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49)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49화(217/343)
“안 괜찮았네?”
범죄자분이 친절하게 내게 건넨 말에 나는 일단 손을 들어 올렸다.
얌전히 따르겠다는 제스처, 복종의 자세다.
“너희, 누구야?”
생쥐 가면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조금 섬뜩했다.
한 손에 들고 있는 칼은 모형인 걸 아는데도 날카로워 보였다.
“고양이 찾으러 왔습니다. 세바스찬이라고, 흰 털이 매력적인 고양이.”
“고양이? 그런 건…, 어쨌든 뒤돌아.”
네, 목숨을 남한테 맡기는 건 처음이라 떨리네요.
곧장 뒤로 돌았다.
“앞으로.”
“네.”
터벅터벅, 첫 방을 제외하고 나머지 방은 전부 숫자 키패드가 달린 방들.
저런, 어쩐담. 우리 형들이 잘 해낼 수 있기를.
나는 계속해서 걸어 들어가, 가장 안쪽 방 앞에 섰다. 문에는 역시 퀴즈가 적혀 있다.
‘1320+250=1610, 2310+500=410, 1955+2335=?’이라는 팻말까지 보고 나니 확신이 들었다.
이 사람, 병적으로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
“풀어 봐.”
“풀고 입력합니까?”
“그래.”
입력하라는 허락을 듣고 번호를 눌렀다.
1930.
번호를 누르는 손끝이 끈적해서 자세히 보니. 세상에, 여기도 피가 있네.
쥐덫이면 쥐덫답게 최대한 깔끔하게 쥐를 잡아야지, 이렇게 피를 튀기다니, 쥐덫으로서 실격이다.
“벌써 풀었어……?”
열리는 문을 보며 쥐 가면을 쓴, 정신적 이상 증세를 보이는, 할머니 손자분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60진법 힌트 하나, 24진법 힌트 하나.
친절하게 하나씩 힌트로 줬으면서 왜 일찍 풀었냐고 탓하는 듯한 말씀을 하시면 서운합니다.
돌아보면, 쥐 가면 너머로 당황한 게 티 나는 모습.
뭔가 여기서 시간을 좀 더 끌어야 한다는 의무감마저 느껴지는 걸 보면 시나리오가 존재하긴 하나 보다.
“들어가.”
“네.”
드디어 결단을 내린 손자분이 다시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언제 당황했냐는 듯이 시침을 떼는 게 순간 친근감마저 느낄 뻔했다.
방을 조심스레 열었다.
드러난 내부, 첫인상으로는 대체 뭐 하는 곳인지 알 수 없었다.
거대한 유리가 방을 두 부분으로 쪼개고, 문과 가까운 쪽엔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반대로, 유리 너머에는 한 벽 전체에 거대한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손자분은 방을 둘러보던 내 등을 밀었다.
타인의 손을 옷 너머로 느끼는 건,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으레 불쾌감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그대로 떠밀려 유리 너머로 걸음을 옮겼다.
마침내 내가 완전히 발을 들였을 때, 유리문이 닫히며 자물쇠를 채우는 소리가 들렸다.
* * *
#인터뷰 컷
‘막내가, 동화가 사라진 거예요.’
준성이 절망스러운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생각해 보면 먼저 나간 사람이 붙잡히는 식인 거잖아요. 내가 왜 먼저 안 나갔을까, 미안하고, 또 떨고 있으면 어떡하나…….’
그러던 준성은 고개를 푹 숙였다.
‘동화가 강해 보이긴 해도, 혹시 모르잖아요. 극단적인 상황이니까.’
그리고 문득 그는 물었다.
‘어땠대요, 우리 막내?’
* * *
아, 조금 재밌다. 이런 건 처음이라.
“너희들 때문에 계획이 다 어그러졌잖아.”
할머님이 어그러지길 바라셨나 봐요. 그래서 여길 강력히 추천해 주신 건 아닐까요.
“내가, 내가, 다 끝냈는데,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묘하게 불안감을 조성한다.
특히 눈.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면 무엇을 생각하는지 제대로 알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벽을 툭툭 두드려 봤다. 어떻게든 빠져 나가야 촬영이 끝날 텐데, 조건이 뭘까.
“여긴, 뭐 하는 곳인가요.”
“쥐덫.”
손자분은 다 아는 것을 위엄 있는 척 말하는 재주가 있다.
웬 초등학생이 ‘물은 차가워! 엄청난 발견!’이라고 소리치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웬 서른다섯 살의 성인이 저러면 짜증스러울 뿐이다.
“칼로 찌르고 나면, 치료해서, 여기에 넣어.”
