. 그런 거 보니까 한국 정서랑 네가 안 맞는 거잖아.”
그리고 도착한 1층. 모두들 귓속말조차 멈추고 숨을 죽였다.
뒤에서 준성 선배가 어깨에 쥔 손에 힘을 주며 바들거렸다.
“이 사람은 억하심정이 있는 건 확실하잖아요.”
떨던 손이 점차 안정되며 조금은 감정을 되찾았는지 안도 섞인 숨을 뱉어 냈다.
“우, 우린 안심하면 되는 거지? 아무 동기도 없잖아.”
대화를 가만히 듣던 한호 선배가 냉소적으로 툭 던졌다.
“우리가 여기 들어오면서 만들어 줬지.”
옳은 소리다.
“…첫째 형.”
“자, 비밀통로 찾자. 그 녀석이 어디로 사라졌을지.”
준성 선배의 애달픈 부름을 무시하며 경우 선배가 상황을 지시했다.
우리는 서로 떨어져 1층 곳곳을 살펴보다가, 겁에 떨던 준성 선배가 조심스레 나를 불렀다.
“막냉이!”
속삭이듯 소리치는 소리에 가 봤다.
그러자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다른 사람들도 근처로 모였다.
“여기, 여기 이상해.”
“…형, 어휘력이 상당히.”
“무서운데 어떡해.”
유아 퇴행의 전조를 보이는 준성 선배의 손가락 끝을 따라 내려간 시선. 그곳엔 바닥에 무언가 쓸린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있었다.
그 흔적의 종착지는 한 생산 라인.
“어, 야, 이거 밀리나 본데?”
덩치가 큰 강희 선배가 자연스레 힘을 줘 밀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탄식 소리가 연신 울렸다.
한호 선배가 생산라인 중간을 구석구석 살펴보다가, 아래쪽을 만지작거렸다.
“아니, 이거 뭐야.”
툭, 무언가 떨어져 내리자, 그 속에 작은 키보드가 드러났다.
나는 자연스레 몸을 눕혀 키보드를 살펴봤다. 영어 자판인데, 몇 글자가 빠져 있었다.
일렬로 나열된 키보드는 ‘a most uper’라고 적혀 있었다. 키보드 사이가 말 그대로 띄어쓰기 하듯이 띄어져 있어 모두 그렇게 읽고 의아해했다.
“…가장 높은?”
강희 선배가 멍하니 중얼거리자, 겁은 먹었어도 할 말은 하는 가장 믿음직한 선배, 준성이 형이 반문했다.
“어법이 하나도 안 맞는데?”
“P가 하나 더 있어야 하잖아. U, P, P, E, R 아냐?”
“어? 나 이거 안다. 최상급은 EST 아니야?”
“교육을 조금, 덜 받으셨나?”
“…형, 형이랑 내가 교육으로 뭐라 하면 안 돼. 동화가 가만히 있는데.”
“맞는 말이지.”
모든 선배들이 각자 저마다 한마디씩 덧붙였다.
“그럼 실수라 치면, 제일 위층으로 가야 해?”
아닐 것이다. 아마도 저건 무언가를 입력하라는 뜻이다.
게다가 저렇게 특정 영문자들만 남겨 뒀다는 건, 저것들이 한 번씩은 입력될 거라고 추정하는 게 옳아 보인다.
그러니까, 애너그램처럼.
“쥐…….”
“자, 귀 열어라, 우리 신입이 설명하신다.”
경우 선배가 시선을 모았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방송 진행에 있어서 눈치가 얼마나 재빠른지 모른다.
“저 글자들로 만들 수 있는 단어가 있습니다. 쥐랑 관련된 단어.”
나는 쭈그려 앉아 한 글자씩 읽으며 생산 라인 밑에 달린 키보드를 눌렀다.
그리고 마지막 글자를 눌렀을 때, ‘Mousetrap(쥐덫)’이라는 단어가 완성된 순간.
거의 아무런 소리도 없이 생산라인 중 중간부가 빠져나왔다. 놀라워, 어떻게 설계했길래 이렇게 소음이 적지.
마침내 그 밑에 있는 계단의 모습이 드러날 때 모두들 입을 틀어막았다.
합리적으로 추측할 수 있었다. 이 안에 누가 있을지를.
“와, 이러니까 2층에서 몰랐지.”
그러나 눈치 없이 입을 연 강희 선배는 옆에 있던 경우 선배의 응징을 받아내야만 했다.
* * *
묘한 분위기, 그러나 계단 사이사이, 피가 튄 적이 있는지 조금 검붉었다.
“막내야, 이건 튄 게 아니라 질질 샌 거야. 끌고 내려갔다고 봐야지.”
기묘한, 노랑과 주황, 빨강 중 무엇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빛이 내려앉은 복도는 퀴퀴했다.
