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254)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254화(222/343)
새벽 다섯 시, 나는 기지개를 켰다.
음, 개운한 아침. 어제 아침보다 밤을 새운 오늘이 차라리 상쾌하다. 편안한 마음과 안정감.
작업을 하며 기지생과 기나긴 대화를 나눈 끝에 내린 결론.
[결과적으로 뭘 걱정합니까. 어차피 당신이랑 똑같이 생각하는 놈들뿐입니다!]“그러니까.”
자리에서 일어나며 속으로 웃었다.
똑같다, 평소에는 달갑지 않은 단어인데 오늘은 은근하게 와닿는 말이다.
부담스러워 하지도 않는다. 도리어 기지생에 따르면 이현재의 경우 나보다 더한 생각을 하고 있다 하니―정확히 무엇인지 묻진 않았다.―다행이다.
[염병을 떱니다! 구토 유발제 한 사발 한 기분입니다! 속으로 웃긴커녕 얼굴에 다 드러나는데 보기 흉합니다.]닥쳐. 넌 예습이나 하도록.
관계 맺기를 대학교에 비유한다면 나는 대학원생이고 너는 수험생이잖아, 망할 기지생.
어쨌든 오늘, 처음으로 개인 곡 작업을 시작했다.
이현재가 나의 개인곡까지 써야 내가 모든 멤버들에게 곡을 선물해 준 거라고 얘기했을 때부터 손도 대지 못했던 작업인데. 8할은 기지생 덕분이다. 기지생의 심리 상담소.
[아주 염병을 떱니다!]저런, 어쩜 항상 반응이 똑같은지.
[당신도 똑같은 건 아십니까?]설마, 내가 그럴 리가.
[새벽에만 해도 인정했으면서!]나는 기지생을 무시했다.
채하민과 류이든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출발해서 숙소에 도착해야 완전범죄, 아, 범죄는 아니지.
[주의하시길!]뭐를. 별다른 답이 이어지지 않기에 나 역시 별말 없이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툭.
음, 뭘까. 해결사무소나 멘탈 수업 둘 중 하나를 촬영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문 앞에 시체가.
‘…잠깐, 채하민이잖아.’
세상에, 그냥 시체가 아니라 채하민 시체면 이야기가 상당히 다르다.
나는 침착하게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맥부터 쟀다. 음, 살아있네. 다행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게 물든 채하민, 마스크까지 검은색. 외관으로 판단하면 안 되지만, 통계적으로 봤을 때 전형적인 범죄자 차림이다.
혹시 내가 작업실에 간 걸 눈치채고 납치라도 하러 온 걸까.
툭툭, 어깨를 두드려도 채하민은 깊게 잠에 빠진 듯이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이런 곳에서 잘 수 있지.
“하민, 스케줄 가야 해.”
스케줄, 마법의 단어다. 채하민은 내가, 석준은 류이든이 세뇌해서 자고 있다가도 반사적으로 일어난다.
스르르 열리는 눈. 상황 파악이 안 되는지 멍하게 나를 보고 고개를 돌려 복도를 보고 다시 나와 눈을 맞췄다.
“…어?”
뭐, 토끼 놈.
“일어나.”
“여기, 어디야?”
“회사 복도.”
“…왜?”
글쎄. 너 말고 그 누구도 네가 노숙한 이유를 알 순 없을 것 같지만 감히 추측해 보자면.
“아마도, 누굴 감시하러 왔다가 잠든 거 아닐까.”
“…아, 그런가 보다.”
“그러게.”
채하민은 내 말에 수긍해선 고개를 몇 번 끄덕이다가 무언가 이상한지 미간을 찌푸렸다.
선한 인상이 구겨지니까, 할 수 있는 최고의 탈선이 ‘부모님 말에 대답하지 않기’인 양아치를 보는 것 같다.
“…뭔가 잊은 기분.”
중얼거리는 채하민을 일으켜 세웠다.
“아, 기지생이 누구야, 동화야!”
“…음.”
생각보다 일찍 여기 왔나 보다.
정황상, 내가 방을 나가자마자 일어나서 따라온 셈인데, 잠귀가 어두운데 어떻게 따라 깼는지 모르겠다.
“내 친구 이름.”
“친구?”
화들짝.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커졌다.
“…친구?”