세상에, 진짜 제정신 아닌 사람은 처음인데.
녹음 파일에 있던 칼로 찌르는 소리가, 사인이 아니라 제압 수단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렇게 울분에 차서 찔렀는데, 정신을 잃고 나면 치료해서…….
차라리 수면제를 먹이는 쪽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다가 변태 머릿속을 이해하기엔 내가 학식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죽는 걸, 보는 거야. 끈끈이 덫에 걸린 쥐.”
손자분은 의자에 앉으려다가 ‘내 정신 좀 봐’라는 뉘앙스로 자기 머리를 톡 쳤다.
가면의 무기질적인 타격음이 공간을 채웠다.
“넌, 죽을 거야.”
“…사표 수리는 되겠네요.”
손자분은 내 말을 신경 쓰지도 않으면서, 벽에 있는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화면에 불이 들어오고, 괴상한 디자인 센스가 한껏 들어간 게임 화면 같은 게 펼쳐졌다.
“생쥐는 멍청해서, 여기서 못 살아남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면에 ‘1:00:00’이라는 붉은색 문구가 떠올랐다.
그다음엔 바닥에서 키보드 같은 게 올라오더니, 화면이 문제로 전환됐다.
“하나 풀면, 3분씩 늘어나는데, 만약에 푸는 게 늦어져서 결국에 시간이 다 가면.”
죽겠지, 뭐. 또 다 아는 소리를 위엄 있게 하시네.
“저기서, 유독 가스가 나와. 생쥐는 방역 처리가 직방이거든. 여기서 살아나가는 유일한 방법은 남은 시간을 두 시간으로 만드는 것뿐이지.”
끔찍하네.
자신이 잘하면 살아남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주입하는 시스템이다.
아마도 문제의 난이도가 점진적으로 늘어날 테니, 한 문제당 3분이 넘어가는 순간부터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면서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구조.
이게 방송이니 망정이지, 실제였으면 얼마나 끔찍한 일일지.
“이런 거 여쭤볼 상황이 아닐 것 같지만.”
“그럼 묻지 마.”
난 깔끔하게 무시하고 계속 말을 이으며 키보드에 답을 입력했다.
화면 상단에 3분이 추가되는 게 보였다.
“제 형들은 어떻게 되나요.”
“네가 죽고 나면, 한 명씩 여기 넣을 거야.”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문제의 답을 입력했다. 마찬가지로 3분이 추가됐다.
“아까 물으려던 질문인데.”
손자분, 아니 그걸 연기하고 있는 연기자분이 가면 너머로 ‘저분은 이런 상황에 무슨 질문을.’이라며 당황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혹시 제가 계속 버티거나, 살아나가면 어쩔 계획이신가요.”
단순하다. 한 문제를 3분 이내에 풀어내면 그만이다.
지금까지는 다행히 문제가 쉬우니까, 어려운 문제가 나왔을 때를 대비해서 최대한 시간을 비축하면 된다.
어쨌든 타이머가 1분이라도 남아 있는 한 이 설정 속의 ‘나’는 죽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 더, 여기에 누가 갇힐지는 방에서 누가 처음으로 나왔냐로 결정됐다.
문제의 수준이 다른 멤버들도 버틸 수 있게끔 짜였다는 소리.
외람된 소리지만 강희 선배가 풀 수 있는 문제를 내가 못 풀 것 같지는 않다.
다시 문제의 답을 입력한다.
역시 3분이 추가됐다. ‘1:07:32’라는 숫자를 보니 호젓한 마음이 밀려왔다.
과연 문제를 풀 때 옆에서 리액션 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영 재미가 없다.
“버텨 보든가.”
그렇게 말한 손자분이 방을 열고 나가 버렸다.
* * *
지동화가 사로잡히고 멍하니 문을 바라보고 있던 준성은 숨을 들이마셨다.
“동화, 잡힌 거야?”
“…그런 것 같지.”
손을 왼쪽 가슴 언저리에 가져다 댔다.
자기가 겁이 많은 성격이고 스릴러 영화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다.
심리적으로 다른 세 명보다 지동화와 더 가까워서 계속 뒤에 숨고 부여잡고 있었는데, 그 결과가 자기 후배의 납치라니.
“내가, 먼저 나갔어야…….”
“그러니까, 그래야 나도 조기 퇴근 한번 해 보는 건데.”
류한호는 준성을 가만히 보다가 농을 친다.
‘죽은 게 아니라, 일찍 퇴근한 거다.’라는 현실 인지.
과몰입하려는 준성의 머리에 경종을 울리면서도 방송을 고려한 멘트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해? 아까 소리 들어 보니까 웬 생쥐처럼 생긴 남자가 문 잠그는 것 같던데.”
