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51)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51화(219/343)
해결사무소 첫 에피소드 촬영의 막바지.
마지막 비밀번호가 다행히도 맞아떨어지면서 한동안 환호를 지른 후, 빠져나왔다.
근처 경찰서―미리 섭외가 되었음을 카메라를 통해 알 수 있었다.―에 신고 후 교외의 한적한 분위기를 느끼며, 우리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산책길에 올랐다.
서로 뭘 했는지 공유하며 지나가는 길. 나는 영상에서 봤던 이야기를 하나하나 전달해 줬다.
“…좀 안타까운데.”
“처음엔 저도 그랬는데, 그다음이 가관이라 안타까운 마음이 싹 가셨습니다. 자기 인생이 아깝다면서 저희를 죽이려고 했거든요.”
선택을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어떤 사람은 자기가 하지도 않은 선택에도 책임을 지는데 어이가 없는 인간이다.
“나쁘다. 동화가 한 고생 생각하면.”
“우리도 고생했단다, 준성아. 특히 너, 바닥을 몇 번이나 뒹굴었는지 잘 생각해 봐.”
“혼자 있으면 심리적으로 얼마나 힘들겠어요!”
“…음, 맞습니다. 많이 힘들었습니다.”
“봐요!”
체념.
이미 준성이 형은 두려움에 떠는 후배인 자신의 상상 속 ‘지동화’에게 너무 많은 연민을 느껴서 진실을 알려 줄 수가 없다.
방송 보고 배신감을 느끼지만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대체 뭐였나요, 그 고양이 울음은.”
“아니, 한호 형이 두 번째 방에서 고양이 공포증 진료 기록? 같은 걸 찾아주셨어. 고양이 울음소리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킨다고.”
그럴 수 있지. 할머니가 고양이를 찾으러 가 달라고 했던 이유도 어렴풋이 알 수 있겠다.
“…그 녹음 소리는 어디서 구했습니까?”
“같이 있던데?”
대체 왜. 무슨 용도 아니고 자기 약점을 드러내놓고 다니는 인간이 어디 있어.
납득할 수 없다는 내 표정을 본 한호 선배가 껄껄 웃었다.
“막내야, 내가 한 십 분 정도 그걸로 난리 쳐서 너 더 말해 봤자 분량 안 나온다.”
“형 걸 자르고 동화 걸 쓰지 않을까?”
“강희, 너는 내가 꼭 한번 직접 조질 거야.”
“그래서 내가 경우 형 뒤에 꼭 붙어 있지.”
마침내 도착한 할머니의 골동품점. 손자가 할머니에 대한 효도심으로, 월급을 끌어모아, 대출도 써서 내어 준 곳.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몰라 다들 말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할머님도 조금 나쁘셨지?”
“자기 손으로는 신고 못 하셨나 봅니다. 이해는 되지만, 조금.”
“그렇지? 매정한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르는데.”
“뱉어, 형.”
“겁나게 민폐야.”
한호 선배면, 저 정도도 곱게 말한 것 아닐까.
방송이 아닐 땐 훨씬 더 신랄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얼마나 억눌렀는지 알 수 있었다.
“동화가 가서 몇 마디 말씀 좀 드려. 그 손자한테 했던 것처럼 몇 마디 하면 정신이 번쩍 드실걸?”
경우 선배, 그랬다간 제 인성 논란이 터지진 않을까요. 아까 전엔 작전 수행이라는 면죄부가 있었지만.
한참을 그렇게 주절주절 떠들어댈 때, 문이 열리며 할머니가 고개를 내미셨다.
무거운 표정에서 미안한 감정이 드러났다. 연기 잘하시는 할머니다.
“…왔어?”
“어우, 어르신, 힘드시게 왜 여기까지 나오셨어요.”
경우 선배, 말은 그렇게 하셨으면서 본인은 너무 따스하게 대하시는 것 아닙니까. 말씀대로 했으면 저만 난처해졌겠어요.
“…미안해라, 우리 젊은이들.”
“아유, 사지 멀쩡하게 나왔잖아요.”
경우 선배와 강희 선배는 어르신을 달래는 제스처를 취했고, 한호 선배는 하루가 고되었으니 이만 퇴근하게 빨리 마무리했으면 좋겠기에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준성이 형은 내 뒤쪽에 서서 조금은 밉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이거, 이거라도, 받아줘. 자네들 가고 내가 마음이 아파서…….”
할머니 손에 들린 묵직한 봉투.
한호 선배가 재빨리 피곤하다는 표정을 지우고 난처한 기색을 표했다.
