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53)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53화(221/343)
음, 일어나기 싫어.
살면서 몇 번 경험해 본 적 없는, 일어나기 싫은 아침. 황혼녘의 노인처럼 새벽이라 우선 눈이 떠졌는데,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보면 일어나고 싶지는 않다.
‘인생.’
오늘 하루 스케줄은 석준과 라디오 하나가 전부. 그전까지는 연습밖에 없다.
다른 말로 하면, 그전까지 멤버들과 얼굴을 맞대고 부대껴야 한다는 뜻이다.
‘망할 인생.’
어제 그런 소리를 하고 얼굴을 종일 봐야만 한다니……. 차라리 멘탈 수업 촬영을 일주일 내내 하는 편이 낫겠, 음, 그건 해 보기 전까진 모르겠다.
마음 같았으면 다 잊고 잠들고 싶지만, 한 번 깨고 나면 다시 잠들기 힘든 성격 탓에 우선 일어났다. 상체를 반쯤 일으켰을 때.
“동화야.”
넌 왜 깨어 있어. 평소처럼 자면 안 될까, 하민. 평소에는 아침잠 때문에 고생했잖아.
나는 자연스럽게 다시 상체를 눕히고 눈을 감았다.
어차피 마주해야 할 비극이라면 피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오늘만큼은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가 왜 그리 집에 돌아가는 걸 피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동화야.”
그러나 채하민은 포기를 모르는 놈이다.
회중시계를 들고 뛰어가는 어느 토끼처럼, 목표가 정해지면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 달려가는, 눈치 없는 토끼 새끼.
“좋은 아침.”
나는 다시 스르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 이 정도는 이제 수치스럽지도 않다.
“…동화야.”
초혼(招魂)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다른 말 없이 이름을 부르는 걸 듣고 있으려니 기분이 묘하다. 나는 애써 고개를 돌려 채하민과 눈을 맞췄다.
그런데 너는 왜 미안해 죽겠다는 표정인지 잘 모르겠네.
“왜?”
“그게, 미안해서…….”
또 뭐가, 망할 놈아. 너는 땅굴 파는 습관을 언젠가 직접 고쳐줄 거야.
“가족…….”
“그만.”
더는 말하지 말아 줘. 같은 방을 쓰고 있는 게 채하민이라 다행이지, 류이든이었으면 그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내가 수치스러워 하는 순간 얼마나 염병을 떨어댈지 상상만 해도…….
벌컥, 갑자기 문이 열렸다.
새벽 운동을 끝내고 왔는지 땀에 젖은 류이든의 낯짝을 보니 곧바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자, 우리 동화는 나를 앞으로 뭐라고 불러 줄 거지? 삼촌? 언니? 이모? 뭐든 좋아!”
누가 개 아니랄까 봐, 이름 불리면 곧바로 달려오네.
채하민이 자고 있으면 저런 짓도 못 할 텐데, 목소리가 들리니 후다닥 들어온 모습이다.
“닥쳐, 이든.”
“정 없다, 가족한테. 우리 동화가 사춘기가 왔나. 그래서 나는 뭐냐니까. 블로센스 가족 관계도 확정하자!”
나는 곧바로 머리맡에 소중히 보관해 둔 벽돌 쿠션을 손에 쥐었다.
요즘은 이게 없으면 밖에 나갈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생필품이 되고 말았다.
“형.”
“그건 볼 때마다 잘 만들었다. 주문 제작이 좋구나. 진짜 벽돌 같아서 오싹해.”
“다음엔 진짜일 거야.”
“…농담이지?”
“농담은 항상 어느 정도 진실을 담고 있어, 형.”
류이든은 내 결연한 눈빛을 보고 입을 꾹 다물었다. 말문이 막힌 모습.
그리고 침대에 앉아서 침울하게 있던 채하민이 갑작스레 중얼거렸다.
“…나는 동화보다 형으로.”
뭐라는 거야, 넌. ‘형’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분석해도 내가 하는 게 옳은데.
류이든과의 짧은 실랑이가 끝나고, 내 손에 언젠가 망할 개 한 마리가 기특하게도 스스로 씻으러 가고 나서, 평화로운 침묵이 찾아왔다.
벽돌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침대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수치는 달궈진 돌처럼 서서히 등 위에 올려둬도 있는 듯 없는 듯 식어 갈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합리화하며 나는 마음에 평안을 얻었다.
어차피 기지생처럼 살며 한 천 년 정도 흐르고 나면 지금 이 순간도 수치는 사라지고, 따스한 기억으로 남겠지.
[누가 보면 나라의 명운을 건 역사적 결정을 내린 선지자라도 되는 줄 알겠습니다!]쉿. 혹시 모르잖아. 내 인생에서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닐지도.
나는 아직 두통의 원인을 명확히 알지 못하지만, 두통이 있었던 다른 사건이 내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아니까.