마치 이곳에 끌려왔을 피해자들에게, 당신들 같은 사람은 이런 장소가 제격이라고 알려주는 것만 같은 모양새다.
“장소를, 완전히 구분했구나. 시체 처리하는 곳이랑 생활하는 곳이랑.”
“하긴 나 같아도, 아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내가. 나 같으면 안 되지.”
복도는 총 네 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우리는 첫 번째 방에 발을 들였다.
“…하, 보자마자 욕할 뻔했네.”
세 개의 철제 상자. 흘러나온 피와 삐져나온 손. 그로테스크함의 정점을 찍은 비주얼.
비위가 약한지 준성 선배가 헛구역질을 했다.
“…그 시체가 범인 맞았네. 신입 사원 하나는 잘 뽑았어.”
“상자 앞에, 이름표가 있습니다.”
“어우, 제대로 미쳤네.”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비주얼.
선뜻 손이 가지 않았지만, 나는 근처를 뒤적였다. 이러라고 있는 프로그램이잖아.
“한동안 고기 못 먹으면 제작진 손배 고소 가능해?”
“계약서 지장 찍었다고, 우리.”
“…부당 계약! 부당 계약이잖아.”
“형들이 그런 말씀을 하시면, 제가 퇴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기어코 피 묻은 노트를 하나 발견해 손에 잡았다.
촤라락, 펼쳐지는 페이지. 생쥐 관찰 일지라는 기괴한 제목이 달려 있었다.
“생쥐는, 친구가 무엇인지 모른다. 자신이 불리해진다고 생각할 때면, 모든 잘못을 친구였던 생쥐에게 떠넘길 수 있다. 실제로 어떤 생쥐는 자신이 다른 생쥐를 죽이지 않았어도 물어 뜯겨 죽었다.”
“뭐라는 거야, 미친 손자놈아…….”
“생쥐들은, 관용이 무엇인지 모른다. 한 생쥐의 잘못은 그 생쥐 가족 모두를 박해하는 충분한 원인이 된다. 실제로 어떤 생쥐는 태어날 때부터 물어뜯길 낙인이 찍혀 있곤 한다.”
굳은 시선, 그로테스크한 공간. 사람을 생쥐로 보고 있는 문장.
내가 다른 사람을 동물로 볼 때와는 그 감각이 지나치게 달라서 나까지 표정을 찌푸리고 말았다.
“생쥐는, 용서가 무엇인지 모른다. 실제로 어떤 생쥐는 저지르지 않은 죄를 용서받지 못했고, 그 아들 생쥐는 다른 생쥐를 용서하지 못했다.”
그리고 짧은 글의 마지막 한 줄.
“그래서 생쥐는 쥐덫을 사용할 줄 안다.”
나는 마저 종이를 넘기며 빠르게 읽어 내렸다.
한 장 한 장 종이가 넘어갈 때마다 모두의 표정이 썩어 문드러졌다.
끼익, 소리를 내는 조명이 배경 음악처럼 내 목소리에 얹혔다. 음산하고, 불쾌한 공기가 목덜미를 핥아 내렸다.
“…결론, 생쥐는 모두 죽었거나 죽을 예정이다.”
“그래서, 무슨 소리야.”
노트를 덮고 나는 고개를 들었다.
모두와 마주친 눈빛이 부디 믿음직한 막내였으면 한다.
“노트에 적힌 걸 정리해 보면, 손자분 부모님이 누명 비슷한 걸 썼나 봅니다. 그래서, 원한이 남아 죽였고.”
모든 생쥐는 죽을 예정이라는 말.
“그리고, 이 사람, 자기도 생쥐라고 지칭하고 있으니까, 아마도.”
자살할 예정인 것 같습니다.
짧은 설명을 마치고, 입안이 텁텁해지는 기분이다. 세상에, 이렇게 몰입할 줄은 몰랐는데.
일단 노트를 내려뒀다. 대충, 여기서 확인해야 할 사항은 다 확인한 것 같다.
“그럼, 나갈까요?”
“그, 그래, 그런데, 이야, 이게, 발이, 안, 떨어지네.”
강희 선배가 문득 그렇게 말했다.
“괜찮을 겁니다.”
일단 내가 먼저 나가서 안전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면 되지 않을까.
발을 옮겨 문밖에 나갔을 때였다.
턱. 누군가 내 손을 부여잡곤 당겼다.
내 뒤에서 비명이 울렸지만, 이내 문이 닫히고 철컥, 잠금장치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항했다가 다칠까 나는 얌전히 잡힌 채로 얼굴을 확인했다.
생쥐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 어우, 징그러워라.
“안 괜찮았네?”
음, 마주치는 건 예상했지만, 독대할 줄은 몰랐는데.
나는 저쪽에서 먼저 말을 걸었으니 어떻게 대해야 하나 잠시 고심했다. 피해자니까, 비명 질러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