“아이, 어르신도 참, 뭐 이런 걸…….”
그러나 손은 정직하게 곧바로 돈 봉투를 받들었다.
연기자분도 순간 ‘어? 두세 번 더 권하는 거 준비하고 있었는데?’라는 기색으로 순간 당황하셨다.
그에 아랑곳 않고 한호 선배는 후― 소리를 내며 안을 확인하더니 흡족하게 웃었다.
“아이참, 또, 뭐, 그렇게 미안해하실 필요 없는데, 그, 참. 그래도, 사람이 죄를 짓지 돈은 죄를 짓지 않으니…….”
명예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인간, 그 자체다.
“형, 물욕 좀 줄여. 그러다 인생 훅 가.”
“경우야, 어르신 마음을 잘 받는 거지. 이걸 물욕으로 보면 서운해?”
입술을 꽉 깨물어 웃음을 참았다. 저게 컨셉인지 아닌지 솔직히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와중에도 우리의… 준성이 형은 뒤에서 ‘돈이 문제가 아닌데…….’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실리보다 명예를 중시하는 인간.
남한산성에서 김상헌과 최명길이 논쟁하는 걸 보는 기분이야.
* * *
“오늘 고생 많았다, 얘들아!”
첫 에피소드 촬영이 끝나자 출연진들이 전원 탈진을 호소했다.
유일하게 힘이 남은, 사실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것 같은 경우 선배가 출연진을 다독이며 중얼거렸다.
“아, PD님이 오늘 촬영 보고 다음 촬영 준비 더 빡세게 한다더라. 지금도 이렇게 빡빡한데.”
“맞아, PD님 예상이랑 달라도 그림이 잘 나와서 다행이라더라. 동화 구해주는 거, 원래 우리가 밖에서 살인마 제압하고 들어가서 구해주는 건데, 우리가 엄청 위험하게 구한 거래.”
“예?!”
준성이 형이 순간 화들짝 놀라며 나를 돌아봤다.
결과론적으로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명예를 중시하는 인간이라 신경 쓰이나 보다.
“아니, 그림 달라질 게 싫으면 대본을 주면 되지 않아?”
“대본 줘서 처리할 거였으면 경우를 캐스팅했겠니. 무슨 상황이 벌어지든 알아서 진행해 줄 애가 하나 있잖아.”
“형, 그렇게 말하면서 내 취급은 왜 그래.”
“원래 기생충은 지능이 좀 떨어지는 거란다.”
발언 수위, 대단해. 한호 선배의 농담은 기본이 자기 비하인가 보다.
방송이 끝나서 나는 옅게 웃었다.
신경 써야 할 카메라가 없으니 표정 관리를 하지 않아도 돼서 편안하다.
“한 번 해 보니까, 나 열 좀 받았어.”
강희 선배가 내 눈을 똑바로 보며 선언했다.
“네?”
“다음번에는 내가 문제 다 푼다, 진짜.”
여기저기서 탄식 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인간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기에,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다.
애초에 이 프로그램의 문제는 발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더 많아서 강희 선배의 자유로운 사고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내 미소를 보고 도리어 강희 선배가 당황했다.
아무래도 농담이 의도였는데, 내가 진지하게 받았나 보다.
“그래, 다음에 딱 보자. 강희가 각성해서 오늘 준성이처럼 다 풀어 재끼는지.”
“맞지. 강희가 또 안 드러나서 그렇지, 똑똑하잖아.”
다른 출연진도 흐름에 몸을 맡겨 강희 선배 칭찬에 몰두했다.
점점 더 당황과 황당, 그 사이 어디쯤에서 수치스러움이 스며든 얼굴로 선배는 ‘퇴, 퇴근할게요!’라고 소리 질렀다.
기왕이면 정말 말대로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 *
퇴근길. 언젠가처럼 준성 선배와 같은 차에 탔다.
“어땠어, 오늘 촬영? 나는 중간에 너무 과몰입했는데.”
“저도 그랬습니다.”
…아마 그럴걸요.
류이든의 사회성 특강 심화편, 상관의 말에는 우선 공감을 할 것.
“재밌다. 진짜. 선배님들도 엄청 잘 챙겨 주시고.”
준성이 형은 꺄르르 웃으며 오늘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조잘조잘 떠들었다.
아쉽게도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준성이 형의 모습은 두려움에 떨며 내 팔을 붙잡고 있던 모습이라, 매치가 잘 되지 않는다.
그런데, 재밌었다. 예능 촬영을 하고 나서, 다음 촬영을 기대하는 건 처음인 것 같다.