그런 내 상념 사이로 서글픈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동화야, 동화야아.”
채하민은 아무리 봐도 장례식장에서 사람 부르는 꼴이라 섬뜩할 지경이다.
“왜.”
퉁명스럽게 답을 해도 채하민은 기죽지 않는다.
“…일, 열심히 해 줘서 고마워. 진짜, 정말.”
너, 어제까지만 해도 내 생활 스케줄 표를 만들어서 직접 관리하겠다고 말하던 인권 탄압 검사였어, 하민.
“그래도, 나, 나도! 너 가족 같으니까, 가족 건강 걱정되니까 조금만…….”
채하민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이 말을 하는 게 맞는지 아닌지 확신이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가족 같아서 열심히 일한다는 가족 같은 친구를 말리는 게 맞을까?!’라는 고뇌에 빠진 게 분명하다.
“알아.”
지금은 컨디션 관리를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너한테 어떻게 설명해 줄지가 고민이다.
* * *
연습실에 들어설 때부터, 연습을 하다 잠시 쉴 때까지 오묘한 시선이 계속 내게 꽂혀 왔다.
나는 습관처럼 벽돌을 집어 들었다. 누가, 뭐라도 한마디라도 하면, 곧바로 달려가서 류이든을 내리칠 예정이다.
멤버들 중에서 그 시선이 유독 눈에 띄는 놈은 딱 두 명. 채하민과 이현재다.
류이든은 어떻게 놀릴지 각을 재면서도 내 손에 들린 벽돌을 보며 흠칫하고 있었고, 석준은 내 옆에 앉아 쉬면서 주괴나 하고 있으니 평소와 별다를 건 없었다.
그러나 채하민은 아침에 보였던 내적 모순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 내 건강 걱정과 고마운 마음이 수시로 교차하는지 눈에 담긴 감정도 그에 따라 휙휙 바뀌었다.
[동화한테 사과를, 그래도 일은 좀! 아! 내가 어제 왜 그렇게 뭐라 했을까, 동화가 무슨 생각하는지 더 생각해 봤어야 했는데. 동화 반만큼만 똑똑했어도……. 나한테도 가족 같은 사람이라 그걸 생각 못 했어. 아버지가 원래 친한 사이일수록 더 신경 써야 한다고 했는데!]기지생, 뭐 해.
[지금 채하민의 머릿속 생각을 잠시 확인해 봤습니다. 저도 궁금해서.]반면 이현재는, 내가 아는 문학 전공자 중에서는 가장 건조한 눈을 가진 사람이면서 나를 따스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고 있으니 이건 이것 나름대로 기묘한 기분이다.
[아, 피가 좀 섞였으면 더…, 세상에, 머릿속이 예상만큼이나 날것입니다. 읽어 드리진 않겠습니다.]…고마워. 알고 싶지 않았거든.
내 머릿속의 이현재는 언제까지고 귀여운 막내다. 첫 만남의 의기소침했던 그 이현재처럼.
기지생이 순간적으로 [경험상 제일 미친놈입니다! 문도 부순다고요!]라는 알림창을 띄웠다가 지웠다. 못 본 척하자.
[어쨌든 결론적으로, 모두들 당신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가족 같다는 말이 다들 좋나 봅니다.]‘…그래?’
[네. 이 시공간의 관리자로서 당당히 말씀드리겠습니다!]‘…그래.’
[당신의 심리 상태 추측 : 안도, 안심, 다행.]아직까지 조금 남아 있던 두통이 어렴풋이 사라졌음을 느꼈다.
이번에도 또 내 내면의 밑바닥을 확인하고 말았다. 알림창이 뭘 의미하는지 이해한 순간에 느껴지는 이 자괴감을, 어쩌면 좋을까.
그러니까, 지금, 내가 고작…….
“우리 가족 동화!”
나는 곧바로 류이든을 내리쳤다. 평소라면 한 대에서 끝났을 쿠션 폭행이 두세 대 정도 더 이어지고 말았다.
일부러 아프지 않을 재질을 넣어 달라고 부탁드린 덕분에 아프진 않겠지만.
“어? 그? 어?!”
평소완 다르게 길게 이어지는 벽돌의 시간에 당황했는지 류이든이 눈을 크게 뜨고 흐느적댔다.
손을 멈추고 나니 다시 깊은 한숨이 흘렀다.
…고작, 거절당하는 게 두려워서 그 정도 두통을 겪었다고.
* * *
새벽 1시, 나는 멤버들 몰래 작업실에 안착했다.
채하민이 잠귀가 밝은 편이 아니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작업이 목적은 아니니까 합법이다. 혼자 중얼거려도 괜찮을 장소가 이곳밖에 없었다.
“기지생.”