그러고 다시 한번 물어 보는 모습.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긴 한데 틀린 말도 아니다. 자기 자신과 친구라는 말은 우습기 짝이 없지만, 문학적으로는 통용될 만하다.
[우리가 그냥 친구 사이야? 실망이야. 서운해.]닥쳐 줘. 구토 유발하지 말고.
* * *
채하민은 연습실에 앉아 생각했다.
‘문제가… 있다고 했어.’
동화 앞에서는 구체적인 대화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척했지만, 채하민이 그런 인간이 아니다.
애초에 주황색 다이어리에 대화 내용을 다 받아 적었으니까.
그는 남들 몰래 다이어리를 펼쳤다.
그 안에는 기념일 목록이 길게 이어졌다. 모든 멤버들과의 추억을 하나하나 적어 놓은 광기의 기록이다.
그중에는 ‘준이랑 같이 처음으로 영화 본 날’처럼 사소한 것도 적혀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보다 중요한 건 대화 기록, 페이지를 스르륵 넘겼다.
우리 정신에 문제가 있다,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일까.
동화는 사랑한다는 말과 비슷한 뜻으로 제정신 아니라는 말을 하곤 하지만, 주어가 ‘우리’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그렇게 지동화가 들었으면 ‘너, 제정신 아니야.’라고 짧게 답해 줬을 생각을 이어나가며, 채하민은 수없이 여러 가능성을 탐구했다.
“형―님, 뭐 하십니까.”
그런 채하민의 옆에 조용히 앉은 석준.
“쭌.”
“네―”
“기지생이 누군지 알아?”
모든 걸 말하지는 못하겠으니, 그저 대나무숲에 소리치는 심정으로 툭 던져 본 말.
석준은 갑자기 나온 사람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떠올렸다.
“아―, 예전에― 동화 형님이 화장실에서― 혼잣말로 기지생 뭐라 뭐라 하셨던 것 같습니다―. 전화도 아니고 허공 보면서―. 저는 상상 친구이겠거니― 했습니다. 저도 있거든요.”
토끼가 뒷걸음질 치다가 버섯을 밟은 격이다.
“…어?”
그러고 보니 자기도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았다.
언제, 어디서…, 기 씨 성의 지생이라는 이름은 현대 사회에 지을 법한 이름은 아닌데.
기억에 뿌옇게 안개가 껴 있는 느낌. 떠오를 듯 말 듯, 간질거리는 기분.
“왜 그러―십니까, 형님?”
입술을 삐죽이다 연습실 바닥에 고개를 반복해서 박고 있는 채하민의 진짜 광기에, 가짜 광기 석준은 조금 섬짓해져 한 걸음 물러났다.
사실 류이든 선정 블로센스 내 광기 순위 1등은 지동화와 채하민이 격렬하게 다투는 분야라 어쩔 수 없다.
“…무섭―습니다.”
“얘, 왜 이래.”
강력한 라이벌 지동화가 한 손에 물병을 들고 경멸하는 표정으로 채하민을 내려다봤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자기 연습실 바닥에 이마를 박아대는 건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동화야.”
확 들어 올린 고개. 이마가 부어올랐는데도 전혀 아프지 않다는 결연한 표정이 돋보였다.
깨달은 현자의 눈빛이 토끼에 깃드니 영험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왜.”
“너, 몇 살이지?”
석준은, 지동화 인증 순수한 존재인 석준은 아무리 봐도 헛소리라서 순간, 표정을 찌푸리고 말았다.
“혀, 형님?”
‘저건 나이 어린 놈이 설칠 때 꼰대가 할 법한 대사인데’, 멀리서 지켜보던 이현재도 그렇게 속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평소라면 제정신이냐고 물어볼 지동화가 은근히 입꼬리를 올려 답했다.
“기억났어?”
“와, 잠깐만, 진짜…, 으어! 나, 좀, 막! 와!”
인간의 언어라고 보기 힘든 외마디 감탄사만 쏟아내던 채하민이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지동화에게 달려들었다.
어깨를 잡고 탈탈 털어대니 홍보용 풍선 인간처럼 휘청거리는 지동화. 그런데도 평소와 달리 흐뭇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혀, 형님?”
지동화에게서 자주 보기 힘든 표정이 채하민에게 흔들릴 때 보이니 맛이 간 건가 의아할 만하다.