멘탈 수업 촬영에 나갈 땐, 오늘도 무슨 염병을 떨어놨을지 신경이 곤두서고, 다른 방송은 재미보다는 무언가 보여 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우선한다.
그런데 오늘은 멤버들이랑 연습할 때처럼, 함께 해내고 있다는 감각이 들었다.
특히 다른 출연자들이 나를 구하러 왔을 때, ‘저 사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을 해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이데거는 사람이 홀로 존재하는 건 함께 존재하는 것의 결핍된 방식이라고 했다.
이런 감각을 멤버들도 아니고 다른 연예인에게서 느낄 줄은 몰랐다.
“저도 재밌었습니다, 형.”
“…어?”
준성이 형은 못 들을 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경기를 일으키더니 편히 누웠던 몸을 화들짝 일으켜 세웠다.
“자, 우리 동화, 다시 말해 보자.”
그러면서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 녹음할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게 대놓고 준비하면 그냥 해 줄 수 있는 일도 하기 싫어지는 법이다.
“뭘요, 선배?”
“…난 진짜 네가 조금만 덜 똑똑했으면 훨씬 일찍 친해질 수 있었을 것 같아.”
떨떠름한 표정으로 주섬주섬 핸드폰을 집어넣는 준성이 형.
아마도 맞는 말일 것 같다.
내가 똑똑하다는 게 아니라. 내가 거리를 재는 게 습관이 아닌 사람, 그러니까 석준 같은 사람이었으면 훨씬 일찍 친해졌겠지.
사람들은 계산적인 성격을 똑똑함과 연관 짓는 잘못을 자주 범하니까.
“제가 원래 좀 늦습니다, 형.”
“…하, 폰 넣으니까 하는 거 진짜.”
허탈하게 웃으며 창문을 바라본다. 그러면서도 짜증이 났다기보다는 편해 보였다.
“예전에, 너랑 예언이 관련으로 얘기했던 날은 진짜 무서웠는데.”
그날 일을 꺼내면,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몇 없는데.
“갑자기 두통으로 고문을 하질 않나.”
“…음.”
“근데, 오늘 촬영하면서 깨달았어.”
“뭐를요?”
“목표 달성 방법이 그런 식이라는 거.”
오늘 촬영 어디서 그런 걸 깨달을 수 있었을지 도저히 모르겠다.
“자기도 수단으로 쓰는 거지, 너. 일단 목적 정하고 나면 할 수 있는 거 다 쓰는 편인 거잖아. 녹음기 틀 신호 보내 달라고 했는데, 문 다 열릴 때까지 기다리는 거 보면서 진짜……. 그냥 내가 언제 틀지 정할 거라고 할걸.”
저런, 이런 부분까지 류이든처럼 눈치가 빠르면 좀.
“어쨌든 위험해, 위험해, 아주. 그러다 주변 사람들 막 상처받는다.”
떠오르는 몇몇의 얼굴들.
어떻게 살다 보니 주변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자꾸만 늘어간다.
눈앞에 있는 양반도 처음에는 가까워질 생각은 없었는데도 어느새 이렇게 됐으니까.
“…최근에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습관은 잘 안 바뀌니까. 주변 사람들 생각해서 그러는 건 아는데, 그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일단 나부터 엄청 마음 아플 건데 멤버들이나 목화 씨는 더할 거 아냐. 작업도 조금 쉬엄쉬엄하고. 너 멤버들 몰래 링거 맞으러 간 거, 나는 알고 있다?”
세상에, 그런 비밀을. 매니저님 말고는 아무도 모르게 했는데. 저건 자신의 말에 수긍하라는 은근한 협박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고갤 끄덕였다.
“…네.”
준성 씨는 친해진 김에 하고 싶은 말 다 했다는 듯이 후련한 표정으로 몸을 누였다.
“그래서, 오늘은 숙소 가서 바로 쉴 예정?”
“…작업실에.”
턱, 창문에 대고 있던 손을 떨어뜨리는 준성이 형. 참 어이가 없어 보였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똑똑한 네가 이 짧은 새 까먹었을 리는 없고…….”
그러다가 깨달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 내가 멤버들한테 말해 줄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구나. 진짜, 사람 잘 알아.”
당연하지. 갈등 조장을 할 선배가 못 된다.
“근데 하나 몰랐던 건, 내가 친해진 사람한텐 가끔 무례하게 굴기도 한다는 거지.”
“…네?”
준성이 형이 핸드폰을 흔들었다.
“지금,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