[네.]“…우리,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그걸 이제 아신 게 문제 아닙니까.]“꽤 회복된 줄 알았거든.”
아버지의 책과 어머니의 악보를 볼 수 있고, 목화가 내 곁에 있고, 친구라 부를 짐승도 있다. 회복의 징후가 이렇게 많으니.
[내적인 상처가 치유됐다고 해서―]“타인과의 관계에 익숙해진 건 아니다.”
기지생과 나는 동시에 같은 결론을 내렸다.
정신의학과 서적을 취미 삼아 읽었다고 해서 내 머릿속의 문제를 명확히 짚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징후가 있다는 것쯤은 알겠다.
기지생은 마치 내 생각에 답변이라도 하듯이 자신의 관찰 결과를 보내 줬다.
[당신을 여태껏 지켜본 결과, 대부분 상대방이 먼저 어떤 감정을 표현하고 나서야 동의하는 형식으로 감정을 표현하곤 했습니다.]저런, 어쩐담.
“…만일 다르다면 어떡하나, 라는 불안감이 기저에 깔려 있다는 뜻.”
[네, 거절당하는 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이제야 알게 됐을 뿐입니다.]“확실히.”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을 정리했다.
음, 결국 그 근본은 내가 너를 아끼니 너도 나를 아껴 줬으면 한다는 심보라는 거잖아. 이 무슨 애새끼 같은. 나는 내 심리상태에 진절머리가 났다.
“그래?”
[우리는 한 가지 사실만 머리에 박아 넣으면 됩니다.]“…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든 우선 받아들여 줄 것이다?”
[네, 그러면 알아서 해결될 문제이기도 합니다. 저는 제 정신도 제대로 치료 못 하는 생명체라 확신은 없습니다.]살포시 미소가 새어 나왔다.
그러게, 애초에 다른 멤버들의 머리를 들여다보는 생명체가 나한테 붙어 있는데, 이게 무슨 문제가 될까.
기지생이 확인해 준 대로, 멤버들은 수치스러운 ‘그 발언’을 기쁘게 받아들였다고 했다.
정말로, 시간이 흐르면 서서히 나아질 문제일 뿐이네. 내가 멤버들의 어떤 감정이든 받아줄 생각이듯, 그들도 그럴 텐데 말이다.
“미리 예습해. 너도 겪을 문제야.”
나는 기지생에게 툭 던졌다. 저놈은 나보다 상태가 몇 배는 심각하니까, 채하민도 못 견디고 나가떨어질지도 모르겠네.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저도 못 하는 걸 당신이 할 수 있을 리가.]“네가 한 걸 내가 발전시키지 못할 리가.”
잠시간의 침묵.
[그럼 이제 들어갈 계획입니까?]세상에, 나를 몰라도 너무 모르네.
“당연히 작업할 예정.”
여기 온 목적은 작업이 아니지만, 작업실에 왔으면 겸사겸사 작업을 해야 하는 법이다.
왠지 모르게 기지생과 대화하고 나니 컨디션이 돌아오는 기분이라 너끈히 할 수 있다.
* * *
이 밤, 채하민은 올블랙으로 갖춰 입고 회사에 잠입―이라고 적지만 당당하게 경비분에게 인사드렸다.―했다.
“…아주 요망해. 혼내지도 못하고, 이젠!”
지난번에도 몰래 작업을 하러 가서 쓰러져 링거를 맞았다더니―기억 왜곡이다.―아주 막 나간다, 우리 동화!
작업실 앞에 당당하게 선 채하민은, 작업을 방해하진 않을 생각이라 그저 문 앞에 쭈그려 앉았다.
당당했던 태도와는 다른 좀생이 같은 행동거지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엔 최소한 지동화가 쓰러졌을 때 병원에 신고할 인간 한 명쯤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문에 기대어 앉아 노곤하게 몰려오는 잠을 밀어내고 있을 때, 문득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기지생.’
음? 채하민은 고개를 갸웃했다.
한국인 이름이라기엔 뭔가 기묘해서. 무슨 사주 볼 때 쓰는 생년 같은 느낌이라 더.
이 시간에 누구랑 통화하는 거지.
‘…우리,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뭐지. 지금 대화 중이야!
채하민은 화들짝 놀라 홉―, 하고 소리를 낼 뻔했다. 하지만 재빠르게 입을 꾹 눌러 막아 소리를 억눌렀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열려다가, 직접 말해 주지 않은 사항을 자기가 엿들었다는 사실에 다시 땅굴을 파고 들어갔다.
‘어, 어쩌지. 이든이 형한테 상담하는 건…, 뒷얘기 같고!’
채하민은 ‘어쩌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채, 털썩 문 앞에 주저앉았다.
채하민 인생에 갑자기 던져진 고난도의 문제.
문에 머리를 기대고 골똘히 대응책을 찾던 채하민은, 그대로 잠에 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