그러나 이현재는 ‘그래, 내 형이 가끔 미칠 때가 있구 그렇지…….’라며 별생각 없이 태블릿으로 시선을 돌렸다.
“동화야! 동화야! 으어, 힘들었, 끄, 으어! 형! 동화 형!”
채하민은 술자리에서 있었던 모든 이야기를 떠올렸다. 지동화의 내적인 개인사를 모두.
그걸 얘기해 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지 곧바로 깨달았다. 그리고 그걸 모두 잊어 먹은 자신을 봤을 때 얼마나 허무했을지도.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울부짖는 채하민을 보며 지동화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너, 멍청해.”
지동화의 말을 듣자마자 채하민은 울먹임이 극에 달해 대성통곡했다.
윗몸일으키기나 하고 있던 류이든이 반강제적으로 크런치 자세로 고정되어 코어의 튼튼함을 과시했다.
석준은 조용히 이현재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으어, 그니까! 왜 나 멍청한데! 짜증나!”
“앞으로 그렇게 술 마시지 말고.”
“안 마실 거야! 으허!”
콧물까지 흘려대는 채하민.
팬들 사이에서 연한 선의 얼굴 덕에 많은 사랑을 받던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동화가 ‘그만 앉고 싶다.’라는 생각을 할 때쯤, 채하민이 뒤로 풀썩 쓰러지듯 누웠다. 그 동작조차 춤추는 버릇 덕에 태가 났다.
“아, 동화 반만큼만 술 잘 마시고 싶다.”
불가능한 이야기다. 주량을 결정하는 데에는 유전의 영향이 가장 크니까.
술을 마시면 는다고는 하지만, 그건 몸을 버려 가며 마실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무한대를 2로 나누면 무한대 아니야?”
류이든이 그 꼴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중얼거렸다.
“그렇죠. 형, 의외네요. 그걸 다 아시구.”
“현재 요즘 나를 너무 바보 취급해.”
“…그럴 리가요.”
“동화야! 우리 가족이 이래서야 되겠어! 막내가 형에 대한 존경심이 없어!”
습관적인 지동화 놀리기.
류이든은 어제까지만 해도 미친 듯이 잘 먹혔던 놀림거리를 입에 또 올리고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원래라면 내리쳐져야 할 벽돌의 세례에 대비하기 위해서.
그러나 웬걸, 지동화는 얌전히 채하민 옆에 쭈그려 앉아 웃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원래 좀 혁명적이라.”
누워 있는 채하민을 흔들어 대면서 아무런 타격도 없는 목소리로.
“맏형은 끌어내리는 게 일상이지.”
“…뭐야, 동화, 너, 왜 그래!”
“뭐가.”
“어, 어제만 해도!”
지동화는 말의 빈틈을 파고들어 한마디 톡 쏘아붙였다.
“우리 형은 과거에 갇혀 살아서 어쩔까.”
“…우리 형?”
“와, 동화 형, 혹시 오늘 이든이 형한테 협박이라두 당했어요? 어쩌다 그런 친밀한 호칭을…….”
믿을 수 없음, 그러나 부끄러움.
류이든은 그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끼며 일그러지는 얼굴을 막지 못했다.
“…반대잖아, 내가 놀리는 건데. 왜, 왜 반대야. 왜 내가 부끄럽냐고…….”
절망이 눈에 담기고, 류이든은 크런치 자세를 더는 유지할 수 없어 툭 떨어지고 말았다.
* * *
“안녕하세요, 여러분.”
W앱 라이브.
다른 멤버들과 함께 켠 일은 잦았는데 홀로 켜는 건 오랜만이다.
―교수님 제시간에 착석했습니다 ^^
―귀여워 지동화… 당신… 납치하지 않은 나, 대견해…
“여러분, 오늘은 제가 대형 스포일러를 할 예정입니다.”
참고로 회사에 허락은 받았다.
오늘 W앱 라이브에서 다음 월간 지동화 작업물과 다음 앨범 작업물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해도 괜찮냐고 물어봤으니까.
물론, 나는 사람이므로, ‘회사가 허락한 범위’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할 수 있고, 그로 인해서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어느 정도 ‘오차’가 발생한다고 해서 나를 탓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일단 나는 콧노래부터 흥얼거렸다.
회사에서 허락해 준 적은 없지만, 충분히 ‘오해’해서 할 수 있는 실수다.