강희의 말에 모두들 한마음으로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나갈 수 있으니까 가뒀겠지, 이대로 죽으라고 가뒀을 리가.
준성은 홀로 있을 지동화를 떠올렸다.
아무리 냉정하고 침착한 인간이라도, 상황에 따라서 심리가 변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방송인 걸 알면서도 특유의 분위기에 떨고 있지는 않을까.
“아니, 그래서 뭘 당한 건데? 얘는 무슨 억하심정이냐고. 왜 우리 막내한테 난리야.”
지동화가 두고 간 종이를 읽으며 강희가 중얼거렸다.
“동화가 누명 써서 그런 것 같다며.”
“둘째야, 이거 봐라. 여기 차용증 있어.”
이경우와 류한호도 옆에 앉아 같이 고민했다. 스토리가 정확히 뭔지 의문이 드나 보다.
그러나 준성에게 그런 건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이미 머릿속엔 살인마의 손아귀 속에서 두려워하는 지동화로 가득했다.
선배는 나! 직속 후배는 너! 구해 줄게, 지동화!
준성은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봤다. 복도에 있는 방은 총 네 개였다.
구조와 방송이라는 특성상, 네 번째 방에 지동화가 갇혀 있을 것 같은 예감.
외부에서 문이 닫혔다면, 내부에서 내부로 이동하는 게 합리적일 거라는 추측이 들었다.
지동화 뒤에 숨어 있어서 그렇지, 원래 머리가 나쁜 인간은 아니다.
눈에 들어온 것은, 환풍구.
준성은 곧바로 환풍구를 떼어냈다. 스토리를 추측하느라 정신없던 형들은 준성이 뭘 하는지 신경도 쓰지 않는 눈초리였다.
“형들! 여기, 통로 있어요!”
악의 손아귀에 붙잡힌 후배를 구하는 선배.
지동화에게 말해 준 서른 가지의 꿈 중 하나다.
중2병이 늦게 찾아왔을 때 정해 둔 꿈인데, 이렇게 간접적으로 실현할 기회가 반오십이 넘어서 찾아올 줄은.
* * *
이상한데. 나는 타이머를 바라봤다.
‘1:57:24’, 이 서늘하고 음침한 방에서 탈출까지 한 문제 남았다.
“맞을 텐데.”
그런데 이상하다. 이게 틀릴 리가 없는데.
혹시 방법에 문제가 있나 싶어서 다르게도 풀어 보려 했지만 비합리적이다.
몇 번이고 똑같은 답을 입력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화면에 조금 짜증이 치밀었다.
그 후로는 그저 습관적으로 똑같은 답을 몇 번이고 입력할 뿐이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1:56:59’가 되었을 때, 내 손가락이 엔터를 누르자, ‘1:59:58’로 시간이 늘어났다.
세상에, 이런 사기꾼이. 애초에 시스템적으로 두 시간이 되는 걸 막아 놨잖아.
나는 방송인 걸 떠올리고 다시 또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무 말도 없이 문제만 풀고 있으면 분량이 0에 수렴할 게 틀림이 없다.
“막아 놨구나, 파렴치하게.”
물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제작진은 버틴다는 생각만 했지, 두 시간을 채운다는 가정을 해 본 적이 없어서 황급히 설정을 바꾼 거라고 하더라.
그러나 그런 걸 모르는 지금은 양심을 팔아먹은 살인마놈에게 짜증이 날 뿐이다.
그제야 나는 결린 어깨와 아픈 다리를 느꼈다. 똑같은 자세로 화면만 바라보면서 문제를 계속 풀다보니, 무슨 문제 푸는 기계라도 된 것 같았다.
화면에만 쏟았던 눈을 돌려 주변을 둘러봤다.
“정말, 아무것도 없…….”
유리 벽 한구석, 피로 쓰인 글자가 있었다.
‘미안하다, 진수야.’라는 문장.
아마도 유리 너머에서 자길 지켜보는 살인마를 설득하려는 시도 중 하나인가 보다.
저런 게 통할까 싶다. 이런 구조물까지 만든 시점에서 돌이키긴 어려운 일이다.
“누구 없습니까.”
적막.
“형들.”
나는 습관적으로 답을 입력하면서도 누군가를 불러봤다.
그리고 엔터를 누르자, 화면이 전환됐다.
‘생쥐치고 똑똑한 당신에게 드리는 선물.’
PPT 슬라이드처럼 지나가는 화면, 그곳에는 살인마놈의 살인 기록이 사진과